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桃花) 한 가지 ㅡ [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도화(桃花) 한 가지
―박목월(1915~1978)
물을 청(請)하니 팔모반상(飯床)에 받쳐들고 나오네 물그릇에 외면(外面)한 낭자(娘子)의 모습.
반(半)은 어둑한 산봉우리가 잠기고 다만 은은한 도화(桃花) 한그루 한 가지만 울넘으로 령(嶺)으로 뻗쳤네.
―박목월(1915~1978)
바위 아래, 소나무를 곁에 두고 '산 아래 첫 집'이 봄볕에 따사롭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춥고 낮엔 덥습니다. 이러한 절기에 먼 길을 가려면 땀이 솟고 갈증이 오지요.
길 가던 한 청년이 물을 청합니다. 흰 사발 가득 물을 떠 내오지만 맨손으로 건넬 수는 없어 팔모반상에 예(禮)를 갖춰 건넵니다. 예와 함께 살던 시대입니다. 갈증이 아무리 깊어도 그냥 벌컥거리며 삼킬 수는 없습니다. 이성이 부끄럽던 시절이니 처녀는 얼굴을 먼 산에 둡니다. 그 모습이 눈부셨던가 봅니다. 물그릇 속이 문득 산봉우리와 함께 ' 어둑'합니다. 그리고 마음엔 한그루 분홍 복숭아꽃이 번져옵니다. 시쳇말로 '심쿵'입니다. '울넘으로' '령으로' 뛰어 달아납니다. 몰래 큰 숨을 쉬어 가라앉혔을 겁니다.
이 더할 수 없이 절제된 침묵의 소란 속에서 아린 사랑의 감정을 봅니다. 복사꽃 피듯 은근한 물 위의 얼비침이 '사랑의 거처'라고 믿습니다. 이 소란한 침묵을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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