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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4/257일차> 2012년 6월 24일(일) 뉴욕->보스턴, 맑음, 랍스터 향 진동하는 혁명의 요람
미국혁명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보스턴 항구.
실제 차 사건이 벌어진 곳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지만,
항구 입구엔 랍스터와 게, 굴 등 해산물 요리를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하고,
그것을 즐기는 시민들로 붐빕니다. 풍요의 나라라는 게 실감이 가죠.
아침 일찍 종원의 집을 나섰다.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주택가에 아침 햇살이 아름답게 비쳤다. 집 앞 주차장 너머가 바로 골프장이다. 잘 조성된 한국의 전원주택과 같다. 거의 모든 주택이 목조로 이뤄져 있다. 사실 한국의 전원주택이 이러한 미국의 주택가를 모델로 만든 것이다. 대도시를 제외하면 미국 대부분의 집들이 이렇다.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는 분위기다. 역시 풍요의 나라다. 상품이나 물자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땅도 풍부한 나라다.
뉴저지 종원이 사는 집.
조용한 주택가입니다.
하지만 이웃과의 소통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물건 하나 사거나 식사를 하기 위해서도 자동차를 타고가야 한다. 자동차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거리—길가에 상점이 있고 행인이 있는 거리는 아예 존재하지 않지만—에는 지나가는 사람도 없다. 모두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 사람 얼굴을 볼 일도 별로 없을 것 같다.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서 돈을 벌어 이런 교외에 주택을 마련할 경우, 아이를 기르는 주부에게는 그것이 ‘고립’으로 향하는 급행열차라는 것이 상상이 간다. 이웃과의 소통과 소규모 공동체 회복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지역이다.
집 옆에 바로 골프장이 자리잡고 있죠.
종원이랑 같이 집을 나서 차를 타고 던킨 도너츠로 가 샌드위치와 커피를 산 다음 프리스톤 정션(Priston Junction) 역으로 갔다. 외로웠던 나를 하루 종일 이곳저곳 데려다 주고 식사에다 잠까지 재워준 종원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뉴욕 펜 역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이곳 프리스톤 지역의 주민들이 뉴욕으로 출근하기 위해 이용하는 기차다. 역에는 커다란 주차장이 있어 거기에 차를 세워놓고 출퇴근한다. 종원이 “뉴욕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교통 수단을 경험하는 것”이라며 환송했다. 기차는 7시40분 펜역을 출발, 약 1시간10분 걸려 8시50분에 도착했다. 기차는 나무가 울창한 주택가를 쏜살같이 달렸다.
뉴욕 맨해튼의 펜역. 펜실베니아역입니다.
이곳에서 모든 장거리열차가 출발합니다.
뉴욕 펜역에서 다시 10시 보스턴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는 스탬포트(Stamford), 뉴런던(New London) 등 뉴욕 북동부 해안을 따라 질주했다. 날렵하기보다는 육중하고 강인한 느낌이다. 이곳 역시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평원지역이다. 잘 보면 숲속에 집도 있고, 도로도 있고, 상점도 있다. 풍요라는 말 이외엔 설명이 어렵다. 영국 콜로니스트들의 거주지인 셈이다. 이름도 뉴 잉들랜드, 뉴 런던이다. 이곳이 영국 이민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곳이다 보니 이런 이름들이 붙어 있다. “우리는 영국 콜로니스트다”라고 선언하는 듯하다.
맨해튼.
차들도 바쁘게 움직입니다.
예정대로 오후 2시 보스턴 사우스역(South Station)에 도착했다. 뉴욕을 출발한지 4시간 20분만이다. 역 대합실에 들어가니 한 가운데 서점이 자리잡고 있고, 그 주변으로 승객들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비치돼 있다. 여유 있는 공간배치와 서점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남미의 안데스 오지를 1개월 정도 누볐던 터여서 모든 것들이 다 새롭게 다가온다. 아마 서울에 있다가 보스턴으로 왔다면 서울과 조금 다른 정도로 인식됐을 것도, 제3세계의 변방에 익숙해져 있는 이방인의 눈에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설이 모두 낯설기만 하다.
보스턴 사우스역 구내.
역을 나와 걸어서 호스텔로 향했다. 인터넷에선 택시로 오면 5달러 정도가 들고, 지하철을 이용할 경우 한번만 갈아타면 된다고 했지만, 지도상으로 보니 1.5km 정도의 거리여서 아이폰의 GPS를 켜놓고 그걸 따라 걸었다. 역을 나오니 다운타운의 고층빌딩들이 맨 처음 눈에 띄었다.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다양한 형태의 빌딩이 눈 가득히 들어왔다. 시티 센터는 어디나 비슷하지만, 보스턴은 고층빌딩이 한 곳에 밀집돼 있어 아주 멋지게 보였다.
사우스 역에서 바라본 보스톤 다운타운.
시티센터와 가까운 곳에 차이나 타운(China Town)이 나타났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 이름이 ‘하이 보스턴 차이나 타운(Hi Boston-Chinatown)’으로, 호스텔로 가려면 차이나타운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 규모가 아주 큰 차이나타운이었다. 나중에 자료를 보니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차이나 타운이다. 가장 큰 곳은 뉴욕의 차이나 타운이다. 일종의 중국인 집단거주지역, 즉 차이니스 콜로니(Chinese Colony)인 셈이다. 보스턴과 차이니스 콜로니스들의 우호를 위해 세운 ‘우정의 아치(Friendship Arch)’가 있었다. 거기엔 ‘모두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의미의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고 큰 글씨를 새겨넣었다. 마침 오늘 일요일을 맞아 차이나타운에 장터가 열리고 있어, 중국인들은 물론 백인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흥성거리고 있다. 맑은 날씨가 사람들이 벅적거리니 큰 활기가 느껴졌다. 사람 냄새가 나는 느낌이다.
미국에서 세번째로 크다는 보스턴 차이나타운.
미국과 중국의 우의를 위해 세워놓은 아치가 입구를 지키고 있죠.
2시45분에 호스텔(Hostelling International(Hi-China Town) Boston)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오후 4시부터 시작한다. 로커에 짐을 맡겨놓고 호스텔 로비에 앉아 보스턴 여행정보를 정리했다. 역시 ‘자유의 길(Freedom Trail)’과 하버드(Harvard) 대학, MIT대학 등 대학 순례가 대표적인 볼거리다. 보스턴의 다문화(multi-culture)도 흥미롭다. 보스턴은 80개국 이상에서 온 사람들이 140개의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계와 중남미에서 온 라틴계, 대서양 카리브해 연안의 섬나라에서 온 아이티안(Hitian) 이민자가 많다고 한다. 시 정부 관광안내문에서도 보스턴을 ‘다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후 4시 조금 넘어 체크인을 하고 여장을 푼 다음 보스턴 시내와 공원을 산책하러 나섰다. 먼저 보스턴의 센트럴 파크인 ‘보스턴 코먼(Boston Common)’ 공원을 찾았다. 이곳이 보스턴에서 유명한 이른바 ‘자유의 길(Freedom Trail)이 시작된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기도 한데, 도시 건설 4년 후인 1636년 만들어졌다. 외면으로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공원이다. 가운데는 둥근 무대가 있어 청년들이 거기에 올라 한가로운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보스턴 코먼.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
보스턴 코먼 공원에서부터 시작되는 ‘자유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빨간 선 또는 빨간 벽돌로 코스를 표시해 놓은 것으로, 과거 자유를 향해 투쟁했던 시민들의 발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총 4km(2.5마일)에 이르는 길로, 모두 16곳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점들을 연결하고 있다. 1951년 윌리엄 스코필드라는 지역 언론인이 제안해 만들어졌다. 보스턴 코먼에서 시작해 구 메사추세츠 주청사, 파크 스트리트 교회, 구 의회 건물, 보스턴 학살현장, 구 노스 처치를 거쳐 찰스 강을 건너 벙커힐 기념관까지 주요 지점을 연결한다. 보스턴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 보스턴 차 사건)’ 현장이 빠져있어 이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어쨌든 보스턴 여행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도보여행 코스다.
도로에 나 있는 빨간 선을 따라가는 '프리덤 트레일'
그러나 잃기도 쉬우니 방심은 금물!
그런데 보스턴 코먼 공원에서 붉은 선을 따라 구 메사추세츠 주청사(Old Massachusetts State House)를 지나다가 그만 붉은 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전형적인 영국 소도시의 주택가와 같은 너무 아름다운 집들이 공원 옆에 줄지어 있어 거기에 한눈을 팔다가 보니 그만 붉은 선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집들을 따라가다 보니 저쪽에 보스턴을 가로지르는 찰스 강(Charles River)이 보였다. 너무 평화롭고 여유있는 모습이어서 그쪽으로 갔다.
옛 메사추세츠 주청사.
옛 메사추세츠 주청사 옆의 멋진 건물들.
이 건물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프리덤 트레일을 잃고, 찰스강으로...
처음에 생각하지 않은 코스로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 보스터니안(Bostonian)들의 일상적인 삶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변엔 조깅하는 사람, 보트를 타는 사람, 아이나 가족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한강변이 서울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듯이 찰스 강변이 주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나도 강안(River Bank)을 천천히 거닐다가 다시 다운타운으로 들어왔다.
찰스강변의 시민들.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 공간입니다.
잃어버렸던 프리덤 트레일을 다시 찾아 천천히 걷다가 이번엔 보스턴 항구로 향했다. 붉은 선을 따라가다가 또 다시 길을 잃은 것이다. 중간에 흥미로운 빌딩이나 장소를 발견하면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기 때문에 붉은 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다 다시 붉은 선을 찾아 돌아오는 것이 프리덤 트레일이기도 하다.
옛 시청사.
1840년대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보스턴의 지원을 기념해 만든 작은 공원.
처참한 당시 상황과 보스턴의 지원, 아일랜드 주민들의 보스턴 이주 등을 설명해놓았죠.
하지만 보스턴 항구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보스턴 차 사건(Boston Tae Party)’이 벌어진 곳이다. 1773년 12월 영국의 과도한 세금 부과와 동인도회사의 무역독점에 항의해 보스턴 항에 정박해 있던 선박에 실려 있던 342개의 차 상자를 부수고 차를 바다에 빠뜨린 사건이다. 이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투쟁, 이른바 ‘미국 혁명(American Revolution)’의 도화선이 됐던 사건이며, 각기 뿔뿔이 흩어져 있던 ‘콜로니스트들(Colonists)’을 ‘미국(America)’라는 이름 아래 통합시키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부터 인도의 콜카타, 미국의 미시시피 강에 이르기까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했던 영국은 당시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둘러싼 프랑스와의 전쟁(1754~1763, French and Indian War)으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디언과의 충돌이 잦아지면서 더 많은 군대를 미국에 파견해야 했고, 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이에 영국은 식민지에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고, 동인도회사에 무역 독점권을 부여했다. 차를 수출입하기 위해선 동인도 회사를 거쳐야 하도록 한 ‘차법(茶法, Tea Act)’도 이의 일환이었다. 미국인들은 이제 높은 세금이 부과돼 가격이 비싼 동인도회사의 차만을 마셔야 했다. ‘신세계’로 건너와 새로운 삶을 가꾸어가던 이주민들 사이에 ‘모국’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했다. 보스턴 차 사건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나자 분개한 영국은 군대를 보스턴 시내에 진주시키고, 보스턴 항을 봉쇄해 버렸다. 영국군의 보스턴 진주로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이 자신들을 ‘2등 시민’으로 보고 있음을 인식하게 됐다. 식민지 주민들은 실망스런 ‘어머니 국가’ 영국의 태도에 실망감과 반감을 품게 됐고, 이것이 이웃 13개 식민지 주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됐다. 고립된 보스턴 주민들을 위해 뉴욕과 사우스 캐롤라이나, 메리랜드, 코네티컷, 델라웨어 등에서 먹을 것과 돈을 지원하는 등 식민지 사이의 유대가 형성됐다. 1774년에는 필라델피아에서 1차 대륙회의가 형성됐으며, 1775년에는 보스턴 인근 렉싱턴에서 식민지 민병과 영국군 사이의 첫 전투가 벌어져 8명의 민병이 사망했다. 이를 계기로 2차 대륙회의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된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독립군, 즉 대륙군을 편성해 영국에 무력으로 대항하는 결의가 이뤄졌다. 이제 식민지 주민들은 ‘모국’ 영국에 충성하는 ‘콜로니스트(colonists)’가 아니라 ‘미국인(American)’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됐다. 인식의 혁명과 함께 1783년까지 8년에 걸친 미국의 독립전쟁에 들어가는 것이다.
올드 스테이트 하우스.
이곳에서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항구 입구에는 차 사건 당시 급진적인 조직이었던 ‘자유의 아들들(Sons of Liberty)’의 일원으로 이를 주도하고 나중에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의 동상이 있었고, 그 동상 뒤로 당시 시장이자 시민들의 회합 장소였던 퍼네일 홀(Faneuil Hall)이 자리잡고 있었다. 퍼네일 홀은 ‘자유의 요람(Cradle of Liberty)’라고도 불린다. 홀 안에는 프리덤 트레일을 사진과 지도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하는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관을 돌아본 다음, 항구로 향했다. 항구는 과거 격동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다. 항구엔 많은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고, 바다는 잔잔할 뿐이었다.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킨 사무엘 아담스의 동상과 퍼네일 홀.
보스턴 시민들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 독립의 역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일상적으로 보아서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형 시장인 퀸지 마켓(Quincy Market)과 사우스 마켓(South Market)은 물론 항구로 이어지는 길에는 랍스터와 게 스프를 파는 레스토랑이 줄이어 있었고, 저녁때가 되어 이를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거렸다. 거리는 풍성한 몸매의 미국인들로 홍수를 이루었고, 거리엔 마술쇼를 하는 사람까지 나와 흥겨움을 더해주었다. 풍요롭고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광경이었다.
퍼네일 홀 옆의 퀸지 마켓과 사우스 마켓.
랍스터 요리를 비롯한 각종 해산물 요리를 즐기는 시민들로 북적입니다.
조용하기만 한 보스턴 항구.
곳곳에 매어 있는 요트와 크고 작은 보트들.
항구를 돌아보고 다시 시티센터를 거쳐 숙소로 돌아오는데 해가 넘어가면서 보스턴 시내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숙소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버팔로 샌드위치(7.75달러)를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커피(2달러)까지 9.75달러를 주고 먹었다. 보스턴에서 꼭 보고 싶었던 프리덤 트레일의 일부분을 돌아보고, 미국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 차 사건의 현장까지 돌아본 뜻깊은 날이었다. 어제 종원과 하루를 보내고 오늘 역사적 현장들을 돌아보고 나서 그런지, 뉴욕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외로움이나 고독감은 희미해지고, 다시 여행자의 모드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내일은 프리덤 트레일을 제대로 돌아보리라 생각하면서 일찌감치 침대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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