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37)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 ① 감각적 심상 2-2/ 시인 공광규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 ① 감각적 심상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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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은 심상을 다양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심상을 공부할 때 대개 심상주의자인 흄의 시가 자주 인용됩니다.
가을밤의 싸늘한 촉감
나는 밖을 걸으면서 얼굴이 붉은 농부같이
불그레한 달이 울타리를 넘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멈춰 서서 말을 걸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레에는 도시의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생각에 잠긴 별들이 있었다
시를 창작할 때 사물의 정확한 표현을 위해 밑줄처럼 감각적 심상의 활용이 필요합니다.
한국문학사에서 1930년대의 시는 정지용의 감각과 세련된 언어 및 김기림의 이론이 닦아놓은 테두리 속에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적 창작방법에 있어서 기술상의 일대 발전을 이룩하여 말을 다듬어 쓰는 솜씨나 정교한 이미지의 조형이나 깔끔하고 억제된 구성에 있어서 고도의 세련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정지용은 그 이전의 모든 시인들이 한탄과 슬픔 등으로 가득 찼던 한국시단과 ‘시적 결별’을 하고 감정의 절제를 가능한 한도까지 감행한 한국 최초의 시인입니다.
그의 초기 시는 바다 소재를 통한 회화성에 집착하다가 후기에는 산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지용 시에 대하여 이론적이며 분석적인 평가를 처음 내린 사람은 김기림입니다.
김기림은 “가령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은 거진 천재적 민감으로 말의 음의 가치와 ‘이미지’, 청신하고 원시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발견하였고 문명의 새 아들의 명랑한 감성을 처음으로 우리 시에 이끌어 들였다.”고 극찬했습니다.
물론 정지용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있습니다.
임화는 모더니즘이 고의의 논리적 기교이거나 지식계급의 완전한 주관적 환상이라며 정지용은 김기림, 김영랑, 신석정 등과 함께 기교파이며, 기교파는 시의 내용과 사상을 방기한다고 공박하였습니다.
정지용은 시 창작에 있어서 바다와 산을 제목으로 한 시를 많이 창작하였습니다.
그의 초기 시집인 『정지용 시집』에는 ‘바다’를 제목으로 한 연작 형태의 시가 11편이나 되며, 바다를 소재로 했거나 바다 심상을 드러내는 시는 20여 편에 이릅니다.
이는 초기 시에 있어서 바다에 시선이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기에 정지용은 다수의 바다 시를 썼습니다.
바다 시에서 감정을 철저히 감각화 하고 있습니다. 그의 재기 발랄한 심상들에서 감각적 선명성을 볼 수 있습니다.
고래가 이제 횡단한 뒤
해협이 천막처럼 퍼덕이오.
……흰 물결 피어오르는 아래로 바둑돌은 자꼬 자꼬 나려가고,
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
한나절 노려보오 움켜잡아 고 빠알간 살 뺏으려고.
미역 잎새 향기한 바위 틈에
진달래꽃빛 조개가 햇살 쪼이고,
청제비 제 날개에 미끄러져 도―네
유리판 같은 하늘에.
바다는―속속들이 보이오.
청댓잎처럼 푸른
바다
봄
―정지용, 「바다 6」 부분
첫 연에서 고래가 횡단한 뒤 바다의 움직임을 ‘퍼득이는 천막’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바다에 대한 새로운 심상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파도가 밀려와 뭍에 부딪치는 모습을 ‘흰 물결 피어오르는’으로 표현하여 시각적 심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파도가 밀려나갈 때의 모습을 ‘바둑돌이 자꾸 자꾸 내려가는’ 것으로 표현하여 그 정경을 선명하게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풍경 한쪽에는 빨간 살을 빼앗기 위해 은방울 날리듯 떠오르는 바다종달새가 있습니다.
‘은방울 날리듯’ 가볍게 떠오르는 ‘바다종달새’, ‘천막처럼 퍼덕이는 바다’, 물살에 자꾸자꾸 내려가는 ‘바둑돌’은 흰빛, 은빛, 빨간빛의 색채와 어우러져 한 폭의 선명한 풍경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자꾸 자꾸 내려가는’, ‘퍼덕이오’, ‘은방울 날리듯’은 동적인 언어로, 시적 공간의 깊이와 높이를 확대하여 하강과 상승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 풍경을 이루고 있는 소재는 ‘진달래꽃빛 조개’, ‘청제비’ 그리고 ‘미역 잎새 나는 바위’와 ‘유리판 같은 하늘’, ‘청댓잎처럼 푸른 바다’입니다.
유리판 같이 투명한 하늘, 밝은 햇살 속에 빛나는 진달래꽃빛 조개, 청댓잎처럼 푸른 바다는 봄 바다의 한 풍경으로 투명하고 밝은 심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미역 냄새 향기한 바위 틈’의 표현으로 후각적 심상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바다 내음을 물씬 풍기고 있으며 ‘진달래꽃빛’, ‘청―’, ‘푸른’이라는 색채어가 함께 쓰여 맑고 청신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정지용의 또 하나의 시집 『백록담』(1941)에는 산수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앞의 시집이 바다나 평지에 관련된 심상을 보여주는 반면 『백록담』은 산과 관련된 심상을 많이 보여줍니다.
감각적 심상 구성에 있어서 정지용은 다양한 감각적 경험을 선명한 심상과 절제된 언어로 포착해내고 있습니다. 정지용이 감정을 감각화하는 방법은 그 스스로 철저히 인식했던 언어의 대한 자각에 의해 가능했던 것입니다.
심상의 방법은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인들이 두르러지게 사용하였던 창작방법입니다.
향료를 뿌린 듯 곱다란 노을 위에
전신주 하나하나 기울어지고
먼― 고가선 위에 밤이 켜진다
구름은 보랏빛 색지 위에
마구 칠한 한 다발 장미
목장의 깃발도 능금나무도
부을면 꺼질 듯이 외로운 들길
―김광균, 「댓상」 전문
위 시는 언어로 한 폭의 그림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공간을 형성하는 시어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또 실감을 주기 위해 사물에 시각적인 색감을 가미한 시어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심상의 종류는 감각적 심상, 비유적 심상, 상징적 심상으로 나룰 수 있습니다.
감각적 심상은 정신이나 마음에 나타나는 감각적 경험만을 강조하는 심상입니다.
외부의 사물에 대한 직감적 반응을 일으키는 감각기관, 즉 시각, 촉각, 후각, 미각, 근육감각, 기관감각 등을 통하여 지각할 수 있는 직감적인 사물이거나 상상적인 사물을 말합니다.(홍문표, 323쪽 참조)
피아노에 앉은
여인의 두 손에서
끊임없이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신선한 물고기가
튀는 빛의 꼬리를 물고
쏟아진다
나는 바다로 가서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 하나를
집어 들었다.
―전봉건, 「피아노」 전문
피아노를 뛰어난 솜씨로 세련되게 치는 음율의 심상을 묘사한 작품이지요.
피아노 건반 위를 민첩하게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열 손가락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다”는 피아노가 내는 소리를 비유한 것이며, “가장 신나게 시퍼런 파도의 칼날”은 음률 중 가장 매혹적인 대목을 비유한 것입니다.
어떤 관념이나 세계관이 끼어들지 않은 순순한 감각적 심상입니다.
감각적 심상의 이상적인 방법은 공감각에 있습니다.
공감각은 시각, 청각, 촉각이 동시에 이루어져 정서적 환기를 이루는 일입니다.
현대의 이시영도 이런 방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마른논에 우쭐우쭐 아직 찬 봇물 들어가는 소리
앗 뜨거라! 시린 논이 진저리치며 제 은빛 등 타닥타닥 뒤집는 소리
―이시영, 「봄 놈」 전문
이 시에는 청각, 촉각, 시각이 어우러져 마른논에 물이 들어가는 시골 봄 논의 정경을 확연히 떠오르게 합니다.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0.12.03.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37)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 ① 감각적 심상 2-2/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