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45) 시의 길, 시인의 길 – 하얀 까마귀 – ② 등단 전후/ 시인 조재도
시의 길, 시인의 길 – 하얀 까마귀
네이버 블로그 - 시인의 집/ 조재도-『이빨 자국』
② 등단 전후
▶ 여기서 잠시 등단과 관련된 얘기 하나 해야겠네요.
앞서 말한 대로 시 ‘너희들에게’를 쓸 당시 나는 공주농고에 있으면서 학급문집을 만들었어요.
매달마다 일일이 손으로 써서 만들었는데, 같이 문집을 내던 친구들과 함께 겨울방학에 학생 연합수련회를 조직하기로 했어요.
헌데 그 모임에 쓸 자료집과 주제 토의 자료집을 만들다가 그만 문제가 발생했어요.
결국 그 일이 사건화되어 (「이웃끼리」 문집 사건, 1984) 나는 안면도로 좌천됐지요.
헌데 좌천되기 전 겨울방학 때 공주에서 시인 김진경 선생을 만났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교육현장 문제점을 지적한 「민중교육」이라는 책을 기획하고 원고를 모으러 대전에 온 차에 공주에 들러 나를 만났던 겁니다.
그때 나는 무심히 그동안 썼던 시 다섯 편을 넘겨주었고, 그리고 그 일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어 1985년 여름방학에 공주 약국엘 들렀는데, 그때 KBS 아홉 시 뉴스를 하고 있었어요.
‘민중교육, 당신의 자녀를 노린다’라는 타이틀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보니까, 내 시에 붉은 밑줄이 좍좍 그어져 텔레비전 화면에 비쳐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좌경 용공에 감정적으로 호소한다’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였어요.
난 깜짝 놀랐지요.
안면도로 좌천된 후 세상물정 모르고 지내다 갑자기 일이 터졌으니 하늘이 노랄 수밖에요.
그게 바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민중교육」지 사건이었습니다.
등단부터 필화를 당한 거죠.
결국 나는 그 일로 인해 학교에서 쫓겨났고 이후 교육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아마 텔레비전을 통해 문단에 나온 사람은 지금까지 나밖에 없을 겁니다(하하).
▶ 운동 하면서도 시는 계속 썼어요.
그 즈음 나는 시를 이렇게 인식하고 있었지요.
“억압적 상황에서 시는 인간 본성의 건강함을 회복시키는 무기”라고요.
첫 시집인 「교사일기」(실천문학사, 1988) 후기에 이렇게 적었으니,
그 당시 시를 통한 현실인식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80년대만 해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자 하는 열기는 별로 없었어요.
아마도 사회변혁에 시가 무기로 작용해야 할 만큼 각종 문예지나 무크지 활동이 활발하던 때였으니까요.
오히려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습니다.
나는 단 한 번 신춘문예에 응모한 적이 있습니다.
「민중교육」지 사건 나고 첫 시집 발간 전이니까 아마 86~87년 그 즈음일 것입니다.
해직 상태라 돈도 궁하고 또 당선되면 좋을 것 같아 모 일간지에 응모했는데 떨어졌어요.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신문에 나오고, 거기 내 이름도 섞여 있으니 나를 아는 사람들이 그걸 봤겠죠.
몇몇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내가 신춘문예에 응모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그때 사람들 반응이 그랬습니다.
< ‘나를 바꾸는 시 쓰기, 시 창작 강의 노트(유종화 엮음, 새로운눈, 2019)’에서 옮겨 적음. (2020.12.11.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45) 시의 길, 시인의 길 – 하얀 까마귀 – ② 등단 전후/ 시인 조재도|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