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와 개
이광수
벌써 수십 년 전 일이라, 내 나이가 아직 어리고 부모께서 생존하여 계실 때에 내 집이 시골 조그마한 한 가람가에 있었다. 어떤 장맛날, 나는 내 정들인 소-난 지 사오 일 된 새끼 데린 소-를 가람가에 내어다 매고 글방에 갔었다.
아침에는 좀 개이는 것 같더니, 믿지 못할 것은 장맛날이라 ,어느 덧 캄캄하게 흐려지며 처음에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비롯더니 점점 천지가 어두워 가며 소나기가 두어 번 지나가고, 연하여 밖으로 퍼붓는 듯한 빗발이 내려쏟는다. 나는 처마 끝에서 좍좍 드리우는 낙숫발과 안개 속에 잠긴 듯한 먼 내의 얼굴을 치어다보며 마음이 유쾌하게 글을 외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 좋아서 혹 고개를 내어다 대고 비를 맞히는 이도 있고, 혹 손도 씻으며 벼룻물도 받고 즐겨하였다.
해가 낮이 기울었다.
나는 한참이나 글을 외다가 갑자기 무슨 소리가 들이는 듯하여 깜짝 글을 그치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빗소리 사이로 선생님의 낮잠 하는 콧소리밖에 아니 들린다. 나는 이상하게 눈이 둥글하여 가지고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친다.
"옳다, 이것 안 되었구나!"
하고 나는 장달음으로 뒷 고개를 넘었다. 배 고의 적삼이 살에 착 달라붙고 머리에는 물이 흘러 눈을 뜰 수가 없다. 나는 삼 마장도 휠씬 넘을 가람가에 다다랐다.
'아아, 내 소는 어찌 되었는가?'
가람에 물이 불어 아침에 소를 매었던 언덕이 죽 벌겋고 물결 센물로 둘러싸이어 소 선 데만 조그마한 안방만하게 남았을 뿐이다. 비는 아직 여전히 퍼붓는다. 나는 우리 소가 죽었으리라 하였다.
소는 어린 송아지를 곁에 세우고 어찌할 줄을 몰라 고개를 번쩍들고 한참이나 영각을 하더니, 내가 온 것을 보고 물끄러니 나만 치어다본다. 아마 제 생각에 내가 오면 의례히 저를 살려 주려니 하였나 보다. 더구나 방금 죽게 된 줄도 모르고 젖만 먹고 서 있는 송아지 꼴은 차마 애처로와 못 보겠다.
나는 "누구 와서 소 좀 살려 주시오"하고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면서 암만 돌아보아도 사람 하나 그림자도 아니 보인다. 나는 두어 번 더 외쳤건마는 여전히 아무 반향도 없다. 소 선 땅은 절반이나 더 올라 잠겼다.
내가 살려 주려니 믿고 소리를 그쳤던 소는 아까보다 더 높고 슬픈 소리로 영각을 한다. 하도 이상하여 보이매 철없는 송아지도 젖을 넣고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갸웃갸웃한다.
내가 삼사 년 동안이나 정들려 기를 소-그의 사랑하는 새끼-그 뿐 아니라, 사려 주려니 하고 믿던 짐승에게 실망을 주는 나의 변변치 못함!
나는 뛰어들었다. 나는 헤엄을 조금 알았다. 난 소를 향하고 약한 팔로 물을 헤쳤다. 뭍으로 말하면 스무 걸음이 될 동 말 동한 넓이를 못 건널 줄이 있으랴 하였다.
그러나 물결이 세다. 내 두 팔의 아무적거리는 것은 물에 대하여 아무 저항을 주지 못하고, 겨우 중턱쯔까지나 비비어 건너 게서부터는 물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었다. 휙휙 물결에 밀려 내려가면서 소를 치어다보았다. 아마도 내가 물에 미려감을 보았음인지 몸을 솟구쳐 뛰며 영각을 한다. 송아지는 보이지 아니한다. 나는 '조그마한 힘이 있어 소 고삐만 잘라 주었더면 살 것을-'이런 생각을 하였다.
나는 그저 떠내려간다. 댓걸음 밖에 잡힐 듯 잡힐 듯하는 버들가지를 암만 바둥거려도 잡지 못하고 이제는 기력이 진하여 몸을뜨인대로 있게 하기도 매우 벅차다.
나는 죽는구나 하였다. 어버이께서 얼마나 설어할꼬 하였다. 내가 업어 주던 누이 생각도 하였다. 또 여기서 칠 리쯤 내려가면 이 가람이 바다에 들어가는 샛머리니, 갯머리를 지나면 나는 바다에 들어가 그 넓은 바다의 어디로 갈지 모르리라 하였다. 그러나 나는 게서 얼마를 아니 가서 물굽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 물굽이에 다다르면 물이 휘는 서슬에 육지가 잡히려니 하였다.
그것은 잘못 생각이라. 여러 물이 나를 가운데다 세우고 전후좌우에서 밀고 끌고 하는 듯이 나는 그 물굽이를 지내었다. 그러고는 또 한번 '나는 죽었구나'하고 아주 정신을 잃었다.
그 후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무엇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는 듯하기에 겨우 정신을 차려 번히 눈을 떠본즉 내가 건지려는 소는 물 하류에 있어 그 머리로 나의 몸을 밀고, 우리 개는 나의 오른 손목을 물어 언덕으로 끌어내리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다. 어쩐지는 모르나 물 넓이가 꽤 넓은데, 어마나 이 두 짐승이 애를 썼던지, 그 세찬 물결에도 나를 붙잡아 언덕에서 서너 자 되는 데까지 밀어다놓고는 그 이상 더할 힘이 없어 코로 들어가는 물을 푸푸 내어뿜으면서 속절없이 발만 허우적거리다.
나는 겨우 차린 희미한 정신을 가지고도 이 두 짐승의 헌신적인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이 흘렀다.
난느 이에 새 기운을 얻어 어찌어찌 언덕까지 헤어 올랐다. 소와 개는 이만 기쁜 일이 없는 듯이 이 뒤를 따라 헤어 올랐다. 나는 힘껏 소와 개를 안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물을 많이 먹고 기절하였던 몸이라 정신이 들지 아니하고, 사지에 맥이 풀려 땅바닥에 누운 대로 손을 내어밀어 내 곁에 피곤하여 누운 소의 이마와 개의 목덜미를 만졌다. 소와 개는 눈을 반쯤 감고 내가 만지는 대로 가만히 있다.
한참이나 이 모양으로 있다가 나는 비가 이미 멎고 구름장 사이로 볕이 번쩍번쩍함과,내가 누운 데는 갯머리서 삼 리쯤 되는 신촌(辛村)앞임과, 또 하나, 물에 빠졌던 사람을 소 길마에 거꾸로 눕히어 입과 코로 물을 토하게 하던 생각이 나서 나도 뱃속의 물을 토하게 하리라 하였다. 배를 만져 본즉 과연 딴딴하게 붙었다. 그러나 길마도 없고 나를 도와줄 이도 없으니 어찌할꼬.
소나 개를 길마에 대용하리라는 생각도 났으나 차마 재생의 은인을 나로 하여 피곤한 몸에 제가 살겠다고 기구로 부릴 수는 없다 하였다.
올라가 축동에 거꾸로 누우리라 하고 겨우 몸을 일으켜 벌레벌레 기어서 축동까지 나아가 거꾸로 누웠다. 그러나 원래 축동이 가파로운 데다가 풀잎이 비에 젖어 누우면 미끄러지고, 누우면 미끄러져 어찌할 수가 없다. 나는 더욱 기운이 지쳐 한참이나 땅바닥에 쓰려져 있었다.
소와 개는 고개를 번쩍 들고 나의 하는 양을 보더니 내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함께 일어나 내 곁에 와서 나의 벌거벗은 몸을 이윽히 보다가 그대로 거기에 눕는다. 나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뱃속에 든 물을 뽑아야 되리라 하였다.-아니 뽑으면 죽으려니 하였다. 마침 그 곁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나는 '옳지'하고 그 나무 밑에 기어가 땅 밑에 난 버들가지를 끊어 처닌마로로 두어 자 높이 될 큰 가지에다 내 발 하나를 동여매고 거꾸로 매달렸다.
물이 나오다- 입에서 코에서- 아마도 한 동이는 넘으리라 하였다. 얼마 있노라니 차차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도 좀 쇄락(灑落)하여진다.아까 잡아맬 때만한 수고로 발을 풀고 땅에 내려섰다.
그러나 아직 걸음은 걸을 수 없다. 곁에서 물끄러미 보고 앉았던 소와 개는 안심한 듯이 꼬리를 두른다 .나는 다시 그네의 목덜미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개는 이윽히 나를 피어다보다가 슬금슬금 축동곁으로 걸어 서쪽으로 올라간다. 나는 "워리,워리"하고 불렀다.
그래도 돌아보지도 아니하고 차차 걸음을 빨르게 한다. 그러나 따라갈 기력이 없어 주먹으로 눈물을 씻었다.
그 개는 소보다 일년 후에 외가에서 강아지로 얻어 온 것이다. 평생 나와 동무로 지내어 친한 분수로는 소보다도 간절하였다.
그러하더니 엊그제 중복날 그 개를 잡을 양으로 올가미를 감추어 들고 구유에 물을 주었다. 개가 대문으로 들어와 구유 곁으로 가려하더니 웬일인지 고개를 숙이고"컹!"짓고는 달아나간 뒤로 아내 집에 들어오지 아니하였다.
아마 축동 사이에 이틀동안이나 숨었다가"소 살려 주오" 하는 나의 외침을 듣고 뛰어나서 제딴에 반가운 나를 바라보고 섰었다가 내가 위태하여짐을 보고 따라온 모양이다.
간 뒤에 생각한즉 이때껏 굶은 양하여 배가 홀쭉하고 눈이 움쑥 들어간 듯하였다.
몇 날 뒤에 동네에시 미친개를 때렸다 하기로 가 본즉, 이 웬일인가, 바로 그 개로다. 입과 코로 선지피를 토하여 골이 터져 죽어 넘어졌다.
나는 두 주먹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으악"울면서 물매 걸음으로 달아났다.그 개는 갈색 털의 그리 숱 많지 아니한 개였다.
그 소는 그 후 내가 어버이를 여의고 동서로 돌아다니는 동안 팔았는지 잡아먹었는지 알 수 없다.
첫댓글 수필이 아니라 소설 같네요. 개도 소도 영리한 짐승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기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필이든 소설이든 감동은 받았네요. 소가 제 새끼는 구하지 못했나 보군요. 쯧쯧쯧.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소설적이네요. 고삐 매인 소, 며칠 굶은 개가 그럴 수 있는지. 아무려나 감동입니다.
옛 글이라 그런지 읽기 어렵네요. 내용이야 어떻든 표현도 그렇고,...먼 훗날 우리의 글도 이렇겠지요?
제아무리 기라성같은 작가도 세월 앞에 어쩔수 없나 봅니다. 좀 서글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