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31)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2/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장옥관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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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각을 통한 대상 파악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 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주던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마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흰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떼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엄쳐 오곤 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은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김선우, 「물로 빚어진 사람」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먼저 생성된 게 후각이라고 한다.
그만큼 후각은 원초적인 감각이다.
시인은 월경에서 맡는 비릿한 냄새를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한다.
모든 생명체가 바다에서 왔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비릿함을 신성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여성은 몸속에 바다를 담고 사는 존재들이다.
자궁의 양수와 바닷물의 성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몸에서 ‘궁(宮)’자를 붙인 기관은 자궁 말고는 달리 없다.
월경이란 말도 괜히 붙여진 게 아니다.
지구 위 모든 생명 현상을 주제하는 달의 주기에 따라 여성들도 몸도 부풀고 꺼지니 말이다.
㉱ 미각을 통한 대상 파악
횟집 주인이 비닐 씌운 그릇을 가져온다
머리 한 번 들이밀다 옆으로 꼬부라지는 새우
비닐을 벗겨내자
한 대접의 갯내음이 풍긴다
엄지와 검지로 몸통을 꽉 잡고
파당거리는 머리 뜯어내고 돌려가며 껍질을 깐다
새우 등에 있는 내장이 이쑤시개에 한 줄로 따라온다
무지갯빛 감도는 살덩어리
초장 찍어 한입에 넣는다
입 안 가득
새우가 헤엄쳐 온 바다가 푸들푸들 살아 있다
날 것에서는 씹을수록 단내가 난다
아파트의 삼층 여자는
순하다고 소문난 남편에게 매를 맞았다
악을 쓰며 대드는 여자는 짐승처럼 울었다
이틀 후 여자는 시퍼런 눈을 가리고
남편의 팔짱 끼고 시장엘 다녀오곤 했다
갈고 다듬지도, 조미료를 치지도 않은
그들의 뒷모습엔 서로 할퀸 발톱 자국이
어느새 희미해져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갈기처럼 쓰러졌다 일어나는 날것의 생 속엔
배추 풋비린내가 난다
고무통 속 부대끼는 미꾸라지들 살 냄새가 난다
―정선, 「날 것 그대로」
이 시는 “날 것에서는 씹을수록 단내가 난다”가 중심 문장이다.
화자는 푸들푸들 살아 있는 새우를 초장에 찍어 먹으며 입 안 가득 단맛을 느낀다.
“엄지와 검지로 몸통을 꽉 잡고/ 파당거리는 머리 뜯어내고 돌려가며 껍질을” 까서 먹을 정도로 싱싱한 살점이 식욕을 자극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웃집 여자를 떠올린다.
“순하다고 소문난 남편”에게 매를 맞고 대들다 “짐승처럼 울”던 여자, 이틀 뒤에는 시퍼런 눈 가리고 남편 팔짱끼고 시장을 다녀오는 이웃집 여자.
고무통 속 부대끼는 미꾸라지들처럼 살 냄새 풍기며 살아가는 그 ‘날 것의 생’에서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단맛을 느끼는 것이다.
㉲ 촉각을 통한 대상 파악
짚을 만졌던 느낌은
뱀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차갑지가 않지 매끄럽지가 않지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하지
나를 낳고 동생을 낳고
금줄을 칠 때, 아버지 그 새끼를 꼬던 느낌은 어땠을까
낫으로 발바닥을 깎아도 꿈쩍도 않던 소는
달구지를 끌던 옛날 옛적 소는
짚으로 만든 그 신발을 신었을 때의 감촉이 또 어땠을까
짚을 만졌던 느낌은
옷이나 책이나 그릇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한참을 달라서
옛다, 너도 한번 꼬아보아라
아직 어린 나에게도 짚 한 단이 던져졌을 때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나의 손바닥은 그것을 싹싹 비벼 꼬았네
요만큼 새끼줄을 꼬면
꼬리처럼 또 엉덩이 뒤로 밀어내며
동그랗게 사리던 새끼줄의 즐거움을 알았다네
짚을 만졌던 느낌은
여자의 몸을 만졌던 느낌과는 달라서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하고 아직도 나는 그 느낌을 좋아한다네
자주 밤길을 오갔던 나는
짚단에 불을 붙이면 어디만큼 갈 수 있는지 그것까지를 다 알고 있다네
겉은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한 짚의 느낌을
속은 발갛고 재는 유난히 더 검은 짚의 육체를
―유흥준, 「짚을 만졌던 느낌」
“짚을 만졌던 느낌”과 “뱀을 만졌던 느낌”은 어떻게 다를까.
‘옷’, ‘책’, ‘그릇’, ‘여자의 몸’을 만졌던 감촉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한 느낌과 차갑고 매끄러운 느낌은 어떤 의미를 내포할까.
“짚을 만졌던 느낌”을 통해 시인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한 생명이 탄생하는 신성한 순간에 함께 하는 것이 짚이다.
고단한 삶의 노역을 일깨워주는 것이 짚의 감촉이다.
짚의 ‘꺼끌꺼끌하고 까칠까칠’한 감촉을 통해 이 삶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말하고 싶은 걸까.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동그랗게 사리던 새끼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일까.
㉳ 근육 감각을 통한 대상 파악
모시 반바지를 걸쳐 입은 금은방 김씨가 도로 위로 호스질을 하고 있다.
아지랑이가 김씨의 장딴지를 거웃처럼 감아 오르며 일렁인다. 호스의 괄약근을 밀어내며 투둑투둑 흩뿌려지는 환(幻)의 알약들
아 아 숨이 막혀, 미칠 것 같아
뻐끔뻐끔 아스팔트가 더운 입김을 토하여 몸을 뒤튼다. 장딴지를 감아 올린 거웃이 빳빳하게 일어서며 일제히 용두질을 시작한다. 한바탕 대로와 아지랑이의 질펀한 정사가 치러진다. 금은방 김씨가 잠시 호스질을 멈추고 이마에 손을 가져가 짚는다. 아 아 정말 살인적이군, 살인적이야
금은방 안, 정오를 가리키는 뻐꾸기 시계의 추가 축 늘어져 있다.
―김지혜, 「이층에서 본 거리」 부분
근육 감각적 이미지는 근육의 긴장과 움직임이 두드러진 이미지를 말한다.
이 시는 무더운 한여름 아스팔트 도로에 호스질 하는 ‘금은방 김씨’의 움직임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그 실감을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게 근육 감각적 이미지다.
‘흩뿌려지는’ 물방울은 ‘호스의 괄약근’을 통과하고 아지랑이는 ‘거웃’처럼 ‘장딴지를 감아’ 오르며 일렁인다.
‘아스팔트’는 “더운 입김을 토하며 몸을 뒤”틀고, ‘뻐꾸기시계의 추’는 ‘모시 반바지’ 속에 감춰졌을 ‘김씨’의 고환처럼 “축 늘어져 있다”.
시의 문면에 넘쳐나는 에로스의 물결, 몽롱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보듯 근육 감각적 이미지는 시에 강한 탄력성을 부여한다.
시에서 관념과 사물은 이미지를 통해 만난다.
이미지는 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오감에 관련된 이미지와 기관·근육 감각적 이미지로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근접감각과 원격감각이 그것이다.
근접감각이란 촉각·미각·후각 등 신체의 반응과 결부된 감각이고, 원격감각은 시각·청각 등 이성적 정신작용에 관련된 감각이다.
거리에 따라 이를 근접감각과 원격감각으로 나눠 부른다.
근접감각이 자연적이라면 원격감각은 문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생한 감각을 풍부하게 내장한 몸의 감각, 곧 근접감각이 이성의 통제 아래 있는 원격감각보다 정서적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유쾌한 시학강의(강은교·이승하 외 지음,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11.2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31)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2/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장옥관|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