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150) 인습적 시각과 상상적 시각 - ①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 시인 이형기
인습적 시각과 상상적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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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
앞에서 살펴본 내용을 요약하면 ‘시를 쓰는 마음은 사물을 관조하고 그것을 상상력으로 변용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상상력은 사물을 상식이란 이름의 인습의 거울에 비친 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거부하는 태도로,
여태까지와는 달리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여태까지와 다른 만큼 새로워진 사물은 이미 낯설게 변용되어 있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인습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지각(知覺)의 자동화(自動化) 현상’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여기 있는 이 볼펜이나 저기 있는 저 소나무를 의식적인 노력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볼펜 또는 소나무로 알아본다.
그것은 오랜 인습이 길러낸, 자동화된 지각의 산물이다.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원리, 그것이 바로 지각의 자동화로,
이런 의식의 자동화 덕분에 인간의 삶은 편리하게 영위된다.
만일 우리가 이 볼펜이나 저 소나무를 자동으로 지각하지 않고,
이것이 무엇인가를 일일이 생각한 다음 그렇게 알아보게 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단순히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파괴해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지각의 자동화는 인간의 삶이 현재의 모양대로 존속될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긍정적인 원리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모든 사물을 오직 자동화된 지각인 인습적 시각으로만 보라보게 된다면,
우리의 삶과 세계는 언제나 과거를 되풀이할 뿐 진보나 발전으로 통하는 새로움은 성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의 삶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사물과의 교섭 과정이다.
사물을 새롭게 바라본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그 사물과의 새로운 교섭을 이루는 것,
즉 새로운 삶을 뜻한다.
새로운 삶이란 창조적 내포를 갖는 삶이다.
그리고 우리들 개개인의 삶이 새로운 창조성을 획득해나간다면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도
그에 비례하는 발전을 이룩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각의 자동화를 거부하는 상식적 시각을 갖는 것은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핵심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자동화된 지각의 안경을 벗고 상상력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면 여태까지는 보이지 않던
사물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난다.
다시 불펜을 예로 들어보겠다.
자동화된 지각으로 바라본 볼펜의 모습은 필기도구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상상력이 작용하면 이 볼펜도 어떤 여자에 대한 나의 사랑을 나타내는 구체적 표상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볼펜으로 곧잘 그 여자에게 절절한 사랑의 편지를 쓰곤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의 표상으로 바뀐 볼펜은 여태까지의 일상적 관점으로는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지각의 자동화를 거부하는
상상적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뜻이다.
시인은 이글이글 타는 눈알을 굴리며
하늘 위 땅 밑을 굽어보고 쳐다보아
상상력이 알지 못하는 사물들의 모양을 드러내면,
시인의 붓은 그에 따라
공허한 것에 육체를 주고
장소와 이름을 정해 준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중에서
위에 인용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의 한 대목이다.
여기에는 ‘알지 못하는 사물들이 모양을 드러내는’ 상상력의 기능이 분명하게 밝혀져 있다.
알지 못하는 사물들이 모양을 드러낸다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게 됨을 뜻한다.
< ‘이형기 시인의 시쓰기 강의,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다(이형기, 문학사상, 2020)’에서 옮겨 적음. (2020.12.16.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150) 인습적 시각과 상상적 시각 - ① 상상력을 키우는 훈련/ 시인 이형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