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나는 늘 음지에 서 있었던 것 같다
개선하는 씨름꾼을 따라가며 환호하는 대신
패배한 장사 편에 서서 주먹을 부르쥐었고
몇십만이 모이는 유세장을 마다하고
코흘리개만 모아놓은 초라한 후보 앞에서 갈채했다
그래서 나는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
나는 그러면서 행복했고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다
쓰러진 것들의 조각난 꿈을 이어주는
큰 손이 있다고 결코 믿지 않으면서도
(신경림,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전문)
아마도 이 작품이 신경림 시인의 삶과 시 세계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모두가 선망하는 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대신, 우리 사회의 구석진 곳에 시선을 두고 사회적 약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시인.
그것이 비록 음지라 해도, 시인은 '그러면서 행복했고 / 사람 사는 게 다 그러려니 여겼'던 것이다.
내가 신경림 시인의 시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은 팔순이 넘어서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여전히 시를 쓰고 있다.
이제 누군가의 꿈이 불현듯 이뤄질 수 있는 시대는 아닐지라도, 여전히 음지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늘 슬프고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또한 결코 '불행하다고 생각한 일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누군가는 종교의 이름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인권이 보호받으면 안될 것처럼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그들을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 한다.
누군가에 의해서 '태극기의 의미'가 오용되고 있듯이, 어떤 이들은 혐오와 악담으로 '종교'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시대에 신경림 시인의 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