북한을 떠나 국내에 들어온 새터민이 지난해 연말 기점으로 1만5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1998년까지 채 100명이 되지 않던 ‘한 해 입국 새터민 수’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2809명을 거쳐 올해에는 3000명을 넘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해 입국 새터민 3000명, 국내 거주 새터민 1만5000명 시대에 돌입했지만 새터민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이방인 취급받기 일쑤다. 지난 2003년 입국해 만6년 동안 남한에서 살았지만 아직도 낯선 것이 더 많다는 새터민 김병욱.김영희 씨 가족의 좌충우돌 남한사회 정착이야기를 지난 4월12일 만나 들어봤다.
<사진> 지난 4월12일 만난 6년차 새터민 김병욱 씨 가족들은 아직도 남한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남한사회 정착 6년…국민 일원 인정받고파”
한국TV보며 남한서의 삶 각오
“언어ㆍ생활 서로 달라 큰 고초”
새터민은 실업률이 국내 평균의 7배에 달하고 취업을 했더라도 대부분 일용직이나 단순 서비스직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40대 중반인 김병욱ㆍ김영희 씨 부부는 새터민 가운데에서는 남한 사회에 빠르고 성공적으로 정착한 케이스다. 김병욱 씨는 새터민 지원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 연구위원으로, 김영희 씨는 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원이라는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다. 특히 북한에서 6년제 대학 졸업 후 공무원과 회계사로 각각 근무했던 김 씨 부부는 남한으로 넘어온 뒤 곧바로 경남대 북한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과 박사과정에서 함께 공부하며 남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다른 경쟁력도 하나 둘 키워 나가고 있다.
김 씨 가족은 4개월간의 중국과 몽골생활을 거쳐 지난 2003년 입국했다. 탈북과정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탈출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중국 출신인 어머니로 인해 알게 모르게 승진에 한계를 인지한 김병욱 씨는 중국을 자주 왕래하던 어머니로부터 남한사회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상세히 접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먼저 탈북해 남한에 정착한 친척의 물질적 도움으로 탈북을 감행했다. 중국에 도착해서야 탈북하자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김영희 씨는 2개월 동안 북한으로 다시 되돌아가자고 남편을 설득했다.
‘남한은 미국의 식민지’라는 뿌리박힌 생각과 더불어 북한에 두고 온 부모에 대한 걱정, 남한생활 부적응에 대한 두려움 등이 앞섰기 때문이다. 김영희 씨는 “경쟁이 치열한 남한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기 인지하지 못한 채 부푼 꿈을 안고 내려온 대다수의 새터민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에 반해 중국에서 남한TV프로그램을 보면서 남한에 가서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각오를 단단히 한 뒤 오게 돼 그나마 빠르게 정착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나원에서의 3개월간의 남한정착지원교육에도 불구하고 김 씨 부부는 남한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었던 옛 기억을 회상했다. 특히 가사일에다가 자녀양육까지 책임진 김영희 씨가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레코디언’ 등 학교에서 갖고 오라는 각종 학용품과 ‘부엌 환풍기 필터’ 등 생활용품은 어떤 것이며,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등 생활의 기초적인 지식조차 없어 더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게다가 북한말을 사용하는데다가 외래어에 익숙한 남쪽 사회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전화벨이 울리면 두려움으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증상과 더불어 대인기피증까지 나타나면서, 첫 직장인 카센터에서 3개월만에 눈물의 쪽지를 남겨 두고 도망치듯 그만두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김 씨 부부는 6년째 남한생활을 하고 있지만 보고서 등에서 북한식 용어나 표현을 사용해 직장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거나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되는 외래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직도 남한사회가 어색하고 서툴다고 토로했다. 이에 반해 김 씨 부부의 아들들은 손쉽게 남한사회에 완전히 적응해갔다. 혹시 새터민이라는 이유만으로 집단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라는 김 씨 부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입국 1년 뒤부터 학급 회장을 연이어 맡는 등 또래친구들과 금방 친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한의 또래친구와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말투는 물론 행동, 생각까지 모두 변했다.
“은근히 도움 주는 불교 ‘매력적’
불자 아니지만 차근차근 배울것”
김 씨 가족들은 아직은 불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찰도 찾아가고 싶고 불교에 대해서도 하나 둘 알아가고 싶어하는 예비불자다. 김 씨 가족이 남쪽에서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7년 11월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가 실시한 ‘제1회 통일논문 현상공모’에서 ‘사찰복원 지원을 통한 남북불교 교류발전방향 연구’라는 주제로 우수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김 씨 부부의 두 아들은 불교계 시민사회단체인 ‘작은손길’(이사장 김광하)이 새터민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사진반을 통해 불교를 차근차근 접하고 있다. 매월 첫째, 셋째 일요일 오전마다 열리는 사진반은 사진 이론교육과 더불어 서울 곳곳으로 출사를 나가고 있다. 작은손길은 불교를 직접 가르치진 않지만 앞으로 불교를 자연스럽게 차근차근 접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진찍기라는 방편을 활용한 것이다.
특히 김 씨 가족이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하게 된 큰 계기는 큰아들이 다니던 중학교의 교사였던 작은손길 회원이 남몰래 펼친 선행 때문이다. 그 선행은 바로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 한 그 교사의 남편이 평소 부인이 아꼈던 제자인 큰아들을 위해 조의금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놓았던 것이다. 김병욱 씨는 “타 종교가 보여주기식의 일회성 행사와 지원을 앞세운 것에 반해 불교는 내부적으로 조용하게 진행하지만 진정 필요한 것을 지원해주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서 “이를 경험한 뒤 작은손길을 통해 불교에 대해 차츰 알아가고 싶어져 격주로 작은손길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펼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새터민 1만5000명 시대를 뛰어넘어, 갈수록 증가하는 만큼 새터민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라온 환경과 말씨가 조금 다른 국민으로 봐달라고 당부했다. 일반인들도 소수의 사람들이 사고를 일으키듯이, 소수의 새터민들 문제로 새터민 전체가 물의를 일으켰다고 확대 해석해 잘못된 섣부른 편견을 갖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이와 더불어 사물에 대한 용어조차 서툰 새터민과 일반인을 똑같은 잣대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일정기간 동안은 가산점을 부여해 숨겨진 능력을 표출해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병욱 씨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로써 새터민에 대한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씨는 “정부와 민간이 새터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펴지만 정작 새터민이 원하는 것보다는 외형적인 보여주기식의 행사만 열고 있다”면서 “새터민 출신으로써 새터민이 진정 필요로 하고, 도움도 되는 정책이 수립되고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희 씨는 새터민을 특별한 집단이 아니라 같은 국민으로 봐 줄 것을 끝으로 당부했다. 김 씨는 “새터민을 내려볼 것이 아니라 이북사투리를 쓰는 동등한 국민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며 “내 뒤를 이어 새터민들이 계속 은행에 취업할 수 있도록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할테니 지켜봐달라”며 자신감을 표했다.
박인탁 기자 parkintak@ibulgyo.com
새터민 포교 현황과 과제
타종교 비해 불교계 지원 아직 미미한 수준
포교프로그램 · 네트워크 구축 등 절실
타 종교에 비해 새터민에 대한 포교는 아직도 미미한 실정이다. 하지만 조계종 포교사단과 천태종 나누며하나되기운동본부, 정토회 등을 중심으로 새터민이 남한사회에 빨리 정착하도록 돕고 있다. 포교사단 통일분과위원회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새터민이 남쪽 사회에 대해 처음으로 접하는 하나원에서 정기법회를 열며 불교 알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 2월28일에는 조계종 포교원과 안성불교사암연합회의 도움을 받아 하나원에 여법한 법당을 새롭게 마련해 새터민들이 보다 편하고 쉽게 부처님 도량을 찾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한 안성지역 5개 사찰에서 격월로 돌아가며 새터민 조상영가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다.
나누며하나되기운동본부는 인천 황룡사와 춘천 삼운사 등지에서 새터민 템플스테이를 열어 불교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또한 정토회 전국 각 지부와 전국의 불교계 복지관은 새터민의 빠른 정착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불교를 처음 접하는 새터민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과 더불어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을 위한 새터민 포교 네트워크 마련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사진> 지난 2월 새롭게 문을 연 하나원 법당에서 새터민들이 부처님께 3배를 올리고 있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허정희 포교사단 통일분과위원장은 “타 종교는 탈북과정에서부터 새터민을 밀접하게 도와줄 뿐만 아니라 물량공세를 펼치며 지원해 줘 부러울 때가 많다”면서 “하나원에서 두세 달동안 남한사회를 배우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만큼 전국의 각 사찰과 불교계 복지관들이 동포이자 도반으로서 따뜻하게 보듬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불교신문 2522호/ 5월2일자]
첫댓글 아! 소나무 선생님이 좋은 인연을 심었군요. 새삼 그립습니다. 세세생생 보현행을 하시길 빕니다. ()
훤하게 잘 생겼네요..^^*
아이들에게 참 자상한 선생님이셨네요 _(())_
그늘과 양지는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 느낍니다 아 소나무 선생님, 부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아는 얼굴이 신문에 나오니 반갑네요.. 건강하게 잘 적응하고 부처님과의 인연됨을 축하 드려요.. 여명이 동생은 처음 보는데 온 식구가 다 닮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