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간지 게재 시
[아침시산책]에덴동산에 사는 이브/이정원
에덴동산에 사는 이브
/류명순
먼저 그녀의 기억이 그녀를 버렸다
덩달아 세탁기가 그녀를 버리더니
청소기가 그녀를 버렸다
집도 가끔 그녀를 버렸다
백두 번이나 생각해도
도무지 기억에 없는 자식들을
그녀가 버렸다
언제나 둘이 가던 길을 혼자 가고 있다
그녀는 에덴동산에 혼자가 되었다
이브를 홀린 뱀도
선악과를 따먹은 이브도
온데간데없다
단지 그녀를 버리지 않은 것은
밥뿐이었다
그녀를 내다 버린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시집 ‘새들도 변종을 꿈꾼다’
패러독스의 시학이다. 에덴이 어디인가? 인류의 시원이고 영원의 고향 같은 곳, 신이 인간을 위해 만든 지상낙원 아닌가. 그녀로 지칭되는 이는 아마도 부모님이거나 그에 준하는 친지에 틀림없을 터, 치매를 앓고 있음이 분명하다. 기억을 잃어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만큼 중증인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그 모두를 버린 주체가 아니라 버려진 대상이란 점이다. 유일하게 그녀가 버렸다는 건 자식뿐이라는 진술을 보면 실은 자식들이 그녀를 버렸다는 표현일 것이다. 그녀 역시 한 가정의 며느리고 아내로 어머니로 살아낸 세월이 얼마나 신산했으면, 일상생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상황을 에덴동산에 비유했을까. 그러나 이 또한 얼마나 황당한 결말인가. 지상낙원이어야 할 에덴에서조차 혼자인 것을! 인간 절대고독의 진수를 전하는 시니컬한 필치가 담담하다.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