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의 죽음
김 용 훈
브란따스 강가의 병든 여인은 시인이다.
겁겁 (劫劫)이 뭉 틀어진 인간사
어찌 하오리까 어찌 하오리까
잠긴 목소리는
브란따스 강가의 절망은 가슴 가슴마다 활화산(活火山)! 가슴에 맺힌 피를 토해 낸다.
불꽃으로 타오르는데
죽음같이 모진 목숨은
풍요로운 가난은 실날같은 초승달을 바라보면서
가난 때문에 아는 진실을 가슴속에서 한주먹 퍼내 올린다.
시인(詩人)은 언어의 마술사도 연금술사도 아닌 것을
타버린 종이로 휘날리는 재가 되어 한마디 신음의 언어로
브란따스 강가의 시인은 가난을 노래한다.
브란따스 강굽이 휘어 도는 혼이 되어
가난의 아픔이 아는 풍요로운 지혜의 진실은
시인만이 가지고 있는 가슴이기에
백골이 진토 되어도 외마디, 진리의 언어를 보듬고 운다.
오늘, 한마디 진실의 노래를 위하여
어린 딸이 한사코 건너 주는 음식을 외면한 체
흐르는 브란따스 강물을 그렁그렁
눈(目) 속에 가득이 담고
아,
절규하면서
질긴 목숨, 오늘 하루만이라도 죽어보았으면.
브란따스 강가의 병든 여인은 시인이다.
브란따스 강가의 천사들의 날개
브란따스 강가에는 천사들이 산다.
먹지 않고도 사니 이들은 천사들이다.
달빛 드리워진 강가에는
거미줄 같은 숨소리로 생명을 이어가는
고단한 하루의 세월이 희미한 가로등의
불빛 속에 생명의 고동소리
자잘한 강물의 파도위에 부서진다.
강가의 어린이들 낮에는 햇볕에 그을린
벌건 몸뚱이 강물에 담구고 허우적허우적 날갯짓을 한다.
물속을 자맥질하는 브란따스 강가에 사는 어린이들
물위로 고개를 쳐들고 하얀 이 들어내고 내일을
약속하면서 히히히 웃는다.
해맑은 웃음 따라 해님도 웃고,
흘러가는 세월도 흐르는 강물도
함께 웃고
브란따스 강가의 어린이의 웃음은
순진 무궁한 천사의 날개 되어
허우적거리는 자맥질의 물소리와 같이
하늘 끝, 간대까지 내일을 향해 날아오른다.
브란따스 강가의 천사들의 날개는 해밝은 웃음이다.
불원(온)동(burondong)에 가보라
불원(온)동에 가보라
달도 별들도 바다 속에서 쉬고
이세상이 저세상이요
저세상이 이 세상이라네.
오라 하는데, 가는 길은
지척인 듯 천리 길이요
천리인 듯 지척이라네.
달그림자는 바닷가에서 서성이고
별빛을 쓸어안은 세월은 발걸음을
멈추고, 멈춘 세월을 내려다보고 있다네.
웬, 낮선 사나이가
오는 세월에 오는 이 없고,
가는 세월에 가는 이 없는,
정지된 시계를 내려다보면서 착각의 늪에 빠져
하늘엔 듯 바다에서 하늘을 찾고,
바다엔 듯 하늘에서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네.
불원(온)동에 가는 길은 타박타박 걸음, 지칠 만도 한데
웬걸,
망각의 늪에 빠져 어제 있었던 일마저 잊어버리고
바다 속에 빠져버린 세상이 달과, 별과,
구름과, 하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네.
바람이 불자
하늘에 걸린 세상이
바다 속에서 물결에 일그러지네.
불원(온)동에 가라.
異國인데도 그 이름의 뜻 때문에
우리는 불원(온)동에 가봐야 한다네.
불원(온)동은 돌아가야 할 우리들의 고향과 같은 이름이라네.
밤중에 배를 타고 불원동 바다로 가거라.
그곳에 가면
무너진 마음들을
모둠거릴 수 있거늘
서성이는 삶들을
일목요원하게
순서에 맞추어 한 줄로
세워지는 곳이거늘
두고 온 건너편이
현실에 비취어 아득한 곳에 있어도
불원(온)동은 현실과 과거가 共存하는 곳
어느 때는 存在의 가치가 불안하여
두려워 할 때가 있을 지라도
불원(온)동에 가면 미움은 있을 수가 없다네.
사람들은 불(온)원동 가는 길은 멀다하지만
그러나 그 길은 멀지 않네.
理想鄕도 아니요
그 길은 우리의 현실이라네.
친구여 부탁하노니
밤중에 배를 타고 나의 등불을 모두 끄고
불원(온)동 바다 한가운데로 떠나 보아라.
그곳에 가면
하늘의 별들과 바다의 별들과
하늘의 달과 바다의 달과
하늘의 하늘과 물과 물이
건너편의 건너편과 이곳과 이곳이
나 있음에 너의 존재도 확실해지는 곳이라네.
불원(온)동에 가거들랑 바다위에서
밤중에 나의 등불이 꺼졌을 지라도
새벽을 항해하는 길목을 억지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네.
그 곳은
하늘과 바다가 맞닥뜨려
분간하기 힘든 別天地 아닌가.
하늘의 뜻과,
땅의 뜻이,
바다로 떨어져 하나로 합쳐진 곳이라네.
불원(온)동에 가려거든
꼭,
이렇게 가소
밤중에
등불이 꺼진
배를 타고
동쪽바다로.
사라진 가을 풍경
그날은 소스라치게 가을바람이 불었네.
바닷가에 촘촘히 얼굴을 맞대고 서있던 갈대들이
얼굴을 비벼대면서 웃어대고 있었네.
그 웃음소리가 한가득 가슴속을 후비고 파고들어왔네.
저 남해바다 끝으로 낙조는 드리워지고.
그 낙조사이로 물새 한 마리 외롭게 날아갔네.
외로움으로 피어나는 환장(換腸)이여!
차라리 참을 수가 없었네.
멋쩍고 부끄러워 사방을 둘러보았네.
다행히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갈대밭 사이로 드리운 샛길 같은 논두렁에
두 다라 뻗고 주저앉아 엉엉 울었네.
해질녘 가을바람에 싸늘하게 하늘거리는
들국화 한 송이 지나간 과거를 보듬어 안고 같이 울었다네.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참을 길이 없었다네.
실컷 울고 나니 멋쩍기도 했네.
훌쩍거리면서 집에 돌아왔네.
그 후 가을 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 때문에
소스라치게 아름다운 가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을 울렸던 그 풍경이 싫어 가을을 피해 이국에 왔는데
지금은 사라진 그 가을 풍경이 나을 울린다네.
부란따스 강가의 나그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은 흘러가고
가슴 가득한 꿈은 이미, 뒤돌아보아도
그리움이 되어 다시는 오지 못할 길,
어이
추억은 슬픔까지도 아름다운 것이라네.
그러나
돌아 갈수만 있다면 저 흐르는 강물에
배 띄워
지난날을 거슬러 노를 저어 가련만
눈물 머금은 지난날도 즐거웠던 지난날도
가슴 저미는 세월 강가에 세기고 떠나야 한다내
가기만 하여야
하기에
가야하기에,
저만치 아득한 강물은 어서 오라, 오라고 손짓을 하고
추억의 끈으로 감발하고 오늘도 앞장서서 길을 나서내.
구름이 가나 달이가나 시새워 흘러온 지난 꿈같은 세월
그리워서 가다가 쓰러져,
오늘을 보듬고 주저 않은 순간
무너질 듯 와르르
쌓이는 조각들은
고달파 굽이도는 현실의 길목에서
어서 오라 가자고 물노래 부르네.
강변에 쏟아지는 가로등의 불빛사이로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많기도 하건만
흐르는 물노래소리 들어 주는 이 하나 없네.
내
어이
이곳에
서
있단 말인가!
진정 존재의 허무란 말인가!
두려운, 두려운 시간의 기절이란 말인가!
이정표(里程標)를 잊어 이곳까지 흘러온 나그네란 말인가!
표백(漂白)된 사고(思考)의 부산물이란 말인가!
산산이 부서진 사고들이 흘러, 흘러 이름도 모르는 어귀어귀 마다 굽이굽이 마다 물노래 흥얼흥얼, 때로는 옹알옹알, 히야히야, 울어대는 맹그로브 숲을 향해 나 두야 간다! 부란따스 강물 따라
강물은
그리운 추억도
현실의 고달픔도,
내일의 희망도,
하늘의 달과 별도,
강변의 가로등불빛도,
모두 쓸어안고,
때로는
현실을 묵상(黙想)하다
때로는
갑자기 터지는 포말(泡沫)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멀어져 가는데
어느 듯,
하늘과 함께 강물로 뛰어든 만상(萬象)들이 모두모두 흘러만 가네.
흐르는 달빛에
속내를 드러내놓자
드러내놓은 공간(空間)에
회한(悔恨)의 눈물 가득이 고이는데
이국(異國)의 열대우기(熱帶雨期)부란따스 강가에
한
방울
눈물이,
시(詩)가되어 떨어지네.
흐르는 강물 따라 눈물도 같이 나그네 되어 흘러, 흘러가는데 죽기위한 방법으로 살아야하며 살기위한 방법으로 죽어야 하거늘 멀어지면 또다시 가까워지고 가까워지면 또다시 멀어지는 추회(追悔) 왜 이리도 가슴 설레 이는지
이곳이 어디메노!
허허(虛)로운 이국(異國)의
벌 강
눈물은
멀리가고
강물만 남았네.
달빛여행
조국은 지금 깊어가는 겨울밤인데, 한여름 밤의 꿈이 고요한 달빛 속으로 내려앉고 흐느끼는 바람 풀벌레 울음소리 속으로 오늘 하루가 묻히고, 지나가는 시간이 여행을 한다.
쇠막대기 두들겨 옹기종기 가정부들을 불러 모았던 오잭,(ojek) 경적을 울리면서 아쿠아! 아쿠아! 봉이 김선달의 대동강 물을 사라는 목쉰 외침도, 선운사 한적한 절간에서 빌러온 목탁을 두드리는 박소,(bakso) 빵 장사 로티사리(roti sari)의 애달픈 노래도, 흑백영화에 나오는 장화와 홍련같이 흑단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를 보고 웃으면서 배드민턴을 치던 쌍둥이 인도네시아 아가씨들도, 모두 종적을 감춘 거리에는 하얀 달빛을 마중하는 나무그림자들만이 거리에서서 키 재기를 하고 있다.
희망으로 설레게 했던 지난날은 가고
이미 가버린 과거를 보듬고
절망의 거리를 서성이는 달과 그림자 그리고 나,
이제는 자신에게 절망을 안겨준 사람들을
미워할 근거마저 기억속의 희미한 추억이여라.
그립다! 너무나 그리워, 아, 아니 애(肝腸) 터지게 너무나 그립다.
꽃피는 봄날의 새색시 마음, 신록이 우거진 희망의 그 여름, 가을날 드리운 이름 모를 추해(追悔)의 찬란한 서글픔도 하얗게 내려, 내리는 겨울꽃잎 되어 이국(異國)의 달빛에 묻히어라.
이 밤, 가슴에 계케 진 그 감격스러운 조국의 사계(四季)에 나는야 안겨 아, 달빛과 같이 강강술래를 하는데 어이타! 두고 온 조국의 산천(山川)! 아름다운 벗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자녀들, 그리고 내 어릴 적 국민 학교 (初等學校) 일학년 교과서에 나온 철수야 놀자! 영희야 같이 놀자! 국문(國文)을 익혔던 다정한 그 이름들을 불러본다.
달빛사이로 그리운 얼굴들이 목마타고 안개처럼 내려앉는데
한껏, 그리움을 퍼내도 그리움은 끝이 없고 그리움만이 가득 고이는데
달빛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그 이름들을 가슴에 쓸어안는다.
달빛이 흐르는
저편 언덕에
수라바야 시내의
송, 수신탑
깜박, 깜박 불빛만이 외롭다.
이제, 여행이 끝이 난 시점(視點)에는
달빛은
쫒아가고
구름 그림자
도망가는 광경을
잎이 무성한 나무 한그루
우두커니 서서보고만 있다.
그 사이로
잘란 심팡 그라하 패밀리 불록 알(jalan simpang graha family belok R) 단지(團地) 화살표 방향이 내 앞에 머문다.
주님,
우리 모두. 모두가
삶이 귀천(歸天)인 것을 그 길이 어디 입니까?
주: 브란따스강= 인도네시아 자바, 꺼드리 부터 수라바야시내를 흐르는 강
1915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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