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일요일, 아무도 없는 물 위에서 혼자 헤엄쳤다.
2026년 이천 철인3종대회 그리고 나의 2번째 DNF
by 이병휘
올해 네 번째 철인3종 대회였다.
그리고 내 인생 두 번째 '완주 실패'였다.
[수영이라는, 매번 커지는 부담]
대회마다 그랬다. 자전거도 달리기도 아니고, 늘 수영이 문제였다.
지난 고성 70.3 이후로 수영 연습을 단 하루도 하지 않았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냥 안 했다.
대회 전날, G스타디움 수영장에서 1.2km를 슬쩍 돌아본 게 전부였다.
이걸 '준비'라고 부르기엔 양심이 좀 찔린다. '확인 사살'에 가까웠다.
기온을 확인했을 때 노슈트를 예감했고,
대회는 예상대로 노슈트로 진행됐다.
부력이라는 이름의 든든한 친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완주할 줄 알았다]
내 철인3종 입문은 2025년 9월, 삼척에서 열린 이사부배였다.
그때도 노슈트였고, 첫 출전이었지만 무사히 완주했다.
양산도, 고성 하프도 마찬가지였다.
수영 성적은 매번 처참했지만
(100m당 2분 50초, 이건 수영이라기보단 '떠서 이동하기'에 가깝다)
어쨌든 나는 늘 물에서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늦더라도 완주는 하겠지."
이 문장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30분 뒤에 알게 된다.
[얼굴을 네 번 맞았다]
출발 신호와 함께 시작된 초반 몸싸움.
얼굴을 네 번 가격당했다.
물안경이 벗겨졌다.
시야가 사라지고, 방향을 잃고, 숨이 짧아졌다.
그동안 세 번의 대회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머릿속에 딱 두 단어만 남았다.
패닉.
그리고 포기.
물속에서 심박수가 미쳐 날뛰는 걸 느껴본 사람은 안다.
그 순간엔 완주고 뭐고, 그냥 이 물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1번 부표, 그리고 2번 부표
우여곡절 끝에 1번 부표를 지났다.
다행히 심박이 잡혔다. 숨이 돌아왔다.
'그래, 이 페이스면 완주는 되겠다.'
그런데 2번 부표 중간쯤 갔을 때,
가민이 조용히 알려줬다. 20분 경과.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했다.
1회전을 25분 안에 끊어야 승산이 있는데.
더 빨리 가고 싶었다.
정말로, 진심으로 더 빨리 가고 싶었다.
그런데 안 됐다.
마음이 아무리 급해도 실력이 없으면 속도는 안 나온다.
이게 수영의 잔인한 점이다. 달리기는 억지로라도 다리를 굴리면 되는데,
수영은 안 되는 사람은 그냥 안 된다.
[1회전, 30분.]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진짜 하이라이트다.
1회전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온 나를 보며,
관중석의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저 사람 1.5km 다 돌았나 보네, 수고했다."
아니다.
절반 돌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스타트 지점으로 혼자 걸어가서,
혼자 입수했다.
앞에 아무도 없었다.
진짜로 단 한 명도 없었다.
1,500m 오픈워터를 전세 낸 기분이었다.
이 넓은 물이 다 내 거였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포기하시겠어요?"]
그래도 끝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팔을 저었다.
500m쯤 남았을 때, 안전요원 보트가 다가왔다.
"어차피 지금 가도 컷오프예요. 포기하시겠어요?"
마음속에서는 이렇게 외쳤다.
"컷오프를 당하더라도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이랬다.
"네, 그만할게요."
그리고 보트에 올라탔다.
담백하게 인정한다
멋있게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끝까지 갔어야 했다'거나 '그래도 도전이 아름다웠다'거나.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
나는 준비를 안 했고, 그래서 못 갔다.
그게 전부다.
얼굴을 네 번 맞은 것도, 물안경이 벗겨진 것도 사실이지만
수영 연습을 하루도 안 한 사람에게 그건 '변수'가 아니라 '예정된 일'에 가깝다.
준비된 사람은 물안경이 벗겨져도 다시 쓰고 간다.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여유는 실력에서 나오는 거니까.
세 번의 완주가 나에게 준 건 자신감이 아니라 착각이었다
.
'어떻게든 되더라'는 경험이 쌓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계획이 된다.
이번에 그 계산서를 받았다.
[그래서, 다음]
DNF 기록 하나 생겼다고 철인이 아닌 게 되진 않는다.
다만 다음 대회 전까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주 2회, 물에 들어간다.
기록을 당장 100m당 2분으로 줄이겠다는 말은 안 하겠다.
그건 또 다른 착각일 테니까.
대신 이것만 지킨다.
대회 전날 수영장에서 '확인 사살'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몸싸움에 얼굴을 맞아도 물안경 다시 쓰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보트를 향해 손을 흔드는 대신,
**"괜찮습니다, 갈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물에서 나오지 못한 대회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완주했던 대회보다, 그리고 고성대회 보다 이번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다음에 또 그 물에 들어갈 거니까.
2026.08.23 이천 · 두번째 DNF의 기록
첫댓글 충주대회때 만회하면 되죠
아직 한 달 남았으니 열심하자고요
파이팅입니다(한갑종 회원님)
멋지네 병휘~!!!(채희영 회원님)
도전하는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십니다(김대성 회원님)
설봉대회 수영으로 경기포기 2회 했습니다 ㅎㅎㅎ
내 기록 쫒아 오려면 1번 더 남았어 ㅋㅋㅋ(김경훈 총무님)
병휘 니말이맞다~
준비가되지않은 경기는 고역일 뿐이다~
준비를 해야 즐길수 있음을 깨달은 것만으로 너는 충분하고 훌륭하다
응원한다!!!(강성균 회원님)
오~ 멋진 후기 잘 봤습니다.
수영경기하다 앞사람 발에 채이기도 하는군요?
멋지게 다시 도전하시기 바랍니다~!(최석용 ㆍ마라톤 회원님)
남일 같지 않아요.오픈워터 들어가면 항상 찾아오는 두려움...
병휘 수고 많았어요.
항상 응원 할께. 화이팅!(정영래 훈련 부장님)
좋은 경험 했습니다
다음에 준비 잘 해서 완주하면 되지요 화이팅 (강병구 회원님)
병휘씨 이번 대회를 통해서 많은것을 느낀것같아 저도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우리가 철인3종 운동을 하면서, 사실은 매일매일 꾸준한 운동으로 준비를 해야되는게 당연하지만, 각자의 현업을 하면서 가족도 챙기면서 "착실하게 운동한다는것도 사실 쉽지 않은게 맞는거 같아요!"
그래서 이번대회에서 "네~! 그만할게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그만둔건 너무나도 좋은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완주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무리할필요 없어요!
그렇게 결정한건 너무나 용기있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완주와 좋은기록을 보유한다해도,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만할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즐겁게 운동하고, 대회도 나가면서 오래동안 같이 운동해요^^
좋은리뷰 잘 읽었어요~ㅎㅎ(차영민 사무국장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