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임신
상상임신이란 말을 옛날에는 자주 들을수 있었다
상당한 여인들이 간절히 원했던게 임신이었다
임신을 해야만이 그집 며느리 취급을 받았었으니
신체이상 없어도 시어머니를 속일 수 있는 무기가 됐었다
*상상 임신想像姙娠 -
임신을 몹시 원하는 여성이 실제로 임신한 것이 아닌데도
입덧이나 태동의 자각 등 임신과 비슷한 신체적 증상을 나타내는 일
상상임신의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로 임신을 강렬히 갈망하는 심리나 호르몬 분비의 이상 또는 종양 때문에 벌어진다고 이해되고 있다. 임신을 간절하게 원하거나 그 반대로 임신에 대한 걱정이 상상 임신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심리적 원인이 내분비계에 변화를 가져와 유방의 발달이나 유두부위 색소 침착 등의 실제 임신 증세를 나타내기도 한다.
실제 임신과 구별을 위해 임신테스트기나 초음파, 혈액 검사를 시행해 볼 수 있으며 이때 초음파 검사 시 태낭이 없으면 임신이 아니다.
대개 심리적인 문제에서 오는 병이기 때문에, 임신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으면 대부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필요 시 정신적 치료를 해주는 것이 좋다. 무월경과 같은 증상이 있는 경우에는 약물 치료를 한다.
상상임신을 겪은 여성은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증, 불안장애, 강박증 등이 생길 수 있으며 주변 사람의 따뜻한 보호와 적절한 상담치료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진단이 매우 어려웠다. 의사가 임신이 아니라는 진단을 내려도 환자는 자신이 임신했다고 주장하고, 외관상 배가 불러오는 등 임신 때 나타나는 여러 증상이 나타나서 의학 지식이 없는 주변인들이 보기에도 임신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만 돌팔이라는 오명을 쓰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는 X-ray와 초음파 검사 등으로 아주 손쉽게 임신여부를 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에게 이 사실을 직접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하면 진단 및 치료가 매우 쉬워졌다.
또한 역사적으로 유명한 상상임신은 바로 블러디 메리, 영국 메리 1세 여왕의 상상임신 사건이다. 당시 부족했던 의학 수준 때문에, 여왕이 강력히 자신의 임신을 주장하는데다 실제 배까지 불러와, 대부분의 대신들은 그녀가 임신한 것이라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출산 예정일이 지나도 산통이 오지 않아, 그제야 메리 1세가 상상임신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한다.
평범한 개인이 가임신을 해도 후유증이 큰데, 왕위 계승권자의 출생이 달린 여왕의 상상임신이었던지라 여파가 컸다. 메리 1세의 출산을 앞두고 귀족들과 성직자들은 축하 선물이나 축하 미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다른 나라들도 일찌감치 축하 사절을 보내거나 보낼 준비를 하던 상황이기도 하였다. 결국 잉글랜드 왕실과 정부는 본의 아니게 위신이 실추되었다. 당사자인 메리 1세는 자신이 가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다가 결국 끝내 인정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정작 펠리페 2세는 메리 1세와 동침한 적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었던 데다 부부관계에도 적극적이지 않아서, 임신했으니 자기를 보러 와 달라는 메리 1세의 편지를 무시하였다. 훗날 가임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메리 1세가 자신을 영국으로 불러들이려고 짠 계략으로 취급했다.
참고로 메리 1세가 진짜로 임신하였다면 그 당시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만약 그녀가 출산했더라면 잉글랜드가 도로 가톨릭화되었을 수도 있었고, 극단적인 경우 잉글랜드와 스페인의 동군연합까지 가능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바로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였기 때문. 실제로 당시 메리 1세의 반대측은 임신 소식에 크게 낙심했다가, 상상임신임이 밝혀지고 난 이후 환호를 하였다고 한다 .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선 정조의 왕비 효의왕후와 정조의 후궁 화빈 윤씨가 상상임신을 한 기록이 있다. 같은 왕의 부인에게서 2번이나 상상임신이 일어난게 정말 이례적이다. 효의왕후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다. 모두 임신이 맞다고 생각해서 산실청까지 설치했으나 출산예정일이 한참 지나서도 출산할 기미가 안 보여 상상임신이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자세한건 효의왕후항목 참조).-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