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촉석루(矗石樓) (2020. 3. 9)
웅장한 고래 누각 붕새로 비상하면
남강은 파도 일고 의암(義巖)에 숨는 잉어
용 서린 층층바위 위 선비 상투 우뚝해
* 촉석루(矗石樓);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 (본성동) 진주성내. 경남 문화재자료 제8호(1983.7.20 지정)이다. 남강(南江) 가 벼랑 위에 장엄하게 솟아, 영남(嶺南) 제일의 아름다운 누각임을 자랑한다. 1241년(고려 고종 28)에 창건하여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던, 이 누각은 진주성의 남장대(南將臺)로, 장원루(壯元樓)라고도 하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진주성을 지키는 지휘본부였고, 평화로운 시절에는 향시(鄕試:初試)를 치르는 고시장(考試場)으로 사용되었다. 6.25때 불탄 것을 시민들의 힘을 모아 ‘진주고적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복원하였다. 건물은 팔작지붕에 다락의 형태를 하고 있으며, 누각 밑의 돌기둥은 창원의 촉석산에서 채석하였고, 목재는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져왔다. 루에는 4개의 현판과, 시인 묵객들의 시판이 걸려있다. 매년 가을 진주성에서는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려, 독특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강변 바위에는 명문 석각(石刻)이 많다.(대한민국 구석구석 인용 수정)
* 붕새; 날개의 길이가 삼천 리이며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매우 큰 상상의 새다, 북해의 곤(鯤) 이라는 물고기가 화(化)한 것이다.(장자 소요유편)
* 논개(論介 1574~1593); 또는 주논개(朱論介)는 조선 선조시대의 의기(義妓)이다. 충절을 기려 의암(義巖)이라 한다. 관기인 그녀는 재주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임진왜란 제2차 진주성 전투에 승리한 왜군의 축하연 옆자리에 앉은 왜장 ‘게다니’(일본 기록에는 없음)를, 촉석루 밑 의암(원래는 危巖, 경남기념물 제235호) 바위까지 유인해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하였다. 경상우병사 최경회의 첩실이라 함.
* 상투: 머리카락을 모두 올려 빗어, 정수리 위에서 틀어 감아 맨 머리모양. 혼인한 남자의 전통적인 머리이다. 한자어로는 ‘추계(推髻)’ 또는 ‘수계(竪髻)’라고 한다. 중국의 『사기(史記)』에 위만(衛滿)이 조선에 들어올 때, ‘추결(魋結)’을 하고 왔다는 기록과,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한조(韓條)에 ‘괴두노계(魁頭露紒)’, 즉 관모를 쓰지 않는 날상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졸저 『鳶飛魚躍』 정격 단시조집(9) 제1-27번(37면). 2020. 7. 15 도서출판 수서원 발행.
© 촉석루. 사진 경향신문 인용(2020.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