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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모두 12개의 애니메이션 영화들을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미 보았던 작품들이 있고, 앞으로 보고 싶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다. 적어도 내가 본 작품들로만 따져 본다면, 이 책은 영화에 대해 그리 친절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왜 책을 제목을 <이것은 애니매이션이 아니다>라고 정했는지를 이해할 수 잇었다. 책의 구성이나 저자들의 저술 의도를 분석해 보았을 때, 아마도 같은 시기에 동일한 주제의 공부를 하는 과정에 기획되었을 것이라 짐작이 되었다. 작품 분석에 사용되는 용어나 분석 틀이 대체로 유사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과 기계문명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인간의 기억을 AI의 메모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하며, 측히 대부분의 영화들을 철학자인 들뢰즈나 가타리의 관점에서 분석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예컨대 <은하철도 999>는 ‘인간과 기계 사이를 달리는 위태로운 여행의 역설들’이라는 제목으로 분석한다. <공각기동대>는 ‘신체는 어떻게 자신을 변이시키는가’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메모리스>는 ‘기억의 세 가지 시제’라는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관점을 전제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저자들의 설명이 영화를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작품을 보다 자유롭게 감상하기에는 일종의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예컨대 인간의 욕망으로 망가져가는 자연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나로서는 <평성 너구리 폼포코>나 <원령공주>를 유사한 범주에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작품의 구체적인 내용이나 형상화의 방식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의미 맥락을 연관시켜 다루면서 분석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평성 너구리 전쟁 콤포코>를 통해 '놀이와 노동‘ 그리고 ’존재‘의 문제로 환치시켜 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니체와 하이데거와 같은 철학자들의 용어를 인용하고 있지만, 나로서는 그러한 설명 방식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다. 동일한 저자에 의해 서술된 <원령공주>의 분석에서도 역시 북친과 가타리 그리고 스피노자 등의 철학자들이 예외없이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의 기획 의도가 ‘애니매이션을 철학적 관점으로 분석한다’는 것에 있다고 이해된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들의 의도가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애니매이션 작품을 감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의 내용이 깊이 있는 공감으로 이끄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의 독서 경험이 애니매이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을 굳이 밝히고 싶다.(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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