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14) 언어의 집 만들기 - ① 언어 디자이너 2-2/ 문학박사 전기철
언어의 집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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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언어 디자이너 2-2
시란 평범한 사물이나 세계, 혹은 관념을 정말 처음 본 듯하게 미적으로 만든 언어의 구조물이다. 따라서 시는 평범한 언어를 변형하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준다. 시계가 있다고 하자. 시계란 시간을 알려주는 기구이다. 정확해야 하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알려주는 장치이다. 이런 평범한 사물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면 시적 상상력은 작동하지 못한다. 그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계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았던, 처음 본 듯한 시계로 재탄생시켜야 한다. 평범한 것을 낯설게 해야 한다. ‘시계가 나에게 아침을 배달한다./ 나는 시간의 회초리를 맞으며 하루를 엮는다.’ 여기에서 시계라는 그 의미가 굳어진 말은 이미지와 리듬을 통해 변환되어 우리에게 미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하나의 낱말이나 문장이 미적 정서를 갖게 하려면 일상적인 말은 미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인은 뒤집어서 생각하기, 합성하기, 착란이나 환각 상태로 보기, 연상의 중간 부분 삭제하기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기존의 언어를 미적으로 재구성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 시는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시인은 구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쓰는 글씨를 읽고 내 심장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시인은 언어의 미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 언어에 미적 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 다음 시들에서 말들이 어떻게 미적 쾌감을 일으키는지를 보기로 하겠다.
① 꽃자리에 들어앉아 눈을 뜨는 넝쿨은 떨림일까 숨차게 번지는 초록은 소름일까 꽃망울은 서둘러 허물을 벗어야 할까
너는 빨강을 좋아한다고 했지
나는 풀밭에 앉아 립스틱을 부러뜨렸어
피의 반란을 일으키는
장미의 가시
―양소은, 「네 입술은 빨강」 부분
② ‘그렇지만’이란 말 속에 숨어버린 쉿! 소리를 낮춘 밤으로 구부러지는 기억이 철길을 건 너요 방음벽을 타고 오르는 어둠을 프린트해요 얼룩진 그림자가 숨어드는 허공의 계단을 밟는 고요, 꽃들이 컹컹 짖어요
눈 속에 가득한 소리 들어본 적 있나요 염주처럼 굴러다니는, 햐양보다 검정이 편안할 때 가 있죠 존재의 그늘에 대해 설명하지 말아요 누군가는 무덤 속에 앉아 있어요
―박지우, 「밤의 입술」 부분
위 시 ①에서 넝쿨은 떨림이 되고 초록은 소름이 된다. 너의 빨강과 나의 립스틱은 대립되는 듯 이어지고, 피는 장미의 가시를 불러온다. 낱말들이 미적으로 재구성되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앞 연이 산문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다음 연은 행갈이를 하고 있다. 그만큼 그 느낌 또한 색다르다. 그리고 시 ②에서 “허공을 밟는 고요, 꽃들이 컹컹 짖어요”라는 모호한 문장은 말과 말의 간극으로 새로운 느낌을 갖게 한다. 밤과 입술과 자음, 그리고 소리, 문 등은 서로 아무 연관 없이 충돌하면서 독자에게 새로운 느낌을 준다. 이러한 말들은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면서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그로 인해서 보다 풍성한 미적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하양보다 검정이 편안할 때가 있죠 존재의 그늘에 대해 설명하지 말아요”와 같은 문장 또한 정서적 깊이가 느껴진다.
시는 일상적인 말을 이미지, 그리고 리듬으로 다듬은 언어의 구조물이다. 시는 미적 언어로 주체의 욕망이나 꿈을 표현하는 문장이다. 하나의 말은 다른 말을 만나면 새로운 뜻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시인은 시의 기본이 되는 낱말이나 문장을 수집하고, 그 말들을 정서적 효과가 나도록 조합하여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연습 1] 다음의 말들을 본래의 뜻이 희미해지도록 앞뒤에 다른 낱말이나 문장을 넣어 그 말이 새롭게 느껴지도록 해보시오. 말들끼리 연결해서 새로운 느낌이 나야 합니다.
① 그네 타는 숨
② 바람의 계단을 밟고 오르는 햇빛
③ 우울한 거울
④ 오두막
⑤ 마늘빵을 사야겠다
⑥ 강은 바다로 갔다
⑦ 숲으로 가면 비가 있어요
⑧ 외투
⑨ 야만스러운 구름
⑩ 길은 게으른 산책을 해요
무엇보다도 언어의 예술적 장치는 말들끼리의 감각적 합성이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이미지이다. 그래서 서정주는, 시인은 이미지의 재벌이라고 했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방법은 합성하기, 공감각 만들기, 착란으로 바라보기 등이 있다. 이미지는 한 단어나 구절, 문장에서도 이루어지지만 여러 문장들의 합성으로도 이루어진다. 따라서 말의 다양한 발화 형태의 뒤섞임으로 이미지는 만들어진다.
이미지가 의미의 측면에서 언어를 미적 정서로 바꿔주는 장치라면 리듬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언어를 미적 정서로 전환시켜주는 장치이다. 리듬은 산문과 다르게 정서적 마디에 따라 행갈이, 행의 길이, 문장부호, 연 갈이를 하는 데에서 나타난다. 같은 말도 세로로 내려 쓰느냐 가로로 나열하느냐에 따라 느낌은 달라진다. 행의 길이나 연의 길이, 쉼표와 마침표 등은 모두 리듬과 관련이 있다.
리듬이란 감성의 호흡이며, 정서적·미적인 마디이다. 울 때와 단호할 때, 혹은 사실을 나열할 때 리듬은 각각의 독특한 마디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반복구나 의성어, 의태어, 행갈이, 혹은 행의 길이 등은 리듬에서 중요한 요인들이라 할 수 있다. 음악에서 멜로디와 화음을 어떻게 반복적으로 넣느냐에 따라 그 굴곡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시에서 리듬은 감성의 굴곡을 만드는 장치이다. 단순 진술에서의 리듬과 정서적인 표현에서의 리듬은 다르다. 리듬은 시에서 언어의 의미적인 부분을 모두 없애도 무방하게 한다. ‘라’ 음에 소리를 바꾸거나 모음의 차이, 마디를 두어 연속하면 리듬이 발생한다.
라라라라라라, 논, 라라라,
노
노
노논, 랄랄라, 라, 라, 노노노노논노노,
나, 라라, 나
위의 노래는 충분히 시가 될 수 있다. 감성의 마디를 두었기 때문이다. 띄어쓰기와 행갈이, 문장부호를 통해서 시에 정서적·미적 마디를 부여한 것이다. 시에서 정서적·미적 마디는 이미지의 의미 변환 못지않게 중요하다. 리듬은 의미에 장단과 굴곡을 부여하여 의미가 감성뿐만 아니라 감각적으로 전환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소리의 리듬에 치우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시를 마음속으로라도 소리 내어 읽으면 리듬에 의존하여 시의 이미지를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리듬과 이미지는 적당하게 서로 얽히고설키게 해야 한다.
< ‘언어적 상상력으로 쓰는 시 창작의 실제(전기철, 푸른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1.10.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14) 언어의 집 만들기 - ① 언어 디자이너 2-2/ 문학박사 전기철|작성자 화룡이의 행복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