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초등학교 시절 우리 집은 읍내 변두리 초가집이었다고 했지. 학교까지 약 5리 남짓한 거리를 걸어가다가 보면 산허리를 끼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 곧게 뻗은 신작로로 가면 될 일이지만 굳이 산허리를 끼고 돌아가는 길을 좋아한 건 재미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산허리에 뭔가 삐죽이 들어난 걸 보고 함께 가던 동무랑 걸음을 멈추었다. 잔뜩 누렇게 녹이 슬은 네모난 상자가 보이는 게 아닌가. 동무가 말하길 탄피 케이스라네. 군인들 총알을 넣어두는 거란 말이다. 탄피는 없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총알을 끼워두는 걸 뭐라더라. 아무튼 우리에게 인기 짱인 쇠붙이었다. 둥글게 말린 걸 펴서 기차 레일 위에 가지런히 놓아두면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반듯하게 펴진 걸 숫돌에 갈면 칼로 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짓은 기차가 탈선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장난인데 우린 거침 없이 그런 짓을 했거든. 네모난 탄피 케이스를 들어내고 나니 그 아래로 흙이 잔득 묻은 타원형 쇳덩이가 나오더라고. 이것도 녹이 슬어서 뭣에 쓸 건지는 몰라도 엿이나 바꿔 먹으려고 꺼내 들었다. 벌써 입에 진득하게 들어붙는 엿이 주는 달큰한 맛이 침을 돋게했다. 묵직한게 꽤나 무거워서 엿가락도 엄청 바꿀 수 있을 듯해서 코가 벌렁, 이미 난 부자가 되었다.
그때 지나가던 육학년 형이 고함을 지르는게 아닌가. "야! 그걸 놓지 못해" 얼씨구, 내 껄 노리는 놈이 나타났구나 하고 잽싸게 달아나는데 "마, 그거 수류탄이야. 빨리 던져버리라니까" 어라 잽싸게 달아나던 내 발이 얼어붙어서 덜덜 떨리는게 아닌가. 학교에서 슈류탄이라든가 탄피, 지뢰를 전시해 놓고서 발견하면 빨리 학교나 파출소에 연락하라는 선생님의 경고 말씀이 떠오르는게 아닌가. 당시에는 전쟁이 끝난지 오래지 않아 논두렁이나 산허리엔 심심찮게 폭탄같은 것 때문에 폭발 사고가 흔했거든. 그래서 각종 포스터와 전시물과 폭탄이 터져서 다리를 절단하거나 온몸에 끔직한 흉터가 난 걸 보여줘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던 때였거든. 오죽했으면 소를 끌고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쟁기에 터진 지뢰 때문에 즉사하는 사고가 발생했을까.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어. 침을 질질 흘리게 하던 엿도, 아이스 케이크도 안중에 없고 이걸 어쩌나. 화가 잔득 난 엄마 얼굴이 떠오르는가 하더니 날 끔직히 아끼던 할머니가 날 끌어앉고 이놈아~ 통곡하는 장면이 영화처럼 흘러갔다. "빨리 던지지 않고 뭐하노" 동네 형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서 힘껏 던졌는데 애개개 한 발짝 앞에 내팽겨친게 아닌가. 다들 길에 머리를 처박고 숨고 난리가 아니었지뭐. 나는 도랑에 대가리를 쳐박았다. 다행이 쾅 소리, 수류탄이 터지는 소리는 커녕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불과 이삼초)이 지난 뒤 고개를 삐꿈 내밀고 내다보니 그제야 그놈이, 폭탄이 뭔가 소리를 내며 노오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이번엔 제법 도망답게 멀찌기 달아나서 뻘쭘 고개를 내밀고 보니 형이 연막탄이래. 한숨을 쉬며 내 때문에 제 명에 못살아 하는게 아닌가. 국민학생이 할소린가 그게. 열살 남짓한 아이들이 제 명은 무슨 제 명에 못산다는가 말이다. 알고보니 그형은 삼촌이 6 25전쟁에 참전한 상이용사여서 아는게 많더라고.
사실, 전쟁이 남긴 그늘, 수류탄 같은 버려진 무기 때문에 심심찮게 사고가 일어났어. 제일 무서운 사고는 지뢰를 밟아서 나는 사고가 끔직했지. 우리 동무들 중에도 그때 사고로 다리 한 짝을 잃었거나 팔 하나가 크게 다쳐서 한여름에도 긴소매 옷을 입고 다닌 애가 있었거든. 참전했던 어른들은 철모를 줍거나 탄피 케이스를 주우면 집에 가져가서 세숫대야로 쓰거나 물건을 넣어두는 괘짝으로 쓰는 집안이 많았다. 그리고 해골도 눈에 많이 띄었다. 풍화 작용이 잘되어선가 국방색 군복을 헐렁하게 걸친 해골을 보는 건 또 하나 전쟁의 그늘이었어. 우린 해골도 그다지 무섭지 않았어. 흔했거든. 이태석 신부님 영상에 보면 그 주민들 보라고. 아예 한쪽 다릴 잃은 사람들이 작대기 하날 의지해서 살아가는 모습을. 더욱 끔직한 것은 어린아이가 다리를 잃거나 팔을 잃고서 살아가는 모습이.....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해.
지금도 그래,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를 잘 만나야 돼. 전쟁을 겪는 게 얼마나 참혹한 일인가 말이야. 나야 전쟁 중에 태어난 세대이니까 뭘 알기나 했을까. 우리 아버지 세대는 끔직한 전쟁을 두 번이나 겪었지 않은가? 일제시대에는 대동아 전쟁, 군인으로서 참전한 육이오까지. 그래서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오십대 이상 세대는 몽땅 박 머시기를 대통령으로 몰표를 던졌다 하지 않든가. 물론 오해였겠지만 경제고 뭐고 간에 북한쪽에 편드는 걸 보지 못하겠다는걸 우짤거야. 당시 야당은 왠지 친북 패거리 같았거든. 아마도 어렸을 때 하도 전쟁 이야기와 미국이 우리 편이라는 걸 하도 듣고 살았으니까. 교육이라는 게 무서워. 반공 일변도로 교육 받은 세대였어 우린.
뭐 수류탄 오발 사고 같이 끔직한 일만 있었을까? 다음 이야길 기대해줘 개봉 박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