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不幸) 중 다행(多幸)
"정치는 독약, 종교는 마약, 시는 맹물
해독제 없는 독약에, 마취된 채 취해온 마약에, 맹물로 헛배 채운 시
그걸 알았으니 다행이구나,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이 불행"
- 박진환 시집 <복수의 시·10> 중 '이 불행’
불가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라고 한다. 아마 인생살이가 어렵고 힘든 일들의 연속이기 때문이리라. 일, 공부 등 인생살이의 갖가지 선택 앞에서 잘 해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힘들고 어려움 투성이일 것이다. 어떤 일이 이미 잘 안 되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거나 아니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하기에 지금이 안 좋은 상태에 있는 셈이다. 그러기에 지금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인생은 어렵고 힘든 고해(苦海)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있다. ‘좋지 않은 일이 더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어 다행스러움’이라는 뜻이다. ‘좋지 않은 일’ 곧 불행은 ‘잘 번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렵고 힘든 일 즉 불행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번지는 것이기에 우리의 일상에 만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잘 해 보려는 인간의 욕망 자체가 살아가는 일을 어렵고 힘들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끝없이 욕망하고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해 불행의 나날을 현재진행형으로 감내하고 있다. 이 인내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다행스럽게 잘 마무리 되는 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多幸)’이 있기 때문이다. 불행 끝에 맛보는 이 다행이 있어 끝없이 이어지는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참고 견딜 수 있게 된다. 어쩌다 만나게 되는 다행(多幸)이 먼저 경험한 수많은 불행들을 망각하게 한다. 오히려 불행(不幸)보다 행(幸)이 더 많(多)거나 다(全) 행복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출산의 고통을 생각하면 당연히 둘째나 셋째는 태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 이상도 얼마든지 있음을 본다. 참 다행한 일이다.
생긴 것이 눈에 예쁘지 않아도 마음이 예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해도 마음씨 착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공부를 아주 못 해도 몸 건강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집안이 가난해도 가족들끼리 서로 위하며 사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정신장애가 있는 자녀를 두어 나날이 힘들지만 그래도 “어머님, 힘들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래도 우리 아들이 정신은 온전치 않지만 남의 물건 훔쳐오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내만 힘들게 하니까 얼마나 고맙습니까. 나는 엄마니까 다 이해를 할 수 있잖아요. 천만 다행이죠”하며 웃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몸에 고치기 어려운 병이 들었어도 단지 고치기 어려울 뿐인 것이 다행이다. 당장 죽는 것보다야 다행한 일이 아닌가.
장성한 자녀들이 가난한 부모의 초라한 뒷바라지를 원망하기 보다는 감사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설국열차와 같이 폭주하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귀농 귀어 귀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흐름이라고 볼 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자살과 저출산이라는 반생명적 현실 속에서 생명과 평화,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망의 몸짓들이 여기저기서 고개 들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크고 많고 높은 것을 선망하는 사회에서 작고 적고 낮은 것에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꾸며 작은 실천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소외된 이웃들을 더 이상 무관심 속에 방치하지 말자고 발 벗고 나서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정부의 비뚤어진 행태에 정면으로 맞서 바름과 옳음을 지키려는 학자, 학생, 시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잊지 말자고 다짐했던 작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희미해져 가는 지금에도 ‘잊지 않고’ 기억을 보듬고 몸부림하며 진실 규명과 사람이 살만한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부정과 부패, 사익추구와 불통, 무능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의 지배 권력자들 속에서도 수입의 90%를 남을 위해 쓰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인 우루과이의 전 대통령 ‘무히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또 그가 말한 “충분히 가지고도 더 많이 가지려고 안달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는 격언의 말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아가 조선시대에 한자와,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와 해방이후 러시아어와 영어의 모진 위협 속에서도 남북이 모두 한글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이 외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다행들이 곁에 있다는 것 또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삶을 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어렵고 힘든 일이 연속되어 왔다. 개인이나 사회에 두루 불행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마치 살아가는 일이 죄다 불행의 연속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살고 있다. 다행(多幸)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불행은 다 행복하기 위해 전제된 일상이다. 따라서 불행 중에도 다행을 바라며 오늘 우리의 삶을 잘 견딜 일이다. 참으로 잘 견딜 일이다.
첫댓글 위의 글을 읽으며 무언가 위안이 됩니다.불행 가운데도 어디엔가 피어오를 행복,희망을 따사롭게 느껴봅니다.'눈물 속에 피는 꽃'이라는 깐소네가 생각나요.삶이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지요..오늘 집으로 돌아오다,차를 기다립니다.집 방향의 유일한 버스지요. 보통 30-40분은 기다리기에 오늘도 참을성을 가지고 꾹꾹 기다리다 탑승합니다."감사합니다."기사분께 인사했지요.기사분도 "네."..언젠가 그 차를 타며 짜증 부린 일이 있어요.이 차는 왜이리 늦게 오냐고.배차 간격이 어떻게 되는냐고 하소연했는데..아이구..멀리서 힘들게 돌아오는데 고마운종이나 알지..하며 화내십니다.그래서 오늘 '늦어도 차 빵꾸{펑크의 원색적 표현}
나지 않고 온거'만 해도 고맙기에 "감사합니다."한 거에요.매사에 감사하기로 했습니다.지금 이 순간들이 조금 슬프고 힘들다 해도 다가올 행복,행운을 웃으며 기다립시다. 행복은 마음 속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