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천/치과의사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근래에 와서 아내와 저녁에 술을 한두 잔씩 하는 것이 일과가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녀들이 다 성장해 각자 제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자 마음의 준비 없던 둘만이 덩그러니 남겨진 채 적막감이 홀연히 다가왔단다. 그렇게 오래 살았건만 왠지 익숙지 않은 어색함이라고 했다.
흔히 부부를 가리켜 '비익조' 혹은 '연리지'라 한다. 비익조는 날개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두 마리가 서로 몸을 맞대고 함께 날갯짓을 해야만 날 수 있다. 연리지는 뿌리는 따로 있으나 몸통이 하나여서 갈라놓을 수 없는 나무다. 그러니 부부는 한 몸이 되어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하면서 부부화이(夫婦和而), 화합하여 서로 닮아가고 화목해진다는 말일 게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뛰는 가슴으로 서로 만나 백년가약을 하고 한 몸 한 뜻으로 살아가기로 다짐하지만 종종 갈등을 빚으며 때론 가볍게 때론 격하게 '장미의 전쟁'을 치른다. 그럼에도 세월과 함께 그러려니 하면서, 애틋한 관계라기 보단 덤덤한 사이로 지내기 일쑤여서 예의나 배려는 잊은 채 그냥 살아가기 쉽다. 그래도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타성에 젖어서.
그래서 그랬나? 지인 자신은 퇴근 후엔 TV로 소일하고 아내는 아내대로 집안일 이것저것하면서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칠 일 없고 나눌 이야기도 별로 없이 부부사이가 무덤덤해진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네산책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그저 아무 말 없이 무심코 걸었는데 점차 단둘이 같이 해야만 하는 시간이 어색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던 것이 자못 진지한 대소사로도 이어졌다.
그런 연후 돌아오면 술을 한두 잔 나눈다. 그날의 먹거리에 따라 어느 날은 와인으로 어느 날은 소주로 하며 다 못 끝낸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전에는 미처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되었단다. 술상 앞에 마주 앉으면 뭐가 그리 바빴는지 남편은 그동안 외유에만 정신없어 따뜻한 말 한마디 자주 못해준 것을 후회하고, 아내는 서운하기만 해서 쌓였던 원망을 서로 미안해하면 하루의 피로를 잊고 새로운 정이 새록새록 쌓여가는 느낌이라 했다. 이제 앞으로 남은 생에 그 누구보다도 서로가 든든한 동행인임을 재확인하면서.
그러면서 왜 이런 것을 예전엔 몰랐는지 모르겠다며 아내와의 이 시간이 그렇게도 기다려진단다. 아니, 자신보다도 오히려 아내가 더 즐기는 것 같은 눈치란다.
예로부터 '주봉지기음(酒逢知己飮)하고 시향회인음(詩向會人吟)'이라 했다. 술은 자신을 알아주는 벗과 만나서 마시고, 시는 이를 이해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읊조린다고 했던가. 벗과 하는 술이 더 제맛이 나는 것은 거기엔 언제나 담론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한데 벗 중의 제일은 아내가 아닐는지. 평생 내조자이면서 반려자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단 언제나 어려움을 함께 해온 친구이기 때문이리라. 해서 고려시대 이태백이라 불렸던 백운 이규보 선생도 '어려움을 겪고서야 세상물정 알았어라/ 문을 닫아걸어 찾아오는 사람 물리치고/ 술을 빚어 아내와 마주 앉아 마시네'라고 읊었는가 보다. 오늘도 아내와 한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