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당선작
[최우수상] 신발 / 정경해
이른 아침 현관에 들어서니
어머니의 신발 한 켤레
구부정히 앉아 있다
새벽기도를 다녀오셨는지
가지런히 두 발 모으고
묵상 중이다
희끗희끗 서리 앉고
주름 깊게 패인 모습으로
무릎 꿇었다
진흙이 검버섯으로 피어
못 다한 간구하듯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삼백예순날 캄캄한 새벽
눈물 자루 무거워
뒷굽 관절이 다 닳았다
돌아오지 않는
아들 위한 기도로
온 몸이 까맣게 탄 채
퉁퉁 짓무른 눈
현관문 열어 놓고
소금 꽃 하얗게 불 밝혔다
밤새 세상을 떠돌던 내 신발,
마른 잎처럼 서성이는데
발바닥 지문 사라진
어머니 신발
아랫목으로 다가와
내 신발 감싸 안는다
뭉클,
어머니 신발 곁에 앉아
두 발 모은다
그분,
때 묻은 내 신발도 받아주실까?
[당선소감] “당신들의 기도 덕분… 주님만 보며 살 것”
잠깐 터널 속에 갇혔었습니다. 캄캄한 그 끝, 한줄기 빛이 손짓을 했습니다. 밤마다 두 손으로 퍼 올린 눈물, 주님이 받으셨나 봅니다.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당신들의 기도 덕분입니다. 굽이굽이 재활의 길이 아득했지만 인내로 감싸주며 사랑을 준 가족들, 감사로 평생 섬기겠습니다.
여든 다섯의 어머니, 새벽마다 무릎 꿇어 주심 고맙습니다. 당신의 눈물로 인해 지금의 자리에 섭니다. 저도 내 아이들을 위해 눈물 바치겠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큰 상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큰 힘이 되어주시는 스승 이승하 교수님, 고맙습니다. 나의 하나님, 이 영광 올립니다. 일평생 주님을 바라며 살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우수상] 항아리 / 노원숙
길 위의 햇살이 여러 번 열렸다 닫히고,
음력의 낮과 밤이 곰팡이처럼 피었다 지고
삐걱거리는 대문을 서성이던 말 못할 소문들
갸웃, 돌아가고 나면
무릎 꿇은 간기마저 모두 껴안고
제 몸을 내주곤 했을,
항아리 속, 고요하다
장독대를 무수히 오가는 동안
나를 거쳐 간 수많은 상념들도
발효와 부패의 어느 쯤에서 출렁거렸다
그럴 때마다 날것들의 거칠고 모난 이름을 호명하며
굵은 소금 한 줌씩 행간마다
켜켜이 뿌려주기도 했다
그 곁에서,
바람도 저마다의 발걸음으로 가라앉곤 하였으리
세상을 건너온 열매들 제 속의 과즙 비워내는 동안
어두운 날짜들 솎아내던 나의 하루는 길었고
봄은 바람의 페이지를 저 홀로 필사하기도 했다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
내간체(內簡體)
한
권,
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
[당선소감] “균열 간 항아리는 버림받은 우리네 삶”
살아오는 동안, 때로는 가위에 눌려 죽음 같은 큰 아픔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 때 마다 사랑하는 주님께 뜨거운 기도를 드리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균열이 간 항아리는 불완전한 사람에 의해 버림받은 우리네 삶을 닮았습니다. 그때마다 기도와 말씀을 의지해 기도하면 주님의 응답이 들려오곤 했습니다. 세상 한쪽에 깨져 있는 항아리 조각은 어쩌면 저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기쁨은 분발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시를 향한 열정을 더 불태우겠습니다.
[우수상] 겨울나무의 꿈 / 이옥자
나무들은 하늘아래 내세울 게 없다
뿌리는 깊이 겨울잠에 들었고,
누더기 하나 걸치지 못한 알몸과
하늘을 향해 치켜든 마른 손가락들이
겨울바람의 날카로운 칼날과 맞서
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
긴긴밤이 깊어갈수록 흐느끼는
나목들의 울음소리가, 온 누리에
울려 퍼진다, 그 울림은 마침내
헐벗고 버림받은 자의 기도가 되어
캄캄한 밤의 공간을 넘어 하늘
문풍지까지 두드린다
밤새도록 하늘도 잠 못 이루고
그 기도소리에 귀기울이다가,
가슴속 아픈 먹구름들을
은총의 눈송이로 바꾸어
알몸의 가지와 메마른 손끝에
소망의 꽃송이를 하얗게 뿌려준다,
아, 은혜가 충만한 새벽이여…
겨울잠에 빠진 땅속뿌리들은
포근한 꿈을 위해 언 땅에도
하얀 이불을 덮어준다
남쪽바다에서 파도와 어우르던
봄바람이 불어와 이불을 걷어내면
뿌리들은 남쪽을 향해 귀를 열고
봄의 숨소리를 듣는다
나무보다 먼저 찾아온 봄볕이 가지들의
파리한 손끝을 어루만지면, 마디마디에
눈과 귀가 열리고 봄이 다가오는 발소리와
함께 꽃밭에 날아드는 벌 소리도 들으며
가지마다 파란 하늘을 받들 것이다
[당선소감] “말씀으로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잎만 무성한 저에게 참열매를 맺게 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시를 읊고 쓰는 일은 삶의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시를 쓰게 될 땐 두려움이 앞서 미뤄두었다가, 다시 젊은 날의 긴 꿈이 상기되어 도전장을 내민 시가 저의 실재요, 존재의 소리요, 삶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이유를 찾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이제부터 비움의 끝자락이 만져질 때까지 말씀으로 채워가며 참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을 다 할 것입니다.
[심사평] 예심 통과한 39편 모두 감동 주는 수준작… 대상 없어 아쉬워
예심에서 올라온 39편의 작품은 신앙시로서 모두 손색이 없었고 수준도 상당했습니다. 심사위원 3명이 대상과 최우수작, 그리고 우수작을 뽑기로 하였으나 심사위원 전원이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신발’(정경해)을 뽑았습니다. 우수작으로 ‘항아리’(노원숙)와 ‘겨울나무의 꿈’(이옥자)을 골랐습니다.
최우수작 ‘신발’은 이른 아침 새벽 기도에 다녀오신 어머니의 신발을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생각해 본 시인이 ‘돌아오지 않는/아들 위한 기도/온 몸이 까맣게 탄 채’란 표현을 쓰며 어머니의 신발에 얽힌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시는 읽는 이의 가슴을 감동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 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삼백 예순 날 캄캄한 새벽/눈물자루 무거워/뒷굽 관절이 다 닳았다’와 ‘퉁퉁 짓무른 눈/현관문 열어 놓고/소금빛 하얗게 불 밝혔다’에서 보듯 신앙으로 삶에 다가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우수작 ‘항아리’는 소금의 역할을 신앙의 성숙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항아리 속에 담겨 있는 된장과 간장은 소금과 섞여 오랜 기간 발효 과정을 거쳐야 맛이 듭니다. 신앙인으로서 소금의 역할을 꿈꾸는 시인의 간절한 생각이 ‘깊고 캄캄하고 끝없는 기다림의/내간체/한/권/맛을 보자 묵은 말씀들이 혀끝에서 환해지고’ 란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적절한 표현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읽는 이의 가슴을 열게 했습니다.
우수작 ‘겨울나무의 꿈’은 겨울나무에 신앙인을 빗댄 작품입니다. 전편에 담겨 있는 이야기와 표현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첫 번째 ‘나무들은 하늘아래 내세울 게/없다’란 구절에서 ‘겨울바람의 칼날과 맞서/온몸으로 흐느끼고 있다’란 구절까지 신앙인은 단단한 의지와 강단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인의 자세, 바로 그 모습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희생과 봉사, 자신까지 모두 남을 배려하는데 쓰겠다는 마음가짐은 올바른 마음입니다. 이야기를 시 속에 담는 기술이 상당합니다.
- 성기조 (심사위원장·시인)
국민일보·한문예총 제8회 신춘문예 신앙시 당선작 발표
최우수상 정경해 ‘신발’, 우수상 노원숙 ‘항아리’ 이옥자 ‘겨울나무의 꿈’
국민일보와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이사장 최일도·회장 김소엽)가 공동 주최한 ‘제8회 신춘문예 신앙시’ 공모에서 정경해의 ‘신발’이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성기조 심사위원장은 11일 “신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잔잔한 감동으로 극복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며 “최우수작을 포함해 본심에 올라온 시 모두 신앙시로서 손색이 없고 상당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본심에 오른 작품을 높이 평가했으나 세밀한 시적 구성을 갖춘 대상작은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신발’을 대상 없는 최우수작으로 뽑는데 합의했다. 우수상은 노원숙의 ‘항아리’, 이옥자의 ‘겨울나무의 꿈’이다. 당선자 정경해(60) 노원숙(57) 이옥자(76)는 모두 여성으로 오랜 기간 시나 글을 써온 이들이다.
시상식은 26일 오전 10시 총연합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월드비전빌딩 9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최우수작 수상자는 등단 시인으로 예우한다. 신앙시 공모에는 해외뿐만 아니라 국내 교도소와 군부대 등에서 800여명이 4500여 편의 작품을 응모했다. 교도소에서 응모된 시 중에는 아름다운 그림을 곁들인 작품도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성 시인을 비롯해 심사위원인 전규태 유자효 시인은 본선에 올라온 39편을 놓고 최종 심사했다. 그 결과 최우수작 1편, 우수작 2편, 밀알상(장려상) 10편, 모두 13편을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