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호와 수몰전 덕재마을 모형도
고향잃은 실향민들의 한을 담은 '징소리'는 70~80년대 피폐한 농촌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지이잉 징. 징.
고향잃은 실향민들의 설움이 이럴까. 둔탁하면서도 엷은 듯 강하게 울려 퍼지는 징소리. 수몰마을 사람들의 한을 담은 이 소리는 단순한 금속성의 울음이 아닌 인간다운 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고향의 의미를 일깨우는 깨우침의 소리다. 문순태 선생의 소설 '징소리'는 지난 1978년 12월 '창작과 비평' 50호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수몰지 실향민들의 고향 상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특히 소설은 장성 방울재라는 수몰지구를 배경으로 거대한 댐 건설로 인해 실향민들이 엮어가는 '고향 상실의 아픔'을 구체적으로 보여줘 농촌에 불어닥친 산업화의 문제점을 부각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오늘날의 황폐한 삶이 6·25 이후 민족 분단의 비극적인 역사와 깊숙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취재진은 문순태 선생과 함께 지난달 29일 '징소리'의 작품 속 배경지인 장성 북상면 일대를 찾았다.
장성 북상면 덕재마을은 장성댐 건설로 수몰된 실제 공간으로 소설에서는 방울재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 북상면 덕재마을은 지난 1973년 7월 영산강 유역 종합개발로 영산강 일대의 부족한 농업용수를 얻기 위해 장성댐 공사가 착공된 후 수몰됐고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 5천800여명은 몇 푼 안되는 보상비를 받고 강제 이주를 당했다. 전국으로 흩어진 북상면 사람들은 "정부에서 시키는 대로 고향을 내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며 고향을 떠났지만 보상을 받은 돈으로는 겨우 집 한 채 마련하거나 심지어 살 집조차 마련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강제 이주를 당한 이들은 현재 장성 인근의 대도시인 광주시와 서울 등 전국에 뿔뿔이 흩어졌지만 향우회를 중심으로 수몰문화관을 건립하는 등 활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날 취재진이 찾은 수몰문화관은 일반인들에 상시 개방되기 보다는 향우회가 독자적으로 관리해 일부에만 개방되는 특정집단의 소유물로 문화관으로서의 기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였다. 문화관을 관리하는 한 관계자는 "수몰문화관은 향우회가 향우회원들의 단합과 수련을 위해 자체적으로 마련한 이용시설이다"며 "향우들의 쉼터이기 때문에 문화관의 관리 등을 군이 맡아서 할 일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수몰문화관은 지난 2004년 11월 댐 건설 당시 수몰민들이 물 속에 잠긴 그들의 고향을 복원해 영원히 남기자는 취지로 건립됐다. 특히 건립당시 문화관은 문순태 선생으로부터 장성 수몰지역 역사에 대한 아픔을 전달한 소설 '징소리' 원작과 소설 속 상징물인 '징', 화가 한희원씨의 '허칠복' 등 소설 작품 속 주인공들을 그린 판화 작품 등을 기증받고도 문화관 개방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 작품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소설 속 상징물인 '징'은 선생이 덕재마을이 수장될 때 가지고 나온 징을 보관해 왔던 귀한 것이다. 문화관 관리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수몰 현장인 장성댐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선생은 "소설 창작 당시 한 마을 주민이 수몰된 마을을 구경시켜 준다며 배를 타고 댐을 돌아본 적이 있는데 물 밑으로 수몰된 초등학교와 우체통, 네거리 등 모습이 그대로 있어 깜짝 놀랐다"며 "아직도 그 때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징소리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그들의 아픔과 그들이 다시 고향을 찾으려는 방황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며 "이 작품을 통해 고향이란 단순히 현실적 공간으로서 태어난 장소가 아닌, 우리 존재의 본질이며 곧 인간성을 되찾자는 상징적인 의미임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장성댐 주변을 말없이 돌아보던 선생은 "모든 소설은 시대적인 역사성을 가지지 않고는 사랑받을 수 없다"며 "70~80년대 산업화에 밀려 농촌산업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드러내지 못했을 당시 농촌사회의 실상과 고향잃은 실향민들의 한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꾸준히 읽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생의 모습 뒤로 수몰된 마을 아래 저편에서 징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지고 있다.
= '징소리'와 고향 "잃어버린 것은 고향만이 아니다"
소설가 문순태
70년대에 우리나라에는 산업화 바람이 한창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산업화 하면 도시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조세희, 황석영, 윤흥길 등의 작가들은 도시 산업화의 문제점을 찾아내 소설적 형상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농촌에 불어 닥친 산업화 부작용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들을 갖지 않았다. 수자원 개발을 위한 댐 공사 등 농촌 산업화는 농업근대화라는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산업화의 그늘에 가려진 채 고향에서 뿌리가 뽑혀져 먼지처럼 도시 빈민으로 가라 앉아버린 사람들도 말았다. 이 무렵 나는 장성댐을 소재로 농촌 산업화의 재물이 되어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민의 삶을 '징소리'라는 소설을 통해 드러내 보이려고 했다.
나는 요즘도 '징소리'의 무대인 장성댐에 자주 간다. 댐의 거대한 구조물은 여전히 위압적이고, 호수의 에메랄드 물빛은 찬란한 물비늘을 일으키며 한여름 햇살에 눈이 부시다. 깊은 물속에서는 개 짖는 소리며 갓난아기 울음소리, 해질녘 다급하게 아이를 불러대는, 칼칼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지난날의 모든 그리움은 물속에 옴씰하게 가라앉은 채 말이 없다.
이곳에 댐이 들어선 것은 1973년이었다. 장성군 북상면이 모두 물에 잠겼고 5천8백여 명이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얼마 안 되는 보상금을 받은 수몰민들은 도시의 밑바닥에 먼지처럼 존재의 흔적조차 없이 가라앉아 버렸다. 그 무렵 나는 고향을 잃고 도시빈민으로 전락해버린 수많은 실향민들을 만나, 그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이 소설을 쓰면서 나는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이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고향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간직해온 역사, 문화는 물론 사랑, 희망, 믿음까지도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문명의 첨단시대에 고향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라온 공간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고향을 인간존재양식으로 파악하고자했다. 고향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진정성을 상실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 같은 생각은 농경산회의 낡은 유물이라고 비판할지 모른다. 이 시대에 고향을 다시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것은 퇴영적 사고이고 낭비적 과거집착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파편화된 익명사회에서 고향은 인간적 삶의 진정성을 회복시키기 위한 마지막 희망의 길이 아닌가 한다.
'징소리'가 발표돼 처음 세상을 울렸던 때가 생각난다. 그 때 많은 평론가들은 " 잠든 영혼을 일깨우는 '징소리'는 한국적 한의 정통을 이은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그 때 나는 '작가의 말' 에서 "주인공 허칠복의 고향이 물에 잠겼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고향은 망각이라는 무덤 속에 갇혀버렸는지 모른다"고 썼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고향은 어머니의 자궁이며 내 소설의 뿌리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6·25로 인해 고향을 떠난 지 55년 만에,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어쩌면 내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앞으로 내 고향의 텃밭에 소설의 씨앗을 뿌리고 열심히 가꾸면서 살아갈 것이다.
무등일보/글=김옥경기자·사진=프리랜서 오종찬·그림 화가=조근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