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이란? (낮은목소리 )
천자문은 본래 4언(四言) 250구로 이루어진 한 편의 시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양(梁)나라 무제(武帝) 때 주흥사(周興嗣)가 지어 황제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내용은 천지자연으로부터 역사와 인물, 교육과 선비의 수양에 이르는 중국인의 자연관, 역사관, 문화에 대하여 아주 간명하게 집약해내었다. 무한한 우주, 천지자연의 운행과 그 변화 과정이 네 글자의 세계에 쑥 들어앉은 형상인데, 그 자연스런 조탁의 솜씨는 가히 중국 문자가 갖는 특장을 유감 없이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천자문은 주흥사가 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여러 전적을 근거해 볼 때 태부(太傅) 종요(鍾繇)가 처음 천자문을 지어 서진(西晉) 무제(武帝)에게 헌상하니 무제가 손에서 놓지 않고 애송하였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것이 후일 산일되었는데, 송(宋) 문제(文帝)가 진(晉)나라를 계승하여 서실에서 천자문을 발견하였으나, 순서가 되섞여 알아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우장군 왕희지(王羲之)에게 명하여 차운(次韻)하도록 하였지만 실패하고, 제(齊)나라 때도 차운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양 무제 때 이르러 주흥사(周興嗣)에게 명하니 주흥사가 이에 성공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주흥사는 이 천자문의 순서와 운을 다시 맞추느라고 얼마나 고심을 하였던지, 머리가 다 하얗게 쇠었다고 한다.
천자문은 천지현황에서 언재호야의 결구로 끝나는데, 천지(天地) 두 자가 천자문을 관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황(玄黃)이란 천지의 빛깔을 말한 것으로, 이로부터 시작하는 천자문은 자연의 조화에서부터 그 천지의 생화육성, 중화(中華)라는 세계의 형성과정 속에서 천명을 받은 인군(人君)의 존재와 체제정비, 덕치에 대해 함축적으로 묘술하였으며, 화이(華夷) 관계로 집약되는 중화와 주변국들의 관계상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그런 점에서 임금과 백성, 중국과 주변국을 하늘(天)과 땅(地)라는 자연 형상으로부터 그 본질적 규정성들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천자문에는 중국 고대사의 흐름이 집약적으로 묘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천자문은 또한 사대부의 수양(修己)과 군자의 길을 밝혔고, 한나라 때부터 중국의 지배 이념이 된 유가 사상에 입각하여, 부자 및 부부관계 등 중국의 전통적인 종법 제도에서 군신관계와 부자관계, 부부관계 등을 오륜의 도리를 설파하였으며, 천성(天性), 즉 하늘의 성질을 닮는 큰 배움의 길과 입신양명의 정도를 언급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천자문이 받아들여져 한자 조기교육을 위하여 오랫동안 필수적인 교재로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천자문의 내용이 어렵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을 요구하므로 정약용 선생 등이 천자문과는 다른 우리식 한문교재(兒學編)를 만들어내었다. 조선조 말과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는 민족적 자각의 고취가 요구되던 때이므로 김균이 <대동천자문>을 지어 우리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조기 한문교육의 교재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천자문의 영향력은 아직도 지대하여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르 황"의 신화는 계속되고, 한문을 공부하자면 의례 천자문 교본을 떠올리며, 한문 공부가 얼마나 어려운가조차 새삼 희화적으로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최근에 한문과 중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많은 한문 교재들이 나오고 초등학교에서는 신문의 한자란에 의존하여, 어린 학생들에게 아침마다 한자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중화와 한문의 세계에 대한 기본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외우기 식의 기능적 한자교육으로 일관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한자란 어려운 것, 재미없는 것이란 인상을 깊게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런 면에서 한문은 모르고 중국어는 말하는 기이한 현상이 만연하기에 이른 것은 물론, 중국과 우리 나라의 관계상을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조차 어렵게 만들고 있다.
따라서 이 강의는 단순한 한자 공부를 위해 말해진 것이 아니다. 천자문을 통해 중국 및 우리 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세계의 사유 구조의 특징과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하나의 창을 만드는 방편으로 기획된 것이다. 하나의 한자는 완정(完定)적으로 형성되기까지 다양한 쓰임새와 깊이를 갖는데, 그것은 바로 단지 글자 한 자에 불과하지만, 천자문 안에 재편됨으로써 상상과 현실의 세계를 집약적으로 설명하는 자기 임무를 충실하면서도 자유분방하게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 다시 되짚어진 천 개의 글자, 그것이 이루어낸 시의 세계로 나아간다면 천자문 내의 글자의 관계성은 물론 그 이전에 중국이라는 땅덩어리 속에서 중국인이 우주 자연을 인식하고 거기에 자신의 삶터를 만들어나가며 중국이라는 세계를 일구어나갔던 과정이 여실히 눈여겨볼 수 있는 좋은 기제가 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