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월 10일 31살의 나이에 생을 끝내버린 전혜린. 그가 죽은 지 51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는 잊혀지지 않았다. 죽음의 유혹 속에서도 끊임없이 살고 싶어 했던, 한편의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그가 왜 죽음을 택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를 잊지 못하는가?
전혜린은 1934년 1남 7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법률가이며 천재로 불렸던 아버지(일제시대 관리)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세 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다. 아버지가 사다주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1952년 부산에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내 한마디는 아버지에게 지상명령이었다. 나를 무제한으로 사랑하고 나의 모든 것을 무조건 옹호한 아버지를 나는 신처럼 숭배했다.”
전혜린은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뮌헨에서 유학(독어독문학과) 했다. 그가 독일로 떠난 것은 어쩌면 아버지의 권력에 대한 최초의 도전이었다. 수학을 빵점 받은 여학생이 타 과목에서 고득점을 받아서 서울대 법대에 차석으로 입학하면서 그의 천재성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소망대로 법대에 진학했으나 법보다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여고시절 단짝 주혜가 다니는 문리대 강의실에서 문학 강의를 몰래 들었다.
“일반적으로 장녀가 그렇듯이 나도 부모에 의뢰하고 부모를 무서워하면서 밀착하고 있는 편이었다. 또한 흔히 딸이 그렇듯 아버지를 숭배하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아마 일생동안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수 없으리라 생각된다.”
“지식을 높이 평가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귀여워해 주셨다. 물질, 인간, 육체에 대한 경시와 정신관념, 지식에 대한 광적인 숭배는 거의 영아기부터 내 속에서 싹트고 지금까지 내게 붙어있는 병인 것이다.“
“아버지는 가끔 나를 데리고 부둣가(압록강)에 가셨다. 어느 날 뗏목이 내려오는 것을 본적이 있다. 나는 뗏목이 안 보이게 될 때까지 부둣가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지 전신이 흔들리는 듯한 감동이 어린 내 마음을 찔렀다. 먼 데에 대한 그리움, 어디론지 멀리멀리 미지의 곳으로 가고 싶은 충동은 그 때부터 내 마음에 싹튼 것 같다.”
그녀는 이후로 자신의 피에 보헤미안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느꼈고 이국적 도시인 뭰헨에서 그것은 더욱 눈뜨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만의 시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이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을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그가 뭰헨의 작은 마을 ‘슈바빙’에 살면서 자유로움을 알았고 타인의 이목에 구애되지 않는 삶을 배웠고 그곳을 늘 그리워했다. 한마디로 그는 슈바빙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푹 빠졌다.
“내가 살았던 슈바빙의 분위기는 아무도 안 읽는 시를 쓰고, 누구도 안 사는 그림을 그리면서 굶다시피 살면서도 오만과 긍지를 안 버리는 사람들로 늘 가난했다.“
1955년 전쟁이 막 끝난 가난한 나라에서 독일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런 시대에 전혜린은 홀로 독일로 건너가 철학자 니체와 그의 연인인 소설가 루 살로메의 작품을 공부했다. 긴 겨울과 뮌헨의 젖은 공기 때문이었을까. 우울증으로 자살 기도를 한 적도 있고, 돈이 없어서 일주일 동안 물만 마시며 버티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자유를 풍족하게 누린 뮌헨에 대한 동경심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돈이 떨어지다. 배는 다소 고프지만 나는 즐겁다. 오늘은 가을 하늘이 멋이 있었고, 나의 머리는 니체와 루 생각으로 가득찼으니까.”(1958년 11월 5일)
새해가 되면 늘 그녀는 기도를 했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어떤 엄청난 일, 무시무시하도록 나를 압도시키는 일, 매혹하는 일, 한 마디로 ‘기적’이 일어날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썰매 타는 아이들로 번잡했던 호수가 오늘은 깨끗이 녹아서 푸르디푸른 물이 출렁인다. 백조는 언제 돌아올까? 바람이 몹시 분다.” (59년 1월 7일)
결혼 후 그는 자기만의 정신세계로 더 깊이 빠져든다. 그가 남긴 일기와 편지들은 모두 본질적 자아를 찾기 위한 고통과 아픔이 마치 뮌헨 특유의 젖은 공기처럼 문장에 눅눅하게 배어 있다. 부친이 정해준 법률가 남편 김철수와 결혼한 그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철수를 좋아했다.
“오늘 철수는 나에게 자그맣고 예쁜 손목시계를 선사했다… 정말 기뻤다. 철수는 그 외에 나에게 값비싼 빨간 장미 한 송이와 예쁘장한 카드를 선물로 주었다. 정말 말할 수 없이 그가 고마웠다. 새해에 내가 바라는 것은, 1.건강, 건강, 건강! 2.좋은 과제와 성공 3.철수의 성공 4.건강하고 영리한 아이 5.약간의 돈.”(59년 1월 1일)
- 참고로 철수(김철수)는 대한민국 헌법학자
그녀는 싫어하는 것이 명확했다.
“모든 평범한 것, 사소한 것, 게으른 것, 목적 없는 것, 무기력한 것, 비굴한 것을 나는 증오한다! 자기 성장에 대해 아무 사고도 지출하지 않는 나무를 나는 증오한다. 경멸한다.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다. 저열한 충동으로만 살고 거기에도 만족하지 않는 여자를 나는 증오한다. 나무는 하늘 높이높이 치솟고자 발돋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에까지 닿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그것이 허락되지 않더라도….닿을수 없는 것,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지 않으면 인간은 그저 좀 교활한 동물일 뿐이다.”(59년 1월 15일)
전혜린은 여러 사람의 영향을 받았다. 그가 번역한 루이제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주인공 니나 붓슈만, 루살로메, 니체 그리고 헤르만 헷세다. 별 이야기는 아마도 데미안의 엄마 에바가 싱클레어에게 이야기한 별을 사랑한 청년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그가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마 루 살로메가 소설가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전혜린이 한국어로 번역한 <생의 한가운데>의 주인공 니나의 독백이 떠올랐다.
“생이란 아는 것, 무섭게 많이 아는 것과 생각하는 것과 모든 것에 파고드는 것이었어. 그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었어.”
본질적 자아를 찾으려는 전혜린의 노력은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의 작품을 번역하면서 더욱 깊어진다.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로부터 답신을 받기도 했다.
“오늘 아침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받고 즐겁게 놀랐다. 그 속에는 석 장의 그림엽서와 헤세의 축하인사가 들어 있었다.… 난 그것을 무조건 1959년 새해의 길조로 여기고 싶다. 그것은 틀림없이 커다란 기쁨을 내 일에 가져올 것이다.”
서울로 돌아온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그의 글과 말에는 늘 권태와 광기가 서려 있었다. 수면제와 커피 없이는 견디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예민해져 있었다. 숨 쉬는 순간순간을 치열하게 느끼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분노하고 외로워했던 여자 전혜린.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했지만 1964년에 그들은 이혼했다.
검은 옷, 검은 스카프를 두른 유난히 눈빛이 깊은 여자는 끝없이 담배를 피우고 웃고 이야기했다. 4·19혁명, 5·16 쿠데타, 6·3사태를 지나오며 이념과 현실, 그리고 자아 사이에서 고뇌할 때 학림다방과 은성은 권태와 광기를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다. 뮌헨에서 정신적 자유를 맘껏 누리다 온 전혜린은 하루하루가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린 학교도 그에겐 해방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순수한 영혼으로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디에도 없었다.
순수한 영혼의 대화를 나누었던 스무 살 제자와 사랑이라는 탈출구를 찾았을 때,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아들을 놓아 달라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 ‘독수리’처럼 날아왔던 사랑은 ‘참새’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렸다. 그녀가 죽기 4일전 1월 6일 ‘장 아제베도’에게 쓴 편지엔 이렇게 적었다.
"장 아제베도!
내가 원소로 환원하지 않도록 도와 줘! 정말 너의 도움이 필요해.
나도 생명 있는 뜨거운 몸이고 싶어. 가능하면 생명을 지속하고 싶어.
그런데 가끔가끔 그 줄이 끊어지려고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때면 나는 미치고 말아.
내 속에 있는 이 악마를 나도 싫어하고 두려워하고 있어. 악마를 쫓아 줄 사람은 너야.
나를 살게 해줘."
젊은 연인 장 아제베도는 참새처럼 떠나버린 청년이었을까.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는 그가 죽은 뒤에 발견되었다.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거듭 밝혔던 동생 채린과 모든 것을 초월한 가장 순수한 사랑을 나눈 친구 주혜, 그리고 딸 정화조차도 그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
소녀 시절부터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했던 전혜린. 치열하게 고민하고 순간 사랑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끝내 행복에 이르지 못한 그의 죽음은 자신의 존재론적 삶에 대한 저항이었으리라! 그는 자살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생을 사랑했다. 살아있음에 행복해 했다. 자살했다면 그는 그 흔적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그는 수면제를 먹고 오랫동안 잠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깨어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누구보다 살고자했다.
“격정적으로 사는 것,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전혜린 그녀를 따라다닌 명제는 “절대 평범해서는 안 된다.” 주제가 있는 삶, 그녀는 에로스보다 타나토스와 가까웠다. 어떻게 사느냐에 고민했고 어떻게 죽느냐에 감탄했다. 파우스트처럼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던 인식욕, 평범을 거부하는 삶, 자유로운 영혼 니나와 루를 따르고 싶었던 그녀는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졌다. 검은 외투에 검은 머플러 그녀는 세계나 국가나 민족에 관심이 없다. 또한 자신의 생물학적인 분야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졌다.
“지금도 앞으로도! 꿈 없이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현실만이 전부라면 인간은 살아갈 가치가
없는 무엇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꿈이 있고 그것을 향해 질주할 수 있는 유년기는 실낙원이라고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은 부도덕한 일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 서른이 되고 그렇게 경계했던 꿈 없이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역겨웠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살았던 그녀는 죽음 속으로 비틀거리며 들어가 버린 것이다. 한참을 잠 속에 자신을 묻고 싶었으나 그는 깨어나지 못했다. 가을이면 앓는 병처럼 존재의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그의 삶과 죽음을 탓할 것인가?
첫댓글 고등학교시절 전혜린을 영혼의 연인으로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동경했던 여인,
그녀처럼 절대 평범한 삶을 살지 않고자 나름대로 치열하게 노력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여인입니다!
더운 여름날 아침, 오랜시간 잊혔졌던 기억을 되살리게 해줘서 감사!
존재한다는 것이 참 아플 때가 많지만,
교활한 동물이 되지 않으려면 그 무언가를 위해 격정적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오늘도 그녀의 글이 비수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않았다의 전혜린에 빠져서 슈바빙을 찾았다. 8월이라 겨울의 우울한 분위기와 가스등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딸을 무척이나 사랑했음에도 떠날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그녀처럼 미지와 먼곳에의 그리움으로 현실속의 내가 싫어졌던 나의 젊은날이 생각난다.
저는 왜 그녀의 죽음에 욕하고 싶을까요?~ㅋㅋ
전 여사 못지 않은 반골이십니다, 그려..
고교시절 그녀가 쓴 책을 읽으며 제일 부러웠던 것은 헤르만 헤세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헤세와 동시대인이었다는 사실이었어요 ^^
그녀의 물기 머금은 문장들에 영향을 받아 사춘기 시절이 더 서늘했었죠. ㅠ.ㅠ
저는 그녀가 자살했다고 생각되지 않았어요.
그러기에는 삶을 넘 치열하게 살았기에....
저도 대학 시절 전혜린과 <생의한가운데>의 니나를 동경했습니다.
그들을 흉내내느라 저도 약간은 광기어린 눈빛이었던 시절 맨발로 도로의 노란 중앙선을 따라 걷기도 했었죠~~~
그 시절엔 누구나~~~
어른이 된 어느날 강석경의 <숲속의 방>을 다시 읽어보니 어린시절엔 참으로 나와 비슷하다 여겼는데
이런!!! 아불싸!!!!전혀 다른 느낌에 참으로 놀랐습니다.
지금이 그렇네요. 생물학적인 분야 없이 어찌 영혼이 존재하겠습니까??? 아무 부족함이 없는 것 이것이 아주 큰 독일 수 있음이 이제는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