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부에 맞짱 떴다가 한방에 (민웅기의 수련일기11)
민웅기 수련일기 11/싸부와의 한판 대결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딱 이 시점이 나와 싸부와의 관계맺음의 시작의 지점이 아니었는가싶다.
착 착 감길 듯 터져오는 죽비 맞는 소리에 좌중은 일순 숨을 죽였다. 남자들이란, 더군다나 한국의 남자들이란 학창시절에 밥 먹듯 경험해본 일들이다. 하다못해 군대까지 가본 사내라면 그까짓 두 대의 죽비쯤은 웃어넘길 일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샤오난은 충격이 매우 큰 표정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형편없는 나이든 사내 한 사람 때문에 덩달아 맞았다고 생각하면 짜증이 나도 한참 났을 것이다. 연좌제도 아니고, 연대책임이 다 뭐람.
그런 표정을 읽고 있는 나라고 기분이 좋을 리는 없다. 이어진 중국어 학습에서 샤오난은 유난히 특별한 수업을 고집했다. 잘 안 되는 발음도 있다. 그 잘 안 되는 발음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마치 어린애를 훈련시키듯, 똑 같은 발음을 계속 반복시킨다. 나도 한때 영어 선생 노릇으로 먹고 산 이력이 있다.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짜증이 났다. 조교는 다그치고, 학생은 먼 산 보고, 이렇게 그날 저녁의 도덕경 독송수업은 끝이 났다. 유사 수업거부 같은.
잠이 오지 않았다. 불쾌한 감정들이 몰려온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간다. 체벌도 아니다. 그냥 놀이다. 선방에서 수행자들이 졸음을 못 이겨 고개를 끄덕일 때 내려치는 죽비 같은 거다. 타국의 내력을 알 수 없는 동굴 속에서 네가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네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네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과 상황들은 또 어떤 의미인가?
무너져가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마주하며 생각으론 셀 수도 없는 강을 몇 번이나 건넜을 것이다. 바닥으로부터 치솟는 분노의 감정은 꺼지지 않는다.
고약한 에고가 한번 고개를 쳐들고 나니, 그동안에 쌓인 무의식 저편의 부정적 의식들이 한꺼번에, 마치 송유관을 뚫고 분출되어 올라오는 불기둥처럼, 걷잡을 수 없었다.
이대로 무너지는가. 바다 건너 또 다른 세계로 건너와 필생의 도전을 감행하는 그대의 아름다운 꿈은 정녕 시작도 해보지 못 한 채, 물거품이 되는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동굴의 아침이 밝았다. 새들은 밝은 노래를 선사했으며, 바람은 어느 결에 살랑살랑 나의 머릿결을 어루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치우친 나의 에고는 오늘의 일정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칩거를 고집했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은 지금,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지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차라리 돌아가는 게 좋을지도 몰라.....
방황을 하던 나에게 스님이 전갈을 보내왔다. 기분전환도 할 겸 서안 시내 구경을 가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따라나섰다.
택시를 타고 서안의 중심 도로를 들어선다. 창밖으로 한국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게 지나친다. 거리와 건물들을 장식하고 있는 간판들의 글씨가 알쏭달쏭하다. 간체자가 더 낯설다. 아는 글자들도 조금 있다. 우리는 ‘센터’라고 쓰는 말을 저 사람들은 ‘中心’이라고 쓰는 군. 이런저런 ‘中心’들을 지나치다 보니 목적지가 나타났다. ‘서안 전통차 中心’이다.
스님의 얼굴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는다.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앞으로의 수련과 행로에 관한 당신의 계획을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하게 꺼낸다. 불편한 속내를 알아주기를 내심 기대했던 내가 더 성급하다.
“스님, 요즈음 한국에선 어린 학생들에 대한 체벌도 금해져 있습니다. 체벌은 이제 더 이상 바람직한 교육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속에다 담아두고는 못 산다. 그냥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스님은 잠깐 뜸을 들이다, 담담히 말을 받는다.
“그렇게 잘 아시는 보리 거사님은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순간 망치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 나는 입을 다물고 말을 잊었다. 그렇다. 내가 뭘 아는 게 있다면, 무엇 때문에 바다건너 천리만리 와서 배움의 시간을 갖고자 했는가. 배운다는 것은 비움의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스승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자신이 있다면, 이 길로 ‘하산’하면 그만이다.
“스님, 죄송합니다. 지금부터는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꼬랑지를 완전히 내리고 말았다. 현대식 교육을 받고 자라온 사람들이 전통적인 사부와 제자 관계를 맺는다는 건 쉽지 않다. 머리로는 스승님이라는 말을 좋아해서 ‘스승님 스승님!’ 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구식 교육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생님과 학생과 교육과정, 이 삼자가 시스템의 주요 구성요소다. 가르치는 선생님은 단지 시스템의 일 구성요소일 뿐이다. 현대식 교육 시스템에 따르면 선생님은 교육이라는 서비스를 공급하는 한편의 주체일 뿐이다. 제자는 교육 소비자로서 그 서비스를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한다. 그리하여 교육은 서비스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의 사고파는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교육‘시장’에서 거래 되는 것이다.
공교육이든 사교육이든 현대 교육의 적나라한 성격이 이와 같은 까닭에, 그러한 교육에 젖어온 사람의 입장에서 전통적인 스승-제자 관계와 그 성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인도와 동아시아의 전통에서 스승은 신과 같은 존재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자신이 평생을 두고 이룩한 모든 걸 아낌없이 다 준다. 제자의 일생을 책임지고 상담하고 안내하고 가르친다. 때로는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아끼지 않고 제자를 위해 기꺼이 내어준다. 그러므로 제자에게 스승은 절대적인 존재다. 절대적인 신뢰를 쌓은 다음엔, 스승의 부름에 자신의 온 삶을 걸고 응답한다.
티베트의 예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스승이 먼 길 출타를 위해 길을 나선다. 제자가 여쭌다. “스승님 부재 시에 저는 무얼 하고 있어야 합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염송할 만트라(주문)를 가르쳐주고 길을 떠났다. 제자는 스승이 가르쳐준 만트라를 외고 또 외우며 스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듯 세월이 흘렀다. 길을 떠난 스승은 돌아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제자는 오로지 스승이 남기고 떠난 그 만트라만 죽을 때까지 염송했다.
여기까지 온 것은 다만 한 사람, 스승을 의지해서 오지 않았던가. 내가 지금껏 쌓아왔던 것이 무엇이건, 지금 그것은 내게 없다. 새로움이란 낡은 것 위에 쌓아올릴 순 없다. 파괴를 통하지 않고 건설하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잔은 비어있을 때라야 비로소 잔으로서의 쓰임이 있다. 가득 채워져 있는 그릇엔 아무리 좋은 것도 더 이상 채울 수 없다.
한국에 있을 때 스님이 했던 말이다. 이경 보살이 물었다. “스님, 저는 본래 아는 것도 없고 채워진 것도 없으니 비울 것도 없습니다. 이게 더 좋지 않습니까?”
“많은 것을 담았던 큰 그릇은 비우고 나면 더 많은 걸 담을 수가 있지요.”
‘가지고 있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 가지고 있는 것(所有)에 집착하니, 바로 그것이 고통의 근원이 된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이 더욱 파랗다.
글/민웅기(<태극권과 노자>저자,송계선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