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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시인의 시세계
시대 인식과 시적인 행동들
한 시대의 사태가 발생하고서 세월을 거듭하여 40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런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화된 것과 변화되지 못한 것들이 고스란히 80년 5월 광주라는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들만의 상처가 되어 버렸다. 1980년이라는 광주는 대한민국의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으로 발생되었지만, 아직까지 국가적인 온전한 치유가 이행되지 않았다. 특히 광주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전 국민적인 공감을 얻어내는 데 국가의 노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80년 5월 광주에서 발생된 국가의 폭거에 대하여 2019년의 해 바뀜에도 국가와 국민이 동참하여 치유에 나서기를 외면하고 있다. 전라도라는 역사성과 지역적인 특수성을 바탕으로 영, 호남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금도 온전하게 정치뿐만이 아니라 통치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광주’를 도구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쪽의 아픔이 다른 한쪽에는 희망이거나 긍정이 되는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국가 분열주의에 다름 아니다. 문학이 그런 시대의 흐름에서 분연히 일어나 80년 광주에서 발생된 사태의 본질을 알리고 국민적 인식을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수긍한다. 그렇기에 더더욱 문학이 갖는 정치적인 한계를 쉽게 넘어설 수 없다는 것마저 긍정할 수밖에 없다.
물론 시대적인 환경이 변한 것을 감안하면 지속적 관심을 촉발해 가는 어려움도 있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문학인만은 역사가 외면과 좌절을 요구한다 해도 그 최전선에서 맞서 나가야 하고 패배자적인 인식은 극히 경계해야만 할 자세다. 문학은 정치가 아니라 본래의 문학으로 남아있을 때 정치적 각성과 성찰로 결집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고 문학이 거대한 힘을 발휘하여 정치적 합의를 확실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정확한 방향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여지가 없다. 특히 80년대라는 과거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국민들의 관심을 통해 정치적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 이럴 때 문학의 역할은 다름 아닌 ‘80년 광주 5월’의 심연 속을 통과하도록 할 사명이기에 그렇다.
4·19 혁명을 목도한 김수영 시인이 일갈한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라고 했던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조용히 개굴창에 넣고/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고 외쳤던 것처럼 80년 광주 5월 항쟁 정신으로 지금껏 맞서 온 이승철 시인을 시를 통해 만나고자 한다. 시인은 당시 20대 초반의 나이에 체험한 80년 광주 5월을 맞게 된다. 아직도 그 삶의 전부가 80년 광주 오월이라는 테제(민주, 자유)에 갇혀 있다면 그것은 시대가 안은 큰 부채임을 알아야 한다. 당시 국가에 대한 저항 의지로 지금껏 살아온 것을 문학의 궤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런 이승철 시인의 문학적 지향은 우리와 아주 멀거나 그렇다고 쉽게 가까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우리 삶의 경계 안에서 똑같이 호흡하며 숨 막힐 때마다 자유 의지를 갈망했을 뿐이다. 시인은 나름대로 문학을 통한 공감의 접점을 리얼리즘적 사고와 서정적 모더니즘 사고로 통렬하게 외쳐왔다. 어차피 문학의 범주란 것이 특정한 문학적 경향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그마저도 인간의 사고로 구분되었을 뿐이기에 굳이 들출 필요는 없겠다. 시인이 쓴 <자화상>은 그 예를 잘 보여준다. 자화상은 시인 속에 내재한 또 다른 화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지금껏 억압 당해온 고통을 진술하지만 고통의 전이는 없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르고 난 뒤에서야 진정한 세상을 바로 볼 수 있었듯이 시인은 주체성을 찾기 위해 몸부림으로 정신을 자학하고 있다.
말 못하는 벙어리 산천에 태어나
끝끝내 나는 피 토하며 한반도 산야에
이름 없이 쓰러질망정 술 백 잔의
고행으로 꽉 찬 허구한 날들
끈적끈적한 어둔 밤하늘 내 손으로
기어이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면
이 젊은 목숨 어디서나 피투성이 가슴팍일 거외다.
술 백 잔의 가을 문턱에는
젊은 고행 젊은 넋들 두 그림자 있어
들판도 동구 밖도 잠 못 이루고
밤새도록, 밤새도록 뜬눈입디다.
-<자화상> 부분
시집 『오월』(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12)을 통해 80년 광주라는 과거의 시간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술잔을 비울수록 되살아나는 과거의 시간들 “술 백 잔의 고행으로 하루 햇살을 마감하고/방황하는 가슴에는 멍빛 달빛이 쏟아집니다./진달래꽃 동산도 안쓰러운 아아 우리네/젊은 고행의 서슬 푸른 그림자여.”는 그 어디에도 함께하는 사람 하나 없는 절대 고독에서 절망을 맛보게 한다. 사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발생된 상처가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의 문제가 되어버렸다. 그 상처가 국가라는 폭력으로 자행된 것이었다면 개인이 감당해서 안 될 것은 분명하다. 과거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마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어서 개인이 결국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술과 고독은 반비례한다. 시인을 수시로 더 혹독한 자괴감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문학의 근원인 ‘광주’와 아직도 결별하지 못한 채 밤새워 쓴 자화상만 통어의 중심처럼 구조되지 못한 채 텍스트로 남았다. 그 좋던 젊은 시절을 흘려보내고 이제 황혼의 나이가 된 시인은 아직도 ‘광주’ 속에 갇혀있다. 그러니 해야 할 일이 많고 갈 길이 멀다.
"말 못하는 벙어리 산천에 태어나/끝끝내 나는 피 토하며 한반도 산야에”서 살아야 하는 시인은 자괴감을 읊고 있다. 시인이 보여주고자 하는 ‘자화상’은 내면의 자아인 정신세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시인의 자화상처럼 내재된 사유는 시를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다가간다.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사는 임동학 시인은 《누군가 간절히 나를 부를 때》에서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너의 전부가 아닌, 행여 저조차 끝없이 못 믿어 온 한낱 난파선 같은 나의 의지”였다며 통렬하게 자책했다. 임동확 시인도 80년 광주의 5월을 무병巫病처럼 앓아 괴로워하듯 고통받는 사람들이 비단 이승철 시인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시대를 목도한 모든 사람들의 치유되지 않는 아픔인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인해 상처 받은 개개인의 상처를 외면했을 때 시인이 할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자명하다. 그 시대와 무저항으로 타협을 이루거나 더 적극적인 저항의지를 불태우는 투사가 되든가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인간의 삶과 마찬가지로 역사는 변화를 거듭한다. 그 방향은 진전되거나 퇴보하거나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문학도 사회 변화의 추세에서 비껴갈 수 없다. 정치적인 이기심에서 다양한 분화를 거듭하여 광주라는 지역성은 앞으로 더 약화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을 위업으로 삼아 살아온 시인들은 그런 선택마저 쉽지 않다. 이승철 시인도 그런 부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뼛속에서 산꿩이 울던 날>에도 시인은 고향인 함평이나 광주가 아닌 객지에 있었다. “헛헛한 바람들이 종로 인사동 네거리쯤에 숨차게/휘돌아 돌 때 나 또한 서럽게 태어난 인생이기에/아무런 이유도 없이 칼칼하게 울부짖고 싶었다./때론 잔설 위로 우짖는 노고지리 한 마리 되어” 대한민국의 심장부 종로에서 또 다른 자신의 자화상을 만난다. 시인은 자신과 분리된 타자로 세상을 살아왔던 것이다. 시인의 문학 속 근본이 되어주던 고향 함평이 갖는 이상향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오래 동안 다물었던 입을 열어 서럽게 태어난 출생의 이력을 밝혀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 산꿩은 결국 “내 존재의 5월 꽃 한 송이를 고이”간직해온 그 계절에만 서러워 우는 울음인 것이다. 그 원죄의식은 해소되지 않는 억압에 있고, 그 원죄는 억압에 의한 것이기에 욕망의 경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대적 고통이고 당사자가 감수해야 할 천형이다. 천형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그 천형은 국가에 의해 씌워진 것이기에 국가에 의해서 회복이 어느 정도 가능할 뿐이다. 그때마다 ‘뼛속에서 산꿩이 울던 날’이면 그 환장할 소리를 듣고 한 마리 노고지리가 되어 하늘에서 또 다른 산꿩 같은 자신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시인은 부단히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목록을 끝없이 적어왔다. 시는 시대의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담론을 지향하는 문학이기 때문이다. <오월>은 해마다 찾아오는 슬픔의 전언이다. 우리는 조금씩 고통을 박피해야 할 사명을 잊어선 안 된다. 하지만 역사는 항상 염원하는 자의 것은 아니다.
그날 스러져 영산강이 된 꽃 넋들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천지를 꽉 채우고
살아, 욕된 눈빛만 남은 자들이 모여
팔뚝 없는 주먹으로 저 먼 길을 가리킬 때
누가 지금 오뉴월 보리밭에서 흔들리는가.
어서 오라, 그대 5월의 젊은 벗들아
우리가 무릎 꿇고 맞이해야 할
오월 생목숨의 날이 바로 오늘이구나.
-<오월> 부분
은 시인의 내재화된 슬픔 같은 근원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밝히고 있다. 우리 시대의 묵은 유물로 덮어버리려는 시도 앞에 “그날 스러져 영산강이 된 꽃 넋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며 강한 의지를 놓지 않는다. 끊임없이 아픈 기억으로 현상되는 80년 광주 5월을 지켜낸 ‘생목숨’들의 절망이 반복되더라도 “그대 5월의 젊은 벗들아”를 호명하며 역사의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는 간곡해진다. 시인은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대학을 다니다 1980년 광주 5월을 목도했다. 그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때마다 시인은 세상에서 문학의 한계와 절망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럴 때 가장 쉽게 광주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시詩를 선택했을 것이다. 문청 시절을 온통 분노와 열정으로 보냈지만, 현실에서 문학의 한계와 절망을 확실하게 확인했다.
‘오월’만 되면 무병巫病처럼 앓게 되는 억압된 무의식은 매번 증상으로 현상된다. 그럴 때마다 “살아, 욕된 눈빛만 남은 자들이 모여/팔뚝 없는 주먹으로 저 먼 길을 가리킬 때/누가 지금 오뉴월 보리밭에서 흔들리는가.”라고 물어올 때는 비감스런 자책이 전부다. 가망 없는 현실과 부단히 대결할 수 있는 문학에 대한 방식을 고집하는 시인은 시를 통해 정의의 회복을 외쳤을 것이다. 광주 5월을 기점으로 역사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실과 부단히 소통이 이뤄질 때 가능한 치유를 생각한다. 그것은 어차피 문학이 가져야 할 시대적인 사명의식으로 보편성에 합당한 윤리의식과 결부될 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전되지 않는 보편적 서정이 있는 삶과 회복되지 않는 역사가 빚어낸 암흑의 시대는 별개가 아닌 상보적인 관계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것은 별개가 아니고 동전의 양면으로 존재한다.
그런 정당한 시비를 끝없이 거는 일이 당 시대를 살아가는 문학인의 소명이고 그것이 곧 시인의 시론임을 알게 해 준다. 그런 주장은 ‘갈대’의 끈질긴 복원성을 통해 배우려 한다. <갈대>에서 “제 한 몸을 건사치 못한 새하얀 손길들이/흙발로 다가와선 들녘 어디서나 시리도록 출렁이고/순천치 못한 육신들이 여기 모여 살고 있는 한/참담한 세월을 다시금 휘몰아쳐 올 것이다.”라는 시적 발화는 단순하게 계절 풍경만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그 내재된 시의時意는 쉽게 무너지지 않겠다는 저항의지를 시의식으로 치환하려는 기의記意인 셈이다. 만약에 ‘참담한 세월’이 다시 몰아쳐 온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나약한 모습으로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다. 80년 광주의 그 시절처럼 무지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저항의지야말로 문학이 갖는 시적 위의 이고 그것은 도덕적 윤리와 상통하는 것이다. 시인은 논리가 아닌 시비是非와 정사正邪를 가리는데 추호의 양보를 하지 않겠다는 자의식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나는 살아있지 않은가>라는 의미는 실존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개인의 윤리가 사회윤리로 구체화될 때 국가 윤리와 세계 윤리의 보편성을 획득한다. 시인은 과거의 적극적이지 못했던 그 시절 비 윤리적인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 “일천구백팔십년 그 싱그러운 5월 하늘 아래/널브러진 핏빛 구렁 속에 함께 하지 못했던 나”를 돌아보며 늦었지만, 처절한 반성에 나선다. 그 반성은 삶의 진로를 향한 성찰로 이어져 강한 추동력을 갖게 된다. 그것은 절대적인 인간존중과 시대적인 자유의지와 맞물려 위의를 갖는 80년 광주와 5월 정신이며, 결국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 무엇을 이다지도 두려워 하는가”라고 자신의 심약함을 질책한다. 보편적인 위의를 확보하였기에 두렵지 않다는 방증이다.
나이 들어 바라보는 세상은 죄다 가볍거나 아니면 더 무거울 뿐이다. 시인은 육삼 빌딩이 있는 <마포 강변에서> 지나가버린 세월을 안타까워한다. 상처투성이인 몸과 육신을 허락하는 강가의 저 우뚝한 빌딩 앞에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시인은 “저러이 말갛게 떠가는 몇 생의 흔적들이/오늘따라 왜 그리 서운한지./스무 살 적 오월에 병풍쳤을 목숨이었다”지만 막상 그러지도 못했다는 소심한 시인이다. 그런 속내를 굳이 밝힌 것은 아직도 못다 한 것들이 많다는 역설일 것이다. 기억할 것도 많고 찾아가야 할 곳도 많은 시인이다. 어차피 세상은 혁명이 아니고는 판을 확 뒤집을 수 없듯이 기어이 꺾이는 풀처럼 지쳐 먼저 쓰러져버린 <그날 강화 선창가_김남주 시인에 대한 회상>을 더듬어본다. “죽은 자를 추억하는 건 산자들의 몫이다.”라며 괴롭게 내뱉는 말이 너무 무겁다. 사람 한 없이 좋았다는 김남주 시인, 그래서 “때론 우리 후배들에게 천하의 물봉으로 통했지만/저, 개싸가지 없는 세상을 향해서는/온몸을 다해 침을 탁, 뱉던 그 사람이/저 멀리 해남읍 삼산면 봉학리 논두렁에서/웃자란 잡초들을 끝없이 솎아내고 있었다”는 그 시인과 시대의 불화를 떨쳐내지 못한 고통을 나누었을 것이다. 매번 시대의 억압 앞에서 좌절과 패배가 반복되어도 문학의 진정성에 대한 신앙信仰이야말로 대단한 힘이 되었을 것이다. 시인이 구복 하는 세상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굳이 문학이 아니더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유의지지만, 여지없이 그것마저 박탈당한다.
<못 박힌 세월아>에서 “그대 면회마저 허락되지 않는 그러한 날에”도 영어의 몸이지만 정신은 더 총총하게 살아있었다. <벽속에 갇힌 너>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옭아 매여 더 깊은 절망 속에 갇히지만, 그곳에서 지향하는 꿈은 “못 박힌 듯 떠오르지 않는 날짜를 손꼽아 다시 세며/누워도 잠들지 못하게 하고, 불러도 대답 없는 얼굴들/새까맣게 지우라 한다, 한줌 햇살과 종일 노닐며/붉디붉은 포승줄에 칭칭 감긴 채 끝내 기다림 하나로.” 끝내 포기하지 않고 극복한다. 문학은 시대에 맞선 행동이어야 한다. 그런 행위가 곧 문학의 위의에 합당하다면 기꺼이 양심을 담보해야만 한다. 양심이 흔들릴 때마다 찾아가던 과거의 80년 그 시절 광주는 여전했다.
뉘엿뉘엿 해 지면 고구마꽃 물결쳐 나부끼는
들녘 길 여기저기 온밤 내 서성거렸습니다
천지에 가득 찬 그대 그리움을 못 벼려
밤새 미어지는 가슴으로 찬 구들장에 뼈를 눕힙니다
이윽고 시대의 아픔은 콘크리트 방벽마다
썩을 대로 썩어서 그 누구도 쓰러져 누운 잡풀들
부추기지 못합니다 이것이 내 스물 몇 해의
청춘의 어느 시절, 새벽이 오기 전에 나는 재빨리
야윈 손목 잡고 떠나가야 합니다, 망가진 넋으로는
못 돌아갈 고향 땅 언덕 거기 기산골 뒷산에는
대숲 울음 승냥이처럼 엎어져 온 땅을 뒤흔듭니다
초승달도 잠 못 이루는 이맘때쯤 갈가리 찢긴 넋은
양파꽃 넌줄처럼 훠이 훠어이 흩날립니다
이 한밤 칠흑 어둠 속에서도 한사코 깨어있던
몇 등의 불꽃은 내 옛 동무들의 그 가슴일까요
아아 나는 한 세상 갇힌 몸뚱이 되어
잔디꽃 풀씨처럼 흩날리는 양산동 기슭에서
달빛 속에 출렁이던 저 영산강이 되지 않으리라
맹세도 서른 번씩 하였습니다
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던 그날의 혼령들을
품마다 가슴마다 뼛속 깊이 얼싸안고서
청춘아 젊은 넋들아 그 이름자들 하나하나
죄다 호명하면서 아침이 올 때까지
그 넋들과 함께 부대꼈습니다
-<광주, <양산동에서> 전문
이승철 시인의 시를 통해 시 전반에 담긴 문학 정신의 근원과 지향하고 있는 문학적인 위의는 우리가 가볍게 여겨선 안 될 소중한 역사의 기록물임을 알 수 있다. <광주, 양산동에서>의 시 전문을 통해 시인이 그토록 갈망하던 문학의 토대는 역사 의식의 올바른 지향에 있고, 그것을 위한 헌신은 일반적인 삶으로는 감당하기에 벅찬 것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대 인식으로 가졌던 양심을 바탕으로 한 인류 보편적 가치인 윤리의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시인도 나이 예순을 넘어서는 몸이 되었다. 시집을 일별 하며 같은 문인으로서 내내 가슴 답답하도록 울컥하기를 반복했다. 시는 그 삶뿐만 아니라 시대를 온전히 비춰주는 거울임을 깨닫도록 했다.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시적 인식은 실천을 지향하는 행동임을 말해주고 있다. 잘못 치른 홍역으로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듯 지금껏 치유하지 못한 80년 5월 광주라는 트라우마와 부채의식을 안고 사는 시인의 고향은 전남 함평이다. 함평 가는 길 꽃 피어 눈 밟히는 ‘오월’이 마음 편치 않겠지만, 그래도 천지간 하나뿐인 고향이다.
심신이 더 상하기 전 찾아가야 할 <함평천지> 드넓다는 그 곳곳에 핀 “각시붓꽃 물오른 기산봉 산야 골골마다 잎잎이 잠깬 수목들 솟음쳐 깜박산 아흔 아홉 골 굽이치며 고산봉, 두류봉, 옥녀봉 지나 천주봉을 오르내릴 때 석정리 산 구릉 너머 냉이 캐는 새색시 눈매에 온통 초록물결 뿐, 저마다 싯푸르게 몸살 앓는다.”는 고향 언저리까지 기어이 내려왔다. 시인은 고통스런 유랑의 삶을 살아왔다. 그 시적 사유와 유랑은 거친 유목적인 기질로 침착되어 서정을 바탕으로 한 현실 참여를 아우르는 독특한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경과된 세월 속에서 침전물인 시적 행동이 참과 거짓으로 나뉠 때 문학은 항상 참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첫댓글 쓰느라 수고했네. 최근에 출간된 모양이네? 출판사는 어디인가?
"오월" 이 나온지는
2014년 일걸
내글은 추가 발행하면서
시집에 실은거여
출판사는
"지식을 만드는 지식"
박철영이 한 사람이 아닌가 싶구만. ㅎㅎ 왕성한 창작활동이 놀랍기도하고 부럽기도 해서 한 말이라네.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보이네. 잘 읽겠네.
예
또 다른 박철영이가 있습니다
조금씩 부족한 것을 좋은 시를 읽으며 배워가면서 쓰고 있습니다