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집은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데 그중 상수리 나무가 가장 많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도토리 생각이 간절한데, 미안 하지만 난 풍년을 기다리진 않는다.
왜냐하면 도토리는 풍년이 든 해에는 도토리가 잘 달리질 않고, 흉년이 된 해에는 마구마구
쏟아진다. 내가 어려서 부터 어른들께 들은 이야기인에 여직까진 얼추 들어 맞는거같으다.
도토리하면 동글 동글 큰 알맹이 상수리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나름 재롱이도
맛이 쫀득 쫀득 야들 야들 그 맛이 일품이다.
상수리는 씁쓸한 맛이 더 있고 재롱이는 상수리보다 아주 작고 떫은 맛도 별로 없고 색이 덜 짓고
더 찰지다. 이루 말하면 상수리가 맵쌀이라면 재롱이는 찹쌀이라고나 할까!
도토리가 흐드러지게 달릴땐 허리춤에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신 쌀자루 주머니를 차고 한알 한알
주워 모은후 도토리를 편편한 시멘트 바닥위에 쏟아놓고 넓적하고 커다란 돌을 위에 올려놓고 밀면
껍질이 벗겨진다. 중간중간 깨진 도토리를 분리해서 완전 탈피후 햇볓에 돌맹이 처럼 말린는데
도토릴 주운 다음 빠른시간안에 껍질을 벗끼지 못하면 금새 썩어버린다. 도토리 벌레라는 말캉 말캉한
요놈이 정말 순식간에 도토리를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어렸을땐 이 도토리 벌레를 가지고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말캉거리는걸 가지고 꾹꾹 눌러가면서 놀기도 했다. 지금은 쫌 징그러워서 ..
묵을 만들때 쯤 말린 도토리를 물에 불려서 떫은 맛을 여러번 우려낸 다음 방앗간에 가서 곱게 간후
갈은 도토리를 면 주머니나 쌀 자루에 넣어서 물을 붓고 여러차례 걸러내고 찌꺼기는 버린다.
걸른물을 그래로 두면 밑에 녹말이 생기는데 녹말을 말려서 가루로 묵을 쑤거나 녹말물 그대로
묵을 쑤어도 된다. 비율을 따지자면 가루로 묵을 쑤는것이 더 맛있고, 참고로 떫은 맛이 많이 나야
진짜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같은 상수리 도토리라 해도 마른 도토리를 얼만큼
우려 내냐의 차이도 종류의 차이도 있느니 씁쓸하다고 진짜묵은 아니다.
묵 가루를 만들땐 대부분 날씨가 추워야 녹말이 잘 가라앉기 때문에 이른 봄이나 겨울이 시작될때쯤
만들어두는것이 좋다고한다.
또 묵을 잘 쑤는 특별한 비법은 두꺼운 솥에 뜸을 오래 들이는것이 포이트다.
드디어 묵이 완성이 되면 대부분 묵무침이나 양념장을 찍어 먹는데 먹다 남은 묵은 딱딱해진다.
이럴때 다시 원래대로 먹고 싶다면 뜨거운 물에 묵을 넣고 쌀짝 데치면 원래대로 말랑해진다.
난, 먹고 남은 묵이 있을땐 묵을 썰어서 채반에 널어 말리면 돌처럼 딱딱한 묵 말랭이가 된다.
먹기전에 물에 불려 냉장고에 넣어두면 바로바로 음식에 사용할수있다.
묵말랭이 볶음을 하려면 후라이팬에 들기름 한스픈에 고추씨기름 아주 조금 섞어서 달군다음
마늘과 파를 볶아서 향을 낸다. 여기에 불린 묵말랭이 두줌과 간장한스푼을 넣고 한번 볶음다음 물1/4컵을
넣고 뚜껑을 닫고 3분정도 둔다. 묵말랭이가 야들거리면 뚜껑을 열고 물기를 말리면서 한소끔
볶은다음 마무리로 참깨를 슬슬뿌리면 끝~
여기서 잠깐! 묵말랭이는 한번먹을 양만 볶아야 하고 먹다 남은 묵말랭이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순간
다시 뻣뻣 왕자로 돌아가서 다시 볶아야하는 번거로움과 처음 볶았을때의 맛이 조금 달라요. 그러니
한끼 먹을 양 만큼만 볶아서 먹어야 해요.
그리고 불려놓은 묵말랭이는 여러 요리에 함께 넣어 먹어도 좋아요. 예를 들면 닭볶음탕, 불고기 같은
고기요리에도 야채나 버섯볶음 요리에도 잘어울려서 씹을때 고기보다 쫀독거림의 식감이 예술입니다.
꼭 한번 만들어서 드세요!
첫댓글 오호~~ 도토리묵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렇군요~~
그 묵말랭이 맛이 진짜 궁금타~~~
오늘 맛나게 먹었습니다. 생김새는 잘게 썬 장조림같은데, 맛은 고소하고 부드럽고 씹는맛도 있고....아무튼 먹어봐야 아는 맛입니다.
묵말랭이 못 먹어봤는데 꼭 먹어보고 싶네요.
글이 정말 맛깔스럽습니다.
참 잘했어요, 도장 쾅!!
오~~먹고싶어지는 글솜씨입니다. 요리솜씨는 더 환상적일것 같고,..부럽~
이런 기억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거예요.
직접 도토리를 따서 만들다니. 우우.
지난 글쓰기 시간에 슈퍼영웅님의 글을 소리내 읽으며 군침 흘렸는데 점심에 반찬으로도 나온다고도 했는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와서 어찌나 그 맛이 사무치던지....글로나마 위안삼아 봅니다. 영웅인 무사 귀환 한거죠?
먹어봐야 맛을 안다?
글만 읽어도 맛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