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베드로전서 5:5-6
겸손해야 하는 이유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며 그대로 순종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은 겸손하기 때문이며, 불순종하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겸손한 순종형입니까, 아니면 교만한 불순종형입니까?
만약 "겸손하려고 하는 데, 쉽지가 않습니다"라고 말을 한다면
겸손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교만함을 알고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인정하므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온전히 아름답게 창조하셨지만,
그가 교만해져서 하나님처럼 되고싶어졌을 때(겔 28:12-15)
그는 그가 연주하던 악기와 함께 하늘에서 음부로 떨어졌습니다(사 14:11-15).
그래서 마귀는 어떻게하면 교만해지며, 지옥으로 떨어질 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자기처럼 지옥으로 끌고가려고
교만한 생각을 계속해서 심어줍니다.
그래서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 어디에서건 교만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교만한 그 사람 때문에 주위가 매우 어두워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위를 밝은 천국으로 만들기를 원하시지만,
마귀는 우리의 주위를 어두운 지옥으로 만들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별 생각없이 말과 행동을 할 때에는 쉽게 교만한 말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교만은 노력이 결코 필요치 않습니다. 배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나를 죽여야 하므로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고
배우고 또 배워도 쉽게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높여주라고 말씀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어떻게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길 수 있을까요? 그것이 과연 쉬울까요?
당신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내 동료 ~가 저보다 낫습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게 말했다가는 승진에 문제가 생길까봐 못할 뿐만 아니라
상사가 그 동료를 칭찬하면 오히려 그를 깎아내리지만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내가 손해보더라도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남을 나보다 높여주는 것이 바로 "겸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하실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는 데 그 은혜가 바로 높여주신다는 겁니다.
즉 높아지고 싶으면 나를 최대한 높아지고 싶은 만큼 낮추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 우편에서 심판자의 자리에 앉게 되셨습니까?
예수님은 최대한 낮출 수 있는 만큼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 수 있으십니까?
만약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다면, 천국에서 매우 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겸손하면 이렇게 높여주시기 때문에 겸손해야합니다.
그러나 교만하면 하나님께서 대적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적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대책이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헤어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장로'라고 칭한 것으로 보아 본문 5절에서 '장로'라는 호칭은 오늘날의 목회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젊은자들아"라고 한 말은, 물론 젊은이들을 향해 쓴 글이지만
젊은 사람들처럼 아직 철이 덜 든 사람 또는 아직까지 혈기 왕성해서 교만하기 쉬운 사람,
그래서 순종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다시말해서 교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교만히 행할 때에 유익이 없다고 하십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유익만 없는 것이 아니라, 본문은 하나님께서 그를 대적하신다고 하십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그러면, 겸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라고 본문은 말씀합니다.
"허리를 동이다"라는 말은, 그 당시에 노예들이 헐렁한 원피스 옷을 앞치마로 동여맨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기 전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 위해서
허리를 동여매셨던 것을 기억하고 이 글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즉 예수님처럼 노예의 자리까지 낮아져서 나보다 낮은 이들을 섬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스승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스승과 결코 동격이 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스승이 친히 앞치마를 두르고 물을 떠와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가 하던 일을 스승이 제자들에게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집안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다면,
예수님처럼 나보다 낮은 이들의 종이 된 것같이 섬길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섬겨줄 수 있습니까?
(당신은 겸손한 사람입니까?)
오히려 가족들이 당신에게 무릎을 꿇고 섬겨주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교만한 사람입니까?)
겸손한 사람은 누구의 말이든 잘 듣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율법을 주시며 그 말씀을 청종하고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귀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나아만장군에게는 계집종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의 말이건 그를 나보다 낫게 여기며 그의 말을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결코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잠 13:1)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잠 13:10)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이라"(사 30:9)
그들은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말만 하기를 즐깁니다.
"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잠 18:2)
"...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마 13:15)
특히 여러 사람이 있는 앞에서는 더욱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무시합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나뉘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잠 18:1)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시 58:4)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배울 수가 없습니다.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잠 21: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잠 21:24)
"...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 13:11)
그리고 교만한 사람은 윗사람의 말도 잘 듣지 않습니다.
항상 잘못된 것을 찾아내서 불평하느라 시간을 허비합니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24:50-51)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 25:21)
또 겸손한 사람은 항상 귀를 열어놓고 배울 자세를 갖고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찌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잠 20:5)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잠 13:13)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롬 10:17)라고 했듯이 잘 듣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마 13:9)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한다면, 잘 듣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말을 막고 듣지 않는 것입니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 18:13)
말하는 사람을 100% 믿는다면, 그 사람의 말을 결코 막지 않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없어도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정해주고 끝까지 들어줍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말을 인내심을 갖고 듣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6)
"배움은 들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잠 14:6)
또한 겸손한 사람은 말을 아무렇게나 하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조심성있게 말을 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대결하여 나 스스로 높아지려고 발버둥쳐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높아지고 싶습니까? 최대한 할 수 있는대로 낮아지십시요. 자신을 죽이십시요.
그러려면, 나보다 어리거나, 계급이 낮거나, 무식하거나, 가진 것이 없거나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는 습관부터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잘난 사람을 진정으로 존경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나보다 잘난 사람을 절대로 보지 못합니다.
그가 아무리 바른 말을 할지라도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당신도 이러한 면이 없는 지 말씀 앞에서 겸손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교만함으로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당신의 뿔을 꺾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너희 뿔을 높이 들지 말며 교만한 목으로 말하지 말찌어다.
대저 높이는 일이 동에서나 서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5-7)
내가 높아지고 낮아지는 것은 나 스스로는 절대로 할 수 없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스스로 낮아져서 가족과 이웃과 목회자를 예수님의 희생과 헌신의 자세로 섬겨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당신을 높여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오늘부터 낮은 포복 훈련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받은 은혜와 감사의 제목은?
김 수 경
†he 2nd Life Foundation
Esther Soo-Gyung Kim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As for me and my house, we will serve the LORD!
(Joshua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