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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조동화(曺東和 )시인이 1995년 나의 시집 발간을 위해 초기詩를 대상으로 써준 跋文인데, 그 동안 여러 사정으로 시집을 내지 못하고 소중하게 간직해 오다가 이 방에 처음 소개한다.
향수(鄕愁)와 풍자(諷刺)의 美學
曺 東 和 (시인)
1
내가 김원호(金元浩)를 처음 만난 것은 서른 몇 해 전의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때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나는 우리 마을의 한 아이를 통해 1년 후배인 그를 학교 운동장에서 소개를 받았던 듯싶다, 원래 사람들은 선배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쉽게 기억하는 편이지만, 후배들에 대해서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얼굴과 함께 그 이름까지 기억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초등학교 1년 후배인 그를 그날 알게 되고 지금까지도 생생히 그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가 그때 이미 교내에 상당히 알려진 수재였었던 까닭이다.
그와 나와의 이런 선후배 사이는 초등학교를 거쳐 중학교 시절까지 변함없이 이어졌었다. 그러나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피차 서로의 소식마저도 확인할 길이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것은 내가 중학교를 끝으로 학업을 그만두고 그때 이미 연로하셨던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농투산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후 뜻한 바 있어 내가 삼 년 동안 지어오던 농사를 포기하고 뒤늦게나마 고등학교에 들어가 3년의 과정을 마친 다음 대학교의 국문과에 입학했을 때, 실로 6년 만에 같은 과의 3학년 선배가 되어 있는 그를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향리에서 이름 없는 농부가 되어 있던 그 동안에도 그는 스스로의 길에서 쉼 없는 전진을 계속하여 마지않았던 것이다.
그 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경주에서 갓 교직에 몸담았던 무렵, 나보다 먼저 교사가 되어 모교에서 근무하고 있던 그의 초청으로 선산읍내에서 잠시 그를 만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여영택(呂榮澤), 윤종철(尹鍾喆) 시인 등과 더불어 당시 문화의 불모지였던 선산에 「선주문학회」를 결성하고 기념 시화전을 열었을 때였다. 이렇듯 그는 자신의 문학에 대한 열정에 못지않게 향토의 문화 창달에 대한 뜻 또한 남달라, 스스로 어려운 문학회 결성의 산파역을 맡아 끝내는 그 일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몇 번을 더 그와 나는 만났었지만 그것들은 그리 인상 깊은 만남은 아니었었고, 단지 한 해 한 번꼴로 배달되는 「선주문학」을 통해 서너 편씩의 시편들을 대하며 그의 끈임 없는 문학에의 열정을 확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그에게서 시집의 발문을 부탁받고 약 8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들을 건네받아 읽으며 마음속으로 조용한 감동 같은 것을 느꼈었다. 그것은 곧 그가 자신을 시인이라 내세운 적이 없었으면서도 먼 세월 홀로 묵묵히 시심을 일궈온 성실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가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올린 문학에의 소담스런 보람이 하나의 탑이 되기에 결코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2
김원호의 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애틋한 鄕愁의 세계다.
鄕愁란 인류가 태초부터 가지고 있던 가장 근원적인 그리움의 공통분모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인간이 가진 감정 중 이것만큼 다양하고 다채로운 것도 드물다. 그것은 바로 사람마다 가진 마음의 금선(琴線)이 다르고, 태어나 자란 산천이 다르며, 저마다 맺어온 인간관계가 또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원호의 鄕愁도 그 나름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리고, 그것은 가장 많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어우러져 나타난다.
솔바람 향 피우는 자욱한 골짜구니
말없는 봉분 앞에 도래솔로 둘러서서
생전에 도탑던 손길 비에 젖어 봅니다.
어머님 가꾸시던 선산(先山) 밑 고추밭둑
무성한 잡풀 속에 야윈 수수 두어 그루
예전엔 밭이었다고 비를 맞고 있습니다.
흐르고 또 흘러도 산과 들은 그 자린데
연연한 골 능선에 강심(江心)으로 잠긴 연(緣)이
가슴 속 후미진 길을 빗금 지며 흐릅니다.
-〈성묘>
시조의 형식으로 된 이 작품에서 보다시피 이미 그이 고향은 어린 시절 뛰놀던 기쁨과 안식(安息)의 동산은 아니요, 그의 고향의 주인격인 어머님이 오래 전에 한 줌 흙이 되어 계신 그리움과 눈물의 산천이다. 뿐만 아니라, 당신께서 생전에 알뜰히 심고 매고 가꾸시던 고추밭도 이미 묵정밭이 되어 버린 지 오래인 바로 그 고장이다. 그러기에 고향의 산과 들이 비록 의구하다 하더라도 벌써 그곳은 가버린 인연의 자취가 아프게 가슴을 훑어 내릴 뿐인 비정의 땅이 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그의 다음과 같은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한 분씩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시나브로 깊어가는 희한에
사그라드는 확신을 주체하지 못해
뒤뚱거리며 걷는 하산 길
거덜난 성황당 고갯마루 위로
벌거숭이 짐승의 울음소리 들리고
하늘을 잃어버린 새 한 마리
고삐를 놓쳐 버린 김서방네
텃밭을 생각하며
술도 못 취하는 가슴을 뜯는다.
이따금
흔들리는 고개 위로
낯익은 말들이
백기를 들고 사라지고
종일토록 앉지 못해
관절이 아픈 해가
어렵게 숨을 몰아쉰다.
뿌연 비안개 속에
밤이 오면
장승같은 어머니의 화석 위로
낯선 사람들의 겨울이
성큼성큼
신열로 다가온다.
-〈고향 Ⅰ〉
이 시에 나타나 있는 하산 길은 바로 어머님이 잠들어 계신 그 고향 산을 내려오는 길이다. 그러기에 시인에겐 바람이 불 때마다 한 분씩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이 있고, 거덜난 성황당 고갯마루 위로 벌거숭이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하며, 당신이 살아 계실 때의 낯익은 언어들이 모두 하나같이 백기를 들고 아득히 사라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시인의 고향 겨울은 마침내 비안개 뿌리는 밤, 장승같은 어머니의 화석 위로 신열이 되어 다가오기도 하는 것이리라.
우리네 몸과 마음의 고향인 어머니를, 그것도 이미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일은 이 세상 누구에게나 아프고 간절한 것일 테지만, 김원호에게 있어 그것은 ‘자욕양이친부대(子欲養而親不待)’ 하는 것이어서 그럴까, 한결 곡진(曲盡)한 것이 되어 있다. 그래서 <고향 Ⅱ>에서 보면,
찢어진 비닐 조각이
깃발처럼 나부끼는
앙상한 가지 끝
내 유년의 고추가
빨갛게 매달려
귀를 막아도 귀를 막아도
어머니 소리가 들린다.
라고 하여, 그것은 때때로 들려오는 환청(幻聽) 현상이 되어 있기도
하고,
봄 꾀꼬리가 날아가 버린 후
노오랗게 감귤이 지천으로 익더니
쭉 뻗은 고속도로 따라
그 손주마저 떠나가고
지금 텃밭엔
11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바람 속에 서서
마지막 남은 감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고향 Ⅲ>에서처럼 환시(幻視) 현상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김원호가 짜는 향수의 무늬가 꼭 어머니의 모습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오늘처럼 달 밝은 밤엔
가난을 온통 술로 들이키곤
처용(處容)의 웃음을 웃으시던
할아버지.
당신의 아들처럼 키가 큰
느티나무 아래서
장죽을 피워 문 채
포성이 스치고 간
무더운 7월
차라리 아들 따라
달이 되신 할아버지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시에는 6․25에 아들을 앞세운 할아버지의 쓸쓸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 할아버지는 가난을 온통 술로 들이키곤 처용의 웃음을 웃어시는가 하면 당신의 아들처럼 키가 큰 장죽을 피워 문 채 돌부처가 되시기도 한다.
그러다 마지막 연애 이르면 그 할아버지는 6․25때 앞서간 아들을 따라 이미 하늘의 달과 가지런히 포개어져 있다.
김원호의 향수의 시편 속에는 드물게 그의 막내동생도 등장한다.
기어코 막내가 고향을 떠났다.
직장 따라 8남매가 버려두고 간 고향을
혼자라도 지키며 농사짓고 살겠다던 막내가
입술을 깨물며 고향을 떠나갔다.
9대째 뿌리내려 이어온 종택(宗宅)
할아버지 손때 묻은 문지방을 넘어
아버님 눈 감으시며 손잡아 쥐어주신
문전옥답 열 닷 마지기
차마 이대로는 나놓을 수 없어
언덕마 이씨에게 반갈림 주고
눈물로 돌아보며 고향을 떠나갔다.
농업학교 졸업하고 고향에 돌아와
농사에 매달린 지 여섯 해
멀쩡한 사내놈이 농사가 뭐냐는
빈정대는 힐난쯤은 한 쪽 귀로 흘려듣고
귀 막고 눈감고 버텨낼 수 있다더니
장가도 들 수 없는 기막힌 현실 앞에
속수무책 두 손 들고
기어코 막내가 고향을 떠났다.
-<기어코 막내가 고향을 떠났다>
보다시피 이 시에는 고향을 떠나는 막내의 아픔이 고스란히 그러져 있다. 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지켜 농사지으며 살겠다던 막내, 맞지 않는 수지타산 이야 그냥 감내한다 하더라도 장가마저 들 수 없는 기막힌 현실 앞에 서는 결국 여섯 해만에 속수무책으로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던 그 막내의 모습이다. 장가 못 간 농촌의 노총각이 자살했다는 신문 보도를 이미 우리는 여러 번 접한 적이 있거니와, 이것은 어쩌면 단순한 이농(離農)이라기보다
는 차라리 처절한 절망이며 좌절이다. 그리고 한 시인의 막내의 아픔을 그렸다 해서 결코 이 작품이 개인의 넋두리에 머물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땅 의 모든 농촌 젊은이들의 아픔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런데 그의 鄕愁는 희한한 예외이기는 하지만 전혀 사람의 모습이 배재된 한 폭의 서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동잎
서리 바람
낙엽 지는
그 언저리
귀뚜라미
고향 생각
밤새도록
푸는구나.
보름달
드높은 시월
초가지붕
둥근 박.
--<추야소곡>
小品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작품에는 그 어떤 육친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서리 바람에 떨어지는 오동잎과 밤새도록 우는 귀뚜라미가 고향에로의 문을 열어젖히고 있다. 그리하여 오직 ‘보름달/드높은 시월//초기지붕/둥근 박/‘ 이라는 하나의 풍경의 그 한복판에 자리할 뿐, 시인 自我마저도 작품 밖에서 멀찍이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
3
김원호의 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특징은 풍자(諷刺)의 세계다.
諷刺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학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을 우리가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할 때, 諷刺는 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공격하는 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고대그리스에서는 시인의 노여움을 산자가 시인의 강력한 諷刺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하고 말았다는 기록이 여럿 있다니, 신랄한 諷刺의 위력은 오히려 칼의 힘보다도 승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김원호의 시에 나타난 諷刺는 대상에 대해 그렇게 공격적인 것은 아니다.
이 겨울엔
그 흔한 솔방울이 귀하다.
나무가 서 있는 어디를 둘러봐도
솔방울은커녕
소나무 한 그루가 없다.
비를 맞으며
비를 맞으며
온 거리를 헤매 다녀도
소나무를 찾는 사람뿐
소나무를 아는 사람은 없고
내 幼年의 빛 따라
그 자리로 다가가 보면
어느새
소나무는 저만큼 가 버리고
밋밋하고 귀 없는
洋松, 白松, 히마라야시다의 행렬.
높은 팔을 잡고
솔방울을 물어 보지만
알 리 없고
물색없이
후둑후둑 갈비가 내려
입을 막는다.
우째 이 겨울엔
고 동글동글 야무진 솔방울을 단
소나무 한 그루가 귀하다.
-<솔방울을 찾다가>
모든 한국적 절대 가치들이 무너져 가는 현재의 세태를 ′소나무 한 그루가 귀하다.′ 는 말로 諷刺하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면, 결코 공격의 날카로운 발톱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유년 시절엔 그리도 흔했던 소나무가 모두 자치를 감추어 버린 오늘의 삭막한 현실, 그러나 시인은 울부짖거나 몸부림치기보다는 그냥 잔잔한 탄식에 그치고 있다. 마치 진솔하고 담담한
토로가 때로는 천둥을 동반하는 그 어떤 웅변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확연히 보여 주기라도 하듯.
가을 햇살 아래 모과 인물이 너무 곱다.
모개는 본래 못생긴 게 제 격인데
저리 인물이 좋으니 저건 모개 아니라
모과라시는 할아버지.
이러다간 이젠 정말
잘 생긴 얼굴을 모과 같다고 해야 할 판이라며
쓸쓸하게 웃으신다.
세월보다 너무 빨리 변해버린
고운 얼굴 밋밋한 키
우째 꼭 양복 입은 이방인 같다신다
저마다 다 잘난
이 풍성한 가을
모과 아닌 모개가 보고 싶다시는 할아버지
성성한 은발 위로
철 이른 기러기 떼
은유로 날고 있다.
-<모과>
이 작품 역시 우리 고유의 절대 가치를 할아버지의 시각을 통해 모과라는 과일로 환치(換置), 옹호(擁護)하고 있는 작품이다. 풍성한 가을, 양복 입은 이방인같이 미끈하고 잘 생긴 모과를 보며 할아버지는 그 옛날의 투박하고 못 생긴 모과를 그리워한다. 따라서 할아버지에겐 풍성한 수확의 때도 내실이라곤 전혀 없는 쓸쓸한 계절이 될 수밖에 없다. 못 생긴 모과를 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소망은 곧 우리의 것을 끝까지 수호하고자 하는 할아버지의 안간힘이다. 그 성성한 은발 너머 은유로 날고 있는 기러기 떼가 사뭇 칼부림처럼 처절하지만. 도도히 밀려드는 시대의 물살을 누가 감히 막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이 시에는 그 이면에 지는 해와 같은 허전함이 배어 있다.
諷刺에 관한 한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시야는 퍽이나 넓은 편이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사회의 병적인 현상에서부터 파괴되는 자연의 공해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은 골고루 미치고 있다.
그의 시 <근황 Ⅱ>의 일부를 보면,
흔들리는 고층아파트의 전세값 이 나를 웃고
수화기를 든 손이 구토를 하는데
가지만 얼기설기 얽혀 있는 하늘을
오늘도 일기예보는 고압권이란다.
밖에서는 비가 내려도
TV에서는 늘 이렇게 고기압권이니
창 밖을 모르는 아내
우산 걱정하는 나를
웃을 수밖에.
라고 하여 현대의 물질문명에 대한 우려(憂慮) 내지 괴리감(乖離感) 같은 것이 나타나 있고, 또 <한산도>같은 작품에서는,
희한한 일이다.
수루에 오르니
충무공이 생불로 앉아
다짜고짜 누 아래 오죽을 보라신다.
왜놈은 결국 왜놈인 것을
「아왜나무」로는
한 떨기 바람도 못 막는 것을
도대체 무슨 수작이냐신다.
웃으며 발길을 돌리려 하니
그 꼴로 다시 오지 말라신다.
왜군의 피보다 더 더러워진 바닷물
그 물이 맑아지거든
그 때서나 보자신다.
참말 희한한 일이다.
라고 하여, 기행시(紀行詩)가 흔히 보여주는 영탄(詠歎) 위주의 어조에서 성큼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생불이 되어 계신 충무공이 한일간의 오래고 오랜 갈등을 뛰어넘어 작금의 심각한 공해에 대해서까지 일침을 가하고 있는 모습은 자못 엉뚱하면서도 신선하다.
이상섭의 <문학용어비평사전>을 보면 ′풍자가의 여유만만함이 대상에 대한 극도의 반감으로 말미암아 위축되면 <냉소>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차가운 웃음, 즉 비수처럼 찌르는 예리함이 느껴진다. ′ 라고 하여, 냉소(冷笑)도 諷刺의 일부임을 갈파하고 있는데, 김원호의 시에서도 물론 우리는 이러한 차가운 웃음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꽃밭에서>에는 죽는 시늉도 마다할 수 없는 연약한 民草들의 아픔이, <화조동에서>에는 봉황새의 터전에 잡새가 날고 있는 흔탁한 세태에 대한 탄식이, 그리고 <강남고속터미널에서>에는 회색빛 도시 문명에 극도로 위축된 질식할 것만 같은 인간의 모습이 각각 형상화되어 있어, 걷잡을 수 없는 冷笑를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4
이상 鄕愁와 諷刺의 美學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위주로 김원호의 시를 살펴 보았다.
한 개 작은 이슬 방을 속에도 삼라만상의 온갖 모습들이 담기고,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풀잎 하나에도 온 우주의 섭리가 깃들이는 것일진대, 어찌 지중한 목숨의 존재가 우연의 결과이며, 그 목숨이 탄주하는 詩가 또한 단순하고 획일적인 것일 리야 있겠는가. 그러나 여기서는 두 측면만을 다루는 것으로 만족하고 여타의 측면들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鄕愁와 諷刺의 두 측면이야말로 그의 시의 특징들을 가장 잘 보여 주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무튼 불혹(不惑)을 넘어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그 언덕에서 세상의 명리에는 아랑곳없이 다만 잘 여문 시편(詩篇)들을 모아 첫 시집을 상재(上梓) 하는 김 시인에게 마음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기왕 내디딘 발걸음이 아무쪼록 더욱 멀고 높은 데까지 이르기를 기원해 마지않는다. (19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