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묵돌입니다.
어른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에 흔히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을 제대로 못하면, 뭘 어떻게 해도 일을 망치기 마련이라는 얘기인데.
2023년 새해의 시작으로 '금요묵클럽'을 선택한 여러분의 의중이 무엇이었는지
솔직히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장점이 뭐냐면, 바로 솔직한 것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저에 대한 애틋함일수도 있겠지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까요. 올 한해의 십이분의 일을
산뜻하게 출발할 수 있게끔 저 역시 최선을 다할 예정입니다.
내용물은 여전히 별 거 없습니다. 읽고, 보고, 떠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알고 계신가요. 인생이라는 건 한꺼풀 벗겨보면 별 것 없어서
이만한 것들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걸요.
보여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책과 모임에 대한 안내가 바로 이 아래에 있습니다.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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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의 묵픽 (Muk's pick) ::
「데미안」 (헤르만 헤세, 독일-스위스)
:: Comment ::
저는 이 책을 싫어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책 자체가 아니라 이 책이 소비되는 방식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 책 자체가 예능이며 유튜브 등지를 통해 너무 유명해진 나머지
'새는 어쩌구저쩌구'하는 몇 줄의 문장을 인용하며
고전문학의 고상한 소비자인척 학자연하는 용도로 남용되는 것이 무척 속상합니다.
그래서 누가 '데미안이 어떤 내용인지 대충 요약해줘' 라고 물어봤을 때
'그건 알이 새에게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이야기야. 새는 세계이고 알은 기생충인데,
새에게서 흡수한 영양분이 충분해지면 성체가 되어서 새의 배를 찢고나오는 거지.
에일리언에 나오는 체스트버스터같은 거야' 라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데미안>은 몇 줄의 시적인, 카톡 프로필 문구로 삼아볼만한 문장이 전부인 작품이 아닙니다.
유명한만큼 편견도 극심한 작품이기에, 금요묵클럽에서는 다루기가 꺼려졌던 소설인데요.
'새해에는 슬그머니 피하기보다는 정면돌파를 해보자'라는 느낌으로다가
13기의 오프닝북으로 냅다 결정해버렸습니다.
부디 이 책을 처음 읽어보시는 분
또는 나무위키나 유튜브 및 예능프로그램에서 요약된 내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던 분은
아래에 적어놓은 읽기 팁을 꼭 참조하시고
이번 기회에 저 그리고 금요묵클럽과 함께 제대로 탐독한 뒤
겉멋으로 <데미안>을 아는 체 하는 하수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기로 합시다.
: TIP ::
- 사실 <데미안>은 헤세가 쓴 소설 중에서도 꽤 어려운 작품 축에 속합니다. 분량은 민음사 기준으로 222쪽. 장편소설로는 짧은 축에 속하지만... 스키장으로 치면 초급코스인척하는 중상급자 코스라고 할까요. 절대적으로 어려운 건 아니지만, '문학이라는 걸 한 번 읽어나볼까' 하는 사람들이 입문으로 집어들만한 소설은 아닙니다.
- 소설 중반까지는 썩 잘 읽히는 작품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문장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기본적으로는 싱클레어라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내용이니까요. 인물의 등장이며 사건의 전개 따위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하지만 후반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문장은 깔끔하지만, 어쩐지 전개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같은 문단을 두번 세번 읽어도 이게 뭔지 잘 납득이 안되기 시작합니다. 외부의 사건 대신 내부의 심리세계로 파고드는 주인공의 묘사 때문에, 아주 모호하고 추상적인 느낌으로만 받아들여지는 대목도 나오죠.
- 요약하자면, <데미안>은 소설이라는 형태만 같을 뿐 소화방식이 전혀 다른 두 장르가 혼합된 작품입니다. 초반에는 적당히 감미로운 선율로 연주하다가, 후반들어서 난해하기 짝이없는 프리재즈로 넘어가는 음악이라고 할까요. 듣기좋은 싱잉랩하다가 갑자기 급발진해서 멈블이나 드릴을 조지는 래퍼를 상상해보십시오. 그게 바로 에밀 싱클레어입니다.
- 이 극후반의 난해함 때문에, '남들 다 잘 읽고 명작이라고 하는 데미안도 제대로 이해를 못하는 것 보면 나는 난독증인가봐' 같은 생각이 들어서 호기롭게 시작한 책읽기를 포기하는 사람도 생길 정도입니다. 솔직히 좋지 않은 현상이죠. 시작부터 중상급 코스를 타지 못한다고 해서, 스키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좀 성급한 결론이잖아요.
- 그간 금요묵클럽에서 이 유명한 작품을 한번도 다루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결국 묵클럽은 '어려워보였던 것들이 꽤 즐겁게 느껴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모임인데, <데미안>은 어떤면에서 진짜로 어려운 작품이니까요.
- 핵심은, 여러분이 이 <데미안>을 읽다가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당신의 독해능력이 딸려서나 문학적인 감각이 전무해서가 아닌 '진짜로 어려운 부분이라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럴 땐 전개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라는 생각으로 읽으면 한층 마음이 편할 것입니다. 역시 처음부터 그렇게 하긴 어렵겠지만요.
- 시작부터 너무 겁을 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외로 추상적인 전개가 입맛에 맞아서, 초반보다 후반이 더 마음에 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죠. 제가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참고용이니까, 직접 읽어보면서 자신만의 읽기 스타일을 발견해보길 바랍니다.
:: 모임장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23길 40 지하 카페 <공상온도>
- 홍대입구역 1,2 번 출구 6분 거리
:: 일시 ::
2023년 1월 6일 금요일. 오후 8시 ~ 오후 11시
* 3시간 진행, 도중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모임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해서 가급적 첫 모임에는 시간에 맞춰 참석해주세요.
* 카페 <공상온도>의 방침상, 기존 고객 퇴장 및 대관 준비 시간으로 인해 오후 7시 20~30분부터 입장이 가능하오니 이용에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2023년입니다. 실수해서 2022년에 오지마세요.
:: 준비물 ::
- 「데미안」 (헤르만 헤세)
(구매 링크 - 예스 24)
:: 기타 ::
첫댓글 와 진짜 하마터면 작년 1월에 도착할 뻔했네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