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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큰아들 레슬러 택호에게, 마라토너 아빠가(이재봉)
(10여 년 전 큰아들이 고3 레슬링 선수일 때 3-4일간 눈물로 쓴 긴 편지)
이제 2006-07 시즌 경기를 모두 끝냈구나. 참 수고했다. 그 동안 입과 코 그리고 귀 등에서 피를 몇 차례 흘리고 손가락을 삐며 거의 온 몸에 타박상을 입는 등 적지 않은 고통을 겪었지만, 큰 사고 없이 한 시즌을 잘 마쳤으니 다행이다. 8학년 때 두어 달 정도 레슬링을 하긴 했어도, 3년을 쉬다 남들보다 한 달 반이나 늦게 뛰어들어 겨우 2주 동안 연습하고 학교 대표로 뽑힌 것도 대단한데 지역 대회에 나가 3등까지 했으니 훌륭하다. 전체적으로도 약 한 달 동안 교내 경기를 빼면 13번 싸워서 8번 이기고 5번 졌으니 좋은 성적이야. 너는 부전승 (win by forfeit, bye)까지 포함해 16전 11승 5패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지. 상대방이 출전한 뒤에 다쳤거나 질까봐 기권을 한 게 아니라, 토너먼트 대진을 추첨하는 과정에서 아예 상대방이 없는 경기가 배정된 것이니 깨끗하게 13판 8승 5패라고 하자. 너는 이 결과에 아쉬움을 좀 가질지 모르지만 아빠는 크게 만족한다. 네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과신하거나 교만에 빠질 정도로 이기지도 못했고, 낙심하거나 좌절에 빠질 만큼 지지도 않았거든. 계속 승리만 하면 무슨 일에든 자신감을 갖게 되겠지만 자만으로 흐르기 쉽고, 계속 패배만 맛본다면 매사에 겸손해지겠지만 자괴로 이어지기 쉬울 텐데, 기분 좋을 만큼 이기고 적당하게 졌다는 뜻이다.
아빠가 미국에 온지 3-4일 정도 지난 뒤였으니까 12월 20일께였지. 네가 레슬링을 하겠다고 엄마에게 서명해달라고 했을 때가. 이제 처음으로 밝히는데 그 때 아빠 속이 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아빠가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에 와있는데도 아빠에게는 한 마디 얘기도 없이 엄마한테만 서명을 부탁했었거든. 레슬링이 아빠가 가장 싫어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더구나 엄마하고든 아빠하고든 사전에 미리 상의하지 않고 레슬링을 하겠다고 혼자 결정했잖아. 그것도 하필 대학 입학 준비에 전념해야 할 때에. 아무튼 아빠는 너와 우호가 어릴 때 총이나 칼 같은 장난감도 폭력적이라며 사주지 않았듯이, 정치학교수와 통일운동가라는 직함 말고도 평화학교수나 평화운동가 또는 비폭력주의자라는 수식어 등을 달고 다니는데, 아들이 가장 폭력적인 운동 가운데 하나인 레슬링을 하겠다는 게 언짢았다. 아빠가 몹시 사랑하는 아들이 아빠 동의도 얻지 않고 아빠가 무척 싫어하는 운동을 하겠다는데 아빠 마음이 편할 리 없었지.
물론 너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너무 좋아했고 몹시 잘했다. 네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칠 때까지는 네 꿈이 축구 선수가 되는 거였지. 아빠처럼 교수가 되면 자기가 하고싶은 일 맘대로 할 수 있고 남들에게 존경도 받을 수 있다는 엄마 말에 너는 축구 선수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대꾸하더구나. 축구 선수는 젊을 때 겨우 몇 년 동안만 운동하면서 돈을 벌 수 있지만 교수는 늙을 때까지 평생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는, 축구를 잘하면 1-2년 사이에라도 교수가 평생 버는 돈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반박했고. 그러다 네가 플로리다로 온 뒤에는 풋볼에 빠져 풋볼 선수가 되겠다고 했지. 풋볼 역시 아빠가 매우 싫어하는 폭력적인 운동인데. 아빠가 대학원 10년을 미국에서 다녔는데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운동인 풋볼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아직 경기 규칙조차 전혀 모르는 이유란다. 뉴욕으로 이사간 뒤 7학년이 되어 학교 풋볼팀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테니스를 권했지만 콧방귀부터 뀌더구나. 테니스가 무슨 운동이냐면서. 하기야 넌 그 때 야구조차 운동으로 여기지 않았으니 어렸을 때부터 과격한 운동만 즐긴 셈이지.
혹시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네가 초등학교 1학년 그리고 우호가 유치원생일 때 우리 네 식구가 대천해수욕장에 놀러갔었지. 엄마와 아빠가 편먹고 너희가 한 편이 되어 백사장에서 축구를 했는데 그게 어찌나 좋았던지 아빠는 그 추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네 식구가 함께 많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같이 운동을 한 적은 거의 없거든. 너희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빠는 소박한 꿈 하나를 간직해왔어. 아빠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넷이 함께 하는 것. 그래서 너희가 중학교에 다닐 때부터 테니스를 권했던 거야. 축구나 풋볼은 과격하고 팀 운동이라 네 식구가 하기 어렵지만, 테니스는 남자든 여자든 둘이나 넷이서 쉽게 할 수 있고 나이 들어서도 여가 활동으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니까. 하기야 너희가 테니스를 좋아하게 될지라도 엄마가 끼지 못하겠지만. 엄마는 운동하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하니 말야.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테니스보다 쉽게 할 수 있는 배드민턴이라도 넷이 함께 해보자고 얼마 전에 라켓을 사오고 집에다 코트를 만들었잖니. 첫날 엄마와 딱 5분 정도 했는데 엄마는 팔에 근육통이 생겼다면서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리더구나. 그러나 너와 그리고 우호와 배드민턴을 하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얘기가 조금 빗나갔는데, 네가 풋볼팀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아빠가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들이 하고 싶다는 일이 법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한, 하지 말도록 무턱대고 강요하지는 않겠다는 게 아빠의 방침이니까. 그 대신 너에게 조건을 내걸었지. 풋볼 때문에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 둘 각오를 하라고. 그러다 풋볼을 시작한지 며칠도 되지 않아 네가 다쳐 병원 응급실로 옮긴다는 연락을 학교로부터 받았을 때는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더구나. 의사들이 대부분 퇴근한 뒤여서 응급실에서도 한참 기다렸어야 했는데, 부러져서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붙들고 “아빠, 아파요!”를 연발하는 널 지켜볼 때처럼 심하게 무력감을 느껴본 적은 없었어. “택호야, 괜찮을 거야.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말 밖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빠가 너무도 처량하게 느껴지고 원망스럽더구나. 아빠는 직업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고 상당한 자부심을 가져왔지만 그 때는 박사면 뭐하고 교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거의 두 달 동안이나 깁스 (gyps, plaster)를 하는 바람에 풋볼 시즌을 그냥 보낸 대신 다행히 겨울에 농구를 시작할 수 있었지. 바로 학교 대표로 뽑힌 게 자랑스러웠다. 경기를 시작할 때마다 네가 팀 대표로 나서 공중의 공을 잡기 위해 점프하는 모습은 더욱 대견하더구나.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작은데도 점프력이 훨씬 좋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렇듯 넌 모든 운동에 뛰어난 소질을 갖고 있는 모양이야.
네가 8학년에 올라가서는 풋볼을 본격적으로 했지. 7학년 때 시작하자마자 크게 다치는 바람에 풋볼을 단념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구나. 아빠가 한국에 있어서 단 한 경기도 지켜볼 수 없었지만 아들의 활약이 대단하다고 엄마한테서 잘 들었다. 너 혼자 어떤 경기에서는 터치다운을 세 번이나 하는 등 네가 선수로 뛸 때 너희 학교 풋볼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다면서? 그래서 너희 학교는 우승을 했고 너는 최고 선수로 뽑혔다고 했고. 아빠가 풋볼 경기를 조금도 좋아하지도 않고 규칙도 모르면서 풋볼 선수 아들에 대해서는 큰 자부심을 갖게 되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기더구나.
택호야, 그 무렵 아빠가 너에 대해 훨씬 더 자랑스럽고 흐뭇하게 생각했던 것은 풋볼이든 농구든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잘하면서도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잘했다는 점이야. 성적이 좋은 데다 특히 수학을 잘해 학교 대표로 수학 경시 대회에 몇 차례 나가기도 했잖아. 운동 연습이든 경기든 학교 수업을 모두 마친 뒤에 하는 것이어서 어떤 날은 파김치가 되어 밤늦게 집에 들어와서도 꼭 숙제를 끝내고 자는 것을 볼 때는 안쓰럽기도 했다. 그리고 카드놀이도 잘했어. 7학년 때였을 텐데 유기오 카드놀이가 한창 유행이었지. 학교 근처 문구점에서 카드 대회를 벌이곤 했는데 넌 항상 1-2등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네 생애 처음으로 밖에서 돈을 벌어오기도 하고. 한 초등학생 엄마가 네가 대회에서 1등 하는 것을 보고 자기 아들에게 가르쳐달라고 하기에 조금 가르쳐주고 5달러를 받아왔다는 너를 보고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신나게 웃었니.
친구들을 다양하게 사귀는 것도 참 좋았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도 잘 교제하고, 운동 잘하는 아이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말이야. 엄마가 한국에 나가게 되면 너더러 자기네 집에 들어와 같이 살자는 아이들까지 있었잖아. 동양인이라고는 너와 우호를 포함해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학교에서, 그것도 한국인들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고 선민의식이나 배타성이 강하기로 이름난 유태계 (Jewish) 미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동네에서,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며 학교생활을 하는 모습이 너무 대견했다. 언젠가 친구 집에 초대받아가 놀면서 피아노를 치자 친구 아빠가 “넌 도대체 못하는 게 뭐가 있냐”고 물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아빠가 속으로 얼마나 우쭐했었는지 아니?
그러던 너를 죠지아로 옮긴 게 큰 잘못이었던 것 같다. 너의 뉴욕 생활에 미련을 갖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네가 이곳에서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고 좋아하지만. 뉴욕에서 중학교 다닐 때는 매사에 뛰어나고 친구들을 다양하게 사귀었는데 여기 고등학교에 와서는 모든 게 흐트러지기 시작했잖아. 새학기 시작하기 전에 풋볼팀에 들어갔지만 다른 아이들은 이미 여름방학 때부터 훈련을 받았다면서 너에겐 벤치를 지키며 교체 선수로 뛰라고 했으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실망이 컸었니. 하기야 여기 고등학교는 뉴욕의 중학교보다 훨씬 큰 데다 운동을 잘하는 흑인 학생들이 많아 네가 일찍이 합류했어도 어차피 주전 선수가 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지. 결국 한 시즌을 끝내면서 포기하고 말더구나. 네가 그토록 좋아하던 풋볼을 그만두고 공부나 열심히 하겠다고 할 때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죄스러웠다. 지켜보는 아빠 심정이 이렇게 허탈한데 당사자인 아들 기분은 어떨까 하는 생각에 몹시 괴로웠고. 뉴욕으로 되돌아갈까 하는 고민까지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줄줄 흐르니 그 때는 오죽했겠어?
나아가 농구마저 포기하더구나. 팀에 키 큰 흑인 학생들이 쫙 깔려 있다고 테스트 받아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면서. 그래, 넌 그 무렵부터 키도 자라지 않고 있지. 중학교 때는 우호 머리가 네 어깨 근처에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동생이 오히려 더 큰 것 같으니 키에 대해서 네 고민이 얼마나 큰지 짐작한다. 그리고 친구들도 폭넓게 사귀지 못하고 한국 아이들하고만 놀더구나. 주변에 한국 사람들이 거의 없는 동네 학교에 다니다 어딜 가더라도 한국인들이 넘쳐나는 동네 학교로 옮겼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적까지 계속 떨어졌고. 운동을 하지 않는 만큼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성적이라도 올려야 할텐데 풋볼도 그만 두고 농구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도 하지 않더란 말이다. 아빠가 미국에 들어올 때마다 책 몇 권씩 사왔지만 <짱>과 <니나 잘해> 말고는 읽기는커녕 만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만화로 된 역사책까지. 이젠 한국어에도 서툴러 <소설 삼국지>는커녕 <만화 삼국지>조차 읽지 못하겠다고 할 때는 기가 막혔다. 이제야 말하지만 책꽂이에 교과서나 교양서적은 거의 보이지 않은데 <짱>과 <니나 잘해>는 보물처럼 간직하면서 방 벽을 <짱> 표지로 도배하다시피 해놓은 것을 볼 때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어.
그래도 야단치면 반항하면서 빗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 데다 사춘기라서 그러려니 하고 꾸짖기보다는 꾹 참고 기다려왔다. 덕분에 사춘기 청소년들의 심리에 관한 글도 더러 읽었고. 작년에 휴대전화를 사달라고 했을 때 엄마는 반대했지만,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고등학생 치고 휴대전화 갖지 않은 아이가 어디 있겠느냐며 엄마를 설득하기도 했지. 귀를 뚫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고. 사실 아빠가 정치나 경제와 관련된 사상엔 꽤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문제엔 무척 보수적이거든. 남학생이 귀걸이를 하거나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하는 것은 단순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혐오하기까지 하는데 아들이 귀걸이를 달고 싶다고 했을 때 아빠 심정이 어떠했겠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별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엄마를 설득해 두 귀를 다 뚫어주고, 귀걸이가 꼬였다고 할 때엔 아빠 손으로 빼주기도 했으니 아빠 스스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구나. 허허!
이와 관련하여 너와 우호가 뉴욕에서 학교 다닐 때부터 아무리 미국에서 생활할지라도 한국인들이 중시해온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예절조차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국에 잘못 데려왔다는 생각을 품곤 했는데 죠지아로 옮긴 뒤에는 더욱 그랬다. 너희가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키우겠다고 이름을 한국식으로만 지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불만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지만. 아빠가 너희를 한국인으로 만들기 위해, 한국의 기본적인 문화와 역사를 배우도록,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게 하려 했던 것 기억하지? 너희들이 적응하기 쉽도록 정규 고등학교이면서도 일종의 특수학교 같은 고등학교로부터 입학 허가까지 받아 놓았었잖아. 엄마와 너희가 반대하고 주위 사람들도 만류하여 그만두고 말았지만. 한국에서 교육부장관을 지낸 사람까지 적극적으로 말렸는데, 그 무렵에 재미있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2년 전이었어. 사업을 하는 한 친구가 점을 보고 왔는데 그 점쟁이가 이제 막 신내린 사람이어서 너무 신통하게 잘 알아맞히니 같이 가보자고 친구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부추기는 거야. 아빠는 그 때까지 점을 본 적도 없고 그런 것을 전혀 믿지도 않았지만 어찌나 그럴싸하게 권하는지 슬쩍 호기심이 생겨 어느 목사님하고 장난삼아 가보았지. 신분을 감추기 위해 둘 다 옷을 허름하게 입고 서로 ‘목사님’이나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대신 ‘형님’과 ‘아우’로 부르면서. ‘사주’라고 하는 생년월일시 빼고는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았는데 아빠에게 대뜸 뭐라고 한 줄 아니? 말솜씨와 글재주가 뛰어나니 교직을 가져야 할 사람이래. 특히 대학 교단에 서는 게 좋겠대. 속으로는 놀라면서도 겉으로는 태연한 체하며 계속 듣고 있는데, 더 놀라운 것은 자식하고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거야. 시치미를 뚝 떼고 나이가 많지도 않은 자식하고 어떻게 떨어져 지내란 말이냐고 물었더니, 둘의 성격이 맞지 않아 같이 살면 항상 부딪치게 되니 헤어져 살아야 서로 좋다는 것이었어. 우스운 얘기지만 너와 우호를 한국으로 데려가는 것을 포기한 데는 그 점쟁이의 영향도 조금 있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너와 나는 많이 부딪쳤지. 점쟁이 말대로 둘 다 성격이 좀 강하고 고집이 센 편이잖아. 아빠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일엔 누구에게든 져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큰아들에게만큼은 이겨본 적이 없는 것 같구나. 택호는 태어나면서부터 고집이 엄청 셌거든. 그래서 지금까지 네가 하는 일에 간섭하기를 억제했지. 부탁하고 싶은 얘기가 아주 많은데도 네 눈치를 보며 털어놓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번 너의 레슬링 경기를 응원하러 다니면서 그 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얘기를 어느 정도 털어놓을 수 있었다. 요즘 한 달 남짓 거의 매일 레슬링 훈련이나 경기를 마친 뒤 돌아오는 차안에서 부자지간에 자연스레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게 너무 행복했어. 그래서 아빠가 글 쓸 것이 많이 쌓여 있는데도 30분이 걸리든 한 시간이 걸리든 네가 경기하는 곳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던 거야. 아빠가 몹시 싫어하는 레슬링을 통해 큰아들과 가장 가까워졌으니 이것 또한 역설적이구나.
택호야, 레슬링 훈련을 시작한 첫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아빠가 물었지? 왜 레슬링을 할 생각을 했느냐고. 넌 역시 퉁명스레 한 마디로 대답하더구나. 좋아서 한다고. 그래서 아빠가 조심스레 부탁했다. 좋으면 왜 좋고 어떤 점이 좋은지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아빠가 따지거나 잔소리한다고 여길까봐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해 에둘러 얘기하면서 말이야. 앞으로 SAT 작문 시험도 준비해야 하고 대학 지원 에세이도 준비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면접 준비도 해야 하는데, 말이든 글이든 상대방이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도록 설득력을 지녀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랬더니 네 대답이 그럴싸하더구나. “풋볼이나 농구는 팀운동만 되는데 레슬링은 팀 운동도 되고 개인 운동도 된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결과는 개인 성적에도 반영되고 팀 성적에도 반영된다. 그리고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맨몸으로 승부를 가리는 게 좋다.” 그렇다면 태권도나 유도 등도 도구 없이 맨몸으로 경기하는 것인데 꼭 레슬링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더 묻고 싶었지만 아빠가 레슬링을 싫어하니 트집 잡는다고 생각할까봐 그만 두었다. 물론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태권도나 유도는 잘 하지 않지만 거의 모든 학교가 겨울철엔 레슬링팀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빠도 잘 알지. 그러나 얼마 뒤 코치가 아빠와 똑 같이 질문을 던졌을 때 했다는 대답은 더 멋있었다. “중학교 때는 풋볼도 하고 농구도 하고 레슬링도 하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와서는 아무런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도 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레슬링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 또는 나태해진 자신을 바로 잡기 위해 레슬링을 다시 한다는 게 무척 맘에 들었다. 동기가 멋있다는 것이지. 그 말대로 넌 너무도 많이 달라졌어. 정말 무섭게 바뀌더라고. 아침엔 물 한잔도 제대로 마시지 않고 학교 갈 때가 많았는데 힘든 훈련 때문인지 이것저것 꼭 챙겨먹고 가더구나. 아침에 먹는 대신 저녁엔 줄여 먹으면서. 매일 수업 후 두어 시간씩 훈련하느라 힘들텐데 밤늦게까지 공부하고는 다음날 아침엔 더 잘 일어나고. 다른 때엔 학교 다녀오면 낮잠도 잘 자고 인터넷 좀 하다가 침대에 누워 뭉그적거릴 때가 많았는데, 레슬링을 하면서는 시간이 부족하니 아예 침대에 누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너 스스로 느끼고 직접 말하더구나. 잠을 적게 자는데도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졸리지도 않는다며 정신력이 강해졌다고.
아빠가 더욱 놀란 것은 네가 몸무게를 크게 줄인 일이다. 150파운드가 넘던 체중을 140으로 줄여 그 체급 대표가 되더니 얼마 뒤엔 더 줄여 135파운드 체급 대표까지 차지하더구나. 네가 레슬링을 하는 동안 아빠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일은 경기 중에 피를 흘리는 것보다 경기 전에 굶는 것이었다. 한창 먹을 나이인데다 평소에 식욕이 얼마나 왕성했니. 게다가 키가 크지 않는다고 고민하며 때를 가리지 않고 많이 먹었고. 그런 터에 경기를 앞두고는 물 한 잔 빵 한 조각조차 입에 대지 못하는 게 너무 안쓰러웠다. 다른 운동은 실컷 먹으면서 할 수 있는데, 하필 체중을 엄격하게 따지는 운동을 택해서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는 게 가슴 아팠지. 특히 아빠는 먹지 않고는 못 배기잖아. 학생 시절엔 말할 것도 없이 교수가 된 뒤에도 8년 전 얼굴을 다칠 때까지는 하루나 이틀 밤을 꼬박 지새우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지만 밥은 한 끼만 걸러도 견디기 어려웠거든. 그러나 없어서 못 먹는 고통이나 설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리라 생각하니 위안이 되더라. 나아가 굶는 것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각오와 의지를 계속 다지고 키운다면 앞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어려움을 겪든 이겨내지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이지.
택호야, 그런데 아빠는 무엇보다 네가 지역 토너먼트에서 3등 했던 것을 오랫동안 못 잊을 거야. 1월 27일 보여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어쩌면 영원히 잊을 수 없겠지. 그 전 날, 즉 토너먼트 첫날 첫 경기에서 1회전에선 귀 쪽에 피를 흘리고 2회전에선 바닥에 깔려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을 치다 결국 한판패 (fall, pin)를 당하더구나. 그에 앞서 1월 5일, 훈련을 시작한 지 약 2주 후 너희 학교에서 이웃 학교들을 초청해 대회를 가질 때, 네가 맨 처음 출전한 경기에서도 거의 같은 상황이었어. 그 때는 입에 피를 흘린 게 달랐을 뿐. 그런 모습들을 지켜볼 때 아빠 심정이 어땠는지 아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더라. 운동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거야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배를 곯으면서 피가 터지도록 싸우고도 완패하는 데는 마음이 너무 쓰리더란 말이다. 다행히 패자부활전 (consolation match)에선 한판승을 거두어 살아남더구나. 금요일 수업을 다 마치고 저녁 5시를 넘겨 대회를 시작하느라 10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집에 오니 11시. 온 종일 굶다시피 한 데다 다음날 아침엔 몸무게를 재지 않는다니 실컷 먹을 수 있었지만 곧 자야 되니 그러기도 곤란했지. 다음날은 토요일인데 늦잠도 못 자고 아침 7시 반까지 학교에 모여 경기장으로 갔고. 세 번째 경기에서도 한판승을 거두자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는 것 같더구나. 한 번만 더 이기면 상을 받을 수 있는 6등을 확보한다고 욕심을 조금 부리면서 말이야.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12개 학교에서 각 체급에 2명씩 참가했다니 체급마다 24명이 겨룬 셈인데, 네 번째 경기를 이기면 8등을 확보하고, 다섯 번째에서 이기면 3-4등 지면 5-6등, 마지막으로 여섯 번째도 이기면 패자부활전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등수인 3등이 되는 것이었거든. 아무튼 6등까지 상을 받는다면서 은근히 욕심을 부리는 게 재미있었어.
그래서 네 번째 경기를 앞두고 아빠가 얼마나 긴장한 줄 아니? 카메라를 잡고 있는 손에 땀이 흐르는 거야. 한 두 시간 테니스를 해도 땀을 거의 흘리지 않는 아빤데. 네 상대를 보니 너보다 키도 크고 근육도 탄탄한 것 같아 더 걱정되고. 그러나 1회전에서 둘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다 네가 먼저 넘어뜨려 2점을 얻고 한번 굴리면서 또 2점을 따는 걸 보니 이겼구나고 안심이 되더라. 2회전부터는 네 힘이 달리기 시작하는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3회전을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결국은 판정승. 휴우! 그런데 조금 이따 네가 복도로 나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하는 말이 아빠 가슴을 저미더구나. “아빠, 너무 힘들었어요. 지금까지 가장 힘든 매취 (시합)였어요. 하다가 포기하고 싶었어요. 아! 이젠 더 못할 것 같아요.”
처절한 신음 같은 네 말에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구나.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이만하면 됐으니 그만 두자고 할까. 아니야, 이왕 나선 건데 맘을 독하게 먹어야지.’ 속으론 울면서도 냉정하게 말했다. “택호야, 위에서 이기면서도 그렇게 힘들었니? 그러면 밑에서 진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겠어? 아무리 힘들더라도 버티자. 좀 쉬고 나면 괜찮아질 거야. 힘과 기술이 부족해서 지는 건 할 수 없어. 한판 패를 당해도 좋고 판정으로 져도 좋아. 그러나 포기는 하지 말자. 이기고 지는 건 능력에 관한 문제지만, 계속 하고 안 하는 것은 의지에 관한 문제야. 아빠가 항상 강조하는 것 잘 알잖아. 능력이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의지는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다시 말하지만 꼭 이기라는 게 아냐. 다쳤다면 모르되 힘들다고 기권은 하지 말자는 거지. 긴장은 좀 하더라도 부담은 갖지마. 이기든 지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란 말이다. 오케이?” 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구나. 고마웠다. 그런 너에게 위로도 하고 쐐기도 박을 겸 마라톤 완주를 다짐했던 거다. “택호야, 아빠가 한국에 나가면 한두 달 안에 마라톤대회에 나가 풀코스 약 26마일을 완주할게. 널 생각하면서 말이야. 내 아들은 굶어가면서 온종일 싸우는데, 아빠는 뭐든지 맘껏 먹으면서 그까짓 네 시간 정도 못 뛰겠어? 아빠는 레슬러 아들을 생각하면서 뛸 테니까 아들은 마라토너 아빠를 생각하면서 힘내, 응?”
널 매정하게 다그쳐놓고 쉬라면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울음을 참을 수 없어서. 눈물 꽤 쏟았을걸.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빠는 참 독종인데 눈물은 왜 그렇게 흔한지 모르겠어. 그래도 남에게 독하게 군 기억은 별로 없다만. 자신에게 독했던 거지. 10년 이상 피우던 담배를 며칠 만에 쉽게 끊어버렸고, 식후마다 숭늉처럼 마시던 커피도 하루 만에 완전히 끊었으며, 매일 서너 병 이상 마시던 콜라나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도 아예 입에 대지 않잖아. 건강에 큰 이상이 생겨서 그런 게 아니라, 감기에 걸렸는데 담배가 나쁘다기에 끊었고 보약 먹는 중에 커피를 자제하라기에 끊은 거야. 긍정적으로 말하면 의지가 강하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독종이지. 그런데 지금도 이 대목 쓰면서 우느라 눈이 벌개졌어. 어제부터 이 글 쓰기 시작했는데 어제도 많이 울었고. 네가 즐겨 쓰는 말처럼 혼자 ‘생쑈’를 떠는 것 같구나.
아무튼 네가 얼마간 휴식을 취하고 기력을 되찾았는지 아빠한테 다가와서 하는 말이 재미있었다. “아빠, 나 또 이기고 싶어요. 저기 프런트 (앞)에 어워드 (시상)하는 데 있잖아요. 그 앞을 지나면서 테이블을 보니까 6등까지 레커그니션 (표창)을 주는데 메달은 4등까지만 줘요. 이번에 한 번만 더 이기면 적어도 4등은 되니까, 나 메달 받고 싶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일하는 것과 목표 없이 행동하는 데는 큰 차이가 있어. 아무래도 어떤 목표를 정해 놓으면 그걸 성취하기 위해 더 노력하게 되지. 그 대신 너무 긴장하지마. 너무 무리하지도 말고.” 잠시 후 복도 벽에 붙은 대진표에서 네 이름을 거듭 확인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 여자가 아빠를 지켜보더니 너와 시합할 아이의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구나. 그 여자는 자기 아들을 부르고, 난 널 불렀지. 너희 둘에게 서로 인사시키자 네가 먼저 악수를 청하며 “굿럭”이라고 말하고 그 친구도 “굿럭”이라고 대꾸하는 게 보기 좋았다. 속으로는 많이 웃었지만. ‘좀 이따 서로 싸울 녀석들이 상대에게 행운을 빈다고 했으니 기꺼이 져주겠다는 말인가. 허허.’ 그런데 그 아이를 보니 조금 안심이 되더라. 키는 너와 비슷한데 얼굴이 둥그런 곱상인 데다 너보다 근육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걔가 속한 Pope 고등학교 레슬링팀이 좀 센 것 같아서 은근히 쫄고 있었거든.
다섯 번째 경기. 그 아이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는데 네가 잘 막으며 잽싸게 걔 등에 올라타더구나. 불과 10여초 만에 2점을 따는 것을 보니 이미 이긴 것 같더라. ‘내 아들이 기어코 메달을 따겠군.’ 1회전이 끝나자 그 아이가 발목을 다쳤는지 거기를 만지작거리며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는데, 2회전엔 처음부터 위에서 계속 공격하다 너에게 순식간에 뒤집히고 바로 한판패를 당하고는 또 일어나질 못했지. 경기 후 악수도 나누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쓰러져 있었는데, 넌 걔에게 다가가 위로나 격려의 말 한 마디 없이 경기장을 빠져 나왔어. 네가 다치게 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러면 안 돼. 그건 승자의 도리가 아냐. 무슨 경기에서든 상대가 이기면 가슴이 아프더라도 먼저 축하해줄 줄 알고, 네가 이기면 상대 앞에서는 기쁨을 자제한 채 위로와 격려를 건넬 줄 알아야지. 더구나 그 아이는 경기 시작 전 복도에서 부모와 함께 만난 인연을 가진 데다 네가 직접 행운을 빌었던 상대였잖아. 이에 덧붙여,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운동 경기도 학교 교육의 연장이라는 점을 되새기면서 훌륭한 매너를 가꾸어야지. 너에게 진 아이들 가운데 한 명도 그랬는데, 졌다고 발목띠를 내던지고 헤드기어를 팽개치는 등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무례한 녀석들이 적지 않더구나. 또한 팀 동료가 경기할 때는 옆에 가서 응원을 해주어라. 네가 경기할 때는 동료들이 많이 와서 응원해주었는데, 넌 동료들에게 응원을 거의 해주지 않았어. 아빠가 항상 강조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거야.
이기고 돌아온 너에게 이런 점들을 지적해주고 아빠가 다시 부추겼지. “아들, 축하해! 메달 땄어. 아주 멋있었어. 장하다. 그런데 택호야, 우리 욕심 좀 더 내볼까? 왜냐면 여기서는 될수록 많은 학생들을 격려해주려고 6등까지 표창하고 4등까지 메달을 주는 것 같지만, 대부분 경기에서는 3등까지만 인정한다는 것 알지? 흔히 금은동이라고 하잖아. 저기 시상대를 한 번 봐. 단이 세 개만 있는데, 1-2-3등은 저 단 위에 올라서지만, 4-5-6등은 맨바닥에 선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4등이나 6등은 별 차이가 없어도, 3등과 4등은 차이가 큰 거지. 우리 택호가 레슬링 시작한지 겨우 한 달만에 큰 대회에 나와서 4등 메달을 따는 것도 물론 대단한데, 이젠 이기든 지든 마지막 경기니까 최선을 다해 이왕이면 3등 진짜 메달 한 번 노려보자. 져도 4등 메달은 받게 되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말고. 오케이?”
마지막 경기. 이번에도 상대가 먼저 공격을 시도했는데 네가 잘 피하며 걔 위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바로 한판승까지 시도하더구나. ‘허어, 내 아들이 동메달까지 따는군.’ 2회전에선 상대방이 코피를 흘리는 바람에 경기가 잠시 중단되는 동안 옛 생각까지 하는 등 여유가 생기더라. 어린 시절 친구들끼리 싸우면 누가 많이 때리고 맞든지 코피 터진 쪽이 지는 걸로 간주했던 기억이 떠오른 거야. 그러나 그 친구가 더 힘을 내 3회전까지 엎치락뒤치락 반전을 거듭하게 되자 안절부절못했지만. 결국 판정승. 심판이 네 팔을 치켜들 때 아빠 눈엔 이미 눈물이 고였다. ‘내 아들이 기어코 해냈구나. 장하다, 택호!’ 더구나 너희 학교 친구들 20여 명 중에서 6등까지 올라간 애는 4명뿐인데 그 가운데서도 네가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으니 학교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지. 그런데 아빠 욕심이 한이 없나봐. 어제 첫 경기에서 지고 다섯 번을 연속 이겨 3등을 차지했는데, 첫 경기에서만 지지 않았더라면 오늘 1-2등을 다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쪼끔이나마 남는 걸 보니 말이야. 허허.
택호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다시 강조했지.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네가 직접 겪었듯이 도중에 포기하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3등까지 했어. 그에 앞서 6등까지 표창을 준다는 걸 알고 너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이루었다. 그리고 4등까지 메달을 받는다면서 메달을 목표로 세워 또 이루었고. 나아가 시상대 단 위에 서서 진짜 메달을 얻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결국 해냈어. 물론 힘과 기술 즉 재능도 중요하지만, 네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과 정신 즉 의지와 각오가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 “생각은 행동을 만들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며, 습관은 운명을 만든다.” 네가 어떻게 마음먹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그 말과 행동이 반복되면 습관이 되며, 그 습관은 네 인생을 결정짓게 된다는 뜻이다. 공부도 마찬가지야. 너와 우호에게 이미 여러 차례 얘기했고 내 학생들에게도 항상 강조하듯이, 아빠는 공부를 잘 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것을 훨씬 중시한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능력에 달린 문제야. 재주나 소질이 부족하면 어쩔 수 없어. 그러나 열심히 하고 안 하는 것은 의지와 관련된 문제지. 마음먹고 생각하기에 달렸단 말이다. 모든 사람이 공부를 잘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든지 열심히 할 수는 있어. 따라서 아빠는 너희에게 공부 잘하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열심히 하라고 권할 뿐.
아빠가 너에게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능이 부족해도 의지와 각오가 충분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란 말이다. 아빠가 빨리 달리지는 못해. 능력과 소질이 모자라니까. 그러나 오래 달릴 수는 있어. 의지와 각오가 충분하니까. 빨리 달리든 오래 달리든 아빠가 어릴 때부터 달리기에 소질을 가졌던 것은 아니야. 아빠가 중학교 들어갈 때는 입학시험을 쳐야 했는데, 부산에서 가장 좋다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때였어. 필기시험 380점 체력시험 20점으로 400점 만점이었는데 아빠는 397점으로 합격했지. 필기시험 190문제 가운데 하나를 틀려 378점, 체력시험 가운데 100m 달리기에서 1점을 까먹어 19점. 그만큼 빨리 달리는데 소질이 없었다는 소리야. 점수 얘기가 나온 김에 참고로 말하자면, 아빠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부를 잘했지. 초등학생 때부터 주산선수가 되어 일찍부터 돈벌려고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가는 바람에 농땡이를 피우다 공부와 좀 멀어져버렸지만 말이야. 오래 달리기에도 소질이 없었다. 군대에 있을 때 얘긴데, 이등병 시절부터 소위 끗발이 아주 센 인사행정병이 되어 사무실에서만 일하며 점호도 전혀 받지 않고 밤에 보초도 서지 않으며 훈련도 거의 받지 않았어. 그러다 유격 훈련에 호기심이 생겨 한 번 따라가 완전군장 구보를 하는데 20-30분도 되지 않아 힘들어지는 거야. 한 동료는 내 배낭을 짊어지고, 다른 동료는 내 총을 메고, 또 다른 동료는 내 철모까지 들어주는 바람에, 난 맨몸으로 달리는데도 쓰러질 것 같아 곧 기권하고 말았어. 인생에서 가장 건장하고 활기 왕성한 20대 초반에, 그것도 군대에서, 5km (약 3.1마일)도 달리지 못하고 낙오자가 될 만큼 아빠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허약했던 거지. 그런 아빠가 나이 50을 넘겨 약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42km (약 26마일)를 뛰겠다는 거다. 아빠의 의지를 확인하면서 목표를 이루는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너도 잘 알다시피 아빠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작년 겨울방학 때로 1년 전이야. 온종일 책읽거나 글쓰는 게 일과였으니 서너 시간마다 아파트 주위를 20-30분씩 걷곤 했지. 그러다 너와 우호가 가끔 걷기 기계 (treadmill) 위에서 뛰는 걸 보고 아빠도 한 번 따라 해봤잖아. 좋더라고. 20-30분 걸으면 전혀 땀이 나지 않는데 10분 정도만 뛰어도 땀이 흠뻑 흐르니까. 일주일 동안 매일 1마일씩 뛰니 익숙해졌고, 욕심이 생겨 조금씩 늘리다보니 두 달 뒤엔 5마일까지 달릴 수 있게 되더구나.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 마라톤대회 10km (약 6.3마일)에 도전해본 거야. 52분에 완주. 50대의 왕초보치고는 잘 달렸다고 하더라. 나아가 두어 달 뒤엔 하프코스 21km (약 13마일)를 1시간 50분에 달렸다. 연습을 어떻게 했냐고? 학교 강의 말고도 여기저기 강연 다니고 글 쓰느라 바쁜데 일부러 시간 내고 돈 들여 체육관 (health club, fitness center)에 갈 필요 있겠니. 집에서 학교 연구실까지 6km (약 3.8마일)쯤 되는데 출퇴근을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한 거다. 좀 여유가 있을 때는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크게 바쁘거나 날씨가 나쁘면 차를 타야 했지만. 또한 어디서든지 20-30분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면 차를 타지 않고 걷는 것을 생활 방침으로 삼아 왔지. 아빠가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하거나 외부에 강연하러 갈 때도 배낭을 짊어지고 가는 이유다. 걷거나 뛰면 건강을 위해 좋고, 교통비 절약해서 좋고, 환경 오염시키지 않아 좋고.... 좋은 점이 너무 많으니 너도 참고하기 바란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훈련을 해서 5km도 달리지 못했던 20대 군인이 이젠 21km를 거뜬히 달리고 곧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는 50대 교수로 변신한 거다. 30년 동안 아빠 체격은 거의 변하지 않았어. 키 172-173cm에 체중 62-63kg. 그러나 체력은 이렇게 엄청 변했다. 오히려 늙어가면서 체력이 훨씬 좋아진 거지. 무엇 때문이겠니? 바로 생각 또는 사고방식 때문이야. 생각이 행동을 바꾸고, 그게 습관으로 굳어져 일상생활이 된 거지. 아빠가 강조하는 의지와 네가 말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재주와 소질도 어떻게 생각하고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노력과 훈련을 통해 조금씩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니?
택호야, 앞에서 차 얘기가 나온 김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네가 언젠가 엄마 차가 낡고 네 차가 없어서 쪽팔린다는 말을 했을 때 아빠는 무척 실망했다. 차가 한 대밖에 없어서 엄마와 너희가 고생 많이 한다는 것 잘 알지. 네가 방학 때 힘들게 레슬링 훈련을 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와야 했을 때 아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지 아니? 학교나 교회에 차 몰고 오는 친구들이 많으니까 부러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차가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과 차가 없다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마침 너 혼자 운전할 수 있게 된 것을 축하할 겸 엄마와 너희의 고생을 덜어주기 위해 아빠가 무리를 해서라도 너에게 차를 사주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쪽팔린다’는 말에 그 생각을 오히려 접었어. 차가 없으니 불편해서 필요하다면 기꺼이 사줄 수 있겠지만, 남들이 무시할까봐 필요로 한다면 사주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줏대가 없는 것을 지지하거나 허영심을 부추기는 것 같아서. 뚜렷한 주관이나 신념을 갖고 자기중심을 똑바로 세우고 있으면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아도 되잖아. 체면을 몹시 중시하는 한국에서도 아빠는 10년 된 차를 몰고 다니거나 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을 손톱만큼이라도 쪽팔리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신분이나 처지에 걸맞지 않게 거들먹거리며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아빠에게 경멸의 대상이지 부러움의 대상은 결코 아니고. 돌아가신 큰아빠한테서 물려받은 똥차나 허름한 옷차림 등에 대해 얕보거나 비웃는 사람이 더러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네가 즐겨 쓰는 말대로 “I don't care”다. 아빠는 속이 비어있는 사람일수록 겉치장에 신경 쓰기 마련이라고 생각하거든. 한편, 아빠는 남들보다 좋은 학교 못 다닌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있고, 남들보다 아는 것이 부족해 부끄럽게 생각한 적은 많다. 물론 아빠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 또는 가치관이 건전하고 바람직하다고만 주장할 수 없고, 아빠의 가치관을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지. 그러나 네가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다 와놓고도 <삼국지>조차 읽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 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면서, 엄마 차가 너무 낡았다거나 네 차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쪽팔려하는 것을 보고 아빠는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더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얘기가 좀 빗나갔는데 마라톤에 대해 한 마디 더 할게. 네가 지역 토너먼트에서 3등을 하고 그 다음 주에 열릴 더 큰 대회를 준비할 때 아빠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공원에 나가 30km (약 19마일) 달리기에 도전했다. 21km까지는 한국에서 두어 차례 뛰어보았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그게 지나니까 상당히 힘들어지더라. 종아리가 풀어지고, 배가 아파지고, 숨이 가빠지고.... 고통스러워지는 거야. 그만두고 싶은 걸 버텼다. 힘들다며 포기하고 싶다는 자식에게는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다그쳐놓고, 아비는 힘들다고 쉽게 포기하는 건 자신이나 아들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하면서. 더구나 넌 굶어가면서 싸웠지만 아빠는 적당히 먹은 뒤에 뛰는 건데. 운동화끈이 풀어졌지만 신발이 벗겨질 정도는 아니어서 그냥 뛰었다. 끈을 고쳐 매기 위해 1분이라도 멈추는 것은 마치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간주해서. 나중에 속도는 크게 낮추었을망정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렸더니 3시간 정도 걸리더구나. 조금만 더 연습하면 4월 1일 4시간 안팎에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대해 엄마는 거세게 반대하는구나. 친척들도 모두 걱정하고. 8년 전 여러모로 무리하다 얼굴이 돌아가는 바람에 지금도 왼쪽 눈이 찌그러져 있는데 기력이 약한 터에 또 돌아가려고 그러느냐는 거야. 사실 아빠 몸이 약한 것 같기는 해. 아빠 맥을 짚어본 의사들은 한결같이 아빠에게 기력이 너무 약한데 소위 깡다구로 버틴다고 말하니까. 그렇지만 재주가 부족하면 의지로 보충하고 기력이 약하면 깡다구로라도 버텨야지, 재주와 기력이 부족한 터에 의지와 깡다구마저 없으면 험한 세상 어떻게 살아가겠니. 물론 아빠가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하게 도전하지는 않는다. 이루지 못할 환상적 목표라면 아예 세우지도 않고. 만에 하나, 설사 얼굴 다른 쪽마저 돌아갈지라도 두렵진 않아. 앞으로 오른쪽 눈도 찌그러지면 오히려 얼굴의 균형이 잡힐 수도 있잖아. 그런데 엄마는 매사에 참 헌신적인데 너무 소심한 게 탈이야. 엄마처럼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사람 찾기 쉽지 않을 거야. 딱 한 가지만 얘기하마. 엄마가 새벽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뭔 줄 아니? 바로 너와 우호를 위한 기도다. 밤에 자기 전에도 마찬가지고. 너희를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너희를 위한 기도로 하루를 끝낸다는 뜻이야. 따라서 너희가 앞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엄마에 대한 은혜를 잊어서는 절대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엄마는 너무 심약해. 네가 무슨 운동을 하든 지켜보지도 못할 정도로. 이번에도 네가 레슬링 하는 동안 네가 다치지 않도록 열심히 기도만 했지 응원은커녕 아빠가 찍어온 비디오조차 보지 못하잖아. 마찬가지로 엄마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나 모험을 될수록 피하며 안전만 강조한 채 너희를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려고 하는데 아빠는 반대한다. 물론 엄마의 소심한 안전제일주의가 바람직할 때도 있고 아빠의 무모한 듯한 도전 정신이 필요할 때도 있을 거야. 너도 두 달 있으면 만 18살. 웬만한 일은 너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성인이니, 상황에 따라 엄마의 태도를 따르기도 하고 아빠의 행동을 본받기도 하면서 지혜롭게 생활하기 바란다.
택호야, 가장 중요한 얘기는 아직 하지 않았는데 글이 좀 길어졌구나. 네가 30개 학교의 대표 1명씩만 참가한 2월 2-3일 대회에서 1승 2패의 성적으로 일찌감치 탈락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아빠가 물었지. 이번 레슬링 시즌을 통해 가장 크게 배운 점이 무엇이냐고. 주 챔피언이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했다고 대답하더구나. 그래, 지난 대회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우승했던 아이 역시 일찌감치 지는 등 강자 위에 더 강자가 있다는 것을 생생히 보았지. 나아가 미국에 50개 주가 있으니 국가 대표는 얼마나 강하겠고, 미국을 포함한 약 200개 나라 선수들 가운데 뽑히는 세계 챔피언은 얼마나 더 막강하겠어. 그러나 아빠는 네가 이번 시즌을 통해 목표를 세우고 의지를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고 느끼기를 기대했다. 네가 지적했듯이 동료들 가운데 잭이나 카일을 봐라. 아무리 힘이 세면 뭐하겠어. 경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기든 지든 집에 빨리 가고 싶다거나 곧 경기가 열리는데도 벤치에 누워 잠드는 정신 상태로 어떻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야. 너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굳센 의지와 자세를 지니기 바란다.
그런데 이제 레슬링은 그만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폭력적이야. 첫째, 경기를 앞두고 너희들이 준비운동을 하면서 머리를 바닥에 대고 뒷짐을 진 채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섬뜩해지더라. 이른바 ‘원산폭격’으로 아빠가 군대 훈련소에서 겪었던 가장 비인간적인 기합 (얼차려) 가운데 하나였거든. 참고로, 북한 강원도 금강산 위쪽에 원산이라는 유명한 항구도시가 있는데 북한에서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이야. 그래서 한국전쟁 중에 미군들이 원산항을 집중 폭격했는데, 땅에 머리를 처박고 뒷짐을 지게 하는 그 비인간적인 체벌이 미군 전투기가 원산을 폭격하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그런 이름이 붙여진 거란다. 둘째, 경기를 하면 상대를 넘어뜨리고 짓누르면서 목을 조르기도 하고 몸을 비틀어야 하는 등 상대방을 못살게 굴어야 이기게 되니 그 얼마나 잔인한 짓거리냐. 대부분의 구기에서는 상대의 몸을 조금도 건드리지 않은 채 공만 세게 치면 되고, 수영이나 육상 같은 기록경기에서는 스스로의 기록만 향상시키면 이길 수 있는데 말이야. 셋째,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의 말도 귀에 너무 거슬리더라. 더구나 엄마들이 응원하면서 가장 많이 지르는 소리가 “push”와 “squeeze”였어. 짓누르고 쥐어짜라는 얘기인데, 얼굴은 예쁘장한 백인 여성들이 심성은 어찌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지 정나미가 딱 떨어지더구나. 넷째, 네가 “전형적 미국인 (typical American)”이라고 표현했던 코치가 경기를 앞두고 상대의 목을 부러뜨려버리라고 말했다면서? 물론 강인하게 싸워 이기라는 뜻이었겠지만 소름이 쫙 끼친다. 무슨 운동에서든, 특히 학생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싸우되 야비하게 이기는 것보다 깨끗하게 지는 게 바람직하고 훌륭하지 않겠니. 다섯째, 무엇보다 다치기 쉬워. 운동이란 심신을 단련하기 위한 것인데 레슬링은 오히려 몸을 망치기 쉬운 위험한 운동 같다는 뜻이다. 네가 지금 온몸에 타박상을 입고 있듯이 말이야. 네가 레슬링을 하면서 다칠까봐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할머니와 이모들에게까지 전화하여 네가 다치지 않고 경기를 끝낼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지. 또한 네가 어릴 때부터 영화배우 같다느니 뭐니 하며 너무 잘생겼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식상할 정도로 많이 들어왔는데 그렇게 잘생긴 얼굴에 흉터라도 남으면 비극이잖아. 여섯째, 엄마가 돌보는 할머니 말이야 수십 년 동안 교사를 하시던 분인데, 과격한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대개 성미가 거칠고 마약에 빠지기 쉽다며 아들을 왜 그토록 위험하게 방치하느냐고 안달을 부리신다는 거야. 물론 엄마와 아빠는 큰아들이 언제 어떤 환경에서든 마약 비슷한 것 근처에도 가지 않을 것이라고 100% 확신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사랑하는 큰아들 택호야,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부탁하고 끝낼게. 네가 레슬링하면서 보여준 의지와 정신력을 앞으로는 공부와 책읽기에도 조금 발휘해주기 바란다. 이미 앞에서 얘기했듯 공부를 잘하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2월 7일 저녁 학교에서 네가 다음 학기에 심리학, 경제학, 통계학을 포함한 AP 과목을 다섯 개나 신청하겠다고 할 때 아빠가 힘들지 않겠느냐며 걱정하자 네가 하는 말이 너무 멋있더구나. “한 학기 죽으면 돼요.” 야! 그 말에 아빠가 그냥 꺼벅 죽을 정도였다. 그래, 죽을 각오를 하면 운동이든 공부든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니. 한자어에 ‘생즉사 사즉생’이란 말이 있다. 살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죽고, 죽기를 각오하면 결국 살아난다는 뜻이지. 몸도 튼튼하고 맘도 튼튼하니 한 학기 동안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봐라. 아빠가 얼마든지 응원해주마.
이와 아울러 중요한 것은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책을 읽는 일이다. 네가 하와이에서 4-5살 때였지. 아빠가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였으니 거의 1년 동안 매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는데 너도 밤늦게까지 잠을 자려 하지 않더구나. 빨리 자라는 말에 네가 하는 말이 “아빠는 빨리 안 자면서 왜 나만 빨리 자라고 해?”였어. “아빠는 공부하니까 늦게 자지”라는 말에는 “그럼 나도 공부할 거야”라고 했고. 그러면서 소파에 앉아 책을 거꾸로 붙잡더구나. 넌 그 때 글을 읽지 못했거든. 하기야 경주에서 유치원 들어갈 때까지 글을 배우지 않았으니 옆집 동갑내기 여자아이가 너에게 연애편지를 써왔는데도 읽지 못했던 재미있는 추억을 간직하고 있지. 어쨌든 하와이에서의 네 모습을 지켜보며 아빠는 너무 흐뭇했고 하는 일에 대해 크게 보람을 느꼈어. ‘내가 책만 붙들고 있으니 아이들도 책을 장난감 삼아 놀며 책읽는 시늉을 내는구나. 맞아,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 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조금도 필요 없어. 내가 항상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면 저절로 따라할 테니까.’ 정말이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너와 우호가 경쟁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 엄마가 책방에 가서 동화책이든 위인전이든 사오는 대로 다 읽었어. 책 한 권 끝낼 때마다 엄마가 100원씩인가 상금을 내건 탓도 있었겠지만.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책과 마치 원수라도 진 것처럼 멀리 하기 시작하더구나. 아빠는 언제나 너희 앞에서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도. 너희가 ‘아빠는 어른이고 교수인데도 저렇게 책을 열심히 보니 학생인 우리는 더 열심히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기를 기대했었지만, 너희는 식탁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책만 붙잡고 있는 아빠에게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것 같다고 엄마가 말하기에, 두어 해 전 겨울방학 때는 미국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일주일 동안 비디오만 죽치고 본 적도 있었지. TV 뉴스는 가끔 보더라도 연속극이나 오락물은 일체 보지 않는 아빠가 무슨 일로 연속극 비디오를 보는지 엄마에게 물었다면서? 너희가 책을 가까이 하도록 이끌기 위해 아빠가 ‘생쑈’를 다 떨어보았던 거다.
택호야, 어쨌든 공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매일 딱 30분씩만이라도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자. 이미 몇 차례 얘기한 것이지만 거듭해서 아마 마지막으로 간곡하게 부탁한다. 교과서도 좋고 교양서적도 좋아. 소설책도 좋고 만화책도 좋고. 영어책도 좋고 한글책도 좋다. 아무 책이나 읽으라는 말이야. 하루 딱 30분도 못 읽겠니? 그 대신 매일!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주중이든 주말이든, 학기 중이든 방학 중이든, 집에 있든 멀리 여행 중이든, 시험이 시작되든 끝나든, 심지어 병원에 누워있게 되더라도. 30분을 한꺼번에 내기 어려우면 차안에서 10분, 점심 빨리 먹고 10분, 자기 전에 10분 등으로 틈틈이 쪼개도 돼. 다시 말해, 어디서든 하루도 예외 없이 매일 먹고 싸고 자는 것처럼 책읽기를 생활과 습관으로 만들라는 뜻이다. 아무리 일이 많고 바쁘더라도 하루 24시간 또는 1440분 가운데 단 30분을 책읽기에 쓰지 못할 일이 있겠어? 물론 하루도 빼지 않고 지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공부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책 읽고 글쓰기를 취미로 삼는 아빠도 멀리 여행을 할 때는 책읽기를 전혀 하지 못할 때가 더러 있었어. 그러나 아빠가 너에게 부탁한 이상 앞으로는 언제 어디서든 눈을 감을 때까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킬 거야. 아들에게 부탁해놓고 아빠가 지키지 못하면 배신이니까. 앞으로 네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선생이 되든 사업가가 되든, 영화배우가 되든 운동선수가 되든, 이 습관은 평생 지켜주기 바란다. 말을 잘하는 것도 글을 잘쓰는 것도 돈을 잘 버는 것도 연기를 잘 하는 것도 모두 책읽기를 통해 이룰 수 있거든. 아무리 머리가 나쁘고 배움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30분 이상 책을 읽게 되면 많은 지혜를 얻으며 무슨 박사 못지않게 유식해질 테니까. 이것은 이 글을 읽는 날부터 바로 시작해다오. 무슨 일이든 내일부터, 다음주부터, 다음달부터, 또는 내년부터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기 쉬운데, 지금 하기 싫은 게 다음엔 하기 좋고, 오늘 하기 어려운 게 내일은 하기 쉬울까? 오늘부터 당장 시작하라는 뜻이다.
2007년 2월 10일, 큰아들 레슬러 택호를 몹시 사랑하는 마라토너 아빠가.
첨언 (덧붙이는 말):
1. 이 글은 네가 레슬링 경기를 모두 마친 2월 3일 다음날부터 하루 3-4시간씩 3-4일에 걸쳐 쓰고 오늘까지 조금씩 다듬었다. 너에게 유언을 남기는 심정으로 썼다. 앞으로 진짜 유언에도 물질과 관련된 얘기는 없을 거야. 약 5년 전 엄마에게 쓴 유서를 통해 밝혔듯이, 너와 우호에게 물려줄 재산은 거의 없다. 앞으로 재산이 좀 생긴다 할지라도 그걸 그대로 물려줄 생각은 하지 않고 있고. 그 대신 이 글처럼 너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추는 데는 온 힘과 정성을 기울여 도와주겠다. 참고로, 5년 전 엄마에게 쓴 유서에서 아빠의 시신 처리 등 몇 가지 대목에 관해서는 엄마가 부정적인 생각을 드러내기에, 엄마가 아빠 부탁을 무시할 수 없도록 <남이랑북이랑> 소식지와 아빠 홈페이지에도 공개하고 유명 시사주간지에 싣기도 했는데, 이 글도 엄마와 우호 그리고 널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친척들에게까지 공개하고 싶구나. 물론 네가 반대한다면 그러지 않겠지만.
2. 아빠는 학술논문이든 에세이든 쉽게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고,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 글에는 고의로 어려운 단어도 더러 사용했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한국인으로 살아가려면 이 정도의 단어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쓸 수도 있어야 하기에 일부러 그랬다. 서간문 (편지) 형식이기에 구어체 (회화체)를 많이 썼지만, 사투리나 틀린 말이 아니라 모두 사전에 나오는 표준어다. 아빠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맞춤법 도사’가 되어 TV에 출연할 정도였는데, 그 뒤 맞춤법이 몇 차례 바뀌어 틀린 곳이 더러 있을지 모르겠다만 사전을 찾아가며 꽤 신경을 썼으니 이 글을 바탕으로 글쓰기 훈련을 해도 좋을 거야. 특히 이 글에는 네가 대학 지원 에세이 소재로 삼을 수 있는 대목이 무궁무진할 테니 꼼꼼히 읽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