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경험은 그 당시에 겪었던 감각에 크게 의존한다고 한다. 인간의 감각은 무엇보다 시각이 가장 중심에 놓이면서, 냄새(후각)와 소리(청각) 그리고 촉각과 미각으로 완성되는 것이 그 이미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건축을 전공하는 이로써, 이 책을 통해 감각의 중심이 되는 시각을 벗어버리고 <눈감고, 도시>를 느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아마도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감상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으며, 실제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시각을 포기한 감각에 익속해지는 것이 지난한 과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책에서도 시각을 포기한 도시의 이미지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동안 시각에 의존했던 것에서 벗어나, 다른 감각을 통해서 도시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는 의도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붙인 부제가 ‘후각 청각 촉각 미각, 사감의 도시’라고 여겨진다. 문득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동안 여행 중에 느꼈던 감각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어시장이 있던 포구에서의 비릿한 생선 내음, 빌딩과 차량들이 압도했던 대도시의 매캐한 매연 내음, 도시 인근의 축사에서 풍기던 가축들의 분뇨 냄새 등등.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후각이었다.
저자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까? 전체 4개로 이뤄진 목차 가운데 첫 번째 항목이 바로 후각을 다룬 ‘도시의 냄새를 맡다’였다. 오물과 각종 쓰레기로 뒤덮였던 중세의 파리에 대한 설명으로부터 시작하는 내용은, 악취와 자연의 향기 사이에서 냄새를 통한 도시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었다. 미술에서 색을 구별하는 원색의 팔레트가 있듯이, 냄새를 구별하는 ‘냄새 팔레트’가 있다는 내용을 접하면서 흥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향수가 목욕을 자주하지 못하던 자신의 체취를 지우기 위해서 사용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잔향의 특성에 대해서는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두 번째 항목은 청각을 다루고 있는 ‘도시의 소리를 듣다’라는 제목으로, 서양 중세 도시의 종소리와 현대 도시의 소음을 비교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저녁 무렵에 국기 하강식을 하면서 울려퍼지던 애국가 소리를 잊을 수 없다. 모든 행동을 멈추고 부동자세를 취해야 했던 그 시절, 집권자들의 전체주의적 사고가 빚어낸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이제 도시에서는 건물을 짓더라도 소음 기준에 맞추어 설계를 해야만 한다고 한다. 다양한 경혐을 가진 저자와는 달리, 나에게는 청각으로 기억되는 도시의 이미지가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도시의 피부를 만지다’라는 제목의 세 번째 항목은 촉각을 대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에서 다양한 건축 자재들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그 특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건축 자재의 특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연 촉각만으로 가능할까 하는 점은 의문이다. 결국 시각을 동반한 촉각으로 인해서, 그 특징을 비교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마지막 네 번째 항목은 ‘도시의 맛을 느끼다’라는 제목으로, 미각을 위주로 도시의 이미지를 그려나가고 있다. 이 항목에서는 도시의 특징적인 음식 문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데, 결국 미각 역시 시각과의 결합에 의해서 그 장점이 도드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여행하고 관찰했던 다양한 도시들을 소개하면서, 때로는 그에 걸맞은 사진들을 통해서 그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와 함께 잠시나마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들여다 보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답사를 자주 하던 나로서도 그동안 여행지의 이미지를 주로 시각으로 설명했다고 생각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음식을 좋아하기에, 여행지의 특색이 담긴 음식을 함께 떠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시각만의 경험이 아닌, 다양한 감각을 통해서 내가 다녔던 곳의 이미지를 그려내는 작업을 시도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차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