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위기와 문화의 전환 : 생태학적 세계관을 위하여, 박이문, 민음사, 1999.
인문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철학과 과학사에 대해 연구하고 논하는 저자의 저서이다. 저자의 글들이 주로 과학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인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힌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명과 문화의 의미에 대한 반성’의 시각에서, ‘문명이 진보의 뜻을 내포하지만 문화는 차이의 의미를 함의’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그동안 ‘진보’만을 추구하는 인류에게 ‘문명의 위기’가 도래했고, 이제는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할 수 있는 ’문화의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동안 사람들이 ‘진보’로 알고 있던 문명의 실상은 진보가 아닐 수 있으며, 어쩌면 ‘후퇴’나 ‘위험’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수도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현대 문명 속에 잠재하고 있는 역사적 위기는 현대인의 근본적 사고의 개혁 즉 현대인의 문화적 전환으로만 극복’될 수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문명과 문화’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글들을 이 책으로 엮어 출간하였다.
이 책은 크게 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고, 저자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먼저 ‘문화와 문명’이라는 첫 번째 항목에서는 문화와 문명의 차이를 비롯하여 이미 상품이 되어버린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문명의 새 모델’과 ‘이야기로서의 역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자문하고 있다. 어쩌면 ‘문화를 상품으로만 생각하게 된 오늘’의 시점에서, ‘문화의 가치는 상품성과는 상관 없이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의 진실성, 고귀성 그리고 폭과 깊이에 의해 평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이제 ‘상품화된 문화’는 그것의 경제성만을 따지는 시대로 접어든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대중들이 특정의 ‘문화’를 돈으로 구매하고 소비하는 행태가 보편화된 것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철학과 현대 문명’이라는 제목의 두 번째 항목에서는 21세기의 문화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고, 어느덧 사람들의 일상 속에 깊이 자리를 잡고 있는 종교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생태학적 세계관 등에 대해서 철학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지막 항목에서는 ‘전통과 창조’라는 제목을 내세우며, 전통의 묵수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것이 반드시 상치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양한 시각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저자 자신의 ‘자서전적 성찰’을 보여주면서, ‘서구 문화와의 만남’과 그 의미를 진지하게 토로하기도 한다.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터넷이 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해주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문화의 개방’에 대한 고민을 논하는 저자의 인식은 조금은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어떠한 문화를 접하든지 그것을 자기 나름의 주체성을 지니고 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진단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근대 이후의 과학기술 문명을 무비판적으로 지배하고 정당화해 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생태학적 세계관을 위하여’ 환경과 생태를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차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