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복희(시인, 동양일보 기자)
서천에 다녀오는 길, 삼월의 폭설이 분분하다. 봄이 오려다 화들짝 놀란 눈치다. 하늘은 희부연 하고 멀리 산 능선마다 쌓인 눈발
로 계절이 유턴을 한 모양새다. 일을 마치고 서천에서 부여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뜻밖의 날씨는 뜻밖의 감정을 끄집어내기도 한
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산골에 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본다.
시는 뜻밖의 시간에 만나는 뜻밖의 기후 같다. 삼월에 몰아치는 눈발처럼 일상에 매몰돼 잊고 지냈던 정서를 불러낸다. 마음 밑바
닥에 가라앉아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그리움의 세계를 환기시킨다. 시를 읽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문학을 접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내면은 메마르고 척박해질 것이다. 정서의 교감이 사라진다는 것은 일년내내 햇빛만 내리쬐는 날
씨와 흡사하다. 이런 곳은 바로 사막화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문학은 삼월의 폭설처럼 낯선 세계다. 그 낯섦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휘저어 새로움에 닿게 한다.
“유모차를 밀고 가던 할머니”가 “힘없이 나뒹군”<박정원, 「또 다른 고요」 일부> 찰나의 시간을 제시함으로써 노년의 삶과 죽음을
일깨운다.
“너와 아빠가 단둘이 먹는 ” “짜장의 시간”<이영식, 「짜장의 흑마술」 일부>을 통해 죽은 아버지를 기억한다.
20여 년의 물리적 시간으로 기억 속에서 멀어졌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몰려오기도 한다. “짜장의 흑마술”에 걸려 아버지가 곁에 있
는 것처럼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시가 주는 힘이다.
“재래시장 골목에” “둘러앉아 있”는 “노점상 할머니”들의 “긴 서사시”<심은섭, 「재래시장 뒷골목 풍경」 일부>에 귀를 기울이며 가
난하고 고단한 삶의 경계에 손을 얹어놓기도 한다.
“봄이 와도” “식지 않”는 “겨울 배춧국”<김남수, 「겨울 배춧국」 일부>에서 보여주는 황망한 이별의 순간을 떠올리는 것처럼 시는
변화무쌍하게 내 안에 깃든다.
어느 날 문득 찾아드는 슬픔과 외로움의 시간을 읽는다. 한 편의 시를 읽는다는 건 다양한 기후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일이다. 태
양만 내리쬐는 사막이 되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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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밀고 가던 할머니가
힘없이 나뒹군다
먼저 가신 그분이 내려다보는 듯
살랑바람이 옷깃을 스치는데
이파리들이 나누는 소리 없는 소리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다
그분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다는 할머니
물 말아 우물우물 밥을 자시다가
벽에 걸린 영정사진 그분을 흘낏 보는 할머니
온종일 기다려도 찾아오는 사람 없는 집에
누가 오셨는가
개 짖는 소리에 이파리 한 장 떨어지는 순간
일 년 치 달력 동그라미 친 날짜들이 떨어져
온 방 그득 떼굴떼굴 구르네
- 박정원, 「또 다른 고요」 전문
모두가 떠난 자리를 혼자 지키는 노년의 모습은 쓸쓸하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하루를 버티는 일보다 “온종일 기다려도 찾아오는 사람 없” 하루를 견디는 일이 더욱 애잔하다. 잠겨 있는 녹슨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노인은 종일 누워 있거나 빛바랜 사진첩을 펼친다. 흑백사진 속 얼굴에 한참 시선을 두고 말을 건네기도 한다. 대부분 혼잣말이다. 한때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과거로 되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시적 화자는 “유모차를 밀고 가던 할머니”를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의 존재는 쓸쓸함을 외투처럼 입고 살아가는 노년의 모습이다. “벽에 걸린 영정사진 그분”을 먼저 보내고 한참을 혼자 지내고 있는 존재다. 유모차를 밀고 갈 만큼 거동조차 불편해 보인다. 시적 화자가 관찰하고 있는 “할머니”가 “힘없이 나뒹군다” 고독사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 누구도 지켜보지 않은 가운데 허물어진 상황이 그려진다. “살랑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이파리들이 나누는 소리 없는 소리” 절대의 정적만 감돈다. 그 “고요”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운다” 나뒹군 “할머니”의 몸에서 “일으켜 세운” 건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다. 그 영혼을 마중 나온 건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벽에 걸린 영정사진 그분”이 아닐까. “누가 오셨는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집에 “할머니”를 마중 온 “그분”이 대문 밖에 서 있을 것 같다. 고독하고 서늘한 “또 다른 고요”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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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평화
면 하나로 펼친 세계
짜장면은 서민들이 누릴 수 있는
모든 기념일의 상징이었지
그가 검은 이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듯 텁텁한 면장에
신세대 입맛같이 달달한 캐러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을 섞어놓은
춘장의 흑마술 때문
막내가 묻는다
아빠 왜 짜장면은 검은색이야?
이런 질문에는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지
응, 오늘
너와 아빠가 단둘이 먹는
이 짜장의 시간을
우리 입가에 까맣게 묻혀서
오래 남기려는 거지
마음에 두고 기억하면
그게 바로 추억이 되는 거란다
- 이영식, 「짜장의 흑마술」전문
어느 해부터인가 아버지는 어린이날 온 가족을 불러 모았다. 모두 모여 짜장면집에 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부모가 되고 나서도 어린이날 짜장면집에 모이는 것은 계속되었다. 아버지가 사주시는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그날이 참 좋았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와 짜장면을 먹는 순간 어린이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매해 어린이날을 기념해 짜장면집 가족 모임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이어졌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린이날 가족 모임은 없어졌다. 어린이날 짜장면을 먹을 일도 없어졌다. “우리 입가에 까맣게 묻혀서/ 오래 남기려”는 “짜장의 시간”은 생각했던 것보다 깊은 기억이 되었다. 아버지가 어린이날을 기념해 사주었던 짜장은 “마음에 두고 기억”하는 것으로 따뜻한 “추억” 이 되었다. 어떤 대상은 온기가 느껴진다. 그 온기는 사라지지 않고 같은 날 그리움으로 발화된다. “짜장면은 서민들이 누릴 수 있
는 / 모든 기념일의 상징”이었다. 졸업식이나 생일날 같은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의 맛과 냄새가 추억으로 환치되는 것을 시인은 “춘장의 흑마술 때문”이라고 한다. 충분히 공감 가는 부분이다. 문학의 힘은 잊고 있었던 시간에 머무르게 한다. 그 시간 속에 함께했던 인물들에게 숨을 불어 넣어준다. 이영식 시인의 「짜장의 흑마술」을 읽으며 20여 년 전 아버지를 만났다. 온기 가득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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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골목에 노점상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있다
화장기 없는 민낯의 얼굴 하나하나가
어느 관공서 벽보에 붙어있는 포스터인 줄 알았으나
한 편의 긴 서사시이다
어떤 시는 목덜미로 세월의 강이 갯골처럼 흘렀고
그 강을 따라 떠내려 와 시장의 전설이 되기도 했다
한땐, 장미꽃이 핀 정원이었으나, 이젠
연탄 화덕처럼 살아오며 얻은 꽃무늬 상처일 뿐이다
온종일 앉아있는 시멘트 바닥보다 더 차가운 시선이
전대 속의 영혼을 퍼가는 날도 있었으나
이마에 소금꽃이 피도록 붉은 서사시를 쓰던 노파들, 귀가를 하지 못한 낮달의 나침판으로 산다
좌판 위에 놓여 있는 가자미 눈빛 같은 한 노파는
가끔 요실금 증세를 보이더니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붉게 울리며 데려갔다
그 검은 리본을 단 흰 달빛만 빈자리를 서성인다
절편에 줄무늬가 찍혀 있듯이
행간마다 피안의 발자국을 그리는 뒷골목의 노병들
집에서 홀로 공회전하는 가족을 위해, 새벽부터
좌판을 깔고 오늘도 고난의 긴 서사시를 쓰고 있다
- 심은섭, 「재래시장 뒷골목 풍경」 전문
시인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 시가 된다. “재래시장 뒷골목”은 시인이 눈길을 둔 “풍경”이다. 그곳에서 “민낯의 얼굴”로 “둘러앉아” 있는 “노점상 할머니”는 시인에게 “한 편의 긴 서사시”다. “목덜미로 세월의 강이 갯골처럼” 흘러 “시장의 전설”이 된 “시”들이 있다. “장미꽃이 핀 정원”으로 시작했으나 “연탄 화덕처럼 살아오며 얻은 꽃무늬 상처”뿐인 그들. 시인은 “재래시장 뒷골목”에서 “소금꽃이 피도록 붉은 서사시를 쓰 노파들”을 바라본다. “행간마다 피안의 발자국을 그리는 뒷골목의 노병들”이 “좌판을 깔고 오늘도 고난의 긴 서사시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인의 눈은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생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꽂혀 있다. 그들이 써 내려가는 “긴 서사시”에 주목한다. 세상 사람들이 관심 두지 않는 곳에 마음을 내는 사람들을 우리는 시인이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심은섭 시인은 진정한 시인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시인에게 “재래시장 뒷골목 풍경”의 주인공은 오늘의 고난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노점상 할머니”이다. 그들이 써 내려가는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보고 긴 “서사시”를 끌어내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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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난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고
여보 배춧국 끓였어요
빨리 나와요
식기 전에 아침밥 먹어요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았는데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난 사람을
어떻게 용서를 하느냐고
죽어도 용서할 수 없다고
봄이 와도
겨울 배춧국은 식지 않았습니다
- 김남수, 「겨울 배춧국」 전문
이별은 황망하다. 마음의 준비를 해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헤어짐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김남수 시인의 시 “겨울 배춧국”은 황망한 작별의 슬픔이 그들먹하다. “여보 배춧국 끓였어요/ 빨리 나와요/ 식기 전에 아침밥 먹어요” 평범한 일상이다. 아침 밥상을 차려 놓고 “사십여 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을 깨우는 어제와 같은 날이다. “작별 인사 한마디 없이 떠난” 사실을 알기 전까지.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남아 있는 이들이 느껴야 하는 슬픔의 깊이는 치명적이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이별의 무게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을 멈춰 버린다. “잘 있으라는 말 한마디 없이 떠난 사람” 앞에서 인간이 겪어야 하는 고통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게로 짓누른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시적 화자는 “봄이 와도 / 겨울 배춧국은 식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다. 결코 가시지 않을 슬픔의 농도가 짙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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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속 자투리로
남은 어제 달래면서
시침질로 이어가는 내 생의 조각보는
오종종 둘러앉았던
소꼽동무 모양새. 제각기 몸꼴 달리
포개 앉은 저 언어
슬픔이 없었다면 고독이 없었다면
어디다 귀를 맞춰서
바느질을 하였을까. 고단한 몸을 풀어
덧을 대고 홈질해서
올올이 감겨오는 생의 맵찬 감칠맛
단단한 마음의 솔기
모퉁이를 돌아간다.
- 조경순, 「조각보」 전문
슬픔 없는 생이 어디 있을까, 고독하지 않은 생이 어디 있을까.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이 감내해야 하는 생은 저마다의 슬픔과 고독으로 점철되어 있다.
조경순 시인은 인생을 “허공 속 자투리로 남은 어제 달래면서” “시침질로 이어가는” “조각보”라고 말한다. 명징한 은유다. 생=조각보이고 자투리를 이어 붙이는 일이다. 시인은 “슬픔”과 “고독” 으로 “귀를 맞춰” 바느질을 하는 것이 우리들 인생이라고 말한다. “고단한 몸을 풀어/ 덧을 대고 홈질”할 때 얻게 되는 “올올이 감겨오는 생의 맵찬 감칠맛”을 전한다. 슬픔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마음의 솔기”가 되어 “모퉁이를 돌아”가는 생의 긍정적 메시지를 보여준다. 시조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생의 자세가 단단하다. “슬픔”을 “고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