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막달 뜻밖에 아내가 무릎수술을 했다. 현실 앞에서 아내는 큰 충격을 받았는지 한동안 숫제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도 큰 아픔이었으며 무척 당황스러웠다. 당장에 집안일도 큰일이었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로서는 그저 막막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척해진 아내를 안심시키는 일이 중요하였다.
낙심한 아내에게 의기 있게 재주꾼인양 폼은 잡았지만 막상 올망한 곳에 서니 아내의 단란한 손끝이 마냥 그립기만 하다. 서툰 솜씨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만든다. 음식은 정성이라지만 그도 잘 만들 때 덧붙이는 말이다. 아무리 재료가 신선하고 좋으면 뭐하는가. 결국 맛이 없으니.
그래도 자칭 나는 일류 요리사다. 수분간의 차이로 맛이 다르고 더한 재료 한술이 맛을 좌우한다는 것이 신기한 노릇이다. 마치 동체를 비행하듯 순간순간이 다른 것이 맛에도 어느 남모를 비경이 숨어 있을 듯도 하다. 초보가 어련하겠냐만 뚝배기보단 장맛이라고 벌써 입이 근질근질하다.
우리 음식은 지지고 볶고 찌든 간에 주재료의 고유 맛을 유지하면서도 담백하다. 일식은 간장을 많이 사용하는 기질답게 맛이 달달하고 중식은 기름진 만큼 화사하지만 우리 음식은 맵다면 매울 뿐 결코 달콤하지 않고 쓰거나 기름지지 않다.
그렇다고 서양처럼 자극적인 향료를 쓰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구미가 당겨지고 고소하다든지 시원하거나 개운함을 남긴다. 이는 실로 어려운 경지의 선상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입안에 들어서 맛을 음미할 쯤에야 단내를 풍기는 담백함이라니.
사태 살로 장조림을 만들 때 육질의 쫄깃함을 살리고 고기의 비릿한 기색을 제압한다하면 아마도 중국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고 서양에서는 대여섯 향료를 넣을 것이고 일본은 간장을 더하거나 설탕을 가미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 ‘골라쉬’란 장조림 닮은 음식을 헝가리에서 맛보았을 때 씹히는 살가운 맛의 향취는 온 간데없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양념의 진한 맛으로 겨우 고기 맛을 탐하였을 뿐이다. 우리는 단지 마늘 셋 쪽으로 비릿함만을 핀셋 집어내듯 쏙 빼내고 진간장을 부어 짭짤하게 만든다.
고구마는 음식 재료로 쓰지를 않는다. 우리 맛은 깊게 배인 원형의 은은함에 있다. 즉흥적인 달달한 맛 대신 씹은 즙액이 합치하여 달짝지근한 맛을 우려낼 때 비로소 맛의 정점에 닿는다. 그러기에 고구마는 푹 삶아서 과일마냥 단 맛으로 칭송을 받는 편이 낫다. 청국장이나 고기나 생선 같은 우리의 주 식재료들은 모두 담백함을 지녔다. 거기에 각자 소유한 특유의 씁쓸함, 비릿함이나 느끼함만을 솎아내면 된다.
비릿함은 얼큰함을 소유한 고추장과 매운 대파가 대견하여 매운탕을 만들고 떫은 감자는 부재료인 양파와의 조합으로 비로소 감자조림의 달짝지근함을 찾는다. 마늘이나 파 양파는 이렇듯 우리음식 특히 찌개 문화에서는 부소재로 아주 긴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참을성이 강해도 특유의 향내때문 이들은 개별적으로 대하기는 벅찬 존재들이다. 나는 이 투철한 삼총사가 마음에 든다.
별 나지만 자주 독립은커녕 나서지 않으며 화합을 통해 주인공을 앞세우는 충성심은 달따냥을 닮았고 수수함은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아내들의 알찬 행실을 꼭 닮았다. 여인들의 세심한 삶의 조화는 달리 나오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손끝에 맛이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조합의 명수가 바로 아내들이다. 완숙한 여인의 요리는 맛만큼 느낌도 포근하다. 3대째 가업을 잇는다는 음식점은 단순히 맛만이 비결이 아니다.
조화로운 성질을 가꾸어 온 꿋꿋한 인내와 그윽한 성품에 기인한다 할 것이다. 하루하루 끼니를 쉼없이 만드는 아내들. 가히 아내의 밥상은 한결같은 정성이고 따스한 조화로움이다. 여직 부려온 맛 없다는 투정이 부끄럽기 그지없다. 가정도 음식같은 조합체이고 조화의 기본 틀이다. 그간 아내는 너무도 긴 시간 수랏간에 얹혀 지내왔다. 그 무엇이든 달콤함은 가꾸고 만드는 데 그 묘미가 있다. 이참에 나는 취미 하나 살려 삼총사 역할을 톡톡히 하려한다. 우리의 단란한 미래라 한다면 그 무엇보다도 먼저 나설 당연한 달콤한 일이다. .
첫댓글 힘든 일을 겪으셨군요. 힘내십시오.
선생님 감사합니다. 김치 볶음밥을 만들어 주말내내 먹도록 했더니 우선 나부터 질려버리더군요. 요리 이것 대단한 능력이 필요하더군요.
"아내의 빠른 쾌유와 가정의 조화를..." 빕니다..^^
연골이 취약하다고 하니 어쩌지요 메디포스트에서 줄기세포 운운하여 눈여겨 보고 있습니다. 말로만 듣던 줄기세포를 제가 찾을 줄은...
인내를 바탕으로 삼는 삼총사의 역할은 하루이틀에 배워지는 것이 아닐 터이지만 그 마음가짐이 아름다워 선생님 댁의 단란함은 쭈욱 이어질 것 같습니다.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아내가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식당 보조 격은 됩니다. 아내가. 여행을 같이 늘 다녔는데 빨리 나아야겠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요놈의 날 세운 칼 눈으로 째려 보건대 우째 마나님을 위한 작업 이야기가 쏙 빠진 것을 보니 체험담 글은 아닌 것 같고 글로써 잘 차려 낸 요리 솜씨를 보자하니 실습은 우째 글 쓰기만 못 할 것 같고 마나님 콩나물 국이라도 시원하게 잘 끌여 드렸는지가 궁금하여이다. 해서, 우선은 급한대로 콩나물국을 지금부터 끓여 보는데......
콩나물 대가리와 꼬리는 그냥 놔 두셔요. 콩나물을 남비에 넣었을 경우 물은 반쯤 조금 안 잠기도록 작은 그릇 한 그릇을 붓고.
얼큰한 것을 좋아하면 처음부터 고춧가루 한 술을 박력있게 넣으셔요
콩나물국은 너무 약하지 않은 불에 역시 박력있게 빨리 끓이셔요
처음 끓는 동안 대파 반에 반뿌리를
비스듬히 모양내서 썰어 놓고 마늘 세 쪽을 다져 놓으셔요
묵은김치 그릇도 미리 내 놓으셔요
콩나물이 부르르 끓어 오르면 그 때부터 조금만 불을 줄여서 약 1 분간 계속 끓여요. 너무 끓이면 안 돼요.
1 분 후에 뚜껑을 열고 가능하면 잽싼 동작으로 미리 준비된 대파 마늘 김치를 넣는데 김치는 다섯 쪽 정도 조금만 넣으셔요.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칫국이 됩니다
이 때에 소금도 커피 스픈 정도 하나 만큼의 양을 넣어 주셔요. 대강 넣는 것이어요. 안 넣어도 상관 없어요. 짜게 먹지 말라 하니까 정히 간이 안 맞으면 먹을 때 맞춰도 늦지 않으니까 항상 소금을 넣는 것에 주의를 하기 바람.
넣을 것 다 넣었으면 다름에는 콩나물이 잠기는 정도의 물을 한 대접 잔뜩 넣고 얼른 뚜껑을 덮는데 역시 약하지 않은 불로 계속 끓이는데 중간에 절대로 열어 보면 작품 버립니다요. 특히 주의 하셔요 콩나물국만 그런 것 아니고 무엇이든 끓이다가 중간에 열어 보면 작품 젬병이라요. 충청도 구들장 같이 그냥 진드가니 기다리면 됩니다.
부르르 긇어 오르면 그 때부터 약 1 분 정도 다시 계속 끓이는데 이 때는 불을 조금 줄여도 좋아요.
콩나물국은 너무 오래 끓이면 콩나물이 힘 없는 뭐시기 처럼 흐물거려요. 맛 없지요. 먹을 때 너무 싱거우면 어쩌냐구요? 내가 그런 것까지 가르쳐야 하나요?
해물도 넣고 마른 북어도 넣고 하면서
더욱 맛 나게 하려고 하는데 남자가 이정도만 해 내도 마나님 감동 할 것입니다
특히 마나님 아플 때는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콩나물국이구요 환자 입장에서도 썩 괜찮은 것이 그것이라서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답니다요. 거기다가 밥 한 사발 푹 밀어 넣고 자시면 하루라도 더 빨리 당번을 면할 수 있답니다. 값 싸고 만들기 쉽고 맛 좋고 영양 좋고 특히 환자에겐 그만이지요.
낼 아침에 당장 실습 기대합니다요. 나중에 꼭 결과 보고 하셔요. 아멘. 목탁.
-의정부에서 고쿠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