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안동 화재 속에서 낙암정(洛巖亭) 보존에 힘쓰신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2020년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안동을 휩쓸고 간 산불의 피해 면적이 800헥타르로 어마어마합니다. 이 불은 처음 풍천면 인금리에서 발생하여 초속 8미터의 강한 서풍을 타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남후면 상아리, 하아리, 고하리, 단호리, 검암리까지 번져서, 중앙고속도로와 중앙선 열차 통행이 25일 저녁부터 26일 아침까지 금지되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선조들의 자취가 담긴 경상북도 지정 문화재 낙암정(남후면 단호리에 위치)이 잘 보존된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자욱한 연기와 바람을 타고 타오는 불 속에서 낙암정 보존을 위해 애쓰신 분들의 헌신적인 노고를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낙암정은 흥해 배씨 안동 입향조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 고려말 두문동 72현의 한 분) 선조의 둘째 자제이신 감사공 배환(裵桓: 삼도관찰사 지냄) 선조께서 조선 초기(1451년)에 처음 지은 정자입니다. 감사공 배환은 아우 배남(裵楠), 배강(裵杠)과 함께 예천에 와있던 문정공(文貞公) 조용(趙庸: 포은 정몽주 선생의 문인으로 대사성을 지냈고 [세종실록]에는 '유학의 으뜸'[儒宗]으로 평가) 선생에게서 배웠으며 나란히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보기 드물게 3형제가 문과에 급제했으니 배씨들이 문과와 학문계통으로 널리 진출했다고 해서 안동에 "배문(裵文)"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또한 조선 중기에 성균관 진사로 안동의 유명한 인문지리지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하는 데 동참하신 배득인(裵得仁) 선조께서도 낙암정을 보수하고 특별히 아끼셨습니다. 제가 보기에 낙암정은 안동의 정자 가운데서 전망이 가장 좋은 정자입니다.
이번에 엄청난 규모의 화마 속에서도 낙암정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이었습니다. 소방당국이 4월 24일 오후부터 4월 25일 오전까지 90% 화재진압을 했다고 판단하던 차에, 25일 낮부터 엄청난 강풍으로 인하여 불이 되살아나서 동쪽으로 동쪽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낙암정도 한 때는 완전히 시커먼 연기 속에 파묻혀서 전소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위태로워졌습니다.
안동시청 문화재계 권용대 사무관의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경찰 바리게이트를 뚫고 낙암정 입구 20미터 전방까지 갔는데 불 폭풍에 더 이상 진입이 안 되었어요. 혹시나 해서 그 일대에서 진화하고 있던 안동시시설관리공단 직원(안동체육관 이화준 관장, 경영지원실 박정영 차장, 이길호 기획감사팀장 등)에게 연락했더니 뒷길로 한번 가보겠다고 해서... 우리(안동시 문화재계)는 낙암정이 소실될 것으로 보고 문화재청에 그렇게 보고를 했는데, 다행히 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다른 길로 돌아서 해결을 했더라고요. 집안 어른들이 덕을 잘 쌓았던 모양이에요.”
이토록 위험천만의 상황에서 낙암정이 보존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로지 지정 문화재라는 이유로 안동시 문화재계 공무원의 문화재 보존을 위한 책임의식도 투철했고, 안동시시설관리공단 직원들이 출동한 소방차, 소방관들과 더불어 낙암정 주변 산불을 진화했습니다. 안동시 문화재계 권용대 사무관님, 안동시시설관리공단직원, 영양과 포항에서 출동한 소방차와 소방관님들, 이렇게 초기 진화에 사력을 다하신 모든 분들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한편 25일 오후에 산불이 단호리까지 번진다는 안동시청의 재난 안내문자와 인터넷 뉴스를 보고 저는 <낙암정수계(洛巖亭修稧)>의 배인섭 사무장에게 전화로 단호리까지 산불이 번진다고 하니 낙암정이 위험할 것 같다고 알렸습니다. 그 즉시 배인섭 사무장이 매곡마을, 포진마을을 비롯하여 안동 관내 여러 족친들에게 연락하여 족친들이 두어 차례 트럭에 물을 싣고 동력분무기, 인력분무기, 물뿌리개, 바가지, 갈퀴 등을 준비하여 현장에 가서 굵은 통나무에 붙은 불을 포함하여 화재(잔불)를 진화하느라 애쓰셨습니다. 동참하신 분들은 배인섭, 배만섭, 배순직, 배영규, 배병국 부인, 배상균, 배중열 내외 등이셨습니다. 이 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족친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소방차가 주변의 큰 불길을 억제한 직후였습니다. 다행히 낙암정에는 불길이 미치지 못하도록 잘 대응한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배인섭 사무장은 25일 심야, 26일, 27일에도 현장에 가서 잔불이 되살아나지 않았는지 확인하였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이 또 있습니다. 1987년에 낙암정을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큰 애를 쓰신 분으로, 당시 안동군 문화재계장으로 근무하신 배대연 족친(오래토록 흥해배씨 종약소에서 사무장으로 봉사)이십니다. 그리고 이 때 힘을 보태신 분이 임하면 신덕2리에 사셨던 고 배선철 족친이셨습니다. 이런 분들께서 노력하고 애쓰신 덕택에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그래서 불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낙암정을 끝까지 지켜내신 것입니다.
낙암정이 조선 초기부터 긴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큰 탈 없이 보존되어 왔는데, 이번처럼 큰 화마 속에서 이토록 무사하게 보존된 것은 처음일 터이고 너무나 다행스런 일입니다. 동참하여 애쓰신 모든 분들께 거듭 감사드리면서, 선조의 자취가 담긴 낙암정이 길이 보전되도록 후손들이 관심을 가지고 수시로 들러서 살피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가, 지방자치단체, 소방서, 문화재청 등의 공공기관이 하는 일에 대해 새삼 그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으며, 또한 고맙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거듭 거듭 감사드립니다.
2020년 4월 28일
25세 배 영 동
불길 속의 낙암정1(20200425,배만규 촬영).jpg
화연에 휩싸인 낙암정3(20200425, 배만규 촬영).jpg![첨부이미지 미리보기](https://t1.daumcdn.net/cafe_image/cf_img2/bbs2/btn_imageview.gif)
(사진) 2020년 4월 25일 16시 30분 경 불길에 휩싸인 낙암정 일대 (배만규 촬영)
낙암정 화재 진화에 동참하신 족친들(20200425, 배인섭 촬영).jpg![첨부이미지 미리보기](https://t1.daumcdn.net/cafe_image/cf_img2/bbs2/btn_imageview.gif)
(사진) 2020년 4월 25일 낙암정 화재 진화에 동참하신 족친들 (배인섭 촬영)
첫댓글 낙암정은 안동을 대표하는 정자이고, 우리 흥해 백죽당 문중이 소중히 지켜온 유적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낙암정을 위한 '낙암정수계'가 있음도 알았고, 이 낙암정수계가 이번 산불 화재에서 낙암정을 지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음도 알았습니다. 특히 족친이 아님에도 목숨을 걸고 낙암정을 지켜주신 분들이 참 고맙습니다.
산불 속의 낙암정과 그 낙암정을 지켜낸 이야기는 우리 가문의 역사입니다. 이러한 가문의 역사가 우리 후손들에게는 또 하나의 자긍심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윗글에 소개된 사진을 볼 수 없음이 아쉽습니다. 그러나 개인정보이기에 올려달라고 부탁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사진을 바탕화면에 붙이기 하니깐 안 되네요. 별도로 첨부하겠습니다. 댓글에서 "낙암정수계"에 "정"자가 한 글자 더 들어갔습니다.
@배영동 고맙습니다. 고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