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38)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 ② 비유적 심상/ 시인 공광규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네이버 블로그 - 국어교사 박전현입니다/ 정지용 비
② 비유적 심상
비유적 심상은 제유법, 환유법, 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등의 수사적 방법으로 표현되는 심상을 말합니다.
이러한 심상은 원관념(뜻은 무엇인가)과 보조관념(말하는 것은 무엇인가)의 관계에 따라 시적 설득력이나 수사적 우수성이 결정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물을 병치하여 과학적 인식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실재적 진리를 통찰합니다.
좋은 시는 추상적인 것과 구체적인 것, 이성과 감성, 현실과 상상을 분리하지 않고 조화시킵니다.
비유적 심상은 관념이나 사물을 유사한 것으로 표현하는 방식인데, 이를 테면 “글씨는 뱀처럼 꿈틀거렸다”(로웰, 「형태」 부분)고 하는 비유입니다.
초승달이 낫 같아 (新月如鐮刀)
산마루의 나무를 베는데 (硏上山頭樹)
땅 위에 넘어져도 소리 나지 않고 (捯地劫無聲)
곁가지가 길 위에 가로 걸리네 (游枝亦穔路)
―곽말약, 「초승달」 전문
초승달로 나무를 벤다는 상상력이 절창입니다.
초승달을 낫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초승달의 생김새가 낫과 같은 것에 착안한 것이지요.
그래서 초승달이 산봉우리의 나무를 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초승달은 낫이 아니므로 실제 나무가 잘려 넘어지지도 소리가 나지도 않는 것은 물론 곁가지도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중국 곽말약(1892~1978)은 초승달을 뜻하는 독일어가 일본어 렴도(鐮刀)로 번역된 것이 착안하여 이 작품을 썼다고 함.)
고은은 분단을 남녀의 몸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불 끄고
옷 벗고
우리 내외 알몸으로 일어서서
살이란 살 다 내리도록
껴안은 뼈 두 자루!
분단 휴전선 밤 밝힌 뼈 두 자루!
―고은, 「사랑」 전문
정지용은 비유적 심상 구성에 있어서 주로 직유법과 의인법 등의 수사적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정지용이 바다 시편 대부분에서는 비유 가운데 직유에 의한 심상 제시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정지용의 시에서 사용된 직유는 외적으로는 명징한 대상묘사와 함께 내밀한 형상화의 원리로 작용하고 있어요.
양왕용(「정지용 시 연구」, 삼지원, 1988)에 따르면 정지용은 바다를 형상화한 시기인 경도 유학시절을 비롯한 1930년대 중반까지 창작된 시 87편에 107회의 직유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아래는 직유방식을 사용한 시입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정지용, 「유리창 1」 전문
김선학(『비평정신과 삶의 인식』, 문학세계사, 1987, 29~30쪽 참조)은 위 시의 특징을 정교하고 치밀한 형용사의 적절한 선택으로 평가합니다.
그 선택은 ‘유리’라는 차고 냉혹한 물질을 집중적인 구심점으로 확산하여 결국 산새처럼 날아가 버린 주인공에 대한 그리움으로 수렴한다는 것입니다.
언어연금술사의 세밀한 언어 조립(표현)으로 시인 개인의 슬픈 정감을 독자의 가슴에 찌릿하게 감지시킵니다.
홍문표(『시 창작 원리』, 창조문화사, 1991, 339쪽 참조)는 이 시가 유리창, 밤, 산새 등의 명사 심상(이미지)에 집착하지만, 이 시를 미적인 거리로 낯설게 하는 것은 ‘어른거린다’, ‘붙어서서’, ‘흐리우니’, ‘파닥거린다’, ‘밀려가고’, ‘부딪히고’, ‘박힌다’, ‘찢어진’, ‘날아갔구나’ 등의 동적 심상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들이 훨씬 더 화자의 어조와 개성을 보여주고 정서적 충격을 강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정지용, 「바다 9」 부분
위 시는 바다라는 특정의 사물이 지니는 여러 가지 속성들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에 부딪혀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푸른 도마뱀떼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라고 표현하여 순간의 역동성을 느끼게 합니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는 물결이 뭍에 부딪쳐 부서지는 포말의 심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흰색과 붉은색의 색채어 사용으로 보다 선명한 심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청명하고 밝은 바다 그림은 ‘뿔뿔이’, ‘재재발랐다’, ‘찰찰 넘치도록’, ‘돌돌 구르도록’ 등의 가볍고 생동감 있는 어휘 사용으로 그 심상을 한층 더 신선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달아나는 푸른 도마뱀에 비유하였습니다.
바다가 파도치는 현상을 푸른 도마뱀이 재재거리는 것으로 직접 비유하여 심상화한 것입니다.
정지용은 산을 소재로 한 시에서도 직유법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그의 후기 시 가운데 대표적인 아래 시를 살펴보겠습니다.
절정(絶頂)에 가까울수록 뻑국채 꽃키가 점점 소모(消耗)된다. 한마루 오르면 허리가 슬어지고 다시 한마루 우에서 모가지가 없고 나종에는 얼골만 갸웃 내다본다. 화문(花紋)처럼 판(版)박힌다. 바람이 차기가 함경도 끝과 맞서는 데서 뻑국채 키는 아조 없어지고도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星辰)처럼 난만(爛漫)하다. 산(山) 그림자 어둑어둑하면 그러지 않어도 뻑국채 꽃밭에서 별들이 켜든다. 제자리에서 별이 옮긴다. 나는 여긔서 기진했다.
―정지용, 「백록담」 부분
‘화문처럼 판박힌다.’와, ‘팔월 한철엔 흩어진 성신처럼 난만하다.’는 직유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이동함에 따라 뻐꾹채 꽃이 등성이에 가려서 점점 보이지 않는 상황을 점층적으로 심상화하였습니다.
멀리서 보니 꽃의 모습은 등성이에 꽃무늬처럼 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또 꽃무늬처럼 박혀 있는 꽃은 팔월에 흩어진 ‘성신처럼 난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골에 하늘이
따로 트이고,
폭포 소리 하잔히
봄우뢰를 울다.
날가지 겹겹이
모란꽃닢 포기이는듯.
자위 돌아 사폿 질ㅅ듯
위태로이 솟은 봉오리들.
골이 속 속 접히어 들어
이내(晴○)가 새포롬 서그러거리는 숫도림.
꽃가루 묻힌양 날러올까
나래 떠는 해.
―정지용, 「玉流洞」 부분
위 시에서는 날가지가 ‘모란꽃잎 포기이는듯’하고 해가 ‘꽃가루 묻힌양’ 날아올라 날개를 떨고 있다고 직유하고 있습니다.
골이 첩첩한 것을 ‘속 속 접히’었다고 심상을 시각화합니다.
‘골이 속속 접히어든 계곡’의 공간의식은 현실 세계의 갈등이나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절대적 세계가 자아화된 곳입니다.
골은 하늘이 따로 트이고 폭포 소리가 봄 우레를 울고 날가지가 겹겹이 모란꽃잎 포개는 듯하고 해가 꽃가루 묻힌 양 날아올라 나래 떠는 골 속의 절대적 세계의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곳을 직유한 것입니다.
석벽에는
주사*가 찍혀 있소.
이슬 같은 물이 흐르오.
나래 붉은 새가
위태한데 앉어 따먹으오.
산포도순이 지나갔오.
향그런 꽃뱀이
고원 꿈에 옴치고 있오.
거대한 죽엄 같은 장엄한 이마,
기후조**가 첫 번 돌아오는 곳,
상현달이 살어지는 곳,
쌍무지개 다리 드디는 곳,
아래서 볼 때 오리옹 성좌와 키가 나란하오.
나는 이제 상상봉에 섰오.
별안간 힌꽃이 하늘대오.
*주사(朱砂): 붉은 모래
**기후조(氣候鳥): 철새
―정지용, 「절정(絶頂)」 부분
석벽에 흐르는 물을 ‘이슬’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이슬같이 맑은 물을 붉은 새가 따먹는다고 감각화합니다.
또 석벽을 ‘거대한 죽엄 같은 장엄한 이마’로 직유합니다.
화자는 향기로운 꽃뱀이 되어 바위 정상에서 고원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 고원의 꿈을 꾸는 뱀은 시인의 자아입니다.
시인이 꿈을 꾸는 곳은 ‘장엄한 이마’가 있는 곳이고, 기후조가 처음으로 돌아오는 곳이고, 상현달이 사라지는 곳이고, 쌍무지개가 다리를 딛는 곳입니다.
하늘의 오라온 좌와 나란한 곳입니다.(김수복, 『상징의 숲』, 청동거울, 1999, 105쪽 참조)
이처럼 정지용은 시적 자아의 세계인식 표현 장치로 비유적 심상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0.12.04.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38) 심상, 영상이 떠오르게 그리자 - ② 비유적 심상/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