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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우리의 삶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글 속에 충분히 묻어나고 있다. 저자 자신이 독재정권 시절 시국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만 했으며, 외국인과 소수자들에게 관대한 당시 프랑스의 문화의 혜택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한국에서 저자는 ‘척박한 땅에서 사랑하고 참여하고 연대하고 싸워 작은 열매라도 맺게 하는 거름’의 역할을 하고자 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위치를 선택하고, 기꺼이 ‘아웃사이더’로서의 즐거운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동안 신문기자와 진보정당의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벌금을 내지 못해 어쩔 수없이 교도소에서 노역을 해야만 하는 이들에게 벌금을 대여해주는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을 맡고 있다. 이 책은 2014년 4월에 벌어졌던 ‘세월호 참사’ 이후 6년 동안 한겨레신문에 기고햇던 칼럼을 묶어 엮은 것이라고 한다. 다시 4월이 된 지금, 여전히 많은 이들이 ‘속절없이 죽음을 당한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의 권력자들은 그들의 비극 앞에서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거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행동’이라는 '언어 폭력’으로 대하기도 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사건에 대한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으며, 다시 무도한 ‘언어폭력’을 저질렀던 자들이 새로이 선출된 권력 주변에 모여들고 있다. 여전히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저자와 함께 ‘살아남은 자의 미안함’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있기에, 저자는 여전히 그러한 문제점들을 비판하는 ‘볼온한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회의하는 자 홍세화의 고백’이라고 이 글을 성격을 규정하면서, 이 책의 부제를 ‘착한 방관자는 비겁한 위선자일 뿐이다’라고 붙였을 것이다. 저자가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몰상식과 광신의 늪에서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과 ‘이 땅에 와 있는 난민들, 이주노동자들의 고난’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오늘을 끝없이 저당 잡힌 일상을 보내는 청소년 학생들에 대한 미안함은, 미안함에서 멈추지 않고 분노를 일으’킬 정도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목소리를 안간힘처럼 내’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한극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주류가 아닌, 무시당하고 소외받는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처지를 공감하며 위로할 수 있는 저자의 심정이 ‘미안함’이라는 정서로 표출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먼저 1부에서 ‘인간은 평등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 사회에서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2부의 글들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아야만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아이들에게 미안하다’(3부)는 진심을 전하고, 비록 현재의 상황이 쉽게 바뀌지 않을지라도 ‘가슴엔 불가능한 꿈을 안고’ 최선을 다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저자를 4부의 글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5부에서는 비록 ‘갈 길이 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인간다운 삶’을 위해 걸음을 멈출 수 없으며, 그러한 현실을 만들기 위해 비판의 목소리를 그치지 않겠노라는 다짐이 드러나고 있다. 여전히 뉴스에서는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외주 노동자들의 사고사’ 소식이 전해지고 있으며, 인권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에 그릇된 신념을 주장하면서 ‘언어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일부 종교인들의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우크라 침략’으로 나타나고 있듯이, 권력자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비상식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타인의 삶에 대해 ‘폭력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 그들이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한 자세’를 보이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이 땅의 소수자들과 비주류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글을 쓰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진정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과연 그러한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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