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41)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 ② 윤동주의 상징/ 시인 공광규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네이버 블로그 - 등산은 즐거워/ 오줌싸개 지도(윤동주)
② 윤동주의 상징
윤동주의 시에도 상징이 많이 나타납니다. 윤동주는 일제라는 어두운 시기에 살았던 시인입니다. 그가 겪은 어두운 시절의 경험은 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시인은 어두운 시대 현실을 겪으면서 그 경험을 시로 형상화하였습니다. 윤동주의 시에서 빈번히 드러나는 물, 방, 하늘의 유형들에는 어두운 시대인식과 대응방식이 잘 함축되어 나타납니다.(김수복, 「정신의 부드러운 힘」, 단국대학교 출판부, 1994, 이 장에서는 김수복의 글을 주로 참조함.)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윤동주, 「오줌싸개 지도」 전문
오줌은 물의 성질이 있으므로 물의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핍한 식민지 시대를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가 돈을 벌러 가족과 이산을 해야 하는 현실을 아이가 오줌을 싼 사건을 가지고 그리고 있습니다. ‘별나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독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엄마는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꿈에서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또 아이가 그리움을 지도로 그렸다는 동화적 상상력도 이 시를 좋은 시가 되게 합니다.
김수복은 이 시가 현실인식과 결부되어 있으며, “유년적 상상력 속에는 신민시대의 유민적 삶의 현실 체험이 투영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죽어서 별나라에 있고, 아버지는돈 벌러 만주에 가 있는 자아의 비극적 현실의 세계로 상상력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렸습니다.
첨탑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전문
인용한 시는 창작자의 종교적 상상력이 담긴 시인의 개인적 상징입니다. 기독교 상징물로서의 십자가가 아닌 식민지 한국청년 윤동주의 십자가인 것이지요. 어두운 시대상황과 내면의 실존적 방황 사이에 고민하는 윤동주의 내면의식이 상징물인 십자가를 통해 표출되고 있습니다. 마광수(윤동주 연구」, 정음사, 1994, 130쪽)는 이 시를 “기독교의 관습적 상징을 개인적으로 응용한 대표적 상징물”로 보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순절과 부활을 의미하며 구원을 상징합니다.
이 시에 나타나는 정신적 자세를 박두진은 순절의식으로, 김우창은 자기희생의 이념으로, 마광수는 자기희생을 통한 구원의 자세로, 김용직은 시대상황과 역사적 소명에 대한 순절의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시는 종교적 상상력이 표출된 상징의 표상입니다. 십자가의 신화적 의미는 자기희생과 부활의 상징이며, 새로운 탄생의 상징인 것입니다.
화자의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는 자아의 의식지향은 종교적 순절의식의 표상으로서, 부활과 구원을 의미하는 상징체계를 담고 있습니다. 윤동주는 ‘십자가’를 통해서 현실의 어둠을 극복하고 원상적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기희생적 현실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작용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윤동주, 「또 다른 고향」 전문
‘방’의 상징은 자아를 성찰하고 그것을 통하여 재생하는 공간으로 나타납니다. 방은 원형상징에서 모태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자아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은 모태회귀의 상징적 의미를 띱니다. 거기서 화자는 재생되어 나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방에 갇히는 것은 도피가 아니고 새롭게 재생한다는 긍정적 가치를 지닙니다. 백골은 분열된 자아의식의 상관물입니다.
흰 수건이 검은 머리를 두르고,
흰 고무신이 거친 발에 걸리우다.
흰 저고리 치마가 슬픈 몸짓을 가리고,
흰 띠가 가는 허리를 질끈 동이다.
―윤동주, 「슬픈 족속」 전문
일제 치하에서 수난당하는 우리 겨레의 모습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흰 수건, 휜 고무신, 휜 저고리, 흰 띠가 우리 겨레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공광규, 시인동네, 2018)’에서 옮겨 적음. (2020.12.07.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41) 상징, 뜻을 사물에 숨기자 - ② 윤동주의 상징/ 시인 공광규|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