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1편 여명편은 거의 막을 내리는 군요.
이전 편에 답글로 남기어지만 고구려에 평원태왕시절 연호로 추정되는 영강을 쓰기로 하였습니다. 고구려는 제후국(백제 신라, 거란, 말갈, 숙신)을 거느렸고 연호를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도 올렸습니다. 이런 것을 꼭 표현해야겠는데 사실 연호는 알려진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이 있어서 머뭇거렸지만 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백산(백두산)도 마다산으로 고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동명성왕도 고심 끝에 다 추모성왕으로 고치기로 했습니다. 전편도 다 손보았습니다.
9편은 무려 18장이더군요. 전편은 10장 정도였는데 장수 조절이 잘 안되었습니다.
하여간 달리겠습니다.
지난 줄거리
돌궐과의 전란을 앞둔 영강 2년 병술년 초봄
어머니의 자결로 슬픔에 빠진 명화공주는 평민출신 장교 온달을 만나면서 마음에 안정을 되찾는다. 온달은 아가씨(명화공주)의 눈물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태왕은 허약했던 왕실을 바로 세우면서 정국운영에 자신감을 갖고 자식들의 문제에 대한 귀족간섭을 피하기위해서 태자와 명화공주의 혼사를 서두른다.
그리고 북방에 요해(서요하강 상류 거란족 거주지역)에서는 돌궐의 흰늑대 이계찰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태학
“아주 규칙적이시네요 걱정하실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시녀들은 명화공주님의 초경 후에 첫 생리가 달(月)의 주기에 딱 맞자 별로 고생 안하실 것이라며 공주님께 말을 했다. 초경 후에 다음 생리는 매우 불규칙해서 일 년 뒤에 날수도 있다.
저번에는 태학에 있을 때 초경이 갑자기 찾아 왔는데 그녀는 매우 당황해서 울어버렸는데 시녀들이 어머니가 아니라 몸의 변화 때문에 우는 것으로 바로 눈치채고 그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사실 명화공주는 어린 시절부터 시녀들로부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막상 시작하니 덜꺽 겁부터 났던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안정이 되어서 두 번째까지 아자 잘 치렀지만.
‘나도 여자인가?’
명화공주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니 어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어머니라면 반드시 크게 기뻐해주셨을 것인데 ..............’
초경 때도 있던 두 시녀들은 축하드린다고 웃으며 말해주고 정월때 궁궐에 들어갔을 때도 자신과 가까웠던 시녀들이 모두 모여 작은 선물도 바쳤지만 어머니의 칭찬이 없으니 서글펐다.
그런데 울음소리만 들으면 슬퍼진다는 그 사람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그 때 눈앞에 얄미운 그 사람인 온달이 수 십권 되는 책을 양손에 들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어휴 저 사람.’
궁궐에서 온 후 공주 자신이 이제는 여자임을 고민하는 때에 온달은 낮에는 무예달련을 하고 저녁쯤 되면 장문고를 뒤지면서 책들을 읽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가 읽는 책을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저자가 부여태후, 명림답부, 창조리이셨는데 이 분들은 모두 선대왕을 몰아낸 혁명가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실 그런 책들은 어느 시대나 정치적 파급력이 많아서 어느 정도 학문에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 읽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온달은 학문이 너무 약했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고 그녀는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여태후는 모본왕을 몰아내 비류나부 해씨왕조를 무너뜨리고 계루부 고씨왕조를 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고 연나부출신 명립답부는 차대왕의 왕권강화로 인한 정국혼란을 이유로 제거하고 신대왕을 옹립하였다. 그리고 국상 창조리는 귀족들을 동원하여 폭군 봉상태왕을 제거하고 평민군주인 미천태왕을 옹립하였다.>
“저기!”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무표정으로 온달은 휙 돌아서
“부르셨습니까?”
하고는 아가씨, 의자 앞에 앉아있는 공주님 앞에 섰다.
‘아.’
아가씨는 자신의 앞에 온달이라는 자가 큰 키로 떡하니 서자 갑자기 생각이 없어지고 말문에 숨까지 막혔다.
‘아이! 왜 이렇게 가까이 온 거야?’
그렇게 생각해도 아가씨는 온달을 뒤로 물리거나 자신이 물러나지 않았고 그냥 그를 바라보았다.
탄탄한 얼굴에 큰 키, 무예에 달련된 몸,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사람을 안심시키는 분위기.
‘이 자는 남자인가?’
아가씨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의 나이를 생각하니 성인이 된지 5년이 되었고 반드시 여러 명의 여자를 겪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여자들은 나보다 나이도 많고 여성스러울 것인데 비해 공주 자신은 키만 좀 켰지 미소년같이 중성적인 얼굴에 몸에는 여성다움은 한 구석도 찾을 수없는 애 아닌가?
‘무엇보다 나이가 20살이니 결혼은 당연히 했겠지.’
그러자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 묘한 아픔이 있었다. 아가씨는 왠지 그 남자가 자기 것인 마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녁이 되었구나! 배고프지 않느냐?”
공주 자신이 애당초 생각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아 조금 그렇습니다.”
온달이 아가씨에게 대답하였다.
“그럼 같이 저녁이라도 먹겠느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그 말을 들은 온달은 당황하면서 아가씨의 어린 얼굴을 보았다. 아가씨도 자신이 왜 이런 엉뚱한 말을 하는지 몰랐다. 그녀는 이제는 그 남자하고 저녁 먹는 시간도 같이 있고 싶었다. 사실 그녀는 밥을 평생 외롭게 혼자 먹어왔었다. 옛날에는 폐비 주씨인 어머니께서 계신 곳으로 살면서 오냐오냐 컸지만 식사예절이나 공부같은 것은 어머니의 뜻대로 자신의 거처에서 했다. 그런데 크면 클수록 그녀는 밥을 혼자 먹으면서 너무 심심했었다. 원래 공주님은 말이 좀 많은 편인데 밥알하고 이야기는 할 수 없으니.
“나는 혼자 먹기 싫다.”
아가씨는 마음속에 감정대로 말했다.
“.....................”
그 말은 온달은 이런 건 사양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다짜고짜 아가씨가 손잡고 끌고 가니 그냥 먹었다.
‘그래도 차려준 밥인데 마다할 순 없지.’
그날부터 아가씨가 태학을 떠나기 전까지 온달은 아가씨랑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온달과 아가씨가 밥을 같이 먹게 된지 보름 후인 2월 초순에
부여성에서 살던 고흘 가족은 태왕의 명을 받고 빠른 수로를 이용해서 압록수과 서해를 거쳐서 보름 만에 평양으로 올라왔다. 그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중리위두태형(中裏位頭大兄) 고필장군은 어느 사가에서 머물고 있는 고흘부부에게 찾아와 고흘의 딸인 세 자매 중에 태왕폐하와 왕실종친들이 태자비를 간택할 것이라는 말은 하였다.
돌궐군과 15년간 수많은 전쟁터를 누빈 용맹한 고흘장군도 그 말을 듣고서는 당황해서 손에 들고 있는 술잔을 떨어드렸다. 그의 반려자인 대씨부인도 놀라는 마찬가지였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그녀의 얼굴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열흘 뒤 부부는 고민 끝에 결국 태왕폐하의 명을 따르기로 하고 세 딸들에게 솔직히 모든 것을 말하였다. 각오가 다 되었다는 딸들의 말을 듣고 고흘가족은 안학궁에 들어갔다.
안학궁 내에 화려한 비단으로 장식된 접빈실내, 왕실에 내놓으라는 종친들이 모두 모였다.
“하하하하하.”
고흘은 왕실종친들이 축하의 인사를 하자 별로 좋은 기색을 안 보였다.
“아직 뚜렷하게 결정된 것도 없는데 이런 말씀은 .......”
고흘은 솔직히 일이 이렇게 되자 가슴이 아팠다. 그는 가급적이면 딸들 정치적인 것과 멀리 떨어진 곳에 시집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태자비라니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고필은 그런 고흘의 모습을 보고 잠시 같이 이야기하자고 하였다.
“참 왜 그러신가?”
“나는 나라에 바친 아들들과 달리 딸들은 행복하게 하고 싶었네.”
고흘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면서 말을 했다.
“태자전하를 위한 일이나!”
그 말을 들은 고흘은 고개를 들어 고필의 또렷한 눈을 보았다.
“태왕폐하께서는 왕통을 태자전하에게 꼭 이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시네.”
그 말을 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흘은 작은 키의 고필을 내려다보았다. 고필은 태왕폐하께서 생각하시는 자식들에 대한 태도와 태자전하와 명화공주의 혼사에 대한 이야기를 다 했다. 고필의 말을 다 들은 고흘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아무리 증오하는 주씨가문의 피가 흐른다고 할지라도 자식을 이렇게 생각하시다니.’
고흘은 태왕폐하를 만나야겠다고 하자 고필은 그의 팔을 잡고 간곡하게 만류하였다.
“만약에 자네가 이번 혼사를 무례하게 거절한다면 태자비는 최악에 여식으로 결정될 수도 있네. 그래도 자네 딸들은 총명하니 태자전하를 모시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야!”
고흘의 얼굴은 태왕폐하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했다.
“일단 자네 딸중에 한 여식이 태자비가 되고 명화공주님에 혼사는 최대한 미루어서 훌륭한 청년으로 바꾸면 되지 않는가?”
고필장군은 고흘장군의 양 손을 잡고 그에게 일단 참을 것을 말하였다.
태자비 후보를 왕실종친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동안 태왕과 고흘, 그리고 고필장군은 태자비문제와 향후일정, 왕실 세력 간의 권력분배를 결정하기 위해서 비밀리에 어느 전각에서 회동을 하였다. 태왕 양성과 고흘 , 고필은 사실상 내부 왕실의 핵심인물들이었기 때문에 이 회동은 주씨가문 숙청이후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왕실의 향후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그렇다면 당분간은 돌궐과의 전쟁을 앞둔 군부는 고흘장군이 왕실문제와 국내외 정보수집은 고필장군이 주도적으로 맞아서 힘을 써 주어주게나.”
탁자위에 차를 들면서하는 태왕 양성의 말에 왕실원로인 고흘과 고필은 반발을 하지 않았다. 여기서 태왕은 전격적으로 군통수권을 맡고 내정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막리지로 고흘을 발탁했다는 뜻까지 말하였다.
“불충한 소신이 그런 일까지 맡을 수는 없사옵니다.”
“내 결정이니 따르기만 하면 된다!”
흰 수염이 고풍스러운 고흘은 태왕의 말에 바로 반박을 했다.
“태왕폐하 태자비 간택이 끝나면 저는 모든 관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태왕과 고필은 고흘의 말에 놀라했다.
“무슨 말이냐?”
“선조때부터 태자의 장인이 권력에 가까울수록 나라에 좋은 일이 난 예가 없사옵니다.”
외척을 경계해야 된다는 고흘의 말은 정론이었다. 하지만 가르다란 눈을 찌푸리며 태왕은 난감해하였다.
‘짐이 보기에는 고흘 자네는 짐의 장인이어도 그런 사심을 품을 리가 없네.’
하여간 고흘은 계속 거절의 뜻을 밝히자 태왕은 일어서서 왕명을 내려버렸다.
여기까지 오자 고흘도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신다면 자신이 하겠다는 말을 남기었다.
고필은 순간 고흘이 무슨 다른 마음을 품고 있나 의심하였다. 부탁이라는 것은 조건이라는 것 아닌가? 태왕폐하에게 조건을 내세우다니.
하지만 태왕은 부탁을 말하라고 하였다. 고흘의 부탁은 딴마음은 아니지만 사실 고필을 좀 난처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명화공주님의 혼사는 미루어주십시오.”
순간 태왕은 고필을 쳐다보았다. 고필은 고흘이 결국 명화공주의 혼사에 대한 말을 했다는 것에 실망했으나 따지고 보면 자신이 원한 일이기도 했다.
[명화공주님의 미래를 생각해도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야 되지 않은가?]
하지만 고필은 고흘의 이어지는 수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치하고 담을 쌓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명화공주의 혼사를 이렇게 정치적으로 해결하다니.’
고흘의 설득이란.
“지금 왕실은 강대한 힘을 과시하지만…….”
고개를 돌리며 고흘은 잠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태왕은 순간 눈치를 체고
“어떤 말이어도 좋다 말하라,”
고흘은 침통한 표정을 지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죄송하옵니다. 이 나라의 실상은 국내성과 평양출신 대귀족들 대로회의가 쥐고 있습니다.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명화공주님의 혼처를 신중하게 생각을 해야 됩니다.”
순간 태왕은 자신의 딸을 이용한 결혼동맹을 생각하였고 구지 명화공주의 혼처를 왕실로 잡을 필요가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 들었다. 고흘도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명화공주님에게는 이것이 더욱 현명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고흘자네의 말은 귀족들 중에서 왕실에 득이 될 가문에 시집을 보내라.”
“소신이 보기에는 왕실에 공을 세우고 왕실의 성을 받은 공신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내부 왕실에서는 공을 세운 귀족가문들에게 고씨성을 하사하고 왕실 대우를 하는 대신 왕실에 절대 충성하는 가문이 있기는 했다. 다른 4부 귀족가문도 고씨성을 하사받은 예도 많이 있었다. 물론 외척 주씨가문에 친왕실 가문들은 거의 박살이 났지만 아직 전존해 있는 몇 가문들이 있었다.
태왕 양성은 순간 내부 내에 왕족이 아닌 가문도 아니 다른부에 귀족가문들도 명화공주의 혼처로 괜찮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흘의 청에는 태왕은 그렇게 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명화공주의 혼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백지 상태로 돌아간 것은 분명해졌다. 이렇게 되자 고흘은 막리지 선출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태왕에게 아뢰올렸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자 세 사람은 태자비 간택을 위해서 자리를 옮기었다.
태왕과 종친들은 세 명의 딸을 시험한 뒤에 태자비로 고흘의 장녀인 고미한로 간택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태자비도 아까 전 태왕과 고흘, 고필 회동때 장녀로 낙점을 했기 때문에 왕실종친들은 고개만 끄떡인 셈이었다. 이 자리에서 종친들은 태자와의 혼례는 이번 여름에 길일을 택해 올리기로 하였지만 그것은 결국 이루어지 않았다. 그날 충격적인 소식이 안학궁에 날아들었던 것이었다.
왕실 종친들이 화기애애한 다과를 나누고 있는 장소에 한 명의 중리부 장교가 들어오더니 중리부의 책임자인 고필의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였다. 고필은 얼굴이 크게 어두워지더니 즉시 그 장소를 떠났다.
고흘은 태왕폐하와 장차 태자비가 될 미한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고필에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한편 미한이의 활기찬 목소리를 듣고 있던 태왕은 즐거워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여성에서 저는 매일 유화부인님의 왕릉에 들러서 그 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였습니다.”
“오 그래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느냐?”
태왕은 고개를 기우뚱하며 미한의 답변을 기다렸다.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이번에 부여성을 떠나기 전에 처음으로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의 종친들도 서로 궁금해서 모두가 그녀를 주목하였다.
“너는 100명의 흰 고니를 타고 있는 부하들을 거느리고 다섯용이 끄는 수례를 이끌고 있는 남자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은 유화부인께서 태자와 결혼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 같구나? 하하하”
모든 종친들이 웃으며 말을 하였고 냉정한 태왕도 고개를 끄떡였다.
올해 15살인 미한은 장녀로 말재간이 뛰어나고 남을 잘 이끄는 힘 같은 것이 있어서 아버지인 고흘이 가장 사랑한 딸이었다. 고흘은 고미한의 그런 것뿐만이 아니라 장녀로 살면서 인내라는 것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자전하를 모시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태왕에게 장녀 미한을 태자비로 간택해야 된다는 견해를 올렸고 태왕은 고흘을 믿고 허락하였다.
'그래! 태자전하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빨리 결혼하시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는 중 고흘은 옆에서는 자신의 부인 대씨가 아까 전부터 아무 말 없이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대씨 부인은 폐비 주씨께서 역적으로 몰린 후에 그녀의 아들인 태자전하가 처한 상황을 알기 때문에 귀한 딸이 고난을 격을 까봐 걱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았지만 고흘은 늙은 손으로 젊은 대씨부인의 손을 잡고 걱정마라는 표정을 지었다.
'견뎌나가야 하오! 이계 다 내부 왕실를 위한 희생이오.'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대씨 부인은 다시 고개를 들고 억지지만 웃기 시작하였다.
그때 다시 들어온 고필은 얼굴이 흙빛이 되어서 태왕폐하에게 다가갔다. 태왕은 태자비로 간택된 미한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필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오자 무슨 사태가 터졌음을 직감하고 자신의 큰 몸을 일으켰다. 고흘도 늦게 분위기를 알아채고 역시 일어섰다. 태왕과 고흘은 고필 따라서 밖으로 즉시 자리 떴다. 왕실 종친들도 이상한 고필의 얼굴을 보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날에 태자비 간택을 위해 모인 곳에서 그 세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학
그 다음날도 온달과 아가씨 즉 명화공주는 저녁을 같이 하고 있었다.
온달은 저녁에 흰 쌀밥을 한 달간 먹게 되니까 민망해지기 시작했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가난한 어린 시절에 흰쌀이라는 것을 온달은 본적도 없었다. 군대에 들어간 뒤에는 돌궐 전장에서는 유목족같이 고기가루를 물에 끓여서 먹고살았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였고 태학에 다닐 때가 되어서야 행사 있는 날에 가끔 먹었는데 이렇게 긴 기간을 먹어보지는 못했다.
"달. 쌀밥에 왜 절하느냐?"
아가씨는 요즘은 그를 부를 때 ‘저기’라고 하지 않고 온달의 이름만 불렀다. 하여간 그녀는 달이 저녁에 같이 밥 먹을 때마다 밥상 앞에 앉아서 한동안 쌀밥을 쳐다보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이렇게 쌀밥과 친해 본적이 없사옵니다. 게다가....."
"어머님께 쌀 몇 석 보내드릴까?"
갑작스럽게 아가씨는 온달의 본심을 말했다.
"예?"
"어머님은 이런 것을 잡수시지 못할 것인데 아들인 자신은 이렇게 실컷 먹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한 것 아니냐?"
"..........................."
온달은 아가씨가 마음을 그렇게 알아차렸다는 것에 놀랐다. 그 전에 같이 살붙이고 살았던 옛 여자들은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알아챈 적이 없었는데 아가씨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읽고 있었다. 하지만 온달은 아가씨가 어머니에게 쌀 보내는 것은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그러고 보니 고흘 장군님께서 평양에 오셨다는데 만나 보지 않을 것이냐?"
온달은 아가씨의 이어진 말에 잠시 숟가락을 멈추었다.
"고흘 장군님이 평양에 계십니까?"
그는 자신의 은인인 고흘장군님께서 평양에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다.
이때 평양에서 고흘 장군님이 계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왕족들뿐이었다. 태자비간택에 다른 귀족들에게 간섭되지 않기를 원하는 태왕폐하의 뜻에 따라 조용히 오셨다. 명화공주도 왕족들만 아는 소식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을 못 하고 말했다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온달은 아가씨의 당황한 모습을 보고 더는 물어보지는 않았다. 사실 온달은 태학에 입학한 뒤로 자신에게 힘써준 고흘 장군님을 한 번밖에 보지를 못했다. 고흘 장군님에 너무 바쁜 것도 있었고 공부중인 온달이 찾아가는 것을 그 분이 좋아하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의 식사가 끝나자 아가씨는 조용히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정말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을 온달은 느꼈다.
“사흘 뒤에 무슨 날인 줄 아느냐?”
온달은 그 말을 듣고 뭔 날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춘분(春分)입니까?”
<춘분이란 24절기에 하나로 춥지도 덥지도 않아 농사를 짓기는 편한 때이다. 양력으로는 3월 하순 이후이다.>
“바보! 춘분은 나흘 뒤이고.”
아가씨는 예쁘게 딴 댕기를 잡고 고개를 약간 좌우로 도리도리 돌리며 말을 하였다.
“............”
“잘 모를 수밖에?”
아가씨는 당연하다는 듯이 양 쪽 눈을 감았다.
“도대체 무슨 날이 입니까?”
온달이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짓자 아가씨는 웃었다.
“내 귀빠진 날이다.”
온달은 그 말을 듣고 멍해 있다가 갑자기 기뻐하면서 아가씨의 생신을 감축 드렸다. 아가씨는 온달의 축하를 듣자 미소 진 얼굴을 숙이며 말을 이었다.
“내일 집으로 들어야가할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십니까.”
온달은 집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조금 섭섭했다. 아가씨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남겨지는 자신은 마치 아가씨에게는 남인 것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자기 아가씨에게 성을 물어보았을 때 느껴진 벽같은 것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나는 집에 가기 싫은데............”
아가씨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면 안가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약간 퉁명스럽게 온달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안 돼! 오라버니가 외로워해.”
‘오라버니?’
온달은 그녀에게 오라버니가 있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저기 나 말이야. 오라버니랑 생일이 같다. 쌍둥이야.”
“예?”
그는 아가씨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 졌다.
‘귀족가문에 쌍둥이.’
온달은 아가씨가 혹시 주씨가문에 관련된 분이 아니라 쌍둥이기 때문에 내쫓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온달같이 유산으로는 부모의 정(情)밖에 없는 일반 평민이라면 모르겠지만 부유한 평민층이상이면 쌍둥이는 집안의 재앙이다. 형제나 자매, 남매간에도 가문을 잇기 위해 칼부림이 나는 상황에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집안 말아먹기 십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아가씨는 남매간의 쌍둥이라 상관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고구려 귀족사회에서 여성이 가문의 수장이 된 예도 적지 않고 사위라는 존재도 무시할 수가 없다.
<고구려에 부여부인과 우씨왕후같은 경우를 볼 때 여성의 위치는 상당했다. 특히 앞에 두 여인은 당시 고구려에 상당한 실력을 가진 가문의 수장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의 남편들보다 강대한 힘을 갖고 있었다.>
“오라버니가 나오고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일각 뒤에 내가 또 나온 거야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었지.”
자신의 태어난 이야기를 하며 아가씨는 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때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그리고 아마 남자였으면 진짜 죽었을 것이야.”
아가씨의 얼굴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했다. 가끔 이런 일이라면 집안 어른이 조용히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온달은 들었다. 잔인하지만 가문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짓을 안하는 집안도 더 많이 있지만 이런 경우는 둘째는 부모와 떨어진 다른 곳으로 보내서 외롭게 크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렇던 것이었군.’
온달은 자신이 아가씨의 정체를 알려고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 쪽 가문은 아마 아가씨의 존재를 부인 할 것이다. 아마 아가씨를 보호해주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녀의 위치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태학으로 도망올수밖에 없었다라고 그는 판단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온달의 커다란 착각이었다.
“달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했으니 나는 이 정도만 할게!”
아가씨는 웃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예 알겠습니다.”
온달은 아가씨의 상황을 이해하고 더 이상 그녀에 대해서 알려고 않기로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동안에 그녀와 있었던 벽이 다 사라진 듯했다.
“저기 나 오늘밤에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예?”
“밤에 한번 나가보고 싶어.”
“이렇게 추운데 말입니까?”
“개구리도 땅에서 나온다는 경칩(驚蟄)도 지났는데!”
<경칩은 24절기로 하나로 땅속에 동면하던 동물들이 깨어나는 때이다. 양력으로는 3월 초순이후이다.>
사실 아가씨는 요즘 들어서 책만 읽다가 밤에는 밖에 나가자고 온달에게 졸라대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되자 밤중 거리에 모여 수많은 사람들이 흥겨워하는 모습이 보여서 그녀는 그곳에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는 지를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온달은 아가씨의 안전을 위해서 가급적이면 낮에만 움직였다.
<고구려 사람들은 밤이 되면 모두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아가씨가 사정을 해도 온달은 허락하지를 않자 그녀의 붉은 입술은 코만큼 튀어나왔다.
온달은 아가씨가 애원해도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손뼉을 찌며
“그러면 내 생일 선물로 밤에 나가는 것이 어때?”
“예?”
“저기 나 생일날 밤에 집에서 나올게. 달이 생일 선물 바치는 샘치고 나가는 것은?”
아가씨의 말에 온달은 아무 말이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가씨는 두 손을 모으고 큰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온달을 쳐다보았다. 간절히 원해하는 소녀의 큰 눈망울을 보니 온달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생일날인데 소원하나는 들어주는 것이 났지 않은가.’
“그럼 나가는 것이다.”
잠시 머뭇거리는 온달을 보면서 아가씨는 처음 온달과 밥 먹을 때처럼 밀어붙여 결정하였다.
사흘 뒤인 아가씨가 집에서 돌아오는 생일날 아침, 온달은 밤에 아가씨를 대리고 어디를 갈까라고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밤에 아직 성인이 아닌 그녀를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았다. 밤에 젊은 남녀들이 춤추다가 눈이 맞으면 숲속에 들어가서 정을 나누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 그런 것만 보여주고 서로 민망할 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온달 자신도 가끔은 춤추다가서 일반적인 고구려 사람들처럼 여자랑 만나서 하룻밤 정을 통하기도 하였다.
<고구려에서 남자나 여자나 결혼하기 전까지 정조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기록대로라면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를 낳은 유화부인은 미혼모였다. 참고로 재혼 또한 고구려는 당연히 허용되었다.>
아마 15살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런 가벼운 인연에 여자들은 20명은 넘을 것이다. 그러자 아가씨랑 가는데 같이 잣던 여자랑 만나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서로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잔 것은 아니지만 꼬마 아가씨랑 함께 있다가 그 여자들과 만나면 민망하기도 하고…….
‘적당히 둘러만 보고 오는 것이다. 아가씨는 아직 애니까!’
온달은 오랜만에 기숙사로 돌아와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가씨가 있던 동안은 경호를 위해서 그녀의 옆방에서 잤지만 지금은 없으니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밖에서 기숙사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옷등을 정리하고 조금 뒤에 전 학생은 강당으로 모인다.”
‘누가 왔나’ 하면서 온달은 즉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문 밖에는 같은 숙사를 쓰는 냉정한 얼굴에 설연과 우락부락한 얼굴에 마위, 두 사람이 수많은 사람들과 들어오는 것이었다.
“야 너희들 벌써 왔냐? 두 달 뒤에 오는 것이냐?”
온달은 그 둘을 보고 그렇게 말을 했다. 성적이 미달된 온달을 제외한 모든 태학의 학생들은 마다산과 건국성지를 돌아보는 장정에 올랐는데 5월에 도착하기로 되었기 때문이었다.
“잘있었수. 대장.”
3개월이나 빨리 도착한 마위가 말을 하니 설연이 뒤이어 말을 하였다.
“전쟁 터졌어! 망할 돌궐놈 두목인 이계찰대가 요해(遼海거란족 거주지역, 서요하강 상류)에 주둔한 2만 아군을 전멸시켰다는 데!”
“뭐라고!”
온달의 얼굴에는 충격이 퍼져나갔다.
그 때 안학궁 중궁에서는 모든 신료들이 모여서 이번 패전을 논하고 있었다.
“죽음으로 죄를 씻겠사옵니다.”
고흘장군과 고필장군은 태왕폐하에게 무릎을 꿇었다. 옥좌에 앉은 태왕의 가느다란 눈은 찌푸렸고 그 아래에 있는 수많은 대로(고구려 1관등부터 5관등에 실력자)들의 얼굴도 침통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죄가 없느니라.”
태왕의 덤덤한 말에 두 장군은 자신의 죄를 말하였다.
“신 고필 수많은 자금을 들여서 돌궐에 분열을 획책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또한 정확한 보고를 올리지 못하였나이다.”
“신 고흘 제 부하들의 실수로 2만명의 장병들을 잃었나이다.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두 장군 말대로 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중리부 고필장군은 돌궐의 침공을 전혀 예상 못했다. 사실은 이계찰대가 정보에서는 고필보다는 한 수위였다. 고구려 중리부나 대로회의, 군부등에 정보기관들이 돌궐내의 고구려 온건파를 통해 분열공작과 정보수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계찰대는 그들을 통해 계속 거짓정보를 보냈다. 그리고선 그는 온건파의 입김이 못 닿는 돌궐의 2인자이자 서역을 다스리는 돌궐서부의 지배자인 실점밀(室點密)야브구에게 서신으로 응원요청을 보냈다. 요청에 응한 실점밀은 돌궐서부의 병사들인 페르시아방면 12만 돌궐군을 겨울동안 은밀히 동쪽으로 이동시켜서 이계찰대의 친위군사와 합류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번 2월 이계찰대는 15만 고구려침공군을 편성하여 바로 요해주둔 고구려군에게 일격을 가했다. 이계찰대는 초원통일의 동지였던 돌궐서부의 지배자 실점밀에게 동쪽 부국인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그 이익에 전부를 그에게 넘겨주겠다는 대담한 제안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계찰대는 자신의 약탈물까지 모두 넘겨줄 정도의 각오로 고구려를 정말 멸망시킬 생각이었다. 고필의 중리부는 돌궐 내에 이런 대규모적인 움직임을 전혀 눈치체지 못했다.
<실점밀(室點密) 투르크어로 이스테미로 불리며 돌궐의 건국자인 토문칸의 동생으로 토문칸 사후 준가리아등 중앙아시아를 물려받아서 돌궐서부(서돌궐)를 지배했다. 이 당시에 몽고일대인 돌궐동부(동돌궐)의 지배자이자 돌궐의 최고 지도자는 토문칸의 아들인 목간대칸이었다. 돌궐서부에 실점밀야브구은 돌궐동부의 우위를 인정하고 돌궐의 이인자로 공식적으로는 칸이 아니라 한 단계 낮은 야브구라고 자칭하였다. 이 당시는 돌궐은 동서로 분열되지 않고 토문대칸의 아들인 목칸대칸의 지도하에 있었다.>
고흘 장군은 자신의 오른팔인 안수에게 요해(遼海)방어책임을 맡기면서 절대로 돌궐의 도발에 응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다. 하지만 안수는 돌궐군이 이계찰대의 직속 3만 명밖에 안된다고 예상하고 이계찰대의 도전에 응했다. 이계찰대는 2만 명의 고구려군을 돌궐본토인 막북(漠北)내로 끌어낸 다음에 그의 직속병력과 돌궐서부군의 연합군인 15만 병력이 사방에서 포위하여 전멸시켰다.
만약 안수가 도발에 응하지 않고 거란족 거주지역인 요해일대에서 각 거점만 지키고 있었으면 15만이어도 고구려 중앙군이 출동할 때까지 적어도 시간을 벌수 있었을 것이었다. 결국 고흘이 안수를 잘못 본 샘이다.
한마디로 돌궐의 3인자인 이계찰대가 고흘과 고필, 두 장군에게 한방 먹인 셈이었다.
태왕은 그동안에 좋은 기분이 다 날아갔다. 도대체 상황을 어디부터 수습해야하는 지를 종을 잡을 수가 없었다. 돌궐군은 여세를 몰아서 주공 10만은 거란족이 사는 요해(遼海)일대를 공격하고 있고 나머지 5만은 요동과 부여방면에서 견제 공격하고 있었다.
고구려의 군내 사정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가장 중요한 수도와 그주변의 중앙군은 주씨가문 숙청과정에서 4할이나 되는 장교들이 죽거나 추방당했기 때문에 바로 움직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2년 전부터 태왕은 돌궐에서 고구려강경파 이계찰대 집권했다는 것을 알지만 내부의 적인 외척 주씨가문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어서 일단 돌궐의 분열공작이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내부를 먼저 청소했다. 한마디로 태왕은 주씨가문 숙청은 왕권강화와 민생안정에는 최적의 선택이었지만 돌궐과의 전쟁에서 치명적인 자충수가 되어 버린 샘이었다.
“일단 빨리 중앙(평양인근)에 있는 10만 군사를 출동시켜야 합니다.”
동부대인 둥근 얼굴에 발안은 어두워진 분위기를 바로 잡고 웃으며 말을 하였다.
“각 대로들은 자신의 사병들을 내놓고 태왕폐하에게 충성을 보여야 할 것이오.”
관복을 어떻게 입어도 튀어나온 배를 감출수가 없는 북부대인 구성도 따라 말을 하였으나 태왕과 고흘, 고필장군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들은 전쟁이 터진 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자신의 상단으로 시장에 식량이나 군수물자를 매점매석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자들에게 전쟁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가문의 재산을 불릴 좋은 기회인 셈이다. ‘입에는 침이나 바르고 말할 것이지’ 라고 태왕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저런 소인배들도 고흘과 고필같은 왕실출신 장군을 동원해서 당장 내쫒고 싶지만 더 이상 정적숙청을 하면 돌궐과의 전쟁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그때 중궁밖에서 내관들이 아뢰는 소리가 들렸다.
“태왕폐하 대사자 연자유와 대형 강이식이 들었사옵니다.”
그 말을 들은 태왕은 얼굴에 갑자기 근심과 분노가 사라지고 웃음이 번졌다.
‘그래 이 아이들이 있었지.’
“들라하라.”
태왕의 명에 중궁의 큰 문이 열리고 18살에 청년 장교인 두 사람이 들었다.
“태왕폐하 신 연자유 백잔의 간적을 소탕 중 태왕폐하의 명을 받고 올라왔사옵니다.”
“태왕폐하 신 강이식 역시 올라왔사옵니다.”
옥좌에서 태왕은 무한한 신뢰의 눈빛으로 그들을 내려 보았다. 두 청년은 대 백제전선에서 수많은 공적을 쌓아서 3년 만에 소형에서 4관등 5관등씩 뛰어 올라서 벌써 20살 전에 장군 급에 오를 것이라 주의 사람들이 말 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태왕의 신임이 남달라 태왕폐하가 명화공주의 배필로 정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태왕은 이들 패필로 명화공주를 전혀 생각하지는 않았다. 둘 다 너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두 청년 연자유와 강이식은 고구려에서 주목받고 있었다.
그런 연자유를 바라보는 동부대인 발안과 북부대인 구성은 얼굴이 찌그러졌다. 사실 연자유의 아버지인 연명안장군은 군부 내에 급진개혁파의 거두로 귀족들이 위험한 인물이라 판단하여 4년 전에 동북방 숙신으로 추방했다. 그런데 그 아들인 연자유가 저렇게 뛰어난 자이니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강이식 또한 미천한 하급군인가문 출신으로 벌써 대형까지 올랐으니 명문 귀족들에게는 달갑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도한 돌궐이 짐의 영토를 침범하려 한다. 너희들은 어떠한 계책을 내놓겠느냐!”
태왕의 질문에 얼굴에 티 없이 깔끔한 연자유가 말을 올렸다.
“일단 백제방면과 신라방면의 군사들도 빼야 됩니다. 지금 중앙의 군사들로도 부족합니다.”
그 말에 동부대인 발안은 화를 내며 말을 하였다.
“아니 중앙의 10만이면 이계찰대를 격파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또한 남쪽을 비워두면 또 다시 백제와 신라의 공격을 받는다. 너희들은 선대 신미(辛未)년에 백제와 신라에게 한수를 빼앗긴 것을 알고도 어찌 이런 계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 말에 18살이지만 수염이 적지 않게 난 강이식이 대답했다.
“예로부터 수도에 병력을 두는 것은 철칙입니다. 고국원왕때 모용선비족에게 당한 치욕을 모르십니까?”
발안은 순식간에 벙어리가 되었다. 광개토태왕의 할아버지이신 고국원왕은 모용선비족와의 전쟁에서 물론 상식에 너무 억매인 것과 적에 대한 잘못된 정보도 있지만 군사학적으로 제일 큰 실수는 수도 국내성을 비웠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고국원왕 상식론으로 양쪽으로 병력을 배치한 것보다 차라리 국내성으로 끌어들여서 반격하는 것이 더 결과가 좋았다. 게다가 수도에 병력을 빼는 것은 국내 치안불안과 불만세력들을 움직일 기회를 만들 수도 있다.
강이식은 계속 말을 이었다.
“중앙의 10만은 모두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5만은 남기어야 만약의 일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역적 주씨를 제거하느냐고 재기불능상태인 중앙의 군사보다 차라리 남방에서 조련된 군사가 낳을 것입니다. 중앙의 군대를 남방으로 보내고 남방에 한성이나 남옥저주둔군을 빼야 합니다.”
그러자 북부대인 구성이 남쪽의 방비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추궁을 하자 연자유가 바로 말을 하기를.
“신라왕 삼백종(진흥태왕)을 백제 견제를 하게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일단 그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삼백종은 태왕폐하가 즉위하신 후 부강해지는 고구려를 두려워하여 동맹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백제는 시조이신 추모성왕의 마음을 괴롭혔던 요녀 소서노의 후예인 부여창(위덕태왕)은 아버지인 명농(성태왕)의 죽음 한을 고구려에도 품고 있으니 우리의 영토를 반드시 넘볼 것입니다. 신라왕 삼백종 그에게 명을 내려 백제 견제를 명령하여야합니다. 백제와 신라 서로를 대립시키는 수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연자유는 아울러서 신라의 삼백종이 선대 양원태왕때 고구려로부터 빼앗은 남방영토에 통치권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순수(巡狩)를 하는 것은 가슴이 아프지만 묵인해야한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어쩌면 옥저도 신라에게 내주어야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순수란 왕이 나라의 각지를 두루 살피는 것을 말하며 이 시기 삼백종 즉 진흥태왕은 고구려로부터 빼앗은 각지에 순수비를 건립하여 신라의 영토임을 확인하였다.>
강이식이 뒤를 이어 연자유와는 다른 견해를 올렸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미 3년 전에 백제와 신라는 대가야 쟁탈전을 치러 국력을 많이 소모했기 때문에 우리와 소규모적인 충돌은 일으킬 수는 있어도 15년 전 신미(辛未)년같은 대규모 전쟁은 각오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왜국에 변수로 작용할 수가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 모두 국력을 소모했지만 그 전쟁에서 왜국은 큰 손실이 없었습니다. 백제왕 부여창은 반드시 왜왕에게 병력을 보내라는 왕명을 내릴 것입니다. 백제는 무도하게 고국원왕을 시해한 조고(照古 근초고왕)때부터 바다 건너 왜병들을 대리고 와서 우리 고구려와 신라를 공격하는데 이용하였습니다. 왜가 백제의 왕명을 따라 원군을 파견하지 못하게 해야 사신을 보내 손을 써야합니다. 왜국으로 이주한 우리호족들에게도 빨리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왜에 사는 호족들이 백제의 명을 따르지 못하게 왜왕을 압박시키셔 대 고구려백성으로써의 태왕폐하에게 충성을 보이라는 명을 내리시옵소서! 그리고 만일 신라가 이상한 맘을 품는다면 또 왜국을 이용하여 배후의 서라벌(신라수도 경주)을 위협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남방군사들을 동원해서 돌궐을 격퇴해야 합니다.”
기라성한 장군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당당하게 말한 젊은 연자유와 강이식은 과연 태왕의 신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었다.
‘짐 앞에는 두 청년이 있으니 두려운 것이 없다.’
태왕은 흡족한 얼굴로 일어서서 그들을 치하하였다.
무릎을 꿇은 고흘장군과 고필장군은 총명한 두 젊은이를 바라보면서 자기들이 서서히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두려움이 들었다. 하지만 귀족세력의 우두머리인 발안과 구성은 왕실 원로들과 달리 두 청년에게 두려움이라는 느끼기 보다는 그들을 경멸하였다.
‘선조들이 건국에 참여하지도 않았던 미천한 군인가문의 자식 놈들 주제에 잘난 척은... 나중에는 벌레 같은 백성들도 장군 되겠다고 나서겠구먼?’
뛰어난 연자유, 강이식 같은 청년장교들이 있는 데 비해 후에 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온달은 이번에 태학에서 졸업 자체도 의심스러웠다. 갑작스러운 전쟁으로 태학의 학생들은 일제히 졸업해서 전선으로 파견되기로 한 상황에서 너무 고과가 나쁜 학생은 빼기로 결정했는데 온달은 그중에 포함될지 안 될지가 박사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었다. 이번에 돌궐과의 전쟁을 앞두고 장교부족으로 인해 졸업생들은 시험도 안치고 바로 15관등인 자위(自位)로 임명되는 샘이니 심사는 매우 엄격했다. 이번에 파직되는 이문진 박사는 온달의 졸업에 힘을 쓰고 있지만 고과가 너무 나빠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다산에서 오늘 도착한 학생들은 강당에서 앞으로 있을 일을 박사들에게 듣고는 기숙사로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졸업 때문에 불안한 온달은 활이나 쏘면서 마음을 잡고 있었다. 졸업이 확실시되는 설연과 마위는 온달에게 잘 될 거라 말하였다. 그러다가 온달이 말하기를.
“야 지금 시간이 어느 정도 되었지?”
마위가 하늘을 보더니
“유시(오후 5시부터 7시)네!”
그러자 온달의 머릿속에는 아가씨와의 밤에 나가자는 약속이 떠올랐다.
[저기 나 생일날 밤에 집에서 나올게. 달이 생일 선물 주는 샘치고 나가는 것은?]
“나 잠깐 밖에 나갈게!”
온달은 활을 놓고 태학의 밖으로 나가려고 하였다.
“어수한 분위기인데 어딜 나가려고 …….”
설연이 말리자 온달은 귀찮은 듯 그냥 만날 여자 있다고 둘러대고 말했다.
“여자?”
솔직히 온달도 자신의 입에서 여자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에 실수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지만 아가씨의 긴 이야기를 설연이나 마위에게 말하기가 좀 애매했다.
온달은 약속한 태학 근처에 길 앞에서 아가씨를 서서 기다렸다.
‘어떻게 되겠지 지금 중요한 것은 아가씨이다.’
자신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날에 온달은 무덤덤했다. 박사님들이 평가해서 결정하는 문제여서 괜히 청탁했다가 오히려 떨어진다고 온달은 생각했다. 졸업생 발표는 내일 정오였고 따라서 오늘은 자기가 뾰족한 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아가씨와 같이 밤거리를 돌아다니기로 하였다. 일단 자신이 가보지 않았던 동네로 가보고 사람들 춤추고 있는 것을 구경한 후에 패수(浿水)변 길로 올라가다가 태학으로 되돌아올 생각이었다.
온달이 아가씨를 기다리는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과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경당에서 공부를 마치고 공을 차면서 집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어느 귀부인의 화려한 수레행렬
평양의 중앙군 기병대들의 순찰
키우는 귀여운 개와 길을 걸어가는 남자아이
말을 같이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젊은 연인
<고구려나 신라에서 축구는 있었다. 구당서에서는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蹴鞠)에 능했다고 쓰여 있는 데 여기서 축국은 현대의 축구와 계념은 비슷했다.>
하지만 계속 기다려도 아가씨는 오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해시(오후9시~11시)가 되도록 아가씨가 안 나타나자 땅에 털썩 앉아있는 온달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반문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이지?’
그때
“혹시 온달님.”
온달은 옆을 처다 보았다.
“아가씨?”
하지만 아가씨로 보기에는 물방울무늬가 들어간 비단옷을 입은 한 여인이 서있었다.
“접니다. 아가씨를 모시던.”
아가씨를 모시던 얼굴에 살이 많은 시녀이라는 것을 안 온달의 얼굴에는 약간 실망감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저 아가씨가 오늘 저녁에 오시기로 하였습니다만”
온달은 바로 질문을 하였다.
“아가씨가 오실만한 상황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도 정오에 학생들이 들어온다는 것을 듣고 아가씨의 짐을 가져온 것입니다.”
온달이 그제야 아가씨가 태학에 못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학에 다시 학생들이 가득하니 아가씨가 오고 싶어도 주위에서 말릴 것이다. 더 이상 아가씨가 들어갈 공간이 이곳 태학에는 없었다. 온달 자신도 역시 이번에 졸업을 하면 바로 임관해서 전쟁터로 갈 것이고 졸업 못해도 태학을 염치도 없이 또 다닐 수도 없었다. 시녀는 오늘 아가씨를 못 만나서 전해달라는 말을 못 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온달에게 그런 사정을 이야기하고 인사를 한 뒤에 수레에 아가씨 짐을 실고 어둠속으로 떠났다.
“하우~.”
시녀를 보낸 온달은 자리를 털면서 태학으로 향했다.
‘이렇게 마지막이 되는 것인가? 그래도 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는데..........’
그는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해주었던 아가씨와 아주 헤어졌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자신의 난민시절에 서러움과 배고픔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며칠전만해도 넒은 태학에 장문고에서 같이 웃으며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별을 하고 다시는 만날 수 없다니 좀 마음이 이상했다. 비밀이 가득한 아가씨와 마치 긴 겨울동안 꿈을 함께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왠지 네 번째 이별인 것 같네.”
아무생각 없이 온달은 읊조렸더니 머릿속에 은수라는 여자가 헤어지기 전에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당신은 여자에게는 혼신을 다해 잘 해주는데 사랑을 할 주는 모른 것 같네요.]
자신과 헤어졌던 여자들과의 마지막 날들도 차례대로 생각났다.
연상, 선미, 은수
혹시 그녀들이 떠난 것은 이것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 하기는 모하지만 살붙이고 산 그녀들보다 12살 꼬마아가씨에게 자기 자신을 많이 알려주었다. 전에 여자들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해주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같이 살면서 온달이 마음속으로 괴로운 일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심지어 아가씨도 오자마자 그런 느낌을 읽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설연이나 마위는 그런 것을 느끼지도 못한 것 같은데 여자의 직감이라는 것인가?’
사실은 온달의 생각과 달리 날카로운 설연은 어느 정도 온달의 속마음 짐작은 했지만 그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여자들은 가르쳐주지 않으면 더욱더 신경 쓰이는 것이 그녀들의 생리다.
과거의 슬픔에 대해 여자들이 계속 물어보면 온달은 딴 이야기로 돌리거나 거짓말만 했다. 심지어 그녀들에게 어머닌 어려서부터 눈이 안 좋으셔서 시력을 잃었다고 엄청난 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온달은 슬펐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기 싫었다. 아마 그녀들은 온달이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 느낌 때문에 옛 여자들은 온달에게서 짜증이 나서 떠난 것일 뿐이다. 연상이나 선미라는 여자들도 반년정도 같이 살았기 때문에 단지 알 것은 다 알아서이거나 다른 남자가 더 능력 있어 보여서 도망갔다고 치부할 수는 없었다. 그 동안 온달은 이상한 여자들만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여자를 이상하게 만든 것은 온달 자신이었다.
이제야 온달은 전에 같이 살았던 은수의 말뜻을 이해 할 수가 있었다.
‘자신을 감추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가 있을까?’
아직 20살에 미숙한 청년이었던 온달은 12살에 울보 아가씨를 만나면서 무엇인가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물론 서로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실 아가씨를 만나면서 더욱 마음속으로 안정된 것은 온달이었다. 자신의 슬픔을 정면으로 숨기지 않고 주시하고 말을 하니 그의 마음은 한결 편했다. 아가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을 때 눈물을 흘리는 것에는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는데 그중에 하나는 나를 위해 울어주었다는 것이었다. 온달의 괴로워하고 있던 마음 한 쪽을 아가씨의 눈물이 씻어주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밤하늘에 별을 보며 온달은 아가씨와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장문고에서 첫 만남
이문진 박사님과 좌충우돌 인형극
저자거리에 인형극 구경 가던 일
아가씨와 손잡고 걷던 길
울고 있는 아가씨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해줄 때
자신이 졸고 있을 때에 아가씨의 장난
깐깐한 스승이었던 아가씨와의 공부
쌀밥 구경 실컷 한 아가씨와의 저녁식사
온달은 아가씨와의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그는 자신과 그녀는 슬프기도 했지만 왠지 좋은 인연이었다고 생각했다.
가만히 밤길에 서 있다가 온달은 홀로 태학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길을 걷던 도중에 그는 태학의 대로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손잡고 아가씨와 걷던 하얀 길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린 아가씨의 손을 잡고 둘이 걸어갔던 하얀 길
‘서신하나라도 보내주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그의 네 번째 여자와의 이별을 접었다. 하지만 온달 머릿속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번에 만난 여자가 나이가 12살이라니 좀 심각하지 않은가?’
물론 온달은 아가씨를 사랑하지는 않았다. 받들어 모시는 만 했지.........
그녀가 귀족이라는 신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고구려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어는 쪽이 귀족이건 눈 맞으면 산으로 올라갔다가 어느 날 불현듯 남녀가 낳은 자식들과 함께 손잡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적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단희라는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팔찌나 기품을 보아서 하늘같이 높은 왕족이나 대귀족이라는 점에서 실제로 사랑한다면 걸림돌이 많이 있겠지만.
하지만 모든 것을 제처 놓아도 아가씨는 사랑하기 이전에 12살 꼬마인가?
“애라고 어린애!”
온달은 그답지 않게 계속 그녀의 사랑할 수없는 가장 강력한 조건을 중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복잡했다.
“그래 여동생을 생각하는 기분으로!”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왼손바닥을 치면서 온달은 아가씨에 대해서 임의대로 결론을 내렸다.
<고구려는 신분제 국가임은 틀림이 없으나 그렇다고 귀족과 평민간의 남녀가 서로 사랑을 못할 정도로 엄격한 국가는 아니었다. 몇 가지 고구려 관련 기록에는 남녀가 섞임에 귀천이 없다고 되어있다. 하지만 엄연한 신분제 사회이기 때문에 권장되거나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중에 온달은 이문진 박사님이 짐을 들고 아가씨와 걷던 그 길을 도망치듯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박사님 이 밤중에 어디를 가십니까?”
온달은 박사의 뒤에서 쫓아가서 말을 하였다.
“깜짝이야!”
이문진은 밤중에 갑작스런 소리에 깜짝 놀라며 짐을 떨어뜨렸다.
“접니다. 온달.”
박사는 제자를 알아보고는 마음을 놓았다. 많이 당황했던 박사님의 겉모습을 본 온달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밤중에 이문진박사님이 태학을 홀로 떠나는 것 같았다.
이런 것을 야반도주라고 하나?
안쓰러운 얼굴로 제자 온달이 쳐다보자 도망치던 이문진박사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휴우.”
한숨을 쉰 이문진은 고개를 들어 온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졸업……. 축하한다. 술이라도 내가 사야겠구나.”
박사는 온달의 어깨로 팔을 올리며 이상한 분위기를 숨기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졸업?”
2년간의 태학의 교육을 마치고 온달은 고구려의 15관등인 자위(自位)에 오르게 되었다.
글쓴이 저작권자 김원식
이 소설에서 시나리오 각색, 도용, 표절을 절대 금합니다.
다음편은 토요일 8시에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몇개 오타가 있네요.^^;; (체고-> 채고, 벌래->, 벌레 주의-> 주위) 연자유의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사견인데, 환단고기에는 연자유의 아버지 이름을 연광(淵廣)이라 했습니다. 소설에서도 연자유의 부친의 이름을 연광이라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계속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철저하게 고구려 입장에 쓰여진 것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여걸 소서노를 요사스러운 소서노라고 표현한 것은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 저는 고구려를 다루는 것이라면 김원식님처럼 고구려인의 입장에서 다루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연개소문이나 대조영 처럼 이세민 띄우기는 별로라고...^^;; 무튼 잘 봤습니다~
고구려입장에서 소서노는 이해할수없는 여자였을 것입니다. 고구려사람들은 정말로 유리명왕과 대무신왕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부여의 남하세력인 추모성왕의 정통계승이 역시 부여의 남하세력인 유리왕으로 이어졌다고 생각을 하는 데 토착세력(?)인 소서노가 튀어나오니 요녀라고 생각할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소서노가 토착출신이었다고 백제의 부여계승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추측뿐인데 이야기가 너무 앞서간것같습니다. 삼국사기 이야기를 그대로 사실이라고 본다는 가정하입니다. 사실 저는 추모와 유리는 부자관계가 아니라고 봅니다.)연자유아버지 연광은 심사숙고 하겠습니다. 오타 지적 너무 감사드립니다. 꾸벅
어허,,원식이 성,,12살 짜리 어린애 한테 20살 청년이 마음이 흔들리면 상당히 거시기하고도 위험한 설정이지 않소,,최소한 사춘기는 지나야..ㅡ,.ㅡ;;;
하하하하하 신경쓰겠습니다. 지적감사합니다.
ㅋㅋㅋ 전쟁이 다가오네요 엄청난 기대감..!
하하하 기대하십오 막북부터 요동까지 전쟁터입니다. 한번 한 회원님 줄거리 설명해주었는 데 너무 스케일 크다고 걱정하시더군요. 고민입니다. 하여간 감사합니다. 꾸벅^^
며칠전 이 카페에서 대두되었던 사극 속 일기토식의 전쟁은 피해 주신다면 재미있겠네요
예 재미있게 조직있게 전쟁답게 사실감 있게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