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바라나시에 와서
장철문(1966∼ )
강아지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가 비루먹은 어미 등에 올라타고, 젖을 빨고, 엉치에 코를 디밀고, 눈두덩을 핥고 있다
어미는 옆구리에 머리를 처박고 객사한 듯 쓰러져 잠들어 있다 이불을 끌어당기듯 재를 끌어안고 있다
생(生)은 또 하나의 불의 양식(樣式)인데, 주검을 끌어당기듯 생을 끌어당기고 있다
비유의 바깥', 문학동네,
■ 바라나시는 갠지스강 중하류 왼쪽에 위치한 인도 힌두교의 성지 중 하나다. 붉은 해가 허허롭게 펼쳐진 강 저편에서 떠올라 남루한 삶이 난장처럼 펼쳐진 강 이편으로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사색하게 됐을 것이다. 태어나는 곳을 선택하지는 못했으나 죽을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곳이었을 것이다. 바라나시, '신성한 물을 차지한다'는 뜻의 이곳에서 화장(火葬) 후 강물에 뿌려지기를 꿈꾸었을 것이다.
바라나시에서 사람들은, 산 자의 오물과 죽은 자의 유해가 뒤섞인 갠지스 강물로 신성하게 몸을 씻고 입을 헹구고 그 강물로 일상의 밥을 짓고 빨래를 한다. 산 자들은 강가에서 생활하고 죽은 자들은 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생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곳, 사후세계로 가는 문과 같은 곳, 그곳이 바라나시다. 주검에 올라타 코를 박고 핥고 빨고 있는 저 강아지 중 하나가 나였을지도.
(조선일보 정끝별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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