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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유형으로 본 가사문학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저자 나름의 기준으로 다양하게 전래되는 가사에 대한 분류를 제시하는 내용이라고 하겠다. 실상 한 행이 4개의 음보로 이루어지고, 때로는 음보의 확장과 감소가 이뤄지기도 하는 가사의 형식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전하는 작품의 수가 6천여 수나 된다고 하며, 개별 작품에 대한 작품론조차도 충실하게 이뤄진 경우도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한 행이 4음보로 구성되어 3행이 한 작품을 이루어야만 하는 시조와 달리, 가사는 그저 한 행이 4음보로 구성된다는 단순한 규정으로 정의될 수 있는 양식이다. 더욱이 4음보를 초과하는 행들도 적지 않게 발견되기에, 그 마저도 가사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라고 정의할 수 없다고 하겠다.
가사는 자유로운 형식 때문에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나 갈래들이 다양하다. 예컨대 봄철의 자연을 완상하며 즐기는 <상춘곡>은 서정적인 성격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서왕가>는 교술적인 작품으로 거론된다. 또한 마흔이 넘은 노처녀의 탄식과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노처녀가>는 서사적인 내용으로 인해 조선 후기 소설집인 <삼설기>라는 책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 형식도 12행이 짤막한 작품으로부터 일본 사신단의 일행으로 참여하여 그 여정과 소감을 기록한 <일동장유가>는 장장 2천 5백행이 넘는 초장편가사이다. 따라서 가사 작품의 분류는 하나의 일관된 기준에 의해서 마련되기 쉽지 않고, 기존 연구자들에 의해 자의적인 명칭이 이미 관례상 하위 범주의 하나로 굳어진 경우도 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가사문학의 연구 현황을 고려하여, 저자가 대상으로 삼은 작품들이 가사문학사에서 어떻게 ‘최초’라고 인식되는지에 대한 보고서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29편의 작품들이 수록된 이 책에는 가사를 어떻게 체계적으로 분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문학작품의 분류는 일정한 원칙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작품들은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연구자의 관점에 따라 가사의 하위 분류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실제 연구자들마다 사용하는 유형 분류의 명칭도 서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다룬 29가지의 유형은 기존 연구들을 최대한 참고로 하고 필자의 관점을 보태서 분류한 결과’라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개별 작품들이 해당 유형의 ‘최초의 가사들’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그 역시 충실한 작품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존 연구들에 새로운 유형의 명칭을 하나 더 보태는 것에 머물 수도 잇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저자가 ‘최초’라고 꼽고 있는 가사의 하위 유형을 들어보면, ‘불교가사’(서왕가)와 ‘역사가사’(역대전리가) 그리고 ‘은일가사’(상춘곡)와 ‘유배가사’(만분가) 등 모두 29가지에 달한다. 이밖에도 ‘우의가사’(매창월가)와 ‘담양가사’(낙지가) 그리고 ‘누정가사’(면앙정가)와 ‘기행가사’(관서별곡) 등으로, 일단 그 명칭을 보면 일관된 기준으로 분류된 것이 아니라 다분히 자의적인 분류에 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그 형식으로 구분한 ‘대화체 가사’(관동별곡)‘나 ’화답가사‘(고공답주인가)가 있는가 하면, 주제나 내용에 따른 ’현실비판가사‘(고공가)나 ’애정가사‘(채란상사곡)도 유형의 하나로 제시되고, 가사의 창작 의도에 따른 ’사행가사‘(장유가)나 ’의병가사‘(고병정가사) 등의 분류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역시 기존 연구들에 의한 명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최소한 저자 자신의 관점에서 이들을 분류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하는 것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개별 유형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내용에 이어, 맨 마지막 장으로 ‘작품 유형으로 간추린 가사문학사, 최초의 가사들’이라는 항목을 설정하고 있지만, 그 내용도 해당 작품들을 사적으로 나열하여 서술하는데 그치고 잇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체로 조선시대의 시가 작품들에 사용된 표현들이 오늘날의 용어들과 다르다는 점은 쉽게 확인되지만, 특히 장형의 가사 작품들에는 방언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만이 사용하는 특별한 표현들이 빈번하게 발견되어 작품 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개별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 유형들에 포함되는 작품들이 어떻게 후대의 가사들과 연결되는지를 추적하여 유형화에 따른 의미를 점검하는 작업이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현전하는 수많은 가사 작품들 가운데 일부만이 작품론으로 제출되었기에, 개별 작품론을 통해서 기존의 유형들에 포함될 수 있는 범주들을 확대함으로써 ‘진정한 가사문학사’를 온전하게 채워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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