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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달리겠습니다.
지난 이야기
동예전쟁난민출신으로 온달은 비참한 어린 시절을 어머니와 보낸 뒤에 15살에 군에 입대한다. 그곳에서 고구려 최고의 명장 고흘에게 눈에 들어 태학에 입학하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한편 태왕 양성은 왕후의 가문인 외척 주씨가문을 멸문 시키고 왕권강화에 나서자 명화공주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눈물을 지새운다. 태자 대원은 아버지와 갈등을 빚는 여동생을 태학에 피난 보내는 데 이로써 온달과 명화공주는 만나게 된다. 온달은 매일 울고 있는 의문에 아가씨를 정성껏 모셔서 슬픔을 달래준다.
드디어 돌궐에 고구려 강경파인 흰 늑대 이계찰대는 고구려 산하에 거란족이 사는 요해를 침공하고 이에 온달은 출정을 하게 되는데 졸업식때 나타난 아가씨가 명화공주라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명화공주는 온달의 졸업을 축하는 뜻으로 온달의 어머니를 모셔다드린다.
단기 2899년 서기 566년 영강 2년 3월
온달은 10만 대군을 따라 출정을 가게 되고 명화공주는 자신이 차고 있던 유리 팔찌를 주는데......
[이것을 꼭 간직하라. 행운이 있을 것이다.]
“돌궐과의 마지막 이계찰대 전쟁으로 많은 제자들이 죽었다. 얼마 전 죽은 온달장군과 함께 병술(丙戌)년에 180번째로 졸업한 2834명중에 3년 뒤에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제자가 고작 492명이었다. 반에 반도 못살아 온 것이었다. 정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제자들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한쪽마음에서는 죽어간 내 제자들의 웃던 얼굴이 생각나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문진 먼 훗날 평양에서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
“너 동예출신이냐?”
“예...예! 그렇습니다.”
궁기병대 하급 장교인 온달은 동부대인 발안의 비아냥거리는 말에 당황했다.
“그쪽출신이면 알만 하다.”
둥근 얼굴에 비웃음을 지면서 발안은 온달을 노려보았다.
‘왜 이 말이 나오는 것인가?’
말단장교인 자위 온달은 겉모습에는 동요가 없었지만 속으로 불쾌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320년 전 동천왕시기 고구려가 동예를 정복할 때
<고구려가 동예를 정복할 때가 어느 시점인지는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나온 견해에서 최대한 늦게 잡은 동천왕 때로 보겠다.>
압도적인 고구려 철기병앞에서 동예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순식간에 무너졌다. 고구려군들은 동예를 보고 이렇게 무능력한 나라도 있느냐면서 비아냥거리던 것이 고스란히 동예사람에 대한 나쁜 평가로 이어졌다. 고구려에게 정복당한 후 동예사람들은 지배자들에게 많은 수산물과 예쁘기로 유명한 동예여자들을 정기적으로 수탈당했다.
하지만 동예는 고구려에 지배받은 지 400년이 지나도 동화되지 않을 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사회였다. 그들은 고구려 백성으로써 10월에 동맹제도 치르면서도 같이 무천이라는 고유에 부족의식을 그대로 간직했다. 철저히 족외혼을 지켰으며 호랑이를 숭배했고 고구려와 다른 의복을 입고 살았다. 그런 차이에서 생긴 동예사람에 대한 차별은 300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다가 광개토태왕 연간에 고구려가 강대국(强大國)으로 성장하면서 포용정책으로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몰상식한 극소수의 고구려사람들은 동예사람을 은근히 비하하는 사람들이 남아있었는데 동부대인 발안도 그중에 한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선대 양원태왕 때부터 동예사람들을 신라인들과 내통자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고구려 내에 있었다. 옛날 고구려의 지배하에 있던 동예는 15년 전 신미년부터 10년 전인 병자년까지 비열홀주설치(신라가 함남 안변에 설치한 군단 사령부)이후 거의 대부분 신라에 점령당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다른 친척들은 신라에서 살고 있는 것 아닌가?”
동부대인 발안의 추궁에 온달은 약간 인상을 쓰면서 대답했다.
“저는 동예인이기 이전에 태왕폐하에게 충성하는 대 고구려국 자위 온달입니다.”
하지만 온달은 속으로 이런 말을 읊조렸다.
‘우릴 버린 것도 고구려이고.’
<비열홀주는 신라가 고구려에게 넘겨받은 영토 중에 동예북부에 설치한 군단사령부겸 행정기관이었는데 그 장을 비라성군주로 칭하여서 사방군주(신라가 태왕국임을 증명한다)중에 하나이다. 556년경 설치되었는데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과 부수도 한성과 가까워서 군사적 긴장이 계속되어서인지 568년경에 스스로 폐하고 강원도 고성(달홀주)로 후퇴하게 된다.>
단기 2899년 서기 566년 영강(永康) 2년 평원태왕 8년 병술(丙戌)년 4월
부여성 동부대인 발안의 막사
고구려군 2군 별동대로 부여성에 도착한 발안은 자기 부대 내에 이번에 막리지(내무부에도 권한이 있는 국방부장관정도)에 오른 고흘장군이 아끼던 청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흘 그 늙은이가 나를 감시하려고?’
그렇게 생각한 발안은 바로 전입한 장교들을 지휘소에 집결시키고 찾아보니 바로 그자가 온달이었다.
“온달 출신 동예 나이는 20살, 부(父) 물창, 출신 동예, 설요무 군 휘하에서 기병대에 배속되어있던 중 신미년 한수-동예수호전 때 행방불명. 모(母) 언미, 역시 출신 동예 나이 42세 현재 평양 북부 거주 .....”
발안은 전입한 장교들이 있는 상황에서 온달의 신상 명세가 함께 써진 고과(考課)를 부관에게 큰 소리로 읽게 하였다. 이날 짙은 눈썹에 탄탄한 얼굴을 가진 온달은 평상시처럼 가벼운 차림에 검은 책을 쓰고 부동자세로 서있고 그의 앞에서 동부대인 발안은 고개를 까닥거렸다. 화려한 갑옷에 8개의 칼로 무장하고 둥근 얼굴을 가진 그는 이따금 온달을 보면서 한껏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를 보고 있는 온달은 아무 말 안하고 있었지만 점점 두 주먹이 꽉 쥐어졌다. 이렇게 많은 동기들 앞에서 나약한 동예출신(발안의 생각이지만)이라고 망신을 주다니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15살에 입대하였고 1년 뒤에 고승장군을 구출한 공으로 .....”
“오 대단해 앞으로 기대가 되는데.”
부관이 읽어준 온달의 무공에 놀란 발안은 불쾌하게 웃으며 7척정도인 자신보다 키가 큰 온달의 어깨위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고흘 장군의 눈에 들어서 태학도 다니게 되었다 이거로군.”
온달은 자신의 은인을 함부로 말하는 발안의 팔을 꺾어서 부러뜨리고 싶었다. 솔직히 고흘 장군님은 지금은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평양에서 출발할 때 온달이 어디 배속되었는지 알지도 못했다. 온달도 자신의 키운 장교이라고 그분이 특혜를 주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고흘 장군님은 15년 전인 1차 돌궐전쟁당시 총사령관으로 있었을 때 돌궐군의 요하총퇴각전때 두 아들이 돌궐군과 싸우다가 전사했을 때 둘째 도련님이 어디에 배속되었는지도 몰랐던 분이다. 고흘은 그냥 인사 관리하는 부서에 자신의 둘째 아들을 맡겨두었다. 둘째 도련님은 자신이 원하는 전투 장교로 가게 되었는데 신미년전쟁에 절정이었던 돌궐군 요하 총퇴각전에서 돌궐군에 붙잡혀서 의연하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런 고흘의 무관심이 온달에게는 독이 되어버린 샘이었다. 온달이 하필이면 고흘장군이 정적인 발안 장군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발안의 부대는 자신의 사병 7000명과 중앙군 2만 삼천명의 혼성부대로 3만에 달하는 대부대였다. 그들은 본대가 평양에서 봉황성, 요동성을 거치는 단거리로 거란족이 사는 요해(遼海)로 가는 것과 달리 별동대로 평양성에서 국내성을 거처 부여성으로 외곽으로 진격하여 요해(遼海)에 주둔한 돌궐군의 북쪽 배후를 노렸다. 이때 편입된 중앙군중에 바로 자위 온달과 설연, 마위등 태학졸업생이 1000명이 있었다.
"막리지께서 너를 보낸 것은 미숙한 나를 신경을 써주시는 것일까?"
발안의 추궁에 온달은 아무 말하지 않으려 했지만 자신의 은인인 막리지 고흘을 모독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막리지께서는 군인으로써의 명예를 자신의 목숨같이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대인께서도 그 분의 성품을 아시지 않습니까!”
동부대인은 대들듯이 말을 한 온달을 잠시 노려보면서 화를 내려다가 그에게 보여주려는 듯이 목에 있는 상처를 만졌다. 그것을 본 온달은 갑자기 고흘장군님과 칼부림이 났었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폐비 주씨문제로 궁궐 내에 둘 사이에 칼싸움이 나서 고흘장군의 화려한 솜씨에 동부대인 발안이 쓰러졌다는 소문.
하지만 온달은 소문이 다 그렇듯이 사실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이 자식 맡는 당주는 누구야?”
“소형 을지무발입니다.”
그 말을 듣자 동부대인 발안은 흰 이빨을 내보이며 온달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해산했다.
“참! 미천한 놈들끼리 모여 있구만.”
동부대인 발안은 온달의 당주급 직속상관인 을지무발도 온달과 마찬가지로 하급군인가문도 아닌 그냥 평민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흘린 것 같았다.
“해산!!!”
온달은 그 일이 있은 직후 부여성의 장대(성안의 지휘소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에 올라가서 시내를 보면서 발안에게 능멸당한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그의 탄탄한 얼굴에는 고지(高地)에 강한 바람이 스쳐 나갔다.
부여성은 옛 부여국의 수도이자 고구려의 건국성지 중에 하나로 고구려시조인 추모성왕 고추모께서 탄신하신 곳이다. 또 그분의 어머니이자 여신이신 유화부인의 왕릉이 있는 성스러운 곳이었다. 온달도 어제 도착하였는데 밤중에 시간을 내서 왕릉과 사당을 참배해서 이번 전쟁의 승리와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했다. 막상 떠나려고 했다가 왼손에 찬 유리팔찌를 보고 하나를 더 아뢰었다.
[유화부인님, 명화공주가 또 울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온달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같은 기숙사를 썼던 태학동기인 설연과 마위가 부여성 장대로 따라 올라왔다. 주위동기들은 온달이 동부대인 발안에게 찍혔다고 생각하고 그를 피하고 있었지만 둘은 계이치 않았다.
“온달 너무 신경 쓰지마라.”
냉정하고 얼굴이 하얀 설연이 위로하니 온달은 그냥 찌그러진 미소를 지고서는 말을 했다.
“저런 개자식이 동부대인이니 동부 귀족도 알만하군.”
온달의 지독한 악담에 설연과 마위는 눈이 뛰어나올 정도로 놀랐다.
“아무리그래도 그런 말은 하지 말게나.”
우락부락한 얼굴답지 않게 당황한 마위가 누가 들었나하면서 주변을 살피며 온달에게 말하였다. 아무리 태학 다닐 때는 그냥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군대에서는 상관에 대한 모욕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게다가 동부대인 발안은 주씨가문이 멸문된 이후 평양귀족의 최고 실력자였다.
하급이지만 평양 남부귀족출신인 설연이나 마위라면 몰라도 평민출신인 온달이 절대로 하면 안 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부대인 발안이 마음속으로 귀족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는 온달의 마음속을 건드렸고 그 것이 분노로 표출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여간 온달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이날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다. 설연이나 마위도 귀족출신이기 때문에 그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다만 명화공주님만은 자신의 슬픈 시절을 고백하면서 눈치를 챘을 지도 모른다.
‘건방진 놈.’
말이 심했다고 생각한 온달은 이번 말은 남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읊조렸다.
평양 안학궁
10만 고구려군이 부여성에 거처서 거란족이 사는 요해(遼海)지역에서 도착해서 돌궐과의 서전에서 대승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5월 달
이 당시 평양은 돌궐과의 전쟁에서 최전선이 아니었지만 전방에 수많은 병력과 보급을 조달하는 후방의 최전선이었다. 군역을 치루지 않은 젊은이들이 평양교외에서 집결하여서 군사훈련에 받았다. 군역을 치루고 농번기인 겨울에 예비군훈련을 받고 있던 장년의 사람들은 바로 부대편성이 되어서 전쟁이 시작된 북쪽으로 출동했다. 태학에서는 예비 장교들이 될 수많은 귀족 학생들은 빠른 수업을 따라 잡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보통 태학은 3년에서 4년은 다니는 것인데 이들은 돌궐과의 전쟁으로 다닐 시간이 1년밖에 없었다. 그 안에 모든 것을 깨우쳐서 장교가 되어 출정을 해야 되니 가르치는 박사도 배우는 학생도 힘이 들었다.
대장간은 창이나 칼같은 무기생산에 열을 올렸고 보급물자 운송을 위한 수레바퀴틀도 수없이 쏟아졌다. 그들의 쇠 두드리는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논밭에는 출정나간 남자들의 어머니이자 부인이고 딸들인 여자들이 농사에 여념이 없었다. 남성의 모두가 전쟁에 동원된 상황에서 농사는 여성의 몫이 되었다. 오직 논밭위에 남자는 젓달라고 울어대는 아기들 밖에 없다. 고구려의 지배층인 왕실과 귀족들도 그 동안에 권력투쟁을 잠시 접고 돌궐과의 전쟁에 나서고 있었다. 물론 일부 귀족들은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워서 가문의 영애를 높여야 된다는 마음뿐이었지만.
고구려의 최고 지배자인 태왕 양성도 다른 평양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돌궐과의 전쟁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원래는 건강이 그렇게 좋은 분이셨지만 갑작스러운 격무로 비뉵(鼻衄 코피)까지 한 달 동안 두 번씩이나 흘리셨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평양에서 유일하게 바쁘지 않고 한가하게 바둑이나 두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두 사람이 태자와 명화공주였다.
태자의 방에는 연한 색에 비단으로 된 발을 치어서 생활하는 곳과 잠을 청하는 곳이 구별 되어있었다. 생활을 하는 구역에서 화려한 비단포를 입힌 탁자위에서 훌륭하게 깍은 의자에 앉은 태자와 공주는 바둑알을 굴렸다.
같은 날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태자 대원과 명화공주 단희는 바둑실력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막상막하였다. 잘 다듬은 박달나무에 검은 옻칠을 한 바둑판위에 천축국(天竺國 인도나 인도근방에 국가)에 수입한 상아바둑돌로 남매는 오늘 아침부터 2판을 두었는데 1승1패였다. 결판승부셈인 마지막 판을 남매는 두었는데 점점 무승부로 흘러가고 있는 분위기였다. 대원태자는 바둑 두는 성향은 기초를 튼튼히 하여 견고한 집을 건설하는 것이고 명화공주경우에는 어느 정도만 집을 지어놓고 집요한 공격을 해서 상대방을 지치게 만드는 경향이었는데 특히 돌을 잘 버릴 줄 알았다.
“명화야 이제 그만 공격해라. 너는 집은 안 짓느냐?”
태자는 백돌로 좌변에 지은 견고한 집을 치고 들어오는 동생의 흑돌을 막았다.
“자 여기 입니다.”
오라버니의 철저한 방어에도 공주는 집요한 공격으로 3수를 몰아부처서 결국 좌변의 집을 헐어버렸다. 1각 동안 남매는 바둑판에서 이런 식에 난전(亂戰)이 계속되었다. 이번 판은 둘 다 사방에 살아있는 집이 거의 없었다.
“명화야 그만하자구나.”
태자는 명화공주의 집요한 공격에 자신의 계획대로 판이 안돌아가자 결국 돌을 던졌다.
“제가 오늘은 이긴 것입니다. 오라버니.”
단아한 얼굴에 명화공주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오른 손가락을 자신의 붉은색 볼에 찌르고 천정을 보면서 오라버니에게 오늘 줄 벌칙을 생각했다.
하지만 계가(計家)를 하면 오라버니가 조그마한 집이 몇 개 더 있으니 이긴 셈이지만.....
오라버니는 여동생인 명화공주가 벌칙을 생각하는 동안 창가를 앞으로 갔다. 명화공주가 웃음을 지며 눈동자를 굴리며 있는 것을 보니 몇 달 전에 어머님을 그리워하면서 그녀가 울 때가 생각났다.
‘온달이라는 자가 내 동생의 눈물을 다 마셨나?’
태자는 태학에서 공주님을 수행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킨 온달이라는 자에게 정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언제 한 번 만나서 그 공을 치하하고 싶었지만 그는 이미 요해로 출정을 했다. 그런데 공주의 행동 중에 이상한 것은 궁에 들어온 후 어머님의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다는 것이었다.
마치 없었던 일 같이.
그 때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맴맴맴매........”
태자는 공주에게서 자기 자신으로 머릿속에 생각을 돌렸다.
요즘 어린 나이에도 풍채 있고 준수한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금 무엇을 하는 것인가 모든 백성들이 바쁜 상황에서......’
사실은 태왕은 그간 일에 지처서 아무 일 없이 동궁에서 시간만 때우고 있는 태자와 공주에게 일이라고 나누어 주려고 했지만 동부측 귀족의 반대에 부딪쳤다. 태자의 어머니인 폐비 주씨를 제거한 동부대인 발안은 출 정전에 남은 동부귀족들에게 태자가 이번 전쟁으로 공을 세우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태왕도 돌궐과의 전쟁에 고구려의 모든 세력들을 총동원태세로 묶기 위해서 귀족들과 충돌을 가급적으로 피했기 때문에 그들의 반대를 꺾을 수가 없었다. 결국 태자와 공주는 이번전쟁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붕 떠버린 상황이었다.
결국 태자와 공주는 동궁에 바둑이나 두다가 밖으로 나가 사냥이나 하면서 소일을 보내고 있었다. 저번에 보름 전에는 명화공주와 사냥을 갔는데 이번에는 공주 말위에서 처음 활시위를 당기여서 꿩 한 마리를 잡았다. 12살에 어린 태자는 갑자기 뛰쳐나오는 멧돼지를 단숨에 쏘아죽여 주위를 놀라게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나라에 태자가 이런 식으로 있는 것은 너무 잘못된 것이다.’
공주는 오라버니에 벌칙으로 자신이 주는 단어를 듣고 바로 그에 따른 시한수를 짓는 것으로 하였다. 태자는 시 짓는 것은 자존심을 걸기 때문에 귀를 세우고 단어를 들으려는 중에 밖이 소란스러웠다.
“태자전하...아 제가 아뢰올리..”
“내가 말해 올리겠다.”
태자전하와 명화공주는 무슨 일인가 하면서 문을 처다 보았다.
“태자전하 소녀 미한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태자의 풍채 있는 얼굴은 순식간에 붉은 물이 들었고 명화공주는 오라버니얼굴을 보면서 묘한 웃음을 지었다.
“오라버니 형님께서 오셨어요. 언제까지 세워두실 것인가요?”
“그게 왜 이게...어떻게.”
태자는 그 답지 않게 머리를 막 극적이며 방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 태자혼례가 정해졌을 때는 올 6월에 길일을 택해서 혼례를 올리기로 결정했으나 돌궐과의 전쟁으로 나중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이 당시에는 태자는 태자비간택이 끝났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약혼녀가 누구인지는 몰랐었다. 그런데 시녀를 통해서 명화공주는 약혼녀가 고흘장군의 장녀 미한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듣고 오라버니인 태자에게 바로 소식을 전했다. 태자는 사실 미한낭자를 갓난아이 때부터 알던 사이였다. 매년 어린 시절에 태자와 미한낭자 그리고 명화공주는 궁궐에서 공놀이를 함께하였다.
그런데 6년 전에 전선으로 떠난 고흘의 가족들이 아주 전선과 가까운 부여성으로 이사를 하면서 미한낭자는 평양을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미한낭자는 1년마다 한 번씩 평양에 올라와서 태왕폐하와 태자, 그리고 명화공주를 인사를 올렸기 때문에 태자는 그녀를 오랜만에 보는 것은 아니었다. 명화공주는 미한형님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형님이 평양에서 살 때가 그리워서 그런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약혼이 결정된 후에 태자와 태자비가 될 미한의 만남은 처음이다.
“형님 들어오세요.”
“명..화야”
명화공주가 당황해하는 오라버니의 동의 없이 미한낭자를 불러들였다.
문이 열리고 엣띤 얼굴에 미한낭자가 들어왔다.
태자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려고 했지만 미한의 모습을 안 볼 수가 없었다.
무더운 날씨지만 그녀는 긴 포까지 모두 착용하였다. 4살이나 어린 명화공주에 비해 작은 키에 상당히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만약 둘을 모르는 사람이 얼굴만 본다면 키가 크고 단아한 명화공주가 나이가 더 많다고 느낄 정도로 미한낭자는 귀여운 얼굴을 하였다. 명화공주는 붉은 색을 바탕으로 흰색포를 입었다면 미한낭자는 연한 갈색의 유에 시원한 푸른 포를 입었다. 옷의 화려함은 단연 명화공주가 화려했지만 여자로써 성숙미는 15살 미한낭자가 훨씬 위였다. 미한낭자는 태자와 명화공주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태자전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소녀 미한이옵니다.”
태자는 잠시 멍하게 미한을 보던 눈길을 이제야 다른 데로 돌렸다.
“아! 낭자... 오랜만이요.”
그리고 방 안에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너무 조용하니 매미의 우는 소리까지 동궁에 들렸다.
“맴맴맴맴매.............”
명화공주는 조용히 둘을 보더니 말을 하였다.
“왜 이렇게 말이 없으십니까?”
태자는 그래도 바닥으로 시선을 돌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명화공주는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웬일인지 미한낭자마저도 제대로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미한은 티내지 않게 인상을 찌푸렸다.
“명화공주님 잠시 자리 좀......”
눈을 내리깔고 있었지만 미한의 얼굴에는 공주님이 나가셨으면 좋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주는 순간 어두워지면서 미한을 노려보았다.
‘내가 방해가 된다는 것이냐?’
의도 하지는 않았지만 미한은 명화공주의 강한 자존심을 건드렸다. 어려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공주는 사람들에게 자존심을 강하게 내세웠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천손이자 공주인 자신의 당연한 권리였다. 그녀가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온달뿐이었다. 하지만 마음씨 좋은 온달이란 자가 공주님의 청을 거의 받아주었기 때문에 강한 자존심을 피할 수가 있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태자는 여동생인 명화공주가 자신을 무시한 미한낭자에게 화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명화야 잠깐 나가 있어주겠느냐?”
태자비가 될 미한의 부탁에도 오기를 부리면서 서있던 명화공주는 오라버니가 나가라는 말을 하자 결국 방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온달이 전장으로 출정한 후에 공주는 태자의 궁궐인 동궁에서 오라버니인 태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즉 동궁은 어린 남매 만에 공간이었던 것이었다. 그 공간에 고흘장군의 장녀인 미한이라는 여자가 침입했다는 것을 공주는 오늘 일로 깨달았다.
요해(遼海)유역 발안부대 주둔지역
갑옷 없이 간편한 복장에 활통과 화살통을 매달고 있는 온달은 양고기를 안주로 삼으며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고구려 전 장병들이 승리에 기쁨을 나누면서 술을 마셨다. 다만 온달과 그들의 차이점이라는 것은 온달의 얼굴은 상당히 어둡고 나머지는 밝았다는 것이었다.
‘혹시 이건 이계찰대의 함정 아닐까?’
자위 온달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거란을 침공하던 이계찰대가 이끄는 돌궐군 10만대군은 6월 달에 동부대인 발안의 3만 명에 대패하고 도망갔다. 발안은 과감한 배후 공격으로 돌궐군의 기동력을 제압하고 각 부대별로 분열시켜서 각개격파 전법을 구사하였다. 결국 돌궐은 1만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였고 모든 요해(遼海)지역에 대한 고구려 영향력은 회복되었다. 승전을 접한 총사령관 고흘은 직접 발안의 막사로 가서 그를 크게 치하했다.
정적인 고흘에게 큰 칭찬을 들은 발안은 기분이 좋아져서 수고한 장병들에게 술을 내렸다. 그 술을 지금 장병들이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승리에 들뜬 장병들은 전쟁이 올해 안에 고향으로 돌아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짙은 눈썹을 찌푸리며 온달이 가장 불안해 한 것은 이 분위기였다.
‘서전을 대승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은데.......’
솔직히 온달은 이럴 때일수록 분위기를 강하게 잡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솔직히 다들 3개월 동안 죽을 정도로 힘들었기 때문에 입에 올리지 못했다.
“온달 표정이 왜 그런가?”
모래바닥에 앉아서 술을 계속 들던 온달은 상관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아 오도님. 충(忠)”
온달은 바로 몸을 일으켜서 상관에게 오른손을 가슴에 올려서 경례하였다.
“네 아이들 사고 안치고 잘 있어?”
고구려 11관등인 제형(諸兄) 오도는 당주님이 회의 참석차 당대를 비운 사이에 총책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병들이 잘 있나 순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13관등인 자위(自位) 온달하고 설연과 마위는 십장으로 지금 오도 아래에 있었다. 당대 100명 전원이 경기병인 을지무발당대에 배속된 모든 병사는 철제갑주를 착용하지 않은 간편한 복장에 언제나 활을 착용하였다.
“어제도 많이들 마셔서 지금 다 자고 있습니다.”
온달은 사실대로 오도에게 자신의 부하들은 막사 내에서 모두 자고 있다고 보고 올렸다.
“진짜 확인해 볼까?”
“걱정 마십시오.”
온달의 말을 들은 뒤에 오도는 술을 마시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장병들을 보다가.
“설연은 어디 있어?”
“지금 한 바퀴 돌아보고 있습니다. 아! 저기 오고 있습니다.”
설연은 멎진 검은 수염을 가진 오도를 보자 바로 뛰어서 그의 앞에 서 경계를 올렸다.
“충(忠).”
“분위기 어때?”
오도가 강한 어투로 물어보자 설연이 바로 대답하였다.
“아무 일없었습니다. 다만 휴식을 너무 길게 주어서 장병들의 군기가 좀 헤이 해졌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지금 부하들이 3개월 동안 삼천리를 행군하고 바로 보름간에 전투를 치러서 상당히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너무 우리가 애들을 너무 힘들게 했지 않은가. 한 때는 놓아주는 것이 좋아.”
설연의 보고를 들은 오도는 인상은 찌그러졌지만 일단은 관망하자는 쪽으로 대답하였다.
“하지만........”
장병들의 나태한 모습에 불안한 온달은 계속 말을 하려고 했지만 오도가 아주 말을 막았다.
“나중에 확실하게 잡으면 돼! 언제나 장병들을 누르고 있으면 더 골치 아파져.”
오도는 돌궐군을 몰아낸 이번 전투에서 1000명을 통솔하는 적장의 목을 베는 큰 공적을 올렸다. 그래서인지 기분이 좋아진 그는 요즘 부하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일수록 장병들을 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온달은 계속 상관 오도에게 강하게 건의를 올렸지만 결국 묵살 당했다.
막리지이자 총지휘관인 고흘도 그런 분위기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이 분위기를 잡는 것보다 이계찰대의 노련한 전략에 대응수단을 고민했다. 돌궐군은 발안에 각개격파에 일격을 당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직 13만의 대병력이 거란족이 사는 요해(遼海)지역 북쪽에 있는 광활한 초원지대로 안전히 후퇴하였다. 그런데 이계찰대의 부대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 그냥 대기하고 있었다. 탐색을 내갔던 정탐병들의 정보에는 돌궐군은 그냥 초원에서 유목을 하면서 말 그대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13만 돌궐군은 광활한 동쪽초원지대에 산계해서 거란에게 빼앗은 수십만의 양떼로 안정적인 식량을 보급하면서 가족들을 아예 대려다 놓고 매일 밤 즐겁게 놀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군들은 격노해서 당장 쳐들어가자고 주장했지만 고흘은 가만히 있었다.
‘반드시 이계찰대는 도발을 하면서 우리가 쳐들어올 것에 대한 함정을 파놓았을 것이다.’
그 함정은 올 2월 달처럼 안수의 2만 군사를 끌어들여서 적지에서 포위 섬멸하는 방식일 것이다. 산개했다고 할지라도 막북(漠北 돌궐본토 지금의 외몽고 일대)영토 쪽은 고구려군으로써는 적지이자 사지(死地)로 함부로 들어갈 수는 없는 곳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고구려군이 아무런 대책 없이 후퇴한다면 돌궐은 거란을 또다시 쳐들어올 것이니까 10만 대군을 이대로 요해(遼海)에 주둔시킬 수밖에 없다. 자동적으로 전쟁의 양상이 양쪽 모두 10만이상이 되는 대규모부대를 대치하면서 유지하는 보급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보급 전에서 고구려군이 불리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돌궐족은 2월 달에 안수의 고구려군을 섬멸하고 요해(遼海)를 일시 점령했을 때 거란족의 모든 가축들을 거두어서 막북으로 이동시켜서 남은 거란족들은 기아상태에 직면하고 있었다. 가득이나 고구려와 돌궐간의 전쟁터로 15년간 초토화에 가까울 정도로 몰린 거란족들이라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이에 고구려는 그들의 보호자로써 식량을 공급해야 했지만 본토에서 막대한 식량을 요해(遼海)지역까지 수송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고구려군은 자신의 군량미와 가축들을 조금씩 풀었고 그것이 심각한 보급에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또 이 과정에 고구려군과 거란족간의 접촉이 늘면서 전시 군인이 하면 안 되지만 꼭 터지는 민간인 학살이나 부녀자 강간이 시작되었다. 고흘은 거란족에 대한 잔악한 행위를 한 장병들에게 엄벌하라는 명령을 하여 71명을 참형에 처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막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적들의 피까지 본 혈기 넘치는 군인들이 전투는 안하고 무료하게 가만히 있으니 사고를 안친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해서는 확고한 지휘권확립으로 전 장병에 대한 강한 정신교육이 필요하지만 혼성부대의 폐해 때문에 그것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중 대귀족들의 사병들이 큰 문제였는데 특히 동부대인 발안의 부대가 통제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발안이 요해(遼海)를 탈환한 것은 높이 평가했지만 기고만장해지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온달이 출정 전에 지적한 지휘권 문제가 불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부대인은 나이는 26살이지만 수도 평양의 내부를 제외한 가장 막강한 동부(東部)에 사는 귀족들의 우두머리였고 돌궐과의 첫 전투 때처럼 뛰어난 군사적 재능이 있었다. 차라리 어느 정도 모자라고 약점이라도 있으면 고흘이 다루기 쉬운데 완벽하게 일을 해내니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일부러 트집을 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간 고흘에게는 시간을 끌고 있으면서 이러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가는 돌궐의 지장 이계찰대가 가장 큰 문제였다.
‘이계찰대 이 놈 이대로 우리를 고사(枯死)시키면서 내분을 일으키시겠다.’
막리지 고흘은 이빨을 깨물었다.
머나먼 요해에서 고흘과 온달이 이 전쟁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안학궁에는 저녁노을 지고 있었다.
명화공주는 태자비가 될 미한에게 자존심이 상해서 기분전환으로 궁궐에 있는 호수가로 나가서 작은 배를 탔다. 배 앞머리에 앉아있는 그녀 뒤에는 사공과 여자답지 않게 좀 체격이 되어 수현이라는 시녀가 앉아 있었다.
21살에 수현은 어깨가 넓어서 보통 여자들보다 훨씬 커 보인다. 지금은 그녀는 명화공주의 어머니인 폐비 주씨가 자결할 때까지 그 옆에 있었던 유일한 시녀였다. 그 하루 동안 어머니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것을 보면서 거의 모든 시녀들이 그녀를 버리고 도망갔었다. 하지만 오직 수현은 죽음의 그 순간까지 자신이 모셨던 공주의 어머니를 지켰다. 그 때부터 공주는 자신이 죽는 그날까지 어머니를 끝까지 모신 수현을 자신의 평생 벗으로 곁에 두었다.
“미한아씨 때문에 그렇게 화가 나십니까?”
수현이 공주님께 아뢰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
붉은 입술이 코만큼 튀어나온 공주는 잔잔한 호수를 보면서 말을 했다.
‘아무리 형님이 되실 분이라지만 오라버니가 있는데서.......’
공주는 입에는 안 올렸지 마음속에서는 ‘건방진’이라는 단어가 왔다 갔다 했다. 수현은 그런 공주님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공주님. 태자전하를 미한 아씨에게 빼앗기는 것은 아닙니다.”
“아냐! 그런 말을 하지마라.”
공주는 당혹감에 뒤를 돌아서 수현에게 크게 소리쳤다.
“윽.”
그녀의 날카로운 눈에 사공은 겁에 질려서 배를 잘못 몰아서 좌우로 크게 휘청거렸다. 순간 공주는 당황하여 균형을 잠시 잃었으나 수현은 그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여봐라! 어찌 공주님을 모시는 데 이렇게 큰 실수 범하느냐?”
수현은 공주님을 안심시키고서는 사공을 조그마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공주님 일단 동궁으로 들어가시지요.”
공주는 많이 놀라서 당장 유람을 그만 하고 싶었지만 아직 미한형님이 동궁을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들어가기 싫었다.
‘건방진! 미한 형님은 오늘 자고 갈 생각인가? 왜 이렇게 있는 오래 있는 것이야.’
단아한 얼굴에 공주는 호수에서 동궁을 쳐다보았다.
다음 편인 ‘2편 함정에 들어가는 호랑이’는 다음주 토요일 오전 8시에 올리겠습니다.
글 저작권자 김원식
이 소설에서 시나리오 각색, 도용, 표절을 절대 금합니다.

첫댓글 오, 온달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네요. 장교는 뭔가 다른가. 아직까진 전투장면이 안나왔네요. 빨리 보고싶어 미치겠습니다 ㅋㅋ
하하 기대하십시오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맞는->맡는, 간난-> 갓난, 관망하지-> 관망하자 오타 몇개 발견했습니다.^^;;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평강공주의 당찬 모습이 실제 그러했을 것 같습니다.^^
오타가 여전히 많군요.... 주말에 바빠서 확인을 제대로 하지않아서인지...죄송합니다. 오타지적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활달한 사람들이 작품의 분위기를 잡는 다고 할까? 공주도 울음뚝이라 전편은 좀 어두웠다면 이제는 앞으로 달려가는 설정인 선셈입니다. 하여간 열심히 쓰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