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33)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4/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장옥관

[하지연 (하현식)]

시창작강의 - (133)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4/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장옥관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4

네이버 블로그 - 진짜정보, 완최/ 사람을 죽인 나쁜 곰 VS 곰을 죽인 나쁜 사람, 진실은?

㉮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는 정확하고 선명한 눈

수박을 우적우적 씹어 삼키고 난 그의 입에서

대여섯 개의 수박씨가 차례로 튀어나왔다.

벙어리장갑처럼 뭉툭한 혀는

이빨 사이에서 힘차게 으깨지는 수박 속에서

정확하게 씨를 골라내고 있었던 것이다.

수박을 먹으며 그는 하던 말을 계속 이었다.

그가 수박씨 다음으로 내뱉는 말들이

수박 파편들을 피해가며 정확한 발음을 내도록

혀는 쉴 새 없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저 작은 집으로 갈비와 맥주와 냉면이 들어가고

수박까지 남김없이 다 들어간 것은

입구멍 안에 어둡게 숨어 있는 혀 탓일 것이다.

먹을 만큼 먹어 더 먹을 마음이 없는 혀는

수고했다고 등 두드려주는 두툼한 손바닥처럼

이와 입술을 오랫동안 정성껏 핥아주었다.

실컷 먹고 마시고 떠들고 난 그는

개고기 끝내주는 집이 있는데 다음엔 거기 가지고

차만 안 막히면 한 시간에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중복 점심에는 다른 약속 하지 말라고

혀로 입맛을 다시며 내게 다짐을 받아주었다.

―김기택, 「혀」

범상한 일상인의 시각에서 벗어난 시인은 시간을 정지하여 대상을 해체한다.

이는 왕가위 감독의 장기인 스텝 프린팅 기법을 연상시킨다.

정상적인 속도보다 저속으로 촬영하는 기법이 스텝 프린팅 기법인데, 왕가위는 장면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이 기법을 즐겨 활용했다고 한다.

시인은 일상적인 평범한 장면을 지속적으로 돌아가는 카메라처럼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대상을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이를 통해 우리는 흔히 마주치는 익숙한 장면에서 익숙하기 때문에 더 충격적인 삶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정확하고 선명한 눈이다.

㉯ 사물의 빈자리를 보는 웅숭깊은 눈

사과를 손에 들고 꽃이 있던 자리, 향을 맡는다

꽃이 피던 자리에는 벌이 와서 울던 소리가 남아있다

아내에겐 미안한 일이다 꽃이 얼마간 피어있던

꽃받침을 아내는 기억 못한 것 같다 벼껍질로 남은

몇 개 꽃받침은 사과의 배꼽, 오목한 상흔, 낙화보다

슬픈 시간이 갔다 꽃은 자신을 얼마나 애지중지했는가

한입에 쪽이 지는 홍옥 소년의 향듯함, 해숙씨

사과 엄마는 그 연분홍 어린 꽃이 아니었겠니 그리고

어린 그 꽃은 과수의 아이가 아니었겠니

―고형렬, 「꽃자리」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과를 먹어치웠는가.

하지만 오목한 부분에 자리한 초록 흔적이 봄날에 얼마간 피어있던 꽃받침 자리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머물렀던 향기와 잉잉대던 벌의 날갯짓까지 생각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눈앞의 현상 너머를 바라볼 줄 아는 눈, 이는 상상의 도움을 입어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것이 진정한 관찰의 힘이다.

㉰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는 비유적 연상의 눈

진달래는 고혈압이다

굶주림에 눈 멀어

우글우글 쏟아져 나오는 빨치산처럼

산기슭 여기저기서

정맥 터질 듯 총질하는 꽃

진달래 난장질에

온 산은 주리가 틀려

서둘러 푸르러지고

겨우내 식은 세상의 이마가

불쑥 뜨거워진다

도화선 같은 물줄기 따라

마구 터지는 폭약, 진달래

진달래가 다 지고 말면

風病든 봄은 비틀비틀

여름으로 가리라

―강윤후, 「진달래」

쉽게 말해 상상력은 두 대상을 연결하는 힘이다.

시인은 비유의 힘을 빌어 두 대상을 하나로 연결한다.

비유의 핵심은 동질성의 이질성, 이를 통해 두 대상은 유추관계를 맺는데 두 대상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비유의 힘은 커진다.

이 시에서 ‘진달래’는 ‘고혈압’과 ‘빨치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진달래 산천」이라는 신동엽의 시도 있지만 ‘진달래’와 ‘빨치산’은 거리가 아주 먼 대상이다.

게다가 ‘고혈압’이라는 심상은 더욱 이질적이다.

이 대상들이 시인의 참신한 눈에 의해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그만큼 역동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다.

< ‘유쾌한 시학강의(강은교·이승하 외 지음, 아인북스, 2015)’에서 옮겨 적음. (2020.11.29.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33) 시는 어디서 오는가 – 시적 발상을 중심으로 6-4/ 계명대학교 문창과 교수 장옥관|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