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 선친의 일기장
인정 많고 점잖아 존경 받던 김 진사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노망 들어
겨울밤 부인의 묘 찾아가다 죽는데…
아들 김 초시, 아버지 장례 치르고
유품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하곤....
김 진사네 집안은 웃음꽃이 떠날 날이 없었다.
천석꾼 부자는 아니지만 머슴 셋을 두고 문전옥답 백여
마지기 농사를 지으면 곳간이 그득해 보릿고개엔 양식
떨어진 가난한 이웃에 적선도 베풀었다.
동네에 서당이 없어 손자 셋과 동네 아이들이 사랑방에
모이면 김 진사는 훈장 노릇도 했다. 인정 많고 점잖아
동네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
김 진사의 서른두 살 아들 김 초시는 제 아비를 빼쏘아
행동거지가 반듯하고 매사에 사려 깊고 성품이 착했다.
사람들은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이 복 받은 집안에 먹구름이 몰려온 건 김 진사 안방
마님이 병환으로 누운 지 다섯 달 만에 이승을 하직
하고부터다.
그 전해에 회갑 잔치를 했으니 장수했고 집안 걱정거리
없이 눈을 감았으니 문상객들은 호상이라 하는데,
홀아비가 된 김 진사는 남의 눈도 의식하지 않고 섧게 섧게
울었다.
한평생 외도 한번 하지 않고 부인에게 역정 한번 내지 않은
김 진사는 멍하니 혼이 빠져버렸다.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아침상을 물리고 나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십 리 밖 부인의 묘소에 갔다가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왔다.
김 진사는 급기야 노망이 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져도 돌아오지 않아 온 식구가 찾아나 섰더니
산 너머 엉뚱한 동네를 헤매고 있기도 했고, 누가 부인의
묘를 파갔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부엌에 들어와 “여보, 임자” 하며 며느리를 덥석 껴안아
며느리가 질겁을 하기도 했다.
삼년이 지나자 김 진사의 노망기는 도를 더해갔다.
한밤중에 아들 내외가 자는 방에 뛰어들어오질 않나,
며느리가 땅문서를 훔쳐가 친정으로 빼돌렸다느니
부인의 장신구를 몽땅 가져 갔다느니 우기지를 않나.
툭하면 길을 잃고, 통시에도 빠지고, 그렇게도 귀여워하던
손자를 악귀를 죽인다며 낫을 들고 쫓아가고….
마침내 며느리는 손자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그렇게 효자이던 김 초시도 아버지에게 역정을 내더니
동구 밖 주막 출입이 잦아졌다.
따사로운 햇살이 잠뿍 내려앉은 마루에 부자는 말없이
걸터앉았다.
“저게 뭐냐?”
눈은 십 리나 들어가고 볼은 피골이 상접한 김 진사가 묻자 아들 김 초시가
“고양이예요”
했다. 김 진사가 또 물었다.
“저게 호랑이가 아니냐?” 김 초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양이라니까요.”
“저게 뭐냐?”
“말했잖아요. 고양이라고!”
아들의 목소리가 어떻게나 큰지 김 진사는 놀라서 몸을 움츠렸다.
진눈깨비가 퍼붓는 그날 밤, 술에 곯아떨어진 아들 김
초시를 두고 부인이 춥다고 이불을 들고 산으로 가던
김 진사는 칠흑 같은 밤에 미끄러지고 넘어지며 개울에
처박혀 죽었다.
장례를 치르며 상주 김 초시는 슬픔보다는 후련함을 느꼈다. ㅔ
기나긴 암흑의 동굴을 빠져나온 기분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 전날, 김 초시는 사랑방에서 선친이
쓰던 의관이며 지필묵이며 책이며 신발들을 모아 이글거리는 부엌 아궁이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그러다 손에 잡힌 일기장을 펼쳤다.
김 진사가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장이 한짐이다.
“갑술년 정월 스무닷새. 겨우내 방에만 박혀 있던 우리
필우를 안고 볕이 따뜻한 마루로 나왔다.
‘아빠, 저게 뭐야?’ ‘저건 고양이란다.
’ ‘아기 호랑이야?’ ‘아니, 고양이 어미란다.’ 필우는 묻고
또 물어 무려 열두 번이나 물었다.
고양이가 신기한가 보다.”
갑술년이면 상주 김 초시가 세살 때다.
김 초시는 통곡을 했다. 울어도 울어도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끝없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