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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장인들을 소개하는 내용을 다룬다는 소개 글을 읽었을 때, 오래된 노포들과 나이든 장인들을 먼저 떠올렸다. 그러나 저자가 소개하는 이들은 아주 젊은 주로 30~40대의 자기 일에 확신을 갖고 뛰어든 사람들이었다. 책을 읽어 가면서, '어제를 기억하는 도시의 미래, 밀레니얼 장인의 일과 삶'이라는 부제가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잡지사 기자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서 생활하면서 통신원으로 종종 그곳의 소식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다가, 그곳 문화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책을 저술했다는 저자의 이력도 흥미로웠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올림픽이 연기되고 또 취소까지 거론되는 상황이지만, 그동안 도쿄는 올림픽을 대비하여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을 읽다가, 문득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개발의 광풍이 불었던 당시 서울의 풍경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도시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고 하지만, 그곳에서 익숙한 혹은 새로운 일을 꾀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이들이 바로 그들 가운데 일부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젊지만 익숙한 혹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장인'으로서의 자부를 느끼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모두 14명이 '밀레니얼 장인'이라는 타이틀로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한약방을 운영하던 조부의 가게에 터를 잡고 자기만의 콜라를 개발하는 코라 고바야시의 사연이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다. 이어서 4대째 이어온 목욕탕(센토)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려가는 마무라 유이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책방의 일부를 대여해 자신만의 책방을 꾸리도록 돕는 와키 마사유키의 스토리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한국에서도 대형 사우나와 인터넷 서점에 밀려 전차 동네 목욕탕과 소규모 서점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통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운영 방식을 채택해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도쿄의 시부야 거리에 모차렐라 치즈를 만드는 공장을 차리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치즈 장인 후카가와 신지의 포부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만 그 내용이 다소 소략하게 느껴져, 그들의 직업에 대한 철학이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햇다. 4대에 걸쳐 여전히 노트를 생산하는 와타나베 다카유키는 할아버지가 고집스럽게 지켜온 제작 공정을 유지하고 있다. 고장이 나면 부품들을 다시 구하기 힘들 정도의 낡은 기계지만, 그것을 고쳐가면서 전통을 유지하려는 그에게서 새롭게 전통을 만들어나가려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글을 쓰는 것보다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처리하는 것이 익숙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자신들의 노트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다음은 일본 전통 복식인 기모노에 그림을 새기는 장인 하토바 쇼지와 하토바 요지 부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붓으로 정교하게 그리던 문장들을 아들인 하토바 요지는 아이맥을 접맥시켜 더욱 정교하고, 새로운 문장으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리고 낡은 옷을 수선하여 새롭게 만들어내는 디자이너 히오키 다카야의 사연 또한 자기만의 방식을 지키려는 이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여러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찍은 사진들을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다만 사진을 수록해 놓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사진의 모습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쉬웠다. 대체로 30대 혹은 40대의 나이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장인들의 이야기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를 따라 목공 장인으로 살기 위한 행보가 결국 커피 장인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카오 아쓰시의 사연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건축회사에 취직했으나, 마치 기존의 틀에 가두려는 기업의 '길들이기'와 같은 형태에 반기를 들고 호주로의 워킹 홀리데이를 신청했다고 한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떠났던 호주에서 커피를 즐기는 카페 문화에 매료되어, 도쿄에서 그것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는 이후 여러 개의 카페를 열어 새로운 커피 장인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밖에 오래된 영화 필름을 복원하여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오사와 조, 일본의 코미디언 콤비 하세가와 시노부와 지로, 그리고 컬러풀한 유럽 채소를 일본에서 키워 판매하고 있는 고야마 미사오의 사연도 소개되고 있다. 도시 큐레이터로 소개된 구라모토 준의 구체적인 사업에 대해서는 글만 읽어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자신이 즐기는 일을 찾아서 하기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일본 최초의 여성 스시 장인으로 소개된 지즈이 유키에 관한 내용은 여전히 성차별의 벽이 높은 일본 사회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주접을 새롭게 꾸며가는 구와바라 고스케의 이야기도 ‘술꾼’을 자처하는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다.
이상 모두 14명의 열정적인 장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들의 삶과 사업 수단이 흥미로운 부분이 있으나, 사실 그러한 아이템과 열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저자는 도쿄라는 대도시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가는 그들의 삶에 끌렸던 것은 아닐까? 문득 우리 주위에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새로운 길을 걷는 이들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누군가에겐 특별하지만, 또한 특별할 것 없는 열정과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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