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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SF 장르의 소설들을 수록한 작품집이라는 문구를 보고, 구입을 했던 책이다. 그동안 책꽃이에 꽃아두었다가, 방학 기간 중이라 최근에 다소 시간 여유가 생겨 읽을 수 있었다. 모두 7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각자 한 작품씩 모두 7작품으로 구성된 단편소설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기획하면서 작가들은 ‘페미숲(SF)갈다’라는 모임을 구성하고, 약 3달 같이 공부를 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페미니즘과 SF를 결합하여 소설로 완결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독자로서는 그 결과물에 어느 정도의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가상현실과 감정의 이식, 그리고 기계 인간의 도래와 인간의 미래라는 소재들을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에서 우선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도 재판을 찍은 지금쯤은 개별 작품의 작가가 밝혀졌겠지만, 초판에서는 작가를 밝히지 않고 말미에 제3자가 작품 후기를 쓴다는 방식도 이색적으로 느껴졌다. 각각의 작품이 다루는 주제나 완성도에 있어서도 다소의 차이가 발견되지만, 굳이 해당 작품의 작가를 확인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래서 초판을 읽고 나서도, 여전히 해당 작품의 작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꿈을 소재로 한 첫 번째의 ‘나를 들여보내지 않고 문을 닫으시니라’의 경우, 작품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작품인 ‘나비의 경계’는 여성장애인과 성이라는 문제를 가상현실을 통해 극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영화 <오아시스>처럼 폭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의 문제가 아닌, 가상현실을 통해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에 대해 나름 SF라는 관점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마더 메이킹’이란 작품 역시 인간의 감성을 제조해서 사람들에게 주입한다는 구도로, ‘모성’의 실체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있다고 하겠다.
‘눈물이 많은 거인들의 나라’는 거인으로 설정된 기계인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그들과 투쟁을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다음 작품인 ‘네 번째 너’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복제된 4명의 인간과 진짜 인간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작품 후기에서 아니무스의 4단계에 착안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과 지향은 전혀 다르지만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떠올랐다. 영화에서는 ‘인간다운 로봇’의 죽음으로 끝나지만, 이 소설은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복제인간에 의해 진짜 인간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종결된다. 자세한 내용은 작품을 통하여 확인하기를 바란다.
‘미지의 인간’이라는 작품은 지구 밖에서 살아가는 미래의 모습을 통해, 화성에서 태어난 여성이 자식과 함께 지구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파견지인 한국은 여전히 21세기의 현실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교육과 생존에 대한 경쟁이 치열한 사회로 그려진다. 아마도 미래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사회에 대해서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여겨졌다. 마지막 작품인 ‘닥터 더블 에이치(Dr. HH)’는 로봇과 인간과의 대립이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필요한 신체나 장기를 만들어 필요한 이들에게 공급하는 작품의 상황이 현실에 그려진다면, 그 사회의 모습은 그리 정겹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함께 읽으면 좋은 여성주의 SF 추천작’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장르에 관심이 있다면 찾아 읽는 것도 좋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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