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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20년 전에 출간되어 경제학 분야에선 이미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내용이지만, 나로서는 뒤늦게 이번 기회에 읽어볼 수 있었다. 특히 당시 거센 압력으로 작용했던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책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과 더불어, 후발 국가들을 향한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압력이 문제시되던 시기였다고 기억된다. 현재의 경제 성장을 이루기까지 자국의 산업을 온갖 정책과 제도 그리고 편법들을 동원했던 선진 국가들이 후발 국가들에 대해 동등한 조건 하의 경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비판이 비등하였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은 결국 선진 국가들이 각종 보호주의와 유리한 제도들로 인해서 쉽게 올랐던 사다리를 걷어차, 후발 국가들이 오르지 못하게 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주장이라고 하겠다.
책 표지에 기록된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선진국들이 현재 후진국들에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이 경제 발전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잇다. 2002년 영어로 먼저 출간된 후 한국어로의 출간은 저자가 아닌 번역자의 손을 빌었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이 직접 번역 작업을 하게 된다면 내용을 수정을 하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며, 만약 그렇게 되면 원저와는 전혀 '다른 책‘이 될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 ’번역 출간을 고집‘했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우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고, 나름의 원칙으로 인해 한국의 독자들도 원저에 충실한 번역본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여겨진다.
이 책은 ‘14세기 영국에서부터 20세기 후기의 동아시아 신흥 공업국들에 이르기까지 현 선진국들이 사용하였던 정책’을 살피고, 이들을 서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사를 조망하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물론 산업화가 막 시작되었던 14세기의 영국과 자본주의 체제가 견고하게 작동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20세기 후반의 경제적 토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하겠다. 더욱이 이제는 지체되고 있는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선진국들이 후발 국가들에게 강요하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또 다른 문제점들이 부각되고 있기도 한다. 저자도 결코 동일한 조건과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세계 경제사의 흐름을 살피면서 비록 서로 다른 환경이지만 서로의 조건을 비교함으로써 문제를 예각화하여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경제 정책이나 제도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통계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고 여기지 않지만, 이 책에서 설명하는 세계 경제사의 흐름과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을 비교하는 논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개항을 할 때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불평등 조약’이 이른바 선진 국가들의 경제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폭력적’ 조치였음은 잘 알고 있다. 선진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자유주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현재의 상황도 결코 다르지 않다고 이해된다. 최근 트럼프가 다시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앞으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통상 정책이 더욱 거세질 것은 자명하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20년 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앞으로 전개될 세켸 경제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한 좋은 교재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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