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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시작된 전쟁.’ 흔히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은 이렇게 묘사되곤 한다. 1914년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왕위 후계자가 암살당하고, 그에 대한 보복의 수단으로 사라예보를 침공하면서 거대한 전쟁의 서막은 열리기 시작했다. 물론 이 사건은 발단에 불과했으며, 그 이전에 유럽을 감싸고 있던 신제국주의적인 야망이 서로 충돌하여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후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한 축을 이루고,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 등이 이에 맞서면서 전쟁은 점점 참전국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장장 4년여에 걸친 전쟁은 1918년 11월에 휴전에 합의하면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당시에 저술되었다고 하는데, 저자는 전쟁의 승패보다 ‘전쟁의 기원과 전개를 둘러싸고 있는 심리적 형상들을 분석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논하고 있다. 당시의 각종 외교문서를 비롯한 기록들을 검토하면서,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전쟁이 일어난 이유를 ‘심리적 요인’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게르만족의 영광을 쟁취하려는 독일의 야망, 그리고 전쟁의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던 영국의 판단, 전쟁 과정에서 너무도 어이없던 전술의 실패 등 이 모든 것은 저자의 관점에 따르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근저에 놓인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을 저자 나름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물론 100년도 더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자면 역사상 진행되었던 다양한 전쟁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서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히 논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지구상에서는 작고 큰 규모의 전쟁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합리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전히 터무니없는 명분을 내걸기도 하고, 때로는 종교나 민족적 신념에 의해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저자가 말한 ‘신비주의적 힘’이 의미하는 바라고 이해된다. 저자가 분석 도구로 삼는 ‘심리학’은 지금의 시각에서는 오히려 사회학 혹은 사회심리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관점에서 전쟁의 개시와 전개 과정이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를 느꼈으며, 그것을 기본으로 전쟁의 원인과 전개 과정에 대해 분석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목차는, ‘이 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심리학적 원리들’로부터 전쟁 기간 동안 수행되었던 ‘알려지지 않았던 양적 수치들’에 이르기까지 분석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특히 두 번째 항목에서는 ‘현대 독일의 진화’라는 제목으로, 당시 유럽의 강대국이었던 독일의 상황을 전하는데 적지 않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그리고 ‘전쟁의 간접적 원인들’과 ‘전쟁의 직접적 원인들’을 물론, 저자가 공들여 분석한 ‘전투에 작용하는 심리적 힘들’이라는 항목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독일의 전쟁 방식에 나타난 심리적 요소들’을 짚어봄으로써, 독일의 전쟁 능력과 전술이 지니는 의미들도 분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독일이 전쟁이 뛰어들었던 요인으로 ‘힘에 대한 숭배’를 거론하고 있는데, ‘독일이 벌인 모험의 결과가 독일 국민들에게 독일이 강하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었던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의 독일 민족주의는 어쩌면 나중에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주요한 요인이라고 이해된다. ‘민족의 문제는 국가들의 정치적 삶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평상시와는 다른 전쟁 중에는 그것이 불러일으킨 독특한 ‘감정들’이 발현되기 마련이며, 때로는 그것들이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다양한 실증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접근하고 있는 분석적 방법은 비단 전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들 사이에도, 이처럼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갈등 요인이 개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단 전쟁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갈등 사례들에 대해서도 심리적 요인을 척도로 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당시에 저자는 ‘미래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의 의지의 지속성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자연도, 인간도, 운명도 강력하고 확고한 의지를 꺾지 못’하기에, 의지를 가지고 당당히 맞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의 분석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으며, 모든 갈등은 합리적인 방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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