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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격려로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오늘을 바로 달리겠습니다.
지난이야기
공주와의 짧은 만남 뒤 요해를 출정한 하급 장교 온달은 동부대인 발안에게 모욕을 당한 후에 분노를 느낀다. 발안의 각개격파로 돌궐과의 전쟁 초반에 큰 승리를 하자 고구려군의 분위기에 붕 떠버렸고 이에 온달과 총사령관 고흘은 불길함을 느낀다.
한편 평양의 안학궁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태자 고원과 명화공주 단희 앞에는 고흘장군의 장녀이자 태자의 약혼녀인 미한이 나타나는 데....
“그러면 며칠 전에는 사냥을 갔었다가 오늘은 바둑을 두시고 계신 것이군요.”
태자의 거처에서 태자는 미한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태자와 미한은 보지 못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를 서로에게 말하기로 하였다. 태자는 말을 피하고 싶었지만 미한은 듣기를 계속 고집했다. 결국 태자는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는 사냥과 바둑으로 소일을 보냈다고 솔직히 말하였다. 사실은 어머니의 가문인 주씨가문숙청 이후 태자와 공주에 대해서 궁 안에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태자의 스승인 태사마저도 사직하고 도망간 실정이었다.
태왕이 폐태자를 자주 생각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태자와 함께 죽을 수는 있지 않은가? 따라서 태자의 공부도 엉망이 되었고 무엇보다 연금되어 있다는 것이 심리적인 압박에 아무 일도 못하게 만들었다. 솔직히 12살에 어린 소년에게 이러한 고난을 헤쳐 나가라는 것이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말은 들은 미한낭자는 입술을 깨물더니 작심한 듯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무례한 말씀이지만 백잔(백제)의 왕들은 사냥하는 틈에 역도들에게 많이 맞아 죽었다고 합니다.”
미한의 말에 태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그녀의 예리한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백잔의 또 다른 왕은 바둑 때문에 나라를 망쳤다고 들었...”
꽝
“네 이년이 감히 이 나라의 태자인 나 대원과 요녀 소서노의 후예인 백잔(백제)의 간악한 왕을 비교하려 하느냐?”
어린 태자는 참지 않고 탁자를 쳤다. 그의 언제나 차분하던 표정은 시뻘겋게 상기되었다.
“화는 내실 줄 아는 군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저는 태자전하께서 그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실까봐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귀여운 얼굴과 다르게 그녀는 붉은 용포를 입고 있는 태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를 몰아붙였다.
“뭐시라!”
태자는 큰 소리를 내면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을 모욕한 미한낭자에 대한 분노가 가득 찼다.
대노한 태자의 얼굴을 본 좀 겁에 질렸는지 미한낭자는 바로 바닥에 굻어 앉고 머리를 숙였다.
“오늘 소녀가 태자전하에게 죽더라도 말은 다하고 죽게 해주십시오! 간절한 부탁이옵니다.”
미한의 말을 듣자 태자는 그냥 화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이 당시 그는 자신에 대해 한 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문진박사가 평양에서 떠날 때 간곡하게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는 충언을 했지만 나약한 자신은 스승의 말씀을 받들지 못했다.
“태자전하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무릎을 꿇고 충언을 올리는 미한에게 태자는 가만히 있었다.
한동안 침묵이 계속 되자 그녀는 땅을 쳐다보면서 계속 태자에게 말을 올렸다.
“태자전하의 나이가 어려서 이 고난을 이기시지를 못하시는 것입니까? 대무신왕께서는 어린 나이에 부여의 대군과 맞아 싸워 대승하였나이다.”
태자는 그것을 모는 바는 아니었다.
“온 백성이 추앙하는 대무신왕께서는 글을 깨우쳤을 때부터 국정에 참여하셨다. 그런 영웅을 미숙한 나와 비교할 수 있느냐? 나도 이 나라에 태왕이 된다하여도 그런 분에 결코........”
태자는 아버지의 심복들이 이야기를 들을까 말을 죽였다.
[누가 이 자리를 준 다더냐?]
아마 그분은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실 분이었다.
“그러면 태왕이 되실 마음을 갖고 계신 것입니까?”
태자는 고개를 서서히 들면서한 미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를 않았다.
“궁궐에서 돌아가신 왕후폐하가 명화공주만 총예하여도 전하께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태자전하께서는 언제나 남에 양보를 잘 하셨지요. 자신이 양보해서 아니 희생해서 다른 행복해질 수 있다면 꾹 참고 넘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안학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미한은 어릴 적부터 태자의 이러한 성품을 잘 알았다. 폐비 주씨는 자신을 닮은 명화공주를 너무 사랑한데 반에 태자는 엄하게 대하였다. 그래서인지 명화공주는 언제나 욕심 많고 활달한 성격이 되었고 태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참을 줄 아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제가 걱정한 것은 태자전하께서 지금의 자리를 남에게 양보할까? 그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희생하면 이 나라에 안녕을 위할 수.........”
미한은 태자의 듣기 싫어하는 표정을 보고 스스로 말을 끊었다. 그때 그녀는 어리지만 태자의 얼굴에는 마음속에 강렬히 그 자리를 원하는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자는 그 욕망을 숨기려는 듯이 고개를 돌려서 의자에 앉았다.
“태자전하 정말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으십니까?”
미한의 조심스러운 말에 태자는 한참 있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는 그 자리에 정말 앉을 마음이 없었다면 바로 태자자리를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태왕이 되어서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다.
‘나는 만백성을 행복하게 하고 싶다! 그것을 바탕으로 다툼 없이 천손부터 귀족, 백성과 노비 같은 신분뿐만이 아니라 말갈인, 동예인, 거란인등이 모든 민족들이 하나로 뭉친 사회, 그런 통일된 나라 ......’
난전으로 끝나서 어지러운 바둑판에서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태자는 고개를 돌려서 창가를 쳐다보았다. 처음부터 그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았다. 솔직히 태자가 화를 내고 있는 상대는 미한이 아닌 태자 자신이다. 아무 일을 안 하고 때와 사람을 기다리는 자신의 나태함에 스스로 화가 났던 것이었다.
‘이 여자는 이런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걸고 충언을 올리는 것일까?’
어느 정도 짐작은 되었지만 태자는 바닥에 앉아있는 미한낭자를 의자에 앉게 한 후에 일단 물어보았다.
“낭자는 왜 이렇게 나를 위하는 것이요. 태사(太師)도 버린 나를.”
미한는 순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 전에 자신을 꾸짖었던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태자는 이상했다.
“제 말을 듣고 화내실 것이면 말하기 싫사옵니다.”
태자는 미한의 주눅들은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아까 전에 나를 요녀 소서노의 후예들인 백잔의 역도들과 비교하여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낭자가 그런 말을 하시다니......”
그래도 미한은 끝가지 고집을 부려서 태자에게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하지만 좀처럼 그녀는 입을 열지를 못했다.
“빨리 말해 보시오.”
“그...럼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미한은 고개를 들다 말다 약간 불안해하였지만 결국 눈을 꽉 감고 소리쳤다.
“저는 이 나라의 왕후가 되고 싶습니다.”
“뭐???”
밖에서 있던 태자의 여동생인 명화공주는 순간 당황해서 말이 뛰어나올 뻔했다. 공주는 아까 전부터 태자와 미한의 이야기를 다 엿듣고 있었다. 원래는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냥 둘의 이야기가 하도 궁금해서 귀를 기울이다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미한의 당돌한 말을 계속 이어졌다.
“소녀의 아버님이신 막리지 고흘은 소녀에게 평양에 사는 자에게는 시집을 안 보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간사한 귀족들에게 소녀의 셋째 오라버니들을 잃으신 아버님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소녀는 정말로 어릴 적부터 천하의 중심인 안학궁에 안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부여성에 살 때 유화부인께 간절히 이날이 오기를 기원했습니다.”
명화공주는 이제야 미한형님이 매년 혼자 안학궁에 와서 아버지인 태왕과 오라버니인 태자, 그리고 자신을 만나고 갔는지 이해를 했다. 원래 미한의 아버지인 고흘장군은 자신의 딸만큼은 평양의 권력투쟁과 거리가 먼 곳을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의 장녀인 미한은 언제나 태자비 그리고 이어서 이 나라의 왕후가 되는 큰 꿈이 있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궁궐에서 보내면서 이곳에 살고 싶다는 아니 그것을 뛰어넘어서 이곳에 안주인이 되겠다는 마음을 키운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부여성에 살 때에도 10살부터 매년 빠짐없이 평양에 혼자서라도 수례를 타고 올라와 입궁하였다. 어쩌면 태왕 양성이 태자비를 간택할 때 고흘장군의 딸들이 먼저 생각난 것도 매년 올라와서 공손히 인사드리는 장녀 미한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자는 미한의 당돌한 말에 처음에는 당황하였지만 조금 지나니 매우 슬퍼졌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는 권력 투쟁에 패하고 죽은 어머니의 시신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풍체 좋은 그의 얼굴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왕후라는 자리가 그렇게 좋아 보이오.”
태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 날의 비극을 다시 떠올렸다.
하루아침에 외가가 멸문당한 그 날,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자식들의 목숨을 약속받고 독약을 마시고 자결할 때 아무것도 못한 체 밖에서 그것을 쳐다보아야 했던 자신.
“이 나라의 왕후 중에 행복하게 사신 분이 계시오? 거의 모두가 태왕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신의 낳은 자식들이 왕위는커녕 아버지이신 태왕이거나 귀족들에게 살해당하고....”
태자는 차마 자신의 어머니를 말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어두운 말에 미한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구려에 시조 추모성왕의 두 왕후였던 예씨부인과 요녀 소서노만 해도 그렇다. 두 왕후를 사랑한 대가로 추모성왕은 말년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받으셨다고 전한다. 그 분은 같이 남하했던 부여세력의 뜻대로 결국 예씨부인의 아들인 유리명왕을 지목하고 황룡을 타고 이 세상을 버리셨다. 하지만 남겨진 두 여인인 예씨부인과 소서노는 행복하게 살았는가?
예씨부인은 자신의 반려자와 거의 같이 산 적이 없었다. 그분은 결혼했을 때 약 1년과 마지막 유리를 왕으로 지목할 때 몇 개월뿐만 추모성왕과 같이 정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녀는 거의 평생을 독수공방(獨守空房)의 서러움을 보내며 사셨다. 소서노는 모든 것을 바친 추모성왕께 처참한 배신을 당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연타발의 왕국을 넘겨준 대가는 자신의 자식인 비류와 온조가 아닌 예씨부인의 소생인 유리의 즉위였다. 그때 졸본성에 그녀의 절규로 인해 예씨의 후손인 고구려와 소서노의 후손인 백제는 같은 추모성왕의 피를 이은 왕조임에도 600년 동안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뒤를 유리명왕의 부인이자 전쟁신인 대무신왕의 어머니인 송씨부인은 마찬가지였다. 유리명왕의 의해 이루어진 해명태자의 자결로 놀란 송씨부인은 자신의 자식인 후일 대무신왕이 되시는 해무휼도 아버지인 유리명왕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하루라도 자신의 아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건국의 완성을 했다고 평가될 정도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자 유리명왕은 말년에 성격이 점점 알 수 없이 변덕스러워졌다. 그동안 격동에 수성시대를 이끌었던 철인 유리명왕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당해야했던 인간적 시련이 만년에 그를 포악하게 만들고 있었다.
유리명왕은 어린 나이에 부여군을 궤멸시키고 백성들 사이에서 전쟁에 신이라 불리던 셋째 아들 무휼을 점점 두려워했었다. 송씨부인은 유리명왕이 정말로 무휼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유리명왕이 죽자 송씨부인은 남편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한시름을 놓았다고 전한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이때 다 매말라버린 것이었다. 오히려 두려움과 증오를 느끼고 계셨다.
이후의 왕후들도 행복하게 살았다는 분을 거의 없으시다. 모두다 하나씩 불행한 일을 안 당하신 분이 없었다. 외적에 잡혀서 고국에 몇년을 못 돌아오시거나 아들을 못나서 남편인 태왕에게 외면당하거나 사랑을 받았지만 출신이 너무 낮아서 왕실 종친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말년을 고통 속에 보낸 분이 거의 다였다.
“왕후가 되고 싶다는 낭자를 정말 이해할 수 없구려!”
태자가 미한의 얼굴을 보았다. 엣띤 얼굴의 그녀는 태자의 슬픈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올렸다.
“역시 전하께서는 전하자신이 치룰 고난보다 제가 치룰 고난을 걱정하시는 분이십니다.”
“뭐..!”
“역대 선왕들도 수많은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그런 고통과 희생 속에 대국인 고구려를 건설하시 않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수많은 고통 또한 감수할 수 있는 각오를 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
태자는 미한의 말에 아무 말 못했다.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는 짐작이 안 갔지만 큰할아버지인 안장태왕처럼 누군가의 모살을 당한다고 해도 그는 그 길을 가고 싶었다.
<안장태왕은 백제와 북위(한기의 묘지에 기록)에 군대를 보내 공격한 호방한 국왕이자 한씨미녀와의 사랑으로 낭만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일본서기의 기록에 된 그의 최후는 신하들에게 의문의 피살당했다고 기록이 남아있다. 안장태왕부터 양원태왕기는 기록이 부족한데 일본서기는 당시 고구려의 정국불안을 단편적이 남아 기록하여 고구려후기사를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 자리를 원하는 저 또한 그 정도의 각오는 이미 하고 여기에 선 것입니다.”
미한낭자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다. 점점 밀리고 있는 태자는 오기가 생겨서라도 그녀의 입을 다물게 하고 싶었다.
“내가 12살이라 사랑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도 않지 않소. 그렇다면 어떻게 반려자가 될 수 있소.”
자신의 약점인 어린 나이까지 태자는 스스로 이야기했다.
“상관없습니다. 성인이 되살려면 아직 3년이라는 시간이 있으니 그사이에 전하의 마음을 빼앗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태자는 미한낭자의 반박에 자신의 입을 오히려 닫았다.
“저는 돌아가신 주씨왕후처럼 반려자에게 사랑받지 않는 여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녀의 답변을 들은 태자는 어머니를 부정적으로 이야기했음에서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
한 동안 태자는 멍하게 미한의 당당한 얼굴만을 쳐다보았다. 고구려에 당찬 여자들이 많았지만 미한낭자만큼 드센 여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명화공주는 오라버니인 태자와 앞으로 태자비가 될 미한의 이야기를 그만 엿들었다. 그리고 앞으로 오라버니의 곁에 저렇게 무서운 형님이 있으니 재미있게 바둑이나 사냥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공주는 동궁에 있는 자신의 거처에서 긴 머리의 댕기를 다 풀었다. 그녀의 내려온 머리카락이 5척이 가까웠다. 고구려사람들은 긴 머리를 가진 여자를 제일 좋아한다. 아마 명화공주가 3년 뒤에 성인이 되면 그녀의 단아한 미모를 크게 받쳐 줄 것이다.
솔직히 명화공주는 미한형님에게 자존심이 상했다.
‘방황하는 오라버니를 잡아주는 것은 내가 먼저 했어야 되는 데.....’
그간에 그녀를 즐겁게 했던 온달이라는 학생이 전선으로 떠난 뒤에는 오라버니랑 바둑이나 사냥만 열중했지 형님처럼 앞을 내다보지는 않았다. 명화공주는 미한에게 나이와 여성미뿐만이 아니라 남을 옳은 길로 이끄는 것에도 뒤진다고 생각되었다.
“머리를 다시 편하게 묶어 들릴까요?”
수현은 그렇게 말하였다.
“아니다. 그냥 줄로 만 묶어라.”
말을 듣고 수현은 공주의 긴 머리를 금실로 만든 줄로 묶었다.
“흥! 바보 같은 형님.”
기분이 매우 안 좋은 공주는 팔에 차고 있는 팔찌들을 빼면서 작게 읊조렸다.
수현은 공주님이 주무실 준비를 하다가 공주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공주의 주위에는 시녀들은 잘 때 입을 흰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수현에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수현을 제외하고 모든 시녀들이 공주님에게 인사를 하고 나가자 공주는 화려한 침전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미한 형님은 저렇게 당당해보았자 소용없어!”
수현은 공주님의 팔찌와 귀걸이를 은으로 만든 보석함에 정리하면서 공주의 말을 계속 들었다.
“남자 잘 만나서 어떻게 해보려는 것이냐?”
“공주님!”
너무 과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수현은 정리를 하다말고 공주를 쳐다보면서 조심스럽게 만류하였다.
“사실 아니냐? 오라버니가 성품이 너무 약하셔서 휘둘리실까 걱정이야!”
“태자전하께서 그렇게 약하신 분이 아닙니다.”
수현은 좀 소리를 높였다. 그제야 공주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을 하고 과한 말을 자제했다.
“물론 미한 아씨가 그렇다고 하여도 태자비가 되실 분에게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 않는 것입니다.”
수현의 조언에 공주는 붉은 입술을 코까지 또 내밀었다. 그녀가 못마땅할 때 하는 버릇이었는데 남이 보면 나름대로 귀여워보였다.
“나는 남자 따위에게 기대면서 살지 않을 거야!”
공주는 자신의 긴 머리를 매만지면서 말했다. 수현은 공주님에 말에 그냥 웃었다. 흔히 그 시절에 소녀들이 하는 말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흔히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때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 자들이 있는 법이다.
퍽 퍽 퍽
“야! 제대로 대! 병닭같은 놈들. 앞으로 30대 남았어!”
강렬한 흥분상태에 온달은 자신의 부하인 9명의 바지에 먼지가 나도록 장을 치고 있었다. 사태의 시작은 온달십대에 속한 병사 여섯이 야간 근무 중에 술을 마시고 자고 있다가 상관인 온달에게 적발되면서이다. 가뜩이나 그동안 헤이해진 당대 분위기에 화가 나있던 온달에게 부하들의 잘못은 엉뚱하게 기회였다.
온달의 몽둥이맛에 모든 부하들은 자세를 흩뜨렸고 그럴 때마다 발길질이 날아갔다.
“오늘 갈 때까지 가보자! 개새끼들.”
밤중에 얻어 떠지는 소리가 하늘을 찌르니 주위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매 맞는 구경도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법이니까? 몇 사람 빼고
“야 온달 너 밤중에 모하는 거야!”
그날 밤 당직 근무를 서던 오도는 직속부하인 온달을 말리기 시작했다.
“제 부하 잘못입니다. 저도 나중에 처벌받겠습니다.”
“지금 그만두라고. 이 자식아!”
오도의 명령을 듣자 온달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잘못하는 것인가? 모두들 왜 그런가?’
나태해져가는 당대 분위기에 온달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온달은 원래 남의 일이라도 무관심하지 못하는데다가 잘못되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든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군대에서는 상관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없는 조직이기에 가만히 속을 끓이고만 있었다. 그가 오도에게 비유를 맞추어도 애걸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온달의 불안감이 지금 터져버린 것이었다.
“야 지금 내말 안 들려.”
여전히 몽둥이를 들고 온달은 상관의 말에 항명을 하듯이 서있었다.
“이놈이 죽고 싶어.”
오도는 온달이라는 나름대로 성실한 부하라고 생각했지만 승전이후에 계속되는 이상한 행동에 화가 났고 그의 얼굴에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러자 당대원들은 흥분한 오도와 온달에게 진정하라고 말리기 시작했다.
그 때.
“너희들 지금 잠 안자고 모하냐!”
모든 당대원들이 낮은 음감의 목소리가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관에 있는 3쌍의 깃털과 민무늬 대도를 찬 소형 급으로 보이는 군인이 수행원 5명을 이끌고 왔다.
그 분은 100명의 장병들에 최고 지휘관인 당주(현재 중대장급) 을지무발이었다.
지휘부에 열린 5일 동안에 당주회의에 참석한 그가 밤중에 부대에 복귀한 것이다.
42세 을지무발당주는 평민출신으로 상당히 성공한 군인이었다. 선대 양원태왕 즉위년에 왕위계승전쟁과 신미년 나제연합군의 전쟁 그리고 돌궐과의 전쟁을 참가한 역전에 용사로 수많은 공적을 세우고 39세에 12관등인 소형에 올랐다. 일반귀족보다는 10년 정도 늦은 셈이었지만 평민출신으로 중앙군에서 소형까지 오르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였다. 그는 온달과 같이 15살 성인이 되자마자 사병으로 출정하여 여기까지 올라갔다. 27년 동안 수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생긴 얼굴의 상처가 8개나 되었고 코뼈가 뿌려져서 왼쪽으로 휘어져있었기 때문에 겉모습이 상당히 험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의 외모답지 않게 을지무발은 부하들을 신뢰를 받는 덕장으로 유명했다.
<고구려의 남녀모두 성인이 되는 나이는 15살이다. 그때부터는 자기 인생을 책임지고 사는 나이였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을지무발은 그동안에 당대에 있었던 상황과 분위기를 객관적인 입장에 있었던 다른 십장들에게 들었다. 그는 모두 해산을 하게 한 뒤 그 동안 당대를 맞은 오도를 자신의 막사로 홀로 불러서 당대의 기강을 해이하게 만든 것에 대한 질책을 강하게 내렸다.
“당대의 분위기가 이정도로 흐트러지다니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한 것이냐? 내 어찌 너에게 다음에도 당대를 맡길 수가 있겠는가?”
질책을 들은 오도는 그동안의 잘못에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자 을지무발은 물러가라고 했다.
“그럼 알면 됐다. 가서 당직서거라.”
“충.”
오도는 경례를 올리고 물러갔다.
을지무발은 이어서 밖에 있던 온달을 불러 들였다. 사실 온달은 당주님에게는 그렇게 크게는 안 혼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오도에 대한 당주님의 처결을 보고 자신의 생각은 옳았다고 온달은 확신했다. 하지만.
“너 부하들이 너의 노예냐?”
“예?”
“내가 지금 노예냐고 물었다 대답 안 하겠느냐?”
상처들 때문에 험상궂은 당주님의 언성이 높아졌다.
“아닙..니다.”
온달의 당황한 말을 들은 당주님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책상을 잡았다.
“그럼 무엇이냐?”
“.........”
온달은 도대체 당주님께서 무슨 답을 원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이것저것을 대답하였지만 당주님께서는 모두가 아니라고 하고 답을 말하셨다.
“너의 자식이다.”
“예?”
“네가 배속에서 키워서 낳은 자식들인 것이다.”
온달은 잠시 멍해졌다. 사실 자신의 부하 9명중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과반수가 넘었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자식이 있을 수가 있는가?
“지금 내가 황당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느냐?”
당주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언제나 옭고 곧은길로 이끌려고 한다. 그렇지만 많은 유혹에 자식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어머니는 결국 매를 들을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매에는 결코 사심이 없다.”
을지무발은 잠시 말을 멈추다가 온달에게 크게 소리쳤다.
“군대에서도 자기 부하는 자기 새끼다! 부하들은 어머니인 너를 따라서 가는 자식들인 것이야.”
당주님의 큰 소리를 듣자 온달은 자신의 잘못한 점이 느껴졌다. 을지무발은 곰곰이 생각하는 온달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너는 밤중에 부하들에게 처벌을 내릴 때 사심이 없었느냐?”
온달의 진심은 바로 나타해져가는 당대에 대한 분위기 반전이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바꾸려고 일부러 자신의 부하들을 골라 잡어서 패버리고 만 것이었다. 당주인 을지무발은 그것을 알아채고 온달을 크게 꾸짖은 것이었다.
“물론 부하들이 잘못은 했다. 하지만 너의 행동 또한 옳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때릴 때 마음속으로는 수천 번은 우신다. 그들의 어머니인 너는 그들을 때릴 때 울기는 했냐? 남들이 자신의 옳은 말을 안 들어준다고 자식들에게 화풀이를 했느냐?”
온달은 자신이 부끄러운 행동을 깨달았다.
‘이런 식으로 일이 잘 안된다고 부하들에게 화풀이하는 자신이 어떻게 부하들에게 신뢰받을 수가 있을까?’
그는 바로 무릎을 꿇고 당주님께 자신의 잘못을 말하고 반성했다. 그의 얼굴에는 진심이 진정으로 담겨져 있었다.
“정말로 네가 잘못하는 것을 알았느냐?”
“옛 당주님!”
을지무발은 많이 착잡한 얼굴을 한 고개를 숙인 온달을 내려 보았다. 그는 온달이 십장 중에 유일하게 같은 평민이자 사병출신이어서 관심 있게 보았다. 당대에 최고 지휘관인 을지무발은 가끔 온달이 보이는 기발한생각과 뛰어난 직감력 그리고 염증을 느낄 정도에 성실함에 매우 감탄했지만 오늘밤에는 실망이 매우 컸다.
“사병출신이었던 너라면 부하들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을 줄 알았다.”
온달은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에 묘한 아픔이 왔다. 자신도 사병시절에 귀족출신지휘관들이 평민출신 부하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 부리듯 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보아 왔는가? 자신의 행동이 그자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부끄러운 자신의 행동에 온달은 너무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상기가 되었다.
“알았으면 됐다. 가서 자거라!”
을지무발은 충고를 더하고 싶었지만 온달을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온달이 나왔을 때 아까 전에 서로 무언의 싸움을 한 오도님이 앞에 서있었다.
“네가 나보다 더 혼쭐이 난 것 같구나?”
약간 눈살을 찌푸린 오도는 밤하늘을 잠시 올려보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오도님”
“온달아. 물론 내가 잘못한 것은 있지만........”
오도는 성격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부대를 임시로 맡기는 것은 문제가 있었지만 당주 을지무발은 가장 선임자였던 그에게 임시당주로 임명했다. 무발은 군대에서 연공서열을 제일 중요시했기 때문이었다. 조직에서 실력을 따지면서 파격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이점도 있지만 조직을 파괴할 수도 있다. 연자유나 강이식 같은 하급군인가문의 사람들과 달리 을지무발같이 존재 자체가 파격인 평민출신 당주급 장교들은 그것을 뼈아프게 알고 있었고 그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오도는 말하기는 싫었지만 오늘 온달의 행동을 보고 말해야겠다는 것이 있었다.
“이런 말 하기는..............저기 온달아 상관에게 대들었다간 죽을 수도 있다.”
온달은 입술을 궂게 다물면서 오도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네가 어렸을 적 군대에 있을 때 고흘장군님같이 열려 있는 분이나 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야? 군대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아... 아이참. 네 수단이 좀 잘못되었어! 상관이 설득하려면 더 많은 대화술이나 ..........”
오도도 온달 앞에서 떳떳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을 잘 못했다. 사실 온달은 오도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서로 떳떳하지 못한 둘의 대화가 끊기자 온달이 말을 올렸다.
“오도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가슴속에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 알면 됐어!”
오도는 민망한지 바로 뒤를 돌아서 당직을 서러 본부막사로 도망치듯 갔다.
을지무발과 오도의 충고를 들은 온달은 잠시 땅을 쳐다보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졸개일 때가 속편했다.”
고구려군 최고지휘부
요해(遼海거란족거주 지역 서요하강일대)에 주둔한 고구려군 12명의 장군과 20여명의 고위말객급 장교들은 3각(지금 6시간)동안에 치열한 격론이 오고 갔다.
“지금 돌궐군은 오랜 대치로 기강이 해이해저 있습니다. 당장 막북(漠北 돌궐본토 지금의 외몽고 일대)을 침공하여 칸의 황금게르까지 진격해야 됩니다.”
“지금 보급이 거란과의 유지도 어려운 판국에 이천 리를 더 진격할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리고 적지에서 싸움은 세배이상의 병력을 갖고 싸우는 것은 병법의 상식입니다. 우리는 10만이지만 돌궐군은 13만입니다. 적어도 30만의 병력을 동원해야 승산이 있습니다.”
진격이나 퇴각이냐는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청색의 육중한 갑주를 입은 최고 지휘관인 고흘장군은 팔짱을 낀 채 회의 중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답지 않게 아직 어느 쪽으로 마음을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왼편에는 요동으로 전면 퇴각을 주장하는 위류와 하리같은 원로장군들, 청년장교들인 연자유, 강이식이 소리를 높이고 있었고 오른편에는 막북으로 총진격을 주장하는 대귀족세력인 발안과 구성의 반박으로 작전회의는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었다.
“연자유! 어린것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북부대인어르신 지금 말하고 하는 것은 제 나이가 아니고 10만 고구려군의 승리를 위한 후퇴인 것입니다.”
분위기가 너무 격해졌다는 결국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느낀 고흘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말객(현재 대대장급)회의와 당주(현재 중대장급)회의에서 결정은?”
고흘이 하급 장교들의 의견을 물으며 말을 열자 부관은 대답하였다.
“말객회의와 당주회의 모두 총퇴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말객회의는 퇴각을 주장하는 연자유와 강이식이 장악하고 있었고 당주회의에서는 평민장교의 중심인물 을지무발과 연자유와 강이식의 부관들이 중심이 총퇴각을 주장하여 의견을 관철시켰다. 고흘은 하급 장교들이 의견을 듣고는 자신의 흰 수염을 만지며 다시 침묵에 빠졌다.
"막리지 그 갓 하급 장교들의 이야기는 왜 듣습니까? 사령관 결정을 내리시지요!"
동부대인 발안은 또 시작되는 고흘의 침묵을 참지 못하고 결단을 재촉하였다. 사실 이 회의에서는 개전 초기 빠른 기동력을 활용한 각개격파로 세배의 돌궐군을 격파한 발안이 회의 주도권을 잡았다. 장군들 중 3분의 2가 발안의 진격론에 찬성하고 있었다.
첩보에 따르면 13만 돌궐군들은 광활한 초원에 산개해서 여름철을 맞이해서 말과 양들을 돌보았다. 이러한 허술한 행동은 진격을 주장하는 장군들에게는 절호의 기회로 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귀족측인 동부대인 발안과 북부대인 구성은 조기 결전을 피었는데 고흘장군과 같이 선대 양원태왕때 활약한 원로 장군들과 태왕의 신임을 받고 잇던 청년장교인 연자유와 강이식은 보급에 부담을 이유로 요해(遼海)지역에서 총퇴각을 주장하였다.
연자유와 강이식 둘은 대 백제전선에서 보급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젊음에 비해 무모하지는 않았다. 백제왕인 부여창(위덕왕)은 자주 서쪽에 북제와 진나라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비난했는데 당연히 엄청난 보복을 당했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고구려와 백제사이에서 있던 고구려의 동맹국인 신라가 백제를 치러가는 고구려군에 군량 공급을 거절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맹국 신라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고구려가 날뛰는 백제를 가만히 둘 수는 없고 계속 수군을 출동시키거나 병력을 남쪽으로 파견하였다. 이러한 연약한 보급로에서 싸운 연자유와 강이식은 뼈저리게 보급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고흘장군은 진격과 퇴각 두 주장 모두 다 공감을 표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작정 퇴각에 반대하였다. 만약 후퇴한다면 돌궐은 고구려의 속방인 거란족이 사는 요해(遼海)를 침공할 것이고 또다시 15년간에 지루한 전쟁의 반복될 것이다.
어느 시점에 국면 전환이 필요했다.
‘내 나이도 이제는 예순 셋이다. 이 전쟁을 또다시 15년 동안 할 수는 없다. 태왕폐하와 태자전하 그리고 태자비가 되실 미한님을 위해서라도.......’
훗날 이문진 박사는 이 당시 고흘장군의 집중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평했다. 15년 전에 신미년전쟁당시 강철 같은 정신은 불행이도 말년이 되자 산만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가족들에게 편지한통도 안 보내시던 그가 이번 원정 때는 17통이나 안학궁에 있는 장녀 미한와 부여성에 살고 있던 대씨부인에게 보냈던 것을 증거라고 주장했다. 아마 주씨왕후와 주씨가문의 멸문으로 위험에 처한 태자 그리고 그와 결혼할 태자비 미한의 생각도 많이 났을 것이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는 장녀를 끔찍하게 아꼈다고 전해진다.
사실 고흘장군은 평소 정치를 혐오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장녀가 태자비가 되고 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태왕과 미한은 전선에 있는 고흘장군을 힘들게 만든 셈이다.
무엇보다도 그를 조급하게 만든 것은 고구려에 자기를 대신한 장군이 없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나이가 예순 넷이라 언제 노환으로 죽을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군부 내에 자신이 뒤를 이을 명장이 없었다. 자기가 고구려의 노장군 명립답부처럼 113세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고흘은 후계자로 오른팔이라는 34세에 안수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올 초 이계찰대의 계략에 죽었고 연자유의 아버지인 39세에 연명안장군은 귀족들의 모함으로 숙신으로 유배되었다. 물론 발안 휘하에 편성 되어있는 32세에 설무도라는 장군도 이곳인 회의장에 있었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전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독불장군인데다가 지휘관으로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점까지 있었다.
65세에 북부대인 구성은 자기와 같이 물러나는 노장급이고 연자유 강이식 발안같은 젊은 지휘관이 있었지만 아직 10대에서 20대로 군을 맡기기에는 너무 어렸다. 이 당시 고구려군에 최대 불안요인은 30대부터 50대까지 모든 조직에서 허리가 되는 세대에 능력 있는 장군들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선대 양원태왕때의 정국불안 속에서 능력 있는 인재들이 자주 숙청당한 비극적인 결과였다. 양원태왕선후대인 안원태왕와 현 태왕이신 양성통치기에만 성장한 인재들이 고구려를 채우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그 당시 고구려군에 핵심지도부에서 중심인물 등은 60대와 20대로 나누어진 상황이었다. 훗날 이 시대를 역사로 정리한 이문진박사는 이 때를 아버지가 없는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니 기형적인 고구려군을 모두 홀로 떠 앉고 있는 예순 넷의 고흘에게는 부담감은 너무 컸다.
‘이번에 모든 것을 끝내야한다. 내가 죽기 전에.’
이렇게 집중력이 흐트러진 고흘의 눈에는 허술한 돌궐군은 좋은 먹잇감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들만 사라지면.......'
그런 생각이 들은 고흘장군은 갑자기 일어섰다. 모든 장군들은 일제히 상승의 노장인 그를 쳐다보았다.
“많은 의견들이 오고 갔지만 지금이 기회라는 것은 모든 것이 알고 있을 것이요! 돌궐군 13만을 섬멸한다면 돌궐은 다시는 고구려에 도발을 하지 못할 것이오!”
선대에 고흘장군과 함께 싸웠던 원로장군들은 고흘 장군의 말을 듣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는 언제나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투만 하였다. 하지만 막북으로의 북진은 모든 것이 불투명하지 않은가?
하지만 불안해하는 퇴각을 주장하는 장교들을 위해 고흘은 진격론에 찬성하는 이유를 멸망한 대국이었던 위(북위)주 탁발도가 유연을 정복할 때 남긴 말을 제시하였다.
“유목민들의 말들은 여름철에는 거의 쓸모가 없소이다. 숫말들은 교미하는 데 정신이 없고 암말 들은 자신의 새끼를 키우는데 여념이 없다고 위주는 말하였소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유목민인 돌궐의 전사들도 나태해졌을 것이오! 이러한 기회에 우리 또한 적지로 진격하여서 허술해진 돌궐에게 막심한 타격을 입혀서 다시는 고구려에 도전을 생각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말로만 따지면 정론이었다. 고흘은 말을 잠시 멈추고 진중에 장군들과 고위 장교들을 쳐다보고는 지휘봉을 쳐들면서 단호하게 말을 하였다.
“5일 뒤에 막북으로 진격을 시작하여 결전을 하겠소이다.”
그때 키가 9척으로 마다산(백두산)같이 큰 강이식은 의견을 제시할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자신이 뜻이 관철되었다고 기뻐하던 동부대인 발안은 화를 내었지만 고흘은 강이식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진격에는 찬성을 하지는 않지만 사령관의 명에 절대 따르겠습니다. 다만 열흘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평양에서 3만 명의 증원 병력이 오고 있습니다. 구지 따로 진격하는 것보다는 그들과 합류 후에 움직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후퇴를 주장하던 연자유와 원로장군들도 강이식의 의견에 찬동하였다. 고흘도 내심 강이식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진격은 보름 뒤인 6월 초순으로 미루어졌다.
글쓴이 저작권자 김원식
이 소설에서 시나리오 각색, 도용, 표절을 절대 금합니다.
다음주 토요일 오전 8시에 <3편 쓰러저가는 영웅>는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열심히 하시네요!! 건필하세요^^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아우 또 끊어지네요 미치것습니다 ㅋㅋ
하하 다음은 3편 후반부에는 고흘장군이 대활약하던 옛시절 신미년전쟁(1차 고구려-돌궐전쟁인 신성공방전, 백암성 전투, 이계찰대의 반격으로 시작된 돌궐군 요하 총퇴각전)이 나옵니다. 돌궐대군이 만여명으로 다 박살내던 젊은 시절. 그리고 그의 현재인 영강2년에 시작된 몰락이 나옵니다. 다음 편 분량은 16페이지 정도 되더군요. (페이지 조절 또 실패했습니다.) 하여간 3편부터는 고구려와 돌궐간의 전면전이 시작됩니다. 기대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꾸벅^^
“나는 남자 따위에게 기대면서 살지 않을 거야?”에서 물음표가 어색합니다.^^ 켰다->컸다. 무율-> 무휼... ^^;; 소설속에서는 명화나 미한 같은 당찬 여성이 끌리는데, 현실에서는 역시 반대 성향이 끌린다는...ㅋㅋㅋ 무튼 매번 잘 읽습니다~
동갑입니다. 하지만 악처(?남편을 들들 볶는 여자)가 남편을 잘만든 다고 하지 않습니까?(진심으로 사랑한다면야) 그런데 고구려 여자들은 거의 당차더군요 우씨왕후, 주통부인보면 남편보다 당당하지 않습니까? 주통부인은 죽을 위기에 처하자 병사들을 꾸짓지 않습니까?(천손인 뱃속 아기 생명의 위기때문에 몰려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하지만 이런 여자들은 남자들에게는 부담덩어리지요.(복덩어리 일수도 있지만) 저도 그런 여성이라면 막상 싫을 것같습니다. 하여간 리플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