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크리스토퍼 강사 이재연이라는 분께서 우리 정기강좌를 듣고 후기를 올리신걸 여기 옮겼습니다
주제: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일시:9.12 금 오후 7시~9시 장소:귀가쫑긋 강의장 참고도서: 니코마코스의 윤리학 ?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서양철학의 계보가 있다. 위대한 이야기 꾼(a great talker) 소크라테스, 최고의 저자(a superb writer)플라톤에 이어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 학문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가 다룬 학문이 철학, 논리학, 천문학, 생물학, 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다뤘고, 학원을 세워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기 때문이다. 서양철학의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인 '행복'에 대해 과연 아리스토텔레스는 뭐라 말할지 궁금하다. ‘행복은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 라는 말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말이라 생각 하지만 자신이 속한 국가나 공동체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음을 실감 한다. 어쩌다 매스컴에서 우리나라는 행복지수가 OECD기준 꼴찌라느니 자살률이 가장 높다느니 말한다. 고로 '행복은 경제순이 아니란 말이다.' 어떤 기준으로 순위를 매겼는지는 모르나 가난한 나라 부탄이 가장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라고 하니 행복을 지수로 매기는 것이 과연 의미 있는 것 일까?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행복은 상대적인데 말이다. 행복의 정확한 실체도 모르면서 아니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고 사회 시류에 휩쓸려 더 많은 돈,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높은 지위를 얻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행복을 얻는 길이라 생각하며 쫓아온 삶이 되돌아 보니 조금은 아닐수 있다는 생각이 근래에 드는 생각이다.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강의가 눈에 들어오고 시간을 내어 듣게 되었으니 옛날 같으면 그 시간에 술이나 한잔 하는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행복과 행복감의 차이에 대해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그런 차이가 존재 할까? 의미 있는 구분일까? 솔직히 이런 의문이 드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가장 핵심이 바로 “행복과 행복감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한 마리의 제비가 여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니코마코스의 윤리학에 나오는 말이다. 한 마리의 새가 계절을 만들지 못하는 것 같이 하루 즐거웠다고 그 사람이 행복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행복은 찰나적인 쾌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 동안 행복해야 한다는 사상이며 "진정한 행복은 오랜 삶(Long life)을 통해 이루어 진다고 주장 한다. ? 인간과 동물의 공통된 행복은 먹고, 자고, 배설하고 관계를 갖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늘상 반복되고 순간순간에 느끼는 행복감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이외에도 순간에 느끼는 만족감 예를 들면, 좋은 옷, 좋은 차를 얻었을때 느끼는 것들은 모두다 행복감이라고 한다. 마약, 도박 등 중독성이 강한 쾌락 또한 행복감의 한 종류일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의 차이점이 생각하고 말을 할 수 있는 능력 이듯이 행복에 있어서 인간이 동물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인간 행위의 목적 지향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사람이 택시를 잡아 탈때는 택시를 타는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좀더 넒은 시각에서 보자면 개개인이 인생의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참 행복’의 길이라는 것이다. 참 행복은 그리스어로 eudaimonia(유다이모니아)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행복'으로 번역하는 것보다 '번창'이나 '성공'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한다. 여기서 과정과 결과가 존재하는데 궁극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이 있고 결과를 달성하는 시점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정 속에서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달성하는 시점에 지난과거를 돌아보며 느끼는 감정이 행복 이라고 말한다. 예를들면, 암벽가가 암벽을 등반하는 과정에는 순간순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고통스럽지만 정상에 섰을때 행복을 느끼는데 인간은 이러한 궁극적인 가치와 목적을 달성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순간순간의 행복감을 희생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직 순간순간의 행복감 만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해야할 행복가치가 아니라는 말이다. 대신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과정에 오는 행복을 몰입이라는 말로 표현 하고 있다. 몰입의 즐거움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인간의 목적 중에는 지성을 갖추는 것과 덕(virtue)을 추구하고?탁월함(arete)을 만들어 내는 것도 포함된다.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그것을 알아야 즐길 수 있다. 예를 들면 오래전 뉴스를 장식했던 삼성의 비자금사건에서 나온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라는 작품은 90억 이라고 한다. 일반이 보기에 저딴게 무슨 90억이며 그것을 소장하고 보는게 어떤 행복감을 주는가? 그러나 예술작품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과 행복감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탁월함에 대한 말을 보고 가자. “탁월함은 훈련과 습관이 만들어 낸다. 탁월한 사람이라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의 결과이다. 즉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습관을 통한 성격의 형성을 강조 했다. 철학자가 습관을 강조했다는 것이 이례적이다. 자기계발분야 책에서나 흔히 강조되는 습관을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고 있다니 습관의 중요성이 다시금 상기 된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탁월함을 갖추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한 분야에서 탁월함을 나타낸 사람들을 보라. 탁월함을 이루는 길은 가장 나다움을 추구할때 가능하다고 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을 끈임 없이 묻고 찾으라고 스티브잡스도 이야기 했다. 지금까지는 개인을 기준으로 한 행복과 행복감에 대해 이야기 했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속한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의 삶이 행복한 삶이다.’라고 강조 한다. 동양 고전에 중용이 있듯 중용의 삶을 서양 철학자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보편적 진리는 동서양에 일맥상통 하다. ‘용기는 무모함과 비겁함의 중간이다.’ 용기 있는 삶을 살아야지 무모하거나 비겁한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인데... 현실을 외면 한체 비겁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 하여 씁쓸 하다. 한가지 일상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예를 들면 돈을 쓸 때 쓰고 돈을 아낄때 아끼는 것이 중용의 삶이라고 한다. 돈이 많은데도 인색하다거나 돈이 많다고 펑펑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지극히 상식적인 말 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용을 파악하는 능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라고 주문한다. 이를 ‘실천적 이성’ 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떤 사람(성격)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며 매 순간순간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곧 습관이 되고 내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한가지 진실은 인간은 죽는다는 것인데 죽음에 대한 공포의 해결책으로 운명도 품격 있게 이겨내는 능력을 갖출 것을 강조 한다. 예를 들면 모든 인간은 그가 속한 국가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태어난 국가 가족에 의한 인간의 행복이 어느 정도 결정이 되어 버린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아이와 유럽에서 태어난 아이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태어나보니 부자인 부모가 있는 아이와 가난한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와 건강한 아이,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등.... 불운한 운명이 닥쳤을 때도 과연 행복 할 수 있는가? 하는가 이다. 이 문제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명도 품격 있게 이겨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 한다. ? 강의를 듣고 내린 나의 결론은 앞으로는 더욱더 행복감을 추구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며 어떤 운명인들 이겨내고 끊임 없이 추구하며 탁월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결론은 저와 좀 다르시네요..저는 그날 질문도 했었는데,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중요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작게 주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예를 드신 암벽타기에서도, 순간순간 힘들지만 뿌듯한 어떤 느낌없이 정상에서의 되돌아보는 순간에서 자신의 지나온 몰입감만으로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김연아가 고통스러운 연습과정후에 우승만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전, 행복 이란 개념의 외연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생각했습니다. 행복감까지 포괄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행복..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염두에 두되, 그것이 일상의 행복감에 젖어들게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래도 결론은 저와 좀 다르시네요..저는 그날 질문도 했었는데, 일상에서 느끼는 행복감의 중요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너무 작게 주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예를 드신 암벽타기에서도, 순간순간 힘들지만 뿌듯한 어떤 느낌없이 정상에서의 되돌아보는 순간에서 자신의 지나온 몰입감만으로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김연아가 고통스러운 연습과정후에 우승만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전, 행복 이란 개념의 외연을 넓혀야 하지 않을까..생각했습니다. 행복감까지 포괄하는 좀 더 넓은 의미의 행복.. 인생의 궁극적 목적을 염두에 두되, 그것이 일상의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더 나아가 그 둘의 일치를 위해 늘 정진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종의 종교적 의미까지 포괄하는 좀 더 광의의 행복개념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저의 댓글을 쓰신분이 볼 수 있기를..~^^
저도 혜성 님의 의견에 동감요... 행복감들의 축적이 행복의 근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